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아재가 있다. "세상에는 말야, ○종류의 인간이 있는데 하나는~~"이라고 말하는 아재와 그렇지 않은 아재다. 나는 전자다.사실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하려고 두 종류를 운운한 것이다.
- 다 음 -
세상에는 세 종류의 중년 남자가 있다. 첫째, 참됨(truth ,眞)을 추구하는 아재. 둘째, 선함(virtue ,善)을 추구하는 아재. 셋째, 아름다움(beauty ,美)을 추구하는 아재. 우리가 고대 철학에서 배운 그 진선미다.
나는 소년 때 첫째의 삶을, 청년에 둘째의 삶을, 중년인 지금 셋째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
어떤 지향 유형인지 모를 때는 어떨 때 가장 답답하고 화가 나는지, 무엇이 참기 힘든지를 자문하면 된다. 이해가 안 되는 것,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것, 밋밋하고 단조로운 것 등이 각각 진리, 정의, 예술을 추구하는 마음이다.
돈과 권력이라는 흔한 지향점이 왜 없는가 지적받을 수 있겠다. 돈, 권력은 모두가, 특히 중년의 남자들이 탐하는 것이지만 수단이지 근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령, 돈과 권력을 획득하고도 마음 깊은 곳에는 어떤 갈구가 있을 터인데 그게 참됨, 선함, 아름다움 중 하나일 거라는 믿음이다.
얼마 전에 이건희 컬렉션에 다녀왔다. 그가 생전에 모았던 미술품들이 국가에 기증되었고 지금은 여러 도시를 돌면서 전시되고 있다.
빠른 클릭으로 겨우 한장 획보. 500원 짜리인데 다자녀라 무료란다. 나머지 넷을 방치하고도 대접을 받으니 뻘쭘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은 훌륭한 기업인이다. 반면 정경유착, 편법 증여, 성매매 등으로 악명 또한 높다.
역동의 시대에 젊은이들이 대체로 그랬겠지만 나 역시 기성세대의 업적 찬양보다는 부패 규탄에 마음이 쏠렸다. 특히 젊은 날의 의협심은 재벌에 대한 반감에 불을 지폈다.
이제 완연한 중년이 되고 나니, 또 그 악당(경제 부흥에는 영웅이지만 사회 정의의 측면에서는 악당이다)이 죽고 나서 그의 수집품을 보고 있으려니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든다.
한국 근현대 미술에서 가장 독창적인 기법으로 평가받는 박수근의 작품. 화강암에 새긴 듯한 느낌이다. 교과서 말고는 이건희 컬렉션에서 처음 보았다.
돈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나는 이건희 씨를 평가해 왔다. 미술에 대한 애정도 편법 증여의 수단이나 허영심의 발로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의도가 어떻든 그가 소장하고 있던, 저승까지 가져가는 데는 실패한 작품들이 우리에게 돌아왔다. 탐욕이든 수단이든 그 의도가 어땠든 결과적으로 명작을 잘 보존해 후대에 물려준 셈이다. 고인에게 고맙다.
아재 유형으로 보건대 이건희 회장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을 거다. 빌 게이츠는 선을 추구한다. 엄청난 재산을 공익재단에 쏟아붓고 제3세계의 문제 해결에 골몰한다. 반면 일론 머스크는 진리를 좇는 사람이다. 전기차를 개발하고 우주선을 만들어 쏜다. 우주여행과 달 탐사를 시도한다.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고암 이응노의 작품. 활자를 모티프로 한 문자추상 작품이다
이건희 컬렉션 중에는 고암 이응노 선생의 작품이 꽤 있다. 고암은 동백림 간첩 사건에 연루되고, 백건우 윤정희 납치의 배후로 의심받기도 한 좌파 인물이다(좌파라는 것도 박정희가 붙인 딱지에 불과하다. 한국전쟁 때 끌려간 아들을 만나게 해 준다는 말에 북과 접촉한 것을 빌미로 정치탄압을 받은 것이다).
만약 이건희가 정치에 더 신경 썼다면 그 냉혹한 분단 시절에 고암의 작품을 샀을까 싶다. 죽은 사람에게 물을 수 없고 살아 있다고 해도 만날 수 없어 못 묻겠지만 그가 아름다움 앞에서는 순수했다고 믿고 싶다. 빨갱이고 아니고를 떠나 작품이 좋으니 샀기를 바란다.
김환기와 더불어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알려진 유영국의 작품 고등어. '신화가 된 화가들'이란 타이틀로 전시되고 있다.
나는 신뢰보다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있어서도(특히 권력을 쥔 사람들) 박한 점수를 준다. 특정인에 대한 맹목적 지지와 찬양, 복종을 싫어한다. 무슨무슨 빠들을 (속으로만) 경멸했다.
하지만 어엿한 아재의 나이에 이르고 나니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좋은 게 좋은 거다'는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구석이 있다 쪽으로 마음이 쏠린다.
탐욕과 탄압의 대명사여서 타도와 탄핵의 대상이었던 이건희 씨가 평생 모아 온 작품으로 내게 감동을 주다니 놀랍다. 오래 살지도 않았지만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어쩌면 가장 믿지 못할 것이 내 확신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내 지향 유형이 어찌 바뀔지 나도 모른다. 어떻게 변하든 그 전과 후가 모두 나라고 믿어야지. 과거의 나를 질책하지 않고 현재의 나를 맹신하지도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