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계와 학대 사이

"모두 그 중간 어디쯤이겠지만 참회와 변명으로 구분되더라고"

by 이지완

세 달이 흘렀다. 공운 영상을 시작으로 우리는 일주일에 한 편씩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게스트를 섭외하고 촬영 일정을 잡고 근처 코인 빨래방을 찾아다녔다. 일종의 출장 서비스였다. 출연자가 원하는 곳 근처에서 녹화 장소를 찾았다. 주인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무인이었다.

“길어야 2시간 정도입니다.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 안 되게 할게요. 카메라랑 조명, 의자 몇 개 설치할 공간만 있으면 되고요.”

빨래방을 섭외하느라 주작이 애를 먹었다. 사람들은 한 번도 있지 않았던 일을 맞닥뜨리면 움츠러든다. 셀프 빨래방을 운영하면서 누가 예상이나 했겠나? 촬영하겠다고 조르는 사람을 만날 줄을……. 거절도 여러 번 당했고 사용료까지 선입금해가면서 겨우 허락을 받곤 했다.

채널 성장은 더뎠다. 첫술이 아니라 두 번째, 세 번째 숟가락도 허기를 달래주지 못했다. 구독자는 5천 명, 누적 조회수는 30만 뷰, 시청시간 2만 시간 정도. 수익 창출 조건은 충족했지만 배당되는 수익이라고는 몇십만 원 수준이었다. 공운이 사업가 지인에게서 협찬을 받아보겠다고 했으나 내가 반대했다. 억지로 하는 건 싫었다. 어느 정도 성장시켜 놓고 당당하게 협찬을 받고 싶었다.

“아직 세 달밖에 안 지났어요. 반 년치 총알 있다니까요. 더 쌓으면서 버텨 보자구요.”

말하면서도 확신은 없었다. 한동수 선배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잡히지 않을 가능성 빼고 다 잃게 되는 길이라……. 어떤 사회학자는 이렇게 진단했다. 현대사회는 노력하면 뭐든 달성할 수 있다는 말로 대부분의 사람을 패배자로 만든다. 유튜버 드림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뒤집으면 내 실패는 내 탓이 된다. 자책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아, 답답해. 우리가 데려온 출연자들 괜찮지 않았어요? 승부조작 했던 전직 프로야구 선수, 미투 누명 썼다가 벗은 시인, 뒷광고로 욕먹은 인플루언서 등등. 공운 진행 훌륭하고 우리 편집도 나쁘지 않은데. 억울함도 뻔뻔함도, 웃음도 있고 짠한 눈물도 있었고… 아, 도대체 뭐가 문제라서 이렇게 더딘 거죠? 난 이쯤 되면 구독자 20만은 돼야 된다고 생각해요. 5천이 뭐야, 짜증 나.”

투덜거리는 주작을 보자 죄책감이 밀려왔다. 어쩌다가 내가 이 여자의 인생을 망치게 됐나. 왜 주작은 깊이 생각도 안 하고 내 제안을 덜컥 받아들였을까?

의리로 도와주던 사람들도 슬슬 발을 빼기 시작했다. 채널 디자인과 썸네일 몇 편을 맡아 제작해 주던 디자이너 후배도 바쁘다며 이젠 연락하지 말아 달라는 톡을 보냈다. 술 한잔에 장비 구성과 시스템 구축을 맡아줬던 엔지니어도 우리의 잦은 문의를 점점 귀찮아하는 기색이었다. 타깃 출연자의 연줄을 찾으려고 연락한 피디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흔쾌한 반응이 사라졌다.

호의의 유통기한은 짧다. 돈기부여-돈으로 동기부여한다는 뜻에서 주작이 만들어낸 말이다-없이는 가족도 마음대로 못 부리는 게 현실인 것이다.

비용은 입 벌린 피라냐 같았다. 사무실 월세와 관리비, 게스트 출연료, 빨래방 사용료, 먹고 마시는 비용까지 부담이 되고 있었다. 의외인 것은 공운의 태도였다.

