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의 발끈 포인트

분노와 불쾌의 역치가 낮아지는 현상에 대해

by 이지완

우리 집에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에 어떤 이는 놀람을 감추지 못한다. 아동학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듣는다. 폭염은 폭염인가 보다.


왜 에어컨이 없냐는 질문에 글쎄,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이유는 여럿 있다. 에어컨 바람에 두통을 느끼는 개인적인 증상부터 세 들어 살며 언제 빌트인 하우스로 이사 갈지 모르는 불확실성, 일 년에 며칠 틀지도 않을 낮은 가성비와 지구온난화 일조 거부라는 거창한 사유까지 댈 수 있겠다.


입에서 나오는 변명(이상하게도 상대는 추궁하고 나는 변명하게 된다)은 건강이다. 더울 땐 덥게 살고 추울 땐 추위와 같이 살아야 건강하다, 우리 큰낀막둥이는 그래서 건강한 것 같다 등등.


속으로는 이런 반문도 해본다. 왜 에어컨을 쓰는가는 왜 안 묻는가? 더워서라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대답을 듣겠지만 그게 전부일까? 남들이 다 쓴다고 나도 필요를 느껴야 하는 것인가?


잠시 저의 에어컨 무용론을 들어봐 주세요.

사람의 감각은 상대적이다. 그리고 두뇌는 간사하다. 이미 적응한 감각은 새로울 것이 없다. 나는 에어컨을 틀며 사는 사람들에게서 "이 염천에 에어컨이 있어 너무 시원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더워 죽겠다고 투덜댄다. 쟁취해서 이어지는 안락함은 만족으로 이어지지 않는 게 인간의 습성인 것이다.


여름 내내 냉방장치 앞에서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적이거나 환경적인 이유에서 24시간 내내 틀 수도 없다. 어떤 때는 땡볕 아래를 걷거나 일도 해야 한다. 32도인 집에서 35도인 밖으로 나가는 것과 25도의 집에서 35도로 나가는 것은 엄청난 차이다.


이런 의심도 해본다. 잘 갖춰진 냉방장치 탓에 더위에 대한 우리의 민감도가 과도하게 높아지진 않았을까? 실내를 식히겠다고 실외를 덥히는, 지구온난화의 공범이기도 하지만 냉방 없는 공간을 더 덥다고 느끼게 만드는 장치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어컨은 폭염의 피난처이기도 하지만 불볕더위의 심리적 원인이기도 하다.


더위뿐이 아니다. 요즘 자극과 반응을 생각하게 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자극1 : 학생과 학부모가 스트레스를 준다.

반응1 : 극단적 선택을 한다.


자극2 : 교사가 아이에게 쓴소리를 한다.

반응2 : 몰래녹음을 하고 교사를 고소한다.


자극3 :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벌어진다.

반응3 : 장난 삼아 협박 글을 올린다.


짜증을 내거나 욕설을 퍼붓거나 고소를 하거나 자살이나 살인을 저지르는 등 우리의 모든 부정적인 행동에는 임계점(tipping point)이 있다. 발끈하게 만드는 자극의 지점이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단지 덥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 더위와 짜증은 정비례의 관계지만 누구나 뫼르소처럼 살인을 저지르진 않는다. 물이 넘치는 포인트가 컵의 크기에 따라 다르듯이 임계점은 모두 다르다. 사람마다, 감정마다 다르다. 하지만 가만 보면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쉽게 자극받고 쉽게 행동하는 것이다.


역린(용의 비늘이란 뜻으로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이슈)은 많아지고 역치는 낮아지는 현상이다. 흘깃 쳐다보는 것도 어떤 사람에게 역린이다. 심지어는 존재 자체가 누군가의 역린을 건드린다(무차별 범죄에 대해서는 다음에 쓰겠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문제가 심각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역치가 낮아지는 것은 그동안 당연시했던 부정적인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교사가 학생에게 저지르던 폭력이 거의 사라진 것도 이런 감수성 때문이다. 하지만 정당성은 없고 이해관계에만 관련된 문제에 민감도가 올라가는 건 좋지 않은 징조다.


에어컨이 잠시나마 불쾌감을 해소해 땡볕을 견딜 에너지를 주는 것인지, 임계치를 낮춰 쉽게 더위를 타게 만드는지 나는 모른다. 냉방 장치 없는 생활이 더위 적응력을 키워 폭염을 버티게 해 주는지, 지속적인 고통으로 불쾌의 임계점에 빠르게 도달시키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아야겠다.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지나치게 과민해진 이유가 당장의 불쾌감을 덮어두며 근본적인 문제를 키웠기 때문은 아닐까? 일단 당장 시원하려고 실외기로 더위를 내보내는 에어컨처럼 말이다. 순간만 모면하려는 미봉책들이 모여서 쉽게 흥분하는 유행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조금 힘들고 당장 불쾌하더라도 문제를 직시하고 터놓고 같이 얘기해 봐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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