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라는 딱지

세대론 운운하기 전에 고민할 것

by 이지완

몇 달 전 타투를 했다. hic sunt dracones 라는 문구인데 라틴어로 ‘여기 용들이 있다’라는 뜻이다. 중세 고지도에 쓰여 있던 경고 문구인데 탐험되지 않은 지역이므로 조심하라는 의미다. 미탐험과 미개척의 영역으로 남고 싶은 마음을 오른쪽 팔뚝에 새겼다.

주변의 반응은 다양했다. 예상은 했지만 개중에는 혀를 끌끌 차며 한심하다는 멘트를 날리는 사람도 있었다. “네가 무슨 어린애냐?”, “그렇게 튀고 싶냐?”부터 “회사에서 안 잘리냐?”와 같은, 걱정을 빙자한 비난도 들었다. ~답게, 나잇값, 품위 같은 낱말이 귀에 거슬렸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 이후로 나이와 세대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즈음 X세대라는 말이 등장했다. 총장은 입학식에서 축하와 잔소리를 비슷한 비중으로 늘어놓았다. 있어 보이고 싶었는지 혀를 굴려 X 제너레이션이라고 말했다. 3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기억을 더듬어 재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여러분은 X 제너레이션입니다. 기성세대와는 달리 뭐라고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신세대죠. 얼마나 멋집니까?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으로도 규정될 수 없다는 것!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 젊은 세대의 특권이자 여러분 세대만의 특권입니다. (젊었어도 누리지 못했던 베이비붐 세대의 고생담을 잔뜩 늘어놓는다) 그러니 자유를 누리십시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하십시오. 진리만이 자유를 가능케 합니다.”

그날 나는 알게 됐다. 엉덩이에 등급 표식이 찍히는 한우처럼 우리도 X라는 표식을 달고 사회에 나왔다는 사실을……


무슨무슨 세대의 원조는 아마 베이비붐일 것이다. 한 해에 100만 명 가까이 태어나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과 닭장 같은 공장 조립라인과 코딱지 만한 사글셋방을 경험한 것이 윗세대였다. 생존이 목표였다가 잘 사는 것이 꿈이었고 통일과 민주화가 소원인 터널을 차례로 통과한 세대다.

그다음이 X세대인데 총장의 말마따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함이 특징이었다. 산업화든 민주화든 나라와 조직의 발전을 앞세우는 사고가 썰물처럼 빠지는 자리에 내 취향, 내 생각, 내 의지를 더 소중히 여기는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90년대 중반은 과도기였다. 낮에는 선배들 등쌀에 못 이겨 데모에 나가고 밤에는 우리끼리 클럽에 갔다. 시위 현장에서는 놀 궁리를 하고 놀면서는 죄책감을 느꼈다. 열사정신이니 투쟁이니 하는 구호들과 타도 대상도 여전히 많았다. 그러면서도 놀거리와 즐길 아이템들이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X라는 명칭은 윗세대가 우리를 못마땅히 여긴 결과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생을 모른다, 고민이 얄팍하다, 목표의식이 부족하다, 삶이 치열하지 못하다는 지적과 비난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모든 연장자가 꼰대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한 마음이 되어 (한 마음도 아니었지만) 일사불란하게 행동해야 했다. 개인의 언행은 예측가능해야 했고, 따라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리는 선배들에게 근심과 걱정을 샀던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선배들에게서, 심지어 길 가는 아저씨에게서도 훈계를 들어야 마땅하던 시절이었다.

가르침을 올곧이 받기에 우리는 달랐다. 윗세대보다 더 똑똑했고 덜 순종적이었다. 아버지나 형들처럼 사회의 부품이 되기에 나는 너무 아까웠다. 돈을 벌든 돌을 던지든 스스로를 위해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나를 위해 뭔가를 하게 됐을 때는 불안하고 미안했다. 연애를 하면서도 야학 교사를 하고, 부잣집 과외 알바로 번, 알량한 돈을 가난한 후배들에게 썼다. 지킬과 하이드처럼 욕망과 당위가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직장에 들어와 보니 선배 세대의 폭이 삼촌과 부모 뻘로 확대됐다. 산업화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은 희한하게도 음주와 야근, 충성서약으로 우리 세대를 길들이려고 했다. 민주화의 선봉이라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진 대학 선배들과 방식이 다르지 않았다. 일터에서도 모난 돌은 정 맞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원치 않은 X라는 표식을 달고 30년 가까이 살아왔다. 그 사이 동생들에게는 Y세대니 M이니 Z니 줄줄이 사탕처럼 알파벳 기호가 붙었다. 이제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모든 세대론은 허구이거나 과장이다. 어떤 세대가 어떻다더라 하는 명제는 이해보다는 힐난이나 길들임을 목적으로 판 윗세대의 함정일 가능성이 크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X 중에서도 튀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 중에서도 튀고 싶은 사람도 있고 말이다. 개인이 가진 압도적 고유성(소설가 김초엽의 표현)이 세대라는 그물 안에 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젊은이의 언행을 MZ라는 틀로 치환하여 해석하려는 습관은 조심해야 한다.

그러니 부탁합니다. 나이나 세대 말고 사람을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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