“정피, 주작,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려한 날과 가장 비참한 날을 다 겪은 사람이 바로 나야. 남들은 추락이라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어렸을 때 돈 벌려고 춤춘 것도 아니고, 한때는 돈도 많이 벌었지만 다 날렸다고 아주 불행한 것도 아니야. 그냥 잠깐 헛바람 들었다가 제자리로 돌아온 거야.”

미안한 마음에 시무룩해진 나와 주작을 앉혀놓고 공운이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 진짜 문제는 자네들 태도야. 계속 조바심을 느끼고 있잖아. 꼴리는 대로 하려고 방송사 때려치운 거 아니었어? 근데 왜 영업실적 못 채운 보험설계사처럼 굴고 있어? 계속 좋아하라고! 난 재미있는데?”

먹으면 싸는 것이 인체의 생리지만 마음만큼은 다르다. 마음먹었다고 그 마음이 출력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 좋아해야지 즐겁게 일해야지’ 생각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쉽지 않았다. 빨리 채널을 성장시키고 안정된 수익을 확보해야 한다는 강박이 내내 부담으로 작동했다. 그 콘텐츠가 대박을 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홍소윤 선생의 집은 과천이었다. 학교는 열 달째 휴직 중이었고 집 근처에서 촬영하기로 했다. 약속시간을 2시간 앞두고 우리는 미리 섭외해 둔 빨래방에 도착했다. 공운은 녹화시간에 맞춰 따로 오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작년에 아동학대로 경찰에 신고당했고, 아우팅이 되어 얼굴과 이름, 가족관계도 까발려졌고, 해임은 아니지만 정직 처분을 받아 쉬고 있다는 거지?”

“네, 어차피 이름도 다 밝혀져서 교단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대요. 이렇게 된 거 우리 채널에 나와서 참회할 것은 하고 억울함은 풀고 싶다는 거예요.”

주승아 작가가 사전 인터뷰 내용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카메라와 조명을 세팅하고 의자 배치를 하고 있는데 빨래방에 온 손님들이 흘깃거렸다. 대부분의 셀프 빨래방은 거의 비슷한 크기에 비슷한 구조다. 간혹 주인이 상주하면서 드라이클리닝이나 수선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무인이다. 이날 교사 홍소윤을 촬영했던 곳도 다른 곳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용량별로 세탁기와 건조기가 줄지어 비치되어 있었다. 가운데 공간에는 넓은 탁자가 있어 세탁물을 개거나 다림질하는 받침 구실을 했다.

“어려서부터 난 빨래가 좋았어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요리에 입문하는 것처럼요. 뽀송뽀송한 옷이나 이불의 감촉이 좋아서 빨래라는 공정에 빠지게 됐죠.”

카메라에 메모리를 장착하면서 주작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전공이 무려 섬유공학이었다.

“난 이불 빨래하는 날이 엄청 기다려졌어요. 생일이 좋아, 크리스마스가 좋아, 어린이날이 좋아, 다른 애들이 이런 거 따질 때 ‘이불 빨래날이 최고지’라고 생각하곤 했죠. 엄마가 티브이 뉴스에서 내일 화창할 거라는 일기예보를 듣고는 내게 선물 같은 선언을 하는 거지. 오늘은 이불 빨래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바짝 마른 이불보를 엄마가 바느질하는데 뒹굴면서 장난치고 놀았던 기억이 나네. 그렇다고 빨래를 즐기거나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거들자 주작의 빨래론은 더 심각해졌다.

“그러니 피디님은 빨래계에서 고수는 못 되는 거예요. 아주 저급한 수준이지.”

“방송계, 연예계 하듯이 빨래계라는 것도 있나?”

“당연히 있어야죠. 얼마나 숭고한 작업인데. 그리고 어쩌다 귀찮음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지만 그건 피디님처럼 얄팍한 사람들 때문입니다.”

“빨래에 흥미를 못 느낀다고 해서 얄팍하다는 취급까지 받아야 되나? 왠지 억울한데.”

조명 다리를 펼치면서 내가 투덜거렸다.

