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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지네트워크를 만들며; 흔들리지 않을 우리의 목소리

[대학교지 네트워크] 편집장 민철, 《연세》 전 편집장 지긍

“우스갯소리로,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육 개월만 일찍 나왔다면 우리는 종간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1]


2013년 여름, 또 하나의 교지가 우연처럼 종간했다. ‘길들여지지 않는 시대의 눈동자’라던 교지가 덮인 이유는 ‘쓸 사람이 없어서’ 였다. 길드느니 눈을 감는 편을 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1년 봄, 또 다른 교지가 연대를 요청해왔다.[2] 총학생회로부터 부당한 오해를 받아 학내에서 거센 비난 여론에 부딪혔다고 했다. 그런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던 건 기껏 서명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 교지는 아직 살아있고, 계속해서 쓰고 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비난에 지쳐 교지를 모두 그만두었다면 그때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이제는 덮여버린 교지를 향해 ‘또 다른 우연으로 당신이 살아남기를 바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죽음은 수많은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다. 그때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우연이라 부를 수만은 없다. 그래서 운이 좋았다면 종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담담히 말하던 그 교지의 죽음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며, 막을 수 있었다.


이제 위기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 역시 위협적이고 실제적이다. 학생 사회의 탈정치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학생회의 역할은 축소되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가판대의 교지 위에 먼지는 쌓여가고, 교지편집위원회에 새로운 사람은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의 약한 목소리도 수많은 소음에 파묻혀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연대’ 뿐이었다.


2021년 가을, 우리는 300여 군데가 넘는 대학언론을 추려 ‘아직’ 덮이지 않은 전국의 35군데 교지편집위원회에 《고대문화》 여름호와 함께 연대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중에는 이미 편집위원회가 사라져 반송되어 돌아오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총 여섯 군데의 교지에서 함께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동일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름도, 기조도, 발간 횟수도, 하고 싶은 말도 모두 달랐다. 하지만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함께 ‘대학교지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위기를 우연으로 치부하기를 거부하고, 그 안에서 무력하게 사라지기를 기다리지 않겠다. 이미 사라진 교지를 두고 우리는 살아남아 다행이라며 위안 삼지 않겠으며, 다른 교지들에 허울뿐인 안부를 던지지 않겠다.


약하지만 흔들리지 않을 다짐을 하며, 우리가 나눈 짧은 대화를 함께 싣는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우리가 함께 던진 이 작은 돌은 곧 수많은 우연을 거쳐 거대한 필연을 만들 것이다. 분명히.

- 대학교지 네트워크를 만들며


총 일곱 군데의 교지가 대학교지 네트워크에 함께 한다. 대담에는 《고대문화》, 《이화》, 《연세》, 《한양》이 참여했고, 시기 상의 이유로 대담에 참여하지 못한 《개신》, 《민주조선》, 《성심》 역시 서면으로 내용을 보충해주었다. 이를 《고대문화》와 《연세》가 맡아 정리하였으나, 집필 과정에서 네트워크의 모든 편집장님들께서 내용을 더하거나 빼 주었다. 더하여 이와 관련한 후속 보도가 내년 3월 《이화》 104집에 실릴 예정이다. 아래는 현재 네트워크에 참여 중인 교지들의 목록과 간단한 정보다. 최신호를 QR코드를 통해 볼 수 있다.


1.  우리는 교지를 만듭니다.

내가 교지편집위원회에 들어온 이후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고대문화가 뭔데?” 내지는 ”아, 고대신문 같은 건가?” 하는 다소 힘 빠지는 물음이었다. 이렇듯 되돌아온 답변은 교지에 대한 학내 전반의 무관심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내가 그것에 실망했던 이유는 단순히 내가 활동하는 단체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는데, 그보다도 학내에서 ‘교지’가 갖는 특수성 때문이었다. 고려대학교에는 《고대문화》 말고도 《고대신문》, 《대학원신문》 KUBS 등 수많은 학내 언론들이 존재한다. 다만 고대문화가 교지로서 여타의 학내 언론들과 다른 점은, 교지가 오직 학생들이 납부한 교지대로만 운영된다는 것이다. 이에 교지에는 그 어떤 압력과 검열 없는 이야기가 담겨왔다.


