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리 피디 Nov 19. 2024

슬픔의 삼각형

욕망이 배설한 민망한 민낯


어처구니없고 뒤끝 남는 영화가 좋다. 그럴싸하지만 어설픈 영화는 별로다. 티켓을 사거나 구독료를 내고 보는데 킬링타임용이라면 왠지 손해인 것 같다. 뒷덜미에 남는 게 충격이나 감동이어도 좋겠지만 헛웃음이어도 상관없다. 돈을 냈는데 빈손이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슬픔의 삼각형은 코미디 장르로 구분된다. 웃긴 영화란 얘기다. 뭐가 웃기냐고 되묻는 후기도 많지만 난 웃었다. 이른바 검은 웃음, 블랙 코미디다. 폭소도, 미소도 아니다. 이 영화의 목적은 실소(失笑), 즉 헛웃음을 유발하는 것이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잠시 블랙 코미디의 역사 일관. 1950년 전후 프랑스에서 시작된 부조리극 그 모태라 할만하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대표적이다. 번역하니까 더 어렵고 이상한데 사실 부조리(不條)는 어이없음(absurdity)이다. 어처구니없게도 헛웃음이 나오면 성공인 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뻔뻔해야 한다(아재개그와도 일맥상통하는 이다). 나는 주성치 영화도 좋아하는데 젠체하지 않고 노골적이면서 할 말은 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캐스팅과 현실성이라곤 1도 없는 액션이 묘하게 흥미를 끈다(소림축구, 쿵푸허슬 같은 명작을 보라).


몇몇 인도 영화들도 그런 면에서 좋다. <세얼간이>와 <RRR>은 어이없음이 극대화된 경우인데 전자는 코미디, 후자는 액션이다. 애매하게 어설프지 않고, 대놓고 우긴다. 실패하면 불친절, 성공하면 당당함 아니겠슴꽈아~!


다시 <슬픔의 삼각형>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생충>을 언급한다. 계급 사이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두 영화가 비슷하긴 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상황 설정은 더 뻔뻔하고 노골적이다. 기생충이 더 현실적이고 리얼한 편..


1.평화로운 호화 크루즈 안에서 유럽 최고 부자들의 속물성은  크게 부각된다. 2.배가 침몰하는 중에는 안타까움과 우스꽝스러움이 교차한다. 3.겨우 살아남아 도착한 무인도에서 계급은 전복되는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다가 심각해지길 반복한다.


폭약 제조로 떼돈을 번 부부가 배로 날아든 폭탄에 죽기 직전에 "이거 우리 제품이잖아"라고 외친다거나 선장과 졸부가 술에 취해 이념 배틀을 하는 장면은 크게 웃을 수 없으나 막을 수도 없는 기묘한 실소를 유발한다.


영화는 이런 웃음 코드를 곳곳에 심어놨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는 건 후련함이 아니라 씁쓸함이다(무인도와 관련된 결말은 스포가 될 것이므로 말하지 않을게요). 비꼼과 비아냥의 매력은 나처럼 삐딱해야 즐길 수 있는가 보다. 많은 보통의 관객들은 불편함과 불쾌함을 호소하더라.


인간다움은 대체로 아름답게 그려지지만 비루함 역시 인간성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욕망이 토해내는 인간의 민망한 민낯을 보며 역겨워도 하고 통쾌함도 느끼고 싶다면 강력추천합니다.




이전 05화 페르시아어 수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