“사람한테 가장 기본적인 게 뭐예요? 의식주 세 가지잖아요. ‘의’가 먼저라고요. 자, 피디님 보세요. ‘식’은 뭘 줍니까? 포만감이죠. ‘주’는? 안정감이에요. ‘의’는 뭘까요?”

“따뜻함?”

“쾌감이에요. 모든 욕구의 대명사가 된 쾌감. 이건 더러운 옷에서는 못 느끼죠. 반드시 정화 작업을 거쳐야 쾌감이 오고 그게 바로 빨래라는 말씀!”

그럴 수 있다. 호감 중에 최고는 촉감이다. 빨래한 이불이나 진솔-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이란 뜻이다-에서 느껴지는 쾌감은 생각보다 크다. 그러나 우리는 어른이 된다는 미명 하에 감촉을 터부시 한다. 잘 보고 듣고 판단하는 것을 훈련하느라 감촉의 순기능을 과소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욕조에 이불을 잔뜩 넣고 물을 가득 받아요. 가루 세제를 넣고 밟기 시작하죠. 세계테마기행에서 와인 담그려고 맨발로 포도를 짓밟는 장면을 봤는데 이불빨래랑 비슷하더라고요. 잠옷 바지를 걷어 올리고 첨벙첨벙 제자리걸음을 하면 구정물이 나오는데 어찌나 통쾌한지…….”

빨래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주작의 얼굴을 보며 나는 야릇한 감정을 느꼈다. 그녀와 같은 공간에서 막 건조된 옷가지들을 서로의 얼굴에 부비는 장면이 떠올랐다. 같이 살고 싶다는 저속한 표현을 부정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몸이 뜨거워지는 연애 적령기였다면 몰랐을 공상이다. 탐험이 중요한 나이에는 내 몸, 내 옷, 내 감정이 더러워져도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삼십 후반의 나이가 되고 보니 알 수 있었다. 뽀송해진 촉감을 느끼고 서로에게 권하는 즐거움을 말이다.


“자아, 오늘의 세탁물은 누구죠?”

공운이 빨래방의 문을 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유명인이었으면서도 이렇게 부끄러움을 몰라도 되나 싶을 정도다. 주승아 작가가 사전 인터뷰 내용을 공운에게도 전달해 준다.

“음, 학대 교사로 낙인찍힌 중학교 교사라. 왠지 흥미진진한데? 내가 조심할 건 뭐가 있지?”

“비슷해요. 해명은 들어주시고 참회는 부추기고. 억울하다고 다른 사람에 대해 공격하려고 들면 말려주시고요. 너무 진지해지면 안 되니까 형님이 농담도 좀 쳐주시고.”

어느새 공운은 내게 형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나는 친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이다. 스스름 없이 말을 놓거나 형동생 하는 사람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격식을 없앨 정도로 넉살이 좋은 편도 아니지만 그럴 이유도 못 찾았다.

공운에 대해서는 조금 달랐다. 왕년의 스타였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그런 마음에 어느 순간부터 스스럼없이 형님이라 부르게 된 거였다. 전혀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내가 몇 번 해보니까 우리가 부르는 사람들 유형을 파악했어. 참회형 인간과 변명형 인간.”

의자에 앉아 손거울로 스스로 머리를 손질하며 공운이 말했다.

“더러워진 자기 이름에 대한 태도 말야. 모두 그 중간 어디쯤이겠지만 참회와 변명으로 구분되더라고.”

“오, 공운 님 심리학자 다 되셨네요.”

주작이 웃으며 말했다.

“후반부로 가면 어떻게 나뉘는지 알아? 다짐형 인간과 복수형 인간. 참회에서 다짐으로 가거나 변명에서 복수로 가는 게 자연스럽지. 그런데 이상한 경우도 있어. 지난번 인플루언서 있잖아, 뒷광고 받아놓고 아니라고 발뺌하다가 털렸다는. 걔는 참회에서 복수로 넘어가. 인과관계가 안 맞지. 처음엔 자기 잘못을 인정하다가 분위기가 편해진 후반에는 악플 단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복수의 뜻을 내비쳤지.”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분석이었다. 직업이 없어 심심풀이로 우리랑 같이 하는 줄 알았는데 공운은 나름대로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형님이 그 지적을 하셨던 거군요. 참회의 뒤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된다고. 미안한 마음과 서운한 마음은 동시에 가질 수 없는 거라고.”