학생들의 교비로 운영되는 만큼 우리만이 담아낼 수 있는 경쾌한 시선을 다루는 게 좋다고 생각이 들어요. – 한양


학교 안팎에서 일어나는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저희가 쓰고 싶은 글을 우리가 가진 신념에 따라 작성하고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 이화


예를 들어 저희는 저번 호에 학교 청소 노동자분들 얘기를 담았었는데 그때 취재를 가서 들어보니까, 다른 학내 언론 수습기자가 와서 같이 한 바퀴 돌았는데도 기사는 하나도 안 났다고 말씀을 해 주시더라고요.[3] - 고대문화


실제로 지난봄 학내 노동조합들의 천막 투쟁이 한창일 때, 고려대학교 노동조합 제2 지부 위원장님의 인터뷰가 학내 모 방송국에 실렸다가 삭제되는 일이 있었다. 본지는 취재를 위해 해당 방송국에 인터뷰 영상을 요청했으나, “학내 중앙 방송국으로서 제작과 송출 전반의 과정에 있어 학교 측의 지원을 받고 있다”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고대문화》 여름호에는 위원장님의 인터뷰가 실렸다. 이처럼 교지는 오직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우리의 목소리로 담겨있다.


더하여 교지의 또 다른 특수성은 그것이 ‘학교’의 언론이라는 데 있다. 대개 교지는 계절 혹은 학기당 한 권이 발간된다. 이에 교지는 학내의 일들을 보다 긴 호흡으로 종합하여 담아낸다. 예컨대 고대문화는 앞서 소개한 고려대 노동조합의 파업 외에도, 총학생회의 세종캠퍼스 학우 교육자치국장 임명 철회 사태 등 학내에서 논란이 된 사안들을 종합적으로 다룬 바 있다.


《한양》 같은 경우는 학내 사안을 제1순위로 다루고 있어요. 위안부에 대한 망언을 일삼은 조셉 교수 재임용 사건 등, 학내에서 발생한 일들을 분석하여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교지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 한양


《연세》에는 2018년에서 2019년, 총여학생회 폐지 안건이 통과될 때까지 전체적인 타임라인이나 당사자와 진행한 인터뷰가 실린 기사들이 있어요. 계간지인 만큼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사건을 파악하고 회의를 한 후에 기사가 나오는데요. 당시에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누군가 이 기사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연세


그러나 교지가 필요한 이유는 단순히 검열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거나 학내의 사건들을 다루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보다 큰 교지의 정체성은 주류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목소리를 담는 데 있다.


학내의 의견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오가는 상황에서, 소수자를 향한 폭력성이 가감 없이 표출되고, 한 집단의 목소리만 대변될 때, 이런 글을 쓰는 학내 단체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이 소외 받는다는 느낌이 들 때, 그래도 여전히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존재감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거죠. – 연세


이렇듯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그들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약해 계속해서 귀 기울이지 않으면 쉽사리 놓쳐 버리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그 과정은 언제나 사회의 다수와 부딪치기 때문이다. 내가 교지 활동을 하며 보았던 것 중 지금도 잊히지 않는 학내 커뮤니티 글은, “너네가 왜 고대문화냐, 느그문화지”라는 댓글이었다. 맞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결코 사회의 주류 문화가 아니며, 되기도 힘들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의 이름이 틀렸다고 할 수는 결코 없다. 《고대문화》, 그리고 수많은 교지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지금의 잔혹한 현실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며, 그보다도 우리가 닿아야 하는 영원한 지향에 가깝다. 그러므로 고대문화는 고대(의) 문화가 아니라, 고대(가 향해야 하는) 문화다. 《민주조선》, 《이화》, 《연세》, 《한양》 등 수많은 교지들이 학교의 이름을 담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교지는 그런 공간이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은 한편으로 교지의 실제적인 위기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2.  흔들리는 교지들

