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리 피디 Nov 26. 2024

히든페이스

벽 속에 고립된 욕망의 민낯


10년 전 콜롬비아 영화다. 리메이크 되어 지금 상영 중인 한국 영화가 있다는 걸 모른 상태로 봤다. 요즘처럼 정보가 많고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를 따지는 시대엔 모르고 보게 되는 일이 거의 없다. 스릴러 영화를, 그것도 좋은 영화를 아무 정보 없이 보게 되는 것은 큰 축복이다. 나의 무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영화 관람의 의미는 변해왔다. 특히 최근에 급격히 바뀐 것 같다. 전봇대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상영작을 알았던 옛날 얘기를 하면 까마득한 후배들이 놀란다. 그리고 놀린다. 억울해진 나는 목청을 높여 이렇게 말한다.


이봐, 예전에 영화는 그 자체로 특별한 이벤트였어. 신문이든 전봇대든 친구의 전언이든 정보를 얻고 작심한 후 누군가(주로 썸녀나 여친)를 꼬셔서 극장 앞에서 줄을 선 다음에 티켓을 사지. 상영시간을 기다리며 우선 어묵이나 닭꼬치 같은 간식을 먹어. 시간이 되면 어둠 속에 들어가 놀라고 소리치고 웃고 소름 돋고 눈물을 흘리지. 기회를 봐서 손도 잡고 말야. 극장 밖에 나와 철판순대에 소주나 경양식에 맥주를 먹으면서 복기를 해. 난 어떻게 봤네, 넌 어느 장면이 좋았니, 이런 대사가 찰지더라, 배우 연기는 어떻고, 후속작은 언제 나올까.....


그야말로 영화 하나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 감정과 지능을 쏟아붓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겠어? 두뇌에 각인되는 것이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도 관람담은 이어진다. 입소문이 가상공간이 아니라 진짜 입에서 퍼져나가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극장 관람은 비슷한 패턴이겠지만 농도가 옅어졌다. 몸이 아니라 접속과 손가락으로 기다린다. OTT는 거실이나 침대 위에서 정주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엄청난 양적 팽창이다. 그래서 월요일에 친구들에게 주말에 뭘 봤는지 말하기 전에 내가 뭘 봤더라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쉽게 고르고 쉽게 잊힌다. 과시청, 저몰입의 시대다.


리메이크 되어 상영중인 한국판. 아직 못 봤지만 안 봐도 될 듯.

콜롬비아 경험은 커피가 유일했다. 남미 대륙으로 넓혀봐도 마찬가지다. 멀어서 그런가. 남미 영화는 낯설어 보인다. 하지만 길을 가다가 만원 짜리 지폐를 주운 행운감이 든다. 좋은 발견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넷플릭스의 배려 또는 상술이었다. 송승헌, 조여정, 박지원이 주연한 리메이크 영화 개봉에 맞춰 원작을 노출한 것이다. 생각 없이 보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공급자의 노림수가 있었던 것이다. 역시 순수한 우연을 찾기 힘든 시대다.


영화는 자승자박으로 고립되는 여자의 고생담을 다룬다. 도움은커녕 강제로 질투도 느껴야 한다. 미치게 폴짝 뛰게 만드는 상황. 관객은 이런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대리고민을 하게 된다. 나라면? 내 남친이라면? 인간이라면?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고 느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캐릭터의 선악을 묘하게 섞는다. 완전 빌런이나 백퍼 성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현실을 잘 반영했다. 나는 그런 이유에서 마블 영화가 별로다. 영웅과 악당의 서사는 아무리 잘 짜도 몰입이 어렵다.


스릴러기본을 충실하게 지키면서도 설정은 신박하다. 의심하게 만들었다가 뒤통수를 치고 좋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게 해 놓고 배신한다. 예상치 못한 전개가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하지만 설마설마 싶은 의심이 사실로 확인될 때의 충격도 재미진다. 여운 남는 결말도 뒷얘기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고립과 소외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괴로운 것이다. 그렇다고 연결과 소통이 늘 좋은 건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사람의 욕망은 단순하지 않다. 아주 영악하고 복잡해서 공식이 없다. 영화는 감춰진 얼굴처럼 이중적 삼중적인 우리의 심리를 잘 파헤쳐 드러냈다.


시간 때우기로 일주일에 수십 편의 작품을 보는 것과 계절에 한번 손꼽아 상영작 하나를 보는 것을 단순 비교할 순 없다. 밀도 있게 60년을 사는 것과 몰입 없이 100년을 사는 것 중 뭐가 좋은지 알 수 없다. 다만, 영화를 통해서 고립을 간접 경험하고 내 인생의 좌표와 내 사랑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건 확실히 행운이다. 그게 반복되면 행복이 된다.








이전 06화 슬픔의 삼각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