“그랬지. 먹방 한다는 그 친구는 아직 어려서 모를 뿐이야. 내가 얘기했지만 그래도 모를 거야. 계속 살아남아야 하니까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고. 솔직한 자신과 마주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심리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의 반열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공운의 인터뷰는 그 어느 부류도 아니었다. 참회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변명하는 것도 아니었다. 있었던 일을 담백하게 말했고, 감정이나 의견의 영역은 일반화시켜 되물었다. 영리한 방식이었다. 억울함을 토로하는 대신, ‘당신 같으면 있었던 감정을 되돌릴 수 있어요?’ 라거나 ‘내 돈을 내가 탕진하는 것이 죄라고 생각해요?’라는 식이었다.

마침내 게스트인 홍소윤 씨가 도착했다. 집이 근처라 걸어왔다며 민망한 웃음으로 우리에게 인사했다. 그녀의 인상은 말 그대로 ‘교사’였다. 누가 내게 교사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면 바로 그녀와 같은 외모를 그려낼 것이다. 아담한 키에 가지런한 단발머리, 흰 피부와 강단 있어 보이는 입 모양, 당당하지만 왠지 공포를 많이 느낄 것 같은 큰 눈매였다. 가르치는 일을 좋아서 교사가 되었겠지만 아이들과의 기싸움에 밀리지 않겠다는 고집도 있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털린’ 신상에 의하면 그녀는 46세에 중학생 남매를 둔 엄마이기도 했다. 사건 이후 그녀는 정직 처분을 받았고 아이들도 상처받을까 휴학을 시켰다. 보내던 학원도 끊고 집에서 직접 남매의 공부를 봐주고 있다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근황을 말했다.

그날 촬영은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공운은 게스트의 이름이 더러워진 사연을 하나씩 물었고 그녀는 대답했다. 공운의 틀에 의하면 홍소윤은 참회형-다짐형 인간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했고 시대가 바뀐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조심하겠다는 다짐을 드러냈다.

“저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어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죠. 교사도 사람이다, 선생에게도 감정이 있다, 이런 변명은 늘어놓고 싶지 않아요. 소위 신상이 털려 온 국민이 알게 된 것도 자업자득이라 생각해요. 아이의 뺨과 마음에 상처를 남겼으니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할 내 몫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무난했고 어쩌면 밋밋했다. 건조기에서 깨끗해진 셔츠를 꺼내 펼치는 퍼포먼스-사실은 깨끗한 새 티셔츠였다-로 클로징한 것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교사가 수업 중에 112 신고당하고, 학부모로부터 피소당하고, 온라인에서 아동학대와 교권보호가 극심하게 충돌하는 계기가 된 사건에 비해 그녀의 후일담은 싱거웠다.

“이렇게 훈훈해서야 우리 채널 계속 이 모양 이 꼴이겠네.”

주작이 장비를 정리하며 내 마음의 소리를 대신 투덜거렸다.

“주작이 썸네일이라도 잘 뽑아봐. 섹시하게, 좀 자극적이게 말야.”

“피디님, 원판 불변의 법칙 몰라요? 포장지에도 한계가 있다구요. 잘 아시면서…….”

그렇긴 하다. 영상 콘텐츠는 말 그대로 내용이 팔 할이다. 아무리 후반작업-편집이나 자막, CG 효과, 배경음 삽입 등의 과정-에서 기술을 써도 본 내용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다. 홍소윤 씨의 맥 빠진 자기고백은 공운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게 평타나 쳤으면 좋겠다.”

뭔가 다르게 바꿔야 하나 싶은 생각을 하며 그날 촬영을 마무리했다.


홍소윤 씨 영상이 업로드된 지 두 달 후의 일이었다. 그 사이에 우리는 무의미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계속하며 지쳐갔다.

“정 피디님, 난리 났어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주승아 작가의 호들갑에 잠이 번쩍 깼다. 시계를 보니 7시도 채 되지 않았다.