과거 ‘학교’라는 공간은 시대 변혁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학생 운동에 대한 관심이 점차 사그라지면서 학생사회 역시 탈정치화 되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수의 비난보다 더 큰 벽을 만나게 되었다. 학생들의 무관심이었다. 실제로 고대문화는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2,000부 이상을 발간하였으나, 현재는 겨우 5-600부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이마저 다 나가지 않는다. 학내 커뮤니티 등 온라인상의 관심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교지에 대한 무관심은 비단 고려대학교 만의 일이 아니었다.


(연세대학교의 공식적인) 대학 언론사는 연세춘추, 연세 애널스, 연세 교육 방송국 이렇게 세 개 뿐이에요. 저희도 분명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고 저희가 언론사라는 인식도 거의 없는 것 같아요. – 연세지


저희는 비난도 없고요. 그냥 아무도 이런 얘기가 없어서, 이제 교지가 있는지도 모르더라고요. 학생분들이. 그래서 저희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가끔은 비난이 받고 싶기도 해요. – 이화


안 그래도 교지의 존재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코로나 이후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심지어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교지가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어요. (…) 교지 발간을 준비하고, 글을 쓰면서 허탈감을 느끼기도 해요. – 한양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지 편집위원회 자체의 재생산도 힘들어진다. 실제로 계절마다 책을 발간해오던 《연세》는 지난 129호 이후 한 호를 쉬기로 결정했다. 124호부터 축소 발행을 이어오다가 재정비를 하려는 것이다. 현재 《연세》는 계간지 체제 대신 학기마다 한 권을 발간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계간지가) 가능했던 이유는 참여하는 인원이 많고 교지대가 안정적으로 걷혔기 때문인데, 지금은 이제 교지대도 부족하고 학생들의 교지 활동 참여율이 저조해지다 보니까, 남은 사람을 갈아 넣어서 계간지를 유지하는 게 맞느냐는 얘기가 오가는 거죠.” - 연세


한편 그 가운데 학교 측의 교지 검열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 2018년 3월, 이화교지편집위원회(이하 이화)는 조형예술대학(이하 조예대) 부학장으로부터 96집에 실릴 〈무너짐의 미학: 조형예술대학 실태 고발〉 기사에 대한 수정 요청을 받았다. 기사가 조예대의 과거 문제를 위주로 담고 있으며, 현재 변화된 모습은 다루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화는 조예대 행정실에 원고를 보낸 적이 없으며, 오직 교지대 관리 명목으로 완성된 원고를 학생처에 송부하는 사전승인제도를 운영해왔을 뿐이다. 그런데 학생처가 '사실 확인'이라는 명목으로 원고를 조예대에 보낸 것이다. 사건은 교지 발간 전 학생처에 원고를 보내고 학생처장의 최종승인을 받던 기존의 절차를 폐지하면서 마무리되었지만, 이는 결국 학교 측의 검열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바를 시사했다.


