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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수의 내일, 우리들의 오늘

[시선; Re] 편집위원 상민

시선; Re ― 2021 여름 144호 「트랜스젠더, 군인, 죽음


지난 10월 7일, 대전지방법원은 故 변희수가 2020년 8월 11일 육군본부에 제기한 전역 처분 취소 행정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올해 3월 2일 원고 변희수의 사망으로 인해 소송 자체가 종료될 위기에 놓였었으나, 닷새 만에 2천여 명의 시민이 유가족의 소송수계를 위한 탄원서에 서명한 결과 소송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결국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후 10월 말 육군에서는 변희수의 인사 기록을 강제전역에서 정상전역으로 정정하겠다고 밝혔다.


대전지법 행정2부(재판장 오영표 부장판사)는 "성전환 수술을 통한 성별 전환이 허용되는 상황에서 수술 후에는 원고의 성별을 여성으로 평가해야" 하기에 "수술 직후 법원에서 성별 정정 신청을 하고 이를 군에 보고한 만큼 군인사법상 심신장애 여부 판단 당시에는 당연히 여성을 기준으로 했어야 한다"며 육군이 변희수를 남성으로 간주하고 ‘고의로 심신장애를 초래한 자’로 전역 심사에 올린 것은 명백히 잘못된 처분이었음을 확인해주었다. 지극히 타당하고 합리적인 판결이었다.


분명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우선 고인은 전역을 원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인터뷰에 응한 변희수의 지인들은 그가 죽음을 선택한 까닭이 복무연장을 신청하지 못한 채 강제전역 당한 그의 정상전역일인 2021년 2월 28일이 이미 지나, 승소하더라도 복직할 수 없었던 데에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 바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지난 9월 충북 청주상당경찰서는 부검과 디지털포렌식 결과 등을 토대로 그의 사망시점을 27일 오후로 결론 지었다.[1] 육군은 변희수에 대하여 전역처리가 아닌 순직처리를 했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군의 태도는 정반대였다. 현재 국방부 장관이자 변희수 강제전역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서욱은 10월 1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1심 판결을 존중”하지만 "기회가 되면 상급심이나 이런 것을 통해서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며 항소 의지를 보였고, 실제로 이튿날인 20일 육군본부는 법무부에 항소 지휘 요청을 하였다.[2] 다행히도 법무부에서는 “법원 판결이 인정한 사실관계와 법리, 인간의 존엄성 존중에 관한 헌법 정신, 국민의 법감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3]한 행정소송 상소자문위원회의 항소 포기 권고를 수용해 22일 국방부에 항소 포기를 지휘하였고, 이에 국방부가 항소 시한인 26일까지 대전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음에 따라 전역 취소 판결이 확정되었다.


이러한 법무부의 항소 포기 지휘 결정에는 대통령이 참모회의를 통해 “항소는 고인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전한 것이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4] 육군이 변희수의 믿음을 배신하고 그를 강제전역시켰을 때에도,[5] 국가인권위원회의 전역처분 취소 권고와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복직 권고를 육군과 국방부가 모두 무시할 때에도, 심지어 변희수가 사망했을 때조차 청와대는 이에 관해 단 한 마디도 의견을 표명한 적이 없다. 그리고 대통령의 이번 우려 표명조차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아닌 청와대 출입 기자들의 ‘카더라’로만 전해진 것이었다. 아마도 변희수가 살아있었다면 청와대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을 것이고, 육군은 항소를 진행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변희수는 자신의 죽음으로 (예비역) 군인으로서의 지위를 되찾은 셈이다. 이것이 내가 그의 승소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이다. 국가와 군대가 변화해서가 아니라, 그가 죽어서 얻어낸 승리이기 때문에. 나는 일전에 “그 모든 진보보다도 당신이 죽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6] 것이라고 썼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 승리가 오직 그의 죽음만으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그가 생전에 처음 행정소송을 제기했을 때 4,212명의 시민이 탄원서를 작성한 바 있으며,[7] 이번 항소 포기 지휘 이전에도 10월 14일 시작되어 닷새 만에 이루어진 시민 1,168명과 단체 239곳의 항소 반대 연서명이 있었다.[8] 그를 추모하기 위해 국방부 앞에 모였던 사람들이 있었고, 대전지검에서 이뤄진 재판 방청을 통해 연대한 이들이 있었다. 가장 일전에서 싸웠던 군인권센터를 비롯한 시민단체와 변희수의 친구들이 있었으며, 끝까지 딸의 명예를 위해 소송을 이어나간 그의 부모님이 있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고 세상 앞에 자신을 드러낸 변희수의 용기가 있었다. 용기와 연대의 승리였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대로인 것만 같다. 대전지법의 판결은 애초에 원고가 전역심사 당시 여성으로 “성전환”한 상태였기에 군이 심신장애라고 판단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지 “성전환된 여성으로서 현역 복무에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군 특수성과 병력운영, 성 소수자 기본 인권, 국민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이런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아 법무부 역시 항소 포기 지휘를 하면서도 “이 사건의 판결은 성전환자의 군복무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취지가 아니”라고 부연했고, 국방부는 결국 패소 후에야 트랜스젠더 군 복무 문제에 대한 연구용역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해 변희수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군에는 이미 트랜스젠더가 존재한다.[9] 트랜스젠더는 머리에 뿔 난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의 일상에서 이미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시민이다. 육군과 국방부가, 법무부가 계속 말하는 ‘군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곳에 존재한다. 따라서 군이 연구해야 하는 것은 “트랜스젠더도 군 복무를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군대 내의 차별과 혐오를 제거할 것인가”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트랜스젠더가, 퀴어가, 소수자들이 마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존재에 대해 ‘찬반’을 말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우리 사회 공론장에서 쫓겨나지 않고 있다.[10]