“우리 채널, 밤새 떡상했다고요.”

“에? 무슨 일로? 어떤 콘텐츠가?”

눈곱을 떼며 내가 놀라 되물었다.

“홍소윤 선생님 있죠? 두 달 전에 올린 거. 그거 대박 났어요. 벌써 300만 뷰 넘었다구요. 그것 때문에 구독 유입도 10만이 넘었고. 어제까지 구독 9천 명이었는데 자고 나니 바로 실버버튼이네요. 하핫.”

이상한 일이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우리가 올렸던 영상 중 10만 뷰가 넘는 영상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저도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홍소윤 씨가 사고를 쳤대요.”

“사고? 무슨 사고?”

“정직 기간이 끝나고 복직하자마자 어떤 애를 때렸대요. 이번에는 몽둥이를 휘둘렀나 봐요.”

웃을 일인지, 울어버릴 일인지 난감했다. 통화를 서둘러 끝내고 노트북을 열었다. 과연 주작의 말대로 우리 채널은 ‘떡상’ 중이었다. 클릭 한 번에 구독자가 수백 명씩 늘고 있었다. 콘텐츠 통계를 보니 ‘훈계와 학대 사이-교사 홍소윤 편’이 250만 뷰를 향해 가고 있었다. 덩달아 다른 콘텐츠 조회수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다.

댓글을 보니 이랬다. 사이코 홍소윤의 거짓 참회 잘 봤습니다, 이런 교사는 영원히 격리해야 한다, 교사는커녕 인간이기를 거부한 홍소윤, 인간 말종 못 걸러내는 임용고시 무엇?, 저 집 남매도 똑같이 당해봐야 정신 차리지, 개쌍년 홍소윤 감옥에서 평생 썩어라, 지난번엔 뺨 때리기 이번엔 몽둥이질, 무서워서 애들 학교 보내겠나, 홍소윤 사형 찬성하시면 따봉 눌러라, 홍소윤 씨발년 전 국민에게 한 대씩만 처맞자, 악마 홍소윤의 변명을 들어주다니 공운은 정신 차려라, 사고뭉치 아니랄까 봐 공운이 또 사고 쳤네, 3:45 홍소윤 가증스러운 저 눈빛 봐라, 5:39 이걸 반성이라고 할 수 있나, 7:11 여차하면 또 때리겠다는 무시무시한 복선

정신이 바짝 들었다. 공운에게 전화할까 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에게 소식을 알린다면 이것은 희소식인가 비소식인가? 키위 랭킹-온라인상의 통계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오명 세탁소가 인기 급상승 채널 1위로 떠있었다. 포털에 들어가 홍소윤을 검색어로 넣어 뉴스를 뒤졌다.

교사 홍 모씨가 또 한 번 아동학대로 경찰에 입건되었다. 오늘 오후 4시쯤 경기남부경찰서는 과천의 모 중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때리고 있다는 신고전화를 받고 긴급출동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의 조사 결과, 교사 홍 모씨는 청소용 대걸레 봉을 이용해 2학년 이모 군의 머리와 어깨, 다리 등을 10여 차례 무차별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자인 교사와 피해자인 이모 군, 목격한 학생들 모두 이 같은 사실을 현장에서 인정했다고 경기남부서는 밝혔다. 출동한 경찰은 즉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적용, 해당 교사를 현행범으로 입건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체포된 홍 모씨는 지난해 또 다른 학생의 뺨을 때려 정직 처분을 받은 이력이 있으며 불과 지난주 교육 현장에 복귀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홍 모씨의 사건이 알려지면서 교권 보호와 아동학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이어진 바 있었다. 오늘 사건으로 일선 교사의 폭력과 관련한 교육 당국의 안일한 대처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오명 세탁소가 또 다른 오명의 인큐베이터가 된 셈이었다. 분노한 사람들이 홍소윤을 검색하다가 우리 채널을 주목하게 되었지만 내 마음 한 켠에는 불편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공운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정지강 피디 마음이 어떨지 예상이 되네. 뭘 생각하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됨.’


keyword
이전 05화공운의 두 번째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