이화교지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교지의 글은 곧 이화교지의 목소리입니다. 교지의 글을 발간하기도 전에 조예대의 교수가 학생인 이화교지 편집위원에게 직접 연락을 하여 기사 방향의 수정을 요구하고, 조예대 학생회 측에 학생 대상으로 해당 글의 동의 여부 조사를 요구하는 것은 명백히 학내 언론의 입을 막는 것이며, 교수-학생 사이의 위계권력을 이용한 폭력이었습니다.[4]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교지들은 새로운 문제를 마주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문제는 ‘돈’이었다. 교지 제작에 있어 학교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은 재정의 독립이다. 이번 대담에 모인 모든 교지는 학생들이 낸 교지대를 재원의 일부 혹은 전부로 사용하고 있다. 학생회비에서 일정 비율로 교지대가 배정되거나, 학생회비와 구별되어 교지대가 걷힌다. 구체적인 방식과 관계없이 교지편집의 재정은 학생회비의 규모에 달려있다. 그러나 학교를 막론하고 학생회비 납부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2012년 교육부는 학생회비를 자율적으로 납부하도록 해야 한다는 권고 조치를 내렸다. 연세대학교의 경우 2013년 1학기부터 자율납부제를 실시했는데, 납부율은 39.9%였다. 이후에도 학생회비 납부율은 계속 감소했고 2019년에 들어서자 20%도 미치지 않는 수준이 되었다.[5]


특히 학생회비와 교지대가 분리된 학교의 경우, 납부율 감소의 문제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예컨대 이화의 경우 이러한 분리고지의 여파로 교지대가 충분히 걷히지 않아, 2007년 발간된 75집의 발간 부수를 이전 호의 절반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고, 이후에도 91집 작업 중 적자가 심해져 교내 커뮤니티와 선배들을 중심으로 모금 활동을 벌여 교지를 완성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지 편집위원회가 학생회비를 대신해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광고 수주였다.


학생회비에 교지대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번 학생회비 납부율이 낮아져서 큰일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회비에서 나오는 금액으로는 충분히 인쇄비를 내지 못하니까 나머지 비용은 광고비로 충당하고 있어요. - 한양


하지만 광고 수주를 마냥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광고는 주로 기업 혹은 동문들의 광고가 교지에 들어가게 된다. 다행히 이번에 대담을 나눈 교지들 중에서 큰 문제를 겪은 곳은 없었지만, 광고와 교지 내용이 상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또한 모 교지에서는 결혼정보회사, 성형 광고를 싣게 되어 이후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던 적도 있다고 했다. 재정상 완벽한 자치의 형태가 아니라는 위기감도 분명히 존재하며, 광고 게재에 따르는 자본의 개입 가능성을 완전히 지울 수도 없다.


이처럼 광고 수주가 교지의 이상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 하지만 인쇄 부수가 줄어들어 제작 단가가 낮아졌음에도 이를 충당하기 어려운 곳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광고마저 없다면, 교지는 더 이상 쓰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우리를 두렵게 했던 것은 교지가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었습니다. 부수가 적어지면서 교지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적어지고, 당연히 교지대를 내는 사람이 줄고, 돈이 부족해 부수를 더 적게 찍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교지가 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장 존폐의 위기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상업광고를 싣지 않겠다는 정치적인 신념은 잠시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6]


3.     그럼에도 교지, 그리고 네트워크

“아직도 부족하지 그래서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 언니네 이발관, 〈산들산들〉


교지가 직면한 위기는 복합적이다. 재원 부족부터 학생 사회 전반의 무관심까지 해답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모두 얽혀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이 넉넉하고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시기처럼 교지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 와중에 일주일에 한 번 이상씩 회의를 하고, 글을 쓰고, 피드백을 나누고, 교지를 제작하는 과정까지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들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에게 교지 활동의 부침보다도 더 곤혹스러웠던 지점은,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맞는지 스스로 묻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모인 자리에서 교지 편집 활동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자신의 시간을 들여 글을 쓰고 교지를 만들고 있으면서도 마음속 의심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과연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쓰고 있는 내용이 맞는 방향인 것일까. 다른 학내 언론과 교지 사이의 차이는 말과 글이 향하는 곳이 다르다는 사실 하나 뿐인데, 그 방향을 우리는 정말 확신할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각자가 품은 신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는 다들 조금씩은 의심하면서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게 맞나, 그러니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맞나 나아가 다른 사람들도 나랑 같이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완벽히 의심이 없기는 어렵지 않나 싶네요. – 연세


