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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리 피디 May 02. 2024

수도권 비수도권

차별과 서열의 일상 침투


살다 보면 이상한 말을 많이 만납니다. 더 이상한 것은 아무도 그걸 이상하지 않게 여긴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낱말이 수도권입니다. 이 말을 만든 수도권당연히 그렇고요.


절반의 국민은 '아닌 사람들'


다들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수도는 서울입니다. 수도권은 서울을 포함한 지역, 곧 경기와 인천까지를 함께 일컫는 말이죠. 수도권 전철이 닿는 충남 천안이 수도권이라고 우기는 시민들도 있다고 합니다. 왜 우기는지는, 우겨서 좋은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경기 지역에서 자란 저도 아무렇지 않게 수도권이란 말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십 년 전 대전에 취직해 살면서, 그리고 비수도권이란 말을 들으면서 점점 묘한 불쾌감이 들었습니다. 왜 나는 非수도권 시민인가? 왜 '수도권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이어야 하는가?


수도권의 면적은 전국의 11.8%에 불과하지만, 전국 인구의 48.0%가 몰려 삽니다. 비수도권이란 말 때문에 나머지 52%는 들러리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여성을 '남자가 아닌 성', '비남성'이라고 부른다고 생각해 보면 이 말이 얼마나 차별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수도권 takes it all, 비수도권 standing small


수도首都는 말 그대로 머리가 되는 도시입니다. 대부분 국왕이나 대표자가 있는 곳이죠. 세계 모든 나라는 수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일상적으로 수도, 그리고 인근지역을 묶어 일상적인 용어로 쓰는 나라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을 거두절미 딱 둘도 나눈다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심지어 이제는 성별도 남녀뿐 아니라 소수자를 포함시켜 여럿으로 인정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시대를 많이 역행해서 대통령 근처에 사는 국민과 멀리 사는 시민, 이렇게 둘만 있는 겁니다.


수도권/비수도권 용어가 포함된 뉴스를 찾아봤습니다. 부동산 관련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더군요. 수도권, 비수도권 평균 아파트값이 얼마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것도 헛웃음 나오는 일이에요. 서울 강남과 연평도가, 강원 춘천과 제주 서귀포가 같은 지역으로 묶인 겁니다. 이분二分하다 보니 지리적, 산업적, 역사문화적 특성이 무시되는 폭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말을 낳으면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란 속담으로 봐서 우리 민족은 예전부터 중앙집중과 사대주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옛날엔 토지 기반의 농경사회여서 덜 했겠지만 생산수단이 모여야 되는 근대 이후엔 무지막지한 과밀화가 벌어졌습니다.


치여 죽고 말라죽는 대한민국


몇 년 전에 저는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서 지방은 고사枯死, 서울은 압사壓死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런데 1년 반 전 이게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이태원에서요. 저는 몹시 후회했습니다. 경고가 저주가 된 죄책감이 들었죠.


사람=서울, 축제=집결, 핼러윈=이태원, 이 공식이 없었다면 그 아까운 생명들이 떠났을까요? 각자의 동네에서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였다면, 거기에서도 재미와 즐거움이 충분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겁니다. 집중이 살인범입니다.


말라죽는 것도 매한가지예요. 잘 안 보이고 더디지만 많은 지역이 소멸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집중을 막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압사든 고사든 인식이 바뀌어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열화라는 몹쓸 병


우리는 유교 전통의 바탕에 서구 자본주의를 흡수해 살고 있습니다. 유교의 장점이라면 조화와 협력이고 단점은 공고한 신분과 계급의식입니다. 자본주의의 장점은 개성의 존중과 표현의 자유고 단점은 물질만능주의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유교의 장점을 버리고 자본주의의 단점만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서열화로 드러납니다.


어려서부터 각 나라의 수도를 달달 외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중요한가 싶어요. 자카르타 시민이 아닌 인도네시아 국민, 런던에 안 사는 영국민이 훨씬 많은데도요. 이 으뜸주의는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의 학벌주의로 번집니다. 연봉과 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등 수치로 환산 가능한 모든 조건은 비교를 거쳐 서열화됩니다.


얼마 전 한국 여행 중인 프랑스 부부를 만났습니다. 리옹에 산다는 말에 그거 몇 번째로 큰 도시냐라고 묻고 저는 스스로 아차 싶었습니다. 몹쓸 병이 도진 거죠. '정답'을 몰라 당황하는 그들 앞에서 서둘러 화제를 돌려야 했습니다.


'사이보그가 되다'라는 책에서 소설가 김초엽과 법조인 김원영은 주장합니다. 장애 여부, 유무, 정도 판단에 앞서 개인들이 가진 압도적 고유성을 지지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어디 사는가, 어느 학교를 다녔는가, 얼마를 버는가 쓰는가 따위를 순위로 매길 때 각자의 행복은 멀어집니다.


호부호형은 허하고 비수도권은 금하라


이런 얘길 하면 늘 반문이 옵니다. 그럼 수도권을 뭐라 부르고 비수도권 지역을 뭐라 일컬어야 하냐고요.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잘 생각해 보라고.. 그렇게 묶을 일이 거의 없다고..  굳이 써야 한다면 서울 경기지역이라고 실명을 밝히거나 용도에 따라 인구과밀지역, 공장설립 규제 필요 지역 등으로 소개하면 됩니다. 비수도권은 더 광범위하고 부당한 상대 개념이라 더욱 빨리 퇴출되어야 합니다.


저는 대전시민이지 비수도권 국민이 아닙니다. 당신도 어디에 살든 윤석열 대통령과의 거리로 재단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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