이런 목소리를 막기 위한 법이 차별금지법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모든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말이 차별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만들어진다. 하지만 임기 내내 차별금지법에 대한 침묵을 지키던 대통령이 갑자기 “차별금지법 제정을 검토할 때가 되었다”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한 것조차 무색하게,[11] 국회는 차별금지법의 심사 기한을 21대 국회 임기의 마지막 날인 2024년 5월 29일까지로 연장하였다.[12] 또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은 한국교회총연합회 관계자들을 만나 “차별금지법이 현실에서 잘못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기에 “일방통행식 입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며 2017년 대통령 후보 시절의 문재인과 똑 닮은 행태를 보였다.[13][14] 한편 국민의힘 후보인 윤석열의 경우는 ‘사회적 합의’의 부족도 기독교적 논리도 아닌 ‘기업의 (차별할)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을 이유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말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15]


추태다. 상관없다. 애초에 역사는 당신들이 만들어오지도 않았으며, 만들 수도 없다. 복무를 원하는 군인이 자신의 성별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 수술한 것을 ‘심신장애’라며 강제전역시키는 군대는 존재할 가치가 없으며, 이러한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말조차 법제화시키지 못하는 국가는,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야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국가는 존립할 가치가 없다. 그럼에도 이 국가를 포기하고 버리는 대신, 우리가 살 수 있는 국가로 만들기 위해 분투한 수많은 시민들이 역사를 만들어왔다. 우리가 변희수의 내일을 우리들의 오늘로 만들 것이다. 그곳에 당신들이 낄 자리는 없다.


* 이후 지난 12월 13일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변희수 사망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 개시를 결정하였다. 위원회는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18조 2항에 따라 ‘군인이 복무 중 사망한 원인이 명확하지 아니하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사고 또는 사건’에 대해 직권조사를 할 수 있다. 핵심 쟁점은 그의 사망 시점 그리고 사망과 전역처분 사이의 인과관계라고 한다. 합리적인 결과가 나오기를 고대한다.


편집위원 상민 / poursoi0911@gmail.com


[1] [보도자료]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변희수 하사 사망사건 직권조사 개시 결정을 환영한다 (2021.12.14.).

[2]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 제6조 1항에 따라 행정부처가 제기하는 모든 소송은 법무부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3] [법무부 알림] <법무부장관, “변희수 하사 전역처분 취소소송”, 육군참모총장에 항소 포기 지휘> (2021.10.22.).

[4] 국방부 “변희수 하사 ‘부당 전역’ 판결 항소”…청와대 부정적 기류 (2021.10.20.). 한겨레.

[5] 자세한 내용은 본지 144호 「트랜스젠더, 군인, 죽음」의 103-104쪽을 참고하라.

[6] 상민 (2021.07.). 108.

[7] “고 변희수 하사 명예 복직” 광고 위해 900만원 모금 (2021.08.09.). 서울신문.

[8] “육군은 변희수 하사 복직소송 항소 포기하라” (2021.10.19.). KBS 뉴스.

[9] 2020년 3월 진행된 변희수와의 인터뷰를 담은 《한겨레》 기사 「“기갑의 돌파력으로 그런 차별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하하”」에서 변희수는 “제가 알기로는 중사와 상사 중에도 트랜스젠더가 있어요. 장교 중에도 있고요. 그분들도 앞에 나오셔서 좀 더 얘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 바 있다.

