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행위다. 진리에 다가서고 정의를 추구하는 방식이다. 소크라테스는 끝없이 질문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명령문이 그를 상징하는 것처럼 되었는데 이는 잘못된 전언이다. 테스 형의 트레이드 마크는 명령이 아니다. 끊임없는 물음이다.
물음이 자유로운 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질문을 못하게 하는 사회는 살기 등등한 사회다. 여유가 없고 권위적이다. 모난 돌을 찾는 정들이 지배하는 곳이다. 물음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나아지기를 거부하는 행위다.내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이의 아는 행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셈이다.
낀둥이가 저 표창장을 가지고 왔을 때 나는 궁금했다. 묻고 싶었다. 우선, 아이가 부모를 위하고 효행을 실천하는지 교사가 어떻게 안다는 걸까? 혹시나 싶어 처에게 확인해 보니 역시나 금시초문이란다.
효행 표창장을 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적어도 부모에게 확인을 해야 한다. 본인에게도 검증하지 않았다. 너, 부모님을 위하고 효행을 자주 하니?라고 물었어야 하지 않나? 아이한테 물었더니 왜 받았는지도 모른단다. 그냥 종례시간에 주시더란다.
결국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내린 칭찬이다. 목적도 명확지 않은 표창이다. 그저 교육청이 하라니까 관행대로 관례대로 한 것이다. 학교생활로 미루어 효심도 깊고 효행도 할 거라 짐작한 것 같다. 내 딸이 불효녀인 것은 아니지만(아주 아닌 것도 아니지만ㅋ) 저걸 팩트체크 없이 그냥 주는 건 생각 없는 짓이다.
또 한 가지는 왜 학교가 효행을 칭찬하느냐 하는 점이다. 그건 부모가 할 노릇이다. 평소 학교에서 예의 바르고 타의 모범이 되는지는 오히려 내 쪽에서 알 길이 없다. 나한테 잘하니 선생님에게도 잘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래서 학교생활을 잘한다고 칭찬할 수 없다. 칭찬을 하려면 적어도 교사나 친구의 증언이 있어야 한다.
나쁜 것도 아닌데 뭐 그런 것 가지고 유난을 떠냐고? 인정한다. 그러니 직접 교장이나 담임교사에게 연락 안 하고 여기에 끄적거리고 있지 않나?
사실 모든 물음은 유난 떨기다. 깐족거림이다. 대들기다. 있는 질서에, 뻔한 권위에 순응한다면 왜 따져 묻겠는가? 호기심을 묻어야지.
학교 안에서 나처럼 생각한 교사가 없지는 않았을 거다. 누군가는 의아했을 거고 어쩌면 어떤 이는 물었을 거다. 하지만 묵살당하거나 핀잔을 들었을 것이다. 별 걸 다 갖고 문제 삼는다고...
하지만 상이든 벌이든, 진리를 가르쳐야 할 곳에서 사실이 아닌, 적어도 검증되지 않은 팩트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점은 잘못이다. '그냥 외워'가 사고력 없는 젊은이들을 양산하고 '그냥 받아'가 윤리의식 없는 특권층을 만든다. '그냥 해'가 사회적 참사의 단초를, '그냥 먹어'가 파블로프의 개 같은 노예를 만든다.
왜라는 질문이 사라진 교육현장을 보는 듯해 씁쓸하고 안타깝다. 적어도 아이들의 '왜?'에 대한 대답이 '그냥!'은 아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