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참 요망합니다. 알만 하면 모르는 것이 튀어나오고 다 익혀서 써먹을라 치면 왠지 어색하지요. 옳고 그름, 자연스러움과 억지스러움, 익숙함과 낯섦이 말의 여러 층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렵기도, 재미있기도 하죠. 말과 글을 잘 다룬다는 건 아마 그 복잡성을 이해하고 최적(최고나 최선이 아니라)의 선택을 하는 일일 것입니다.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는 보바리 부인, 비곗덩어리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입니다. 하나의 의미를 드러내는 용어는 딱 하나다라는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정확한 표현이 중요하다는 뜻이죠. 가령, 누렇다와 누르딩딩하다는 다르며 오늘 아침의 안 좋은 얼굴을 표현할 때 둘 중 하나의 정답이 있다는 겁니다. 이 글의 첫문장을 '말은 참 신비롭습니다'라고 썼다면 어감 뿐 아니라 의미도 확 달라지겠죠.
설명, 정의, 묘사, 비유 등 모든 언어 표현에서 최적의 용어가 있다고, 그래서 작가는 쉽게 쓰지 말고 깊이 고민해서 적확한 말을 찾아 써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마치 미적분의 정답을 찾는 수학자처럼 말이죠.
19세기 구조주의가 전세계를 지배할 때 언어학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말하고 글 쓰던 시대에서 랑그(langue)와 파롤(parole),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e)로 나누어 생각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플로베르는 1 기표=1 기의를 주장했습니다.
소정이가 주는 상품
어려워졌네요. 일상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방송이나 행사에서 많이 들어요. 참여해 주신 분들께 준다는 소정의 상품이나 선물.. 이걸 많은 사람들이 작을 소小로 여깁니다. 하지만 소정은 정해진 바라는 뜻입니다. 所定이죠.정해진 바에 따라 준다는 것입니다.
소정의 선물은 실제로도 그닥 대단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걸 주면서 소정이라고 하진 않죠. 또 대부분은 감사의 의미를 담아 공짜로 제공합니다. 그래도 小와 所는 헷갈리면 안 됩니다. 역시 different와 difficult는 different한데 구분하기가 difficult합니다.
더는 유효하지 않은
플로베르의 생각을 15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봅니다. 오랫동안 언어학자들의 표본이요, 작가들의 의무였으나 지금은 폐기 처분의 위기입니다. 왜냐구요? 언어의 소유자가 사회에서 개인으로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정답이 없고 누구나 자신의 답을 정답이라 우기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짜장면이 맞는 말이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용과 사회적 합의가 있었습니다. 어긴 룰이 보편화되면 새 룰이 되는 셈이죠. 하지만 지금은 막 씁니다. 짱께든 짜빠구리든 이모티콘이든 말이죠. 정답 따위가 뭐람?이란 태도입니다.그야말로 구심력보다 원심력의 시대입니다.
말의 유탄
요망한 말은 장난의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말장난, 말꼬리잡기, 아재개그, 파자놀이 따위입니다.대부분의 말 장난은 동음이의성에서 시작됩니다. 언급대상은 많은데 말 자체가 적어서 생깁니다. 소만 해도 작다, 적다, 음메~~소, 멀다, 뜸하다, 웃음, 연못, 재판 등등 많은 뜻이 있죠.
저는 소정의 선물을 나눠준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국민학교 동창 소정이가 생각납니다. 키가 크고 예쁘고 똑똑한 아이였어요. 하도 오래 전이라 기억은 흐릿한데 소정의 선물 때문인지 베푸는 걸 좋아하는 친구로 이미지가 남아 있습니다.
하나의 말이 여러 개로 쓰이면서 재미가 되거나 오해가 생기는데 이것이 말의 요망함입니다. 소정이 약소한 선물이든, 먼 옛 동창생 이름이든 때에 맞춰 잘 찾아 써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에 댓글을 다시는 분께 소정의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소정아~~ 잘 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