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식화의 기쁨과 슬픔

MBTI 열광 현상에 대한 아재의 단상

by 이지완


우리나라만큼 도식화를 좋아하는 나라도 없는 것 같다. MBTI 16개, 애니어그램 9개, 생월 별자리와 자축인묘진사오미 무슨 띠에, 고작 4개인 혈액형에 성격과 기질을 섞어 넣고 맞아맞아 환호한다. 카테고리를 나누고 그 안에 머물러야 마음이 편하다.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고 부르는데 보편성에 기대려는 심리다.


리처드 리스벳의 책 '생각의 지도'에 따르면 이는 동아시아 나라들의 특성이다. 내용을 살짝 요약하자면 이렇다. 태평양을 갈라 동서로 세계지도를 펴놓으면 왼(서)쪽 끝이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 오른(동)쪽 끝에 우리나라, 중국, 대만, 일본이 위치한다. 왼쪽으로 갈수록 개인주의, 오른쪽으로 갈수록 공동체주의가 강하다. 개인의 특성과 운명이 그룹 안에서 규정지어지는 것을 편안해하는 심리는 동아시아의 특성(사주팔주, 포춘쿠키, mbti 따위)이다. 바넘 효과가 강한 문화다.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조명한 책. 지리학, 심리학, 문화인류학, 사회학, 역사학 등이 다양하게 녹아 있어 두루 추천하고 있다.

책은 세계관의 차이도 주장한다. 서양은 직선, 동양은 순환이다.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이자면 서양은 발산과 도전, 동양은 수렴과 순응 아닐까 싶다. 'Boys, be ambitious'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이 문화 차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미국인은 '네가 최고다'는 말을 들으며 크고 동양인은 공손과 겸손을 미덕으로 알고 자란다. 미국인은 몰개성의 뻔한 존재가, 일본에는 튀는 존재가 터부다.


물론 이조차도 거친 도식화일 수 있다. 하지만 생각거리를 주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분별없는 규정은 자칫 폭력이 되어 소수자, 열외자 혐오로 번질 수 있다. 나는 A형인데 조금이라도 주저하면 트리플 a형이어서 그렇단다. 소심함이 없는 사람이 존재하는가?


관찰자시점에서 '틀'이란 시를 쓴 적이 있다.


《틀》


틀은 좋은 거야

고민을 덜어주지

차별도 없다


틀은 나쁜 거야

생각을 가둬놓지

개성도 없다



MBTI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리 재미라고 해도 너무 나간다는 느낌이다. 초면에도 거리낌 없이 묻고 답한다. 마치 마술을 보듯 무척 신기해한다. 나도 몇 번 해봤지만 기본적으로 동어반복이고 순환참조라 큰 흥미를 못 느끼겠더라.


이 16개 유형 맹신은 거의 사회현상이 되어 있는데 썩 유쾌하진 않다. 사람의 특성을 입체적이고 다양하게 받아들이는 노력을 안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16개 안에서 안주하려는 속셈이다.


생각해 보자. 용띠, 호랑이띠에 태어나면 팔자 드세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라진 여자 태아가 얼마나 많았는지. 엔프제는 어떻고 인티피는 어떻고 하면서 상대의 진짜 관심사와 개성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너그러움은 차이에 눈 감는 용기다. 우리 사회에서 중년 남성은 이 점에 있어 가장 취약하다. 의무가 가장 중요한 성장동인이었고 표현 대신 절제, 권리 대신 희생, 개성보다는 수용을 강요받으며 자랐다. 창의성 말고 암기능력으로 평가받아왔다. 감수성 대신 권위 존중의 가치관이 심어져 있다. 이런 우리가 사회의 중심세력이다. 위험하다. 이 위험성을 알아야 개저씨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꼰대를 면할 수 있다.


그러니 MBTI와 별자리와 생년띠에 열광하는 아재가 있다면 한 번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세요. 그 몇 가지 카테고리에 가두어 넣는 것이 옳겠는지를... 누군가 나를 규정하겠다고 알파벳 네 글자를 언급하려 한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F.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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