이를테면 능력주의, 그러니까 ‘우리 다 공정하게 싸우고 있고 탈락한 애들은 능력 없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시각이 있고, 그렇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잖아요. 그게 파란 약 빨간 약이라고 했을 때, 세상은 그냥 파란 약 얘기만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빨간 약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신하진 못하더라도, 나는 일단 빨간 약 얘기를 하자 하고 생각을 해요. 세상이 기본적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니까. – 고대문화


이처럼 우리는 글의 지향점에 다수가 동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스스로 강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현실을 모두 공유하고 있었다. 과거 학생 정치가 태동하던 시기처럼 공통의 적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과거 7, 80년대 대학교지는 사회 전반에 대한 학술적인 글을 싣는 공간이었고 당시 학생 사회의 정치적 의제와 함께 가는 글들이 많았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학술적인 특색은 줄어들고 에세이나 리뷰와 같은 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자치언론, 대항언론으로서의 정체성은 남아있었고 이는 학생사회의 탈정치화의 흐름 속에서 환영 받는 특색은 아니다. 과거의 여명을 마냥 좇을 수도 없기에 교지 편집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걸어갈 수 있는 길은 흐릿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발을 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소한 용기일지도 모른다.


교지를 통해 다른 학우들이 쉬이 꺼내지 못하는 말들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어요. 맞냐 틀리냐를 떠나서 다양한 의견이 필요하지 않나 싶고요. 계속 목소리를 내면 언젠가는 우리 얘기를 들어주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일단 써보자!’라고 하기도 합니다. – 이화


그리고 각자 교지의 이름으로 걷던 길이 함께 모일 기회가 생겼다. 이곳에 모여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은 무엇일까.


(교지 네트워크는) 결국은 연대의 의미로, 위기에 있을 때 서로 좀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단순히 연대 요구에 대해 연서명 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대응해 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 고대문화


지금으로서는 다섯 개 학교가 모였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문을 두드릴 계획이다. 대담을 마치고 글을 작성하는 중 조선대학교의 《민주조선》, 충북대학교의 《개신》, 그리고 가톨릭대학교의 《성심》과 연락이 닿았다. 교지네트워크는 점차 더 많은 편집위원회와 모여서 이야기하고 함께 글을 쓰겠다는 흐릿한 목표를 세워가고 있다. 지금은 이름조차 정해지지 않은 ‘교지 네트워크’의 방향성은 ‘연대’라는 두 글자에서 시작했다. 《용봉》이 마주한 상황은 학생사회의 탈정치화 그 자체였다. 교지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은 교지의 정치성을 끌고 왔다. ‘탈정치’의 요구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며, 많은 교지가 마주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연대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그곳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일정한 양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는 교지 발간에 있어서 ‘대학’ 혹은 ‘학내 정치’라는 의미가 사라져 가는 시점에서 그 이후에 무엇이 남겠냐고 묻는다면, 글의 형식과 글을 쓰는 기간이 오히려 공통점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시간을 들여서 긴 글을 쓴다고 했을 때 어떤 과정을 거쳐서라도 정치적으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교지 네트워크로 모인다면 그건 우리가 대학의 이름으로 모이던 과거의 형식에서 벗어나자는 제안이었어요. 거기에서 벗어나 왜 우리는 글을 쓰는가를 자문할 때 거기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 연세


4.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내 시간이 지나가네 / 그 시간이 가는 것처럼/이 세대도 지나가네 / 모든 것이 지난 후에/그제서야 넌 화를 내겠니 / 모든 것이 지난 후에 / 그제서야 넌 슬피 울겠니” – 이랑, 〈환란의 세대〉


대학 사회의 탈정치화를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새롭지 않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학생 사회의 위기론은 이제 닳고 닳은 비판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교지 네트워크를 시작하면서 다시 확인하는 현실이 있다. 대학의 탈정치화는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대학생이라는 탈을 쓴 목소리는 탈정치의 수사를 힘입어 대학 사회의 능력주의적, 엘리트주의적 정치성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혐오의 목소리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탈정치화를 탓하는 이야기만 할 수는 없다.