[10] 대표적으로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였던 홍준표가 차별금지법에 대해 “뭐하러 동성애를 합법화하느냐”고 말한 것(10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에서 ‘탈동성애인권센터’의 목사를 데려다 놓고 평등법(차별금지법) ‘찬반’ 토론회를 연 것(11월 25일) 등이 그 예시이다.

[11] [단독] 문 대통령 "차별금지법, 검토할 때 됐다"... 여야 "11월 이후 논의 시작" (2021.10.28.). 한국일보.

[12] 본래 국민동의 청원이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소관 상임위에 상정된 경우 150일 이내로 심사해 본회의 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국회법」 제125조 6항). 하지만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연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차별금지법 심사기간 연장 결정에서 그 ‘특별한 사유’가 무엇인지는 말해지지 않았다.

[13] 문재인은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2월 13일, 한기총·한교연·NCCK를 방문하여 동성혼과 차별금지법 제정에 모두 반대한다 밝힌 바 있다. 이어 4월 25일 있었던 TV토론에서도 자신은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으며 “동성애를 합법화할 생각은 없지만, 차별은 반대한다”는 뚱딴지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14] 강연을 위해 지난 12월 8일 서울대를 방문한 이재명은 이러한 발언에 대해 사과하라는 ‘2021 차별금지법 제정 연내 쟁취농성단’ 소속 서울대 학생 3명의 요구를 가만히 듣더니 웃으며 “다 했죠?”라는 말만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페이스북에서 당시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https://fb.watch/9NyJMokmlm/)

[15] 매일경제 스페셜 인터뷰_윤석열 대통령 후보 (2021.07.19.). 레이더P.


참고문헌

논문 및 저널

상민 (2021.07.). 트랜스젠더, 군인, 죽음. 고대문화 여름 144호, 94-115.

 

기사 및 온라인 자료

강은 (2021.12.16.).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고 변희수 하사 상대 '전역' 명령 내린 군. 경향신문. Retrieved from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12161538001

권혁철 (2021.10.20.). 국방부 “변희수 하사 ‘부당 전역’ 판결 항소”…청와대 부정적 기류. 한겨레.

Retrieved from https://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1015962.html

김종철 (2020.03.20.). “기갑의 돌파력으로 그런 차별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하하”. 한겨레. Retrieved from https://www.hani.co.kr/arti/society/rights/933547.html

나영 (2021.11.17.). 함께 토론하고 싶었던 사람, 변희수 하사에게. 참세상. Retrieved from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6366

남효정 (2021.12.14.).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故 변희수 하사 죽음 직권조사한다. MBC뉴스. Retrieved from https://imnews.imbc.com/news/2021/politics/article/6323774_348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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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희 (2021.11.10.). 43초만에 '땅땅땅'... 여야 합의로 뭉개진 차별금지법 심사. 오마이뉴스. Retrieved from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86558

박정연 (2021.12.08.). 성소수자들 차별금지법 항의에 이재명 "다 했죠?". 프레시안. Retrieved from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20810233812121

신은별 (2021.10.28.). [단독] 문 대통령 "차별금지법, 검토할 때 됐다"... 여야 "11월 이후 논의 시작". 한국일보. Retrieved from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02716180005927?di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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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성 (2021.10.19.). “육군은 변희수 하사 복직소송 항소 포기하라”. KBS 뉴스. Retrieved from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04258&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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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혜민 (2021.11.02.). "뭐하러 동성애 합법화" 발언 홍준표...시민단체 “동성애 불법인 적 없다” 비판. 여성신문. Retrieved from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7223

[법무부 알림] <법무부장관, “변희수 하사 전역처분 취소소송”, 육군참모총장에 항소 포기 지휘> (2021.10.22.).

[보도자료]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변희수 하사 사망사건 직권조사 개시 결정을 환영한다 (2021.12.14.).

이종걸 (2021.11.23.). [입장] 더불어민주당 평등법(차별금지법) 토론회 참석에 부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Retrieved from https://equalityact.kr/1125-2/


방송 및 영상자료

그것이 알고싶다 (2021.04.03.). SBS. 1255회 ‘오롯한 당신에게 - 故변희수 전 하사가 남긴 이야기’

매일경제 스페셜 인터뷰_윤석열 대통령 후보 (2021.07.19.). 레이더P. 접속일 2021.12.09. Retrieved from https://www.youtube.com/watch?v=mG0RHZGlOGo&t=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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