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아재, 개저씨, 선생님
측은과 혐오, 존경과 타박 사이
중년 남성을 부르거나 칭하는 대표적인 말은 아저씨다. 꽃미남 청년(중년도 아니면서!) 원빈이 여성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던 바로 그 영화 제목이다. 그러나 현실과 영화, 나와 원빈 사이에는 그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는 광활한 갭이 있다. 원빈은 스크린 속에서 소녀를 지키려고 살인도 하고, 살인 미소로 스크린 밖의 여자들을 죽고 못살게 만든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년 남자들은 살인을 해본 일도 없고, ‘내가 못 살아~’라는 타박을 들으며 산다(어디까지나 상대 여성이 하는 푸념이지 살해협박이 아니다).
이쯤 되면 원빈이 원망스럽다. 똑같은 아저씨라는 호칭을 들으면서 이렇게 달라도 되는 것인가 싶다. 차라리 영화 제목이 오빠였다면 위화감을 덜 느꼈을지도 모른다. 같은 호칭과 지칭으로 묶였으나 원빈은 잘 생기고 멋진데 우리는 시덥잖고 배도 나왔다.
누구는 아저씨의 대표적인 습성이 자기애(自己愛-나르시시즘)라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연민도 그에 못지않다. 나이에 반비례하는 머리숱이라든가, 정비례하는 뱃살은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기에 충분하다. 사무실 생수통을 들다가 허리를 삐끗한다든가, 소파 밑에 빠진 물건을 꺼내려다 목에 담이 결린다든가 하는 사건은 비일비재하다. 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녀나 조카가 알려달라며 들고 오는 문제는 난공불락이다. 파워포인트에 도형을 어떻게 넣는지 후배에게 물어볼 때 우리 마음은 작아진다. 아저씨의 몸과 두뇌는 너무 낡은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왕년에는~’ 레퍼토리를 읊어대기에는 덜 늙었다. 중년(中年)이 무엇이더냐? 인생의 가운데 단계이면서 고로 어중되고 애매하단 뜻… 뒤를 돌아보면 서글퍼지고 앞을 내다보면 걱정이 앞선다.
아재의 뉘앙스는 조금 다르다. 아저씨가 가치중립적인 낱말이라면 아재는 친근감과 혐오감을 동시에 표현한다. 상황에 따라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주로 경상도(네이티브 발음으로는 갱상도)에서 ‘아재요~’라고 부르는 일이 흔하다. 적개심은 없다. 호칭 말고 지칭으로서의 아재는 점점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검색창에 아재를 치면 연관 검색어로 개그가 뜰 것이다(아재개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쓰겠다). 아무튼 누가 나를 두고 아재 같다고 하면 분위기 파악 못하고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다소 한심한 존재 정도로 여길 것이다.
개저씨는 최악의 중년 남성을 뜻한다. 민폐나 결례, 뻔뻔함, 공감능력 결여, 추잡스러움, 몰염치 등 아재에 따라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극대화된 것이고 살짝 남아있(을 수 있)는 귀여움이나 순진함의 뉘앙스를 무참히 삭제한다. 개저씨는 꼰대와도 일맥상통한다. 개저씨는 자신의 경험이나 판단 이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으며 그 알량한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다. 이해나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일관성도 없고 제멋대로다.
꼭 중년남성에게만 해당되는 용어는 아니지만 개저씨의 정반대 쪽에 ‘선생님’이 있다. 먼저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존경이나 존중의 뉘앙스가 들어있다. 초면에 이렇다 할 호칭이 떠오르지 않아 어색할 때도 쓰지만 적어도 적의나 비호감은 없다.
주고받는 존경심이 머리숱만큼이나 희귀해진 시대다. 공동체의 가치보다는 개인의 취향과 지향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나의 이익이 최우선인 시대에는 다른 사람의 철학과 태도, 삶의 궤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꼭 중년남성에게만 해당되는 현상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세대, 다른 성별로부터 조롱과 비웃음이 집중되는 것은 좀 억울하다.
내가 대한민국 모든 중년 남성의 대표는 아니지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상, 약간은 변명을 해야겠다(앞으로 필요하다면 사과도 하겠다). 추레함은 언행의 문제이지, 존재의 문제가 아니다. ‘억울하게 생겼다’는 표현이 잘못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억울함은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고 생긴 것은 현상인데 그것을 이어 붙여서 사람의 외모를 평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옳지 않다.
아저씨, 아재, 개저씨, 선생님 그 어떤 호(지)칭이든 과도한 일반화는 옳지 않다. 물론 같은 세대, 같은 연령이 보여주는 비슷한 패턴은 있을 것이다. 문화적으로나 생물학적인 공통점은 있다. 그걸 이해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힐난이나 조롱에 쓰려고 작심하면 안 된다. 알아주길 바랍니다. 잘 드러내지 못하지만 아저씨에게도 마음이란 것이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