교지를 만드는 일이 즉각적인 정치 행위는 아닐지 모른다. 그럼에도 충분한 시간을 들이고 토론을 거쳐 만들어지는 글에 정치성이 없으리라 기대해서는 안된다. 몫을 나누는 일을 정치라고 한다면 여러 사람이 모여 만들어 낸 글에는 각자의 몫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그러므로 교지는 글을 모아 하나의 잡지를 만들겠다는 목적 넘어, 정치적 목소리를 숨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학내 공동체를 넘어 그런 사회를 꿈꾸는 이상과 낙관의 목소리이다. 교지라는 이름으로 모여 끝없이 의심하고 이야기를 나누되 느리더라도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모으고자 한다. 이번 대담에서 확인했듯 이 일에 확신을 가진 사람은 없다. 의심을 좀먹고 회의가 싹트기 전에 우리는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가감없이 의심을 드러내고,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할 기회가 필요하기도 하다. 의심의 일부분에는 분명 대학 교지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대학’의 정체성도 있어야 한다.


더하여 우리가 오랜 학벌주의의 수혜자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앞서 완전히 지우지 못한 의심은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학교의 이름을 달았기에 발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남기는 엄중한 목소리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의 이름을 빌려 낼 수 있는 목소리의 위치성을 인식하고, 그 목소리가 무엇을 대표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자기비판을 통해, 대학 교지의 정치성이 가진 한계를 직면하고 그것을 드러내야 과거 학생 정치의 발자취에서 하나 나아가는 시도가 될 것이다.


교지 네트워크가 시도하는 것은 위기론의 반복이 아니다. 탈정치의 정치에 대항할 새로운 정치를 시도하는 시작점이라는 의미를 붙이고 싶다. 그 시작은 의심에 기반하기에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위태로운 만큼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다. 그 치열한 고민과 끝없는 물음 끝에 우리가 왜 교지를 만드는지 다시 한번 답할 기회가 오리라 기대한다.


기획 / 대학교지 네트워크

작성 / 편집장 민철 a40034136@gmail.com

《연세》 전 편집장 지긍 ourindepen@gmail.com


[1] 관악편집위원회 (2014.01.). 종간사. 2쪽.

[2] 지난 3월 전남대학교 교지 《용봉》이 연대를 요청해왔다. 전남대학교 총학생회는 《용봉》의 광고 수익 사용 내역 공개를 요구함과 동시에 예산 삭감을 시도했다. 그러나 교지대가 아닌 광고 수익은 교지의 자체적인 예산으로, 학생회에 공개할 의무가 없다. 또한 그 과정에서 교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모욕적인 언사도 이어졌다.

[3] 이후 8월말 총비대위 인권연대국 주관으로 세 언론사의 공동취재가 이뤄져 보도될 수 있었다.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지난 가을호의 「고려대학교 청소노동자 아카이빙」을 참조하라.

[4] 이화교지편집위원회 (2018.09.). 교지 〈이화〉 사전검열 폐지에 대한 안내. 229쪽.

[5] 추락하는 학생회비 납부율, 위태로운 학생자치 현주소. (2019.06.01.). 연세춘추.

[6] 이화교지편집위원회 (2008.03.). 발간사. 3쪽. 


참고문헌

논문 및 저널

관악교지편집위원회 (2014.01). 관악 종간호.

이화교지편집위원회 (2008.03.). 梨花 76집.

이화교지편집위원회 (2018.09.). 이화 97집 표백주의.

이화교지편집위원회 (2020.04.). 이화 100집 여백.


기사 및 온라인 자료

김채린, 오한결, 박채린 (2019.06.01.). 추락하는 학생회비 납부율, 위태로운 학생자치 현주소. 연세춘추. Retrieved from 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25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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