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 차리지 말고 정신을 차리세요"
“마카오 도박 얘기를 해보죠. 팀 해체 이후 3년쯤 지났을 때죠? 원정도박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운이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쓰레기가 됐는데, 당시 얘기 좀 해주세요.”
채널의 속성을 단도직입, 솔직함으로 잡았기 때문에 나는 에두르지 않고 물었다.
“정 피디와 주 작가는 도박이 죄라고 생각해요?”
공운이 되물었다. 우리는 당황했다.
“글쎄요, 뭐, 죄니까 처벌을 하겠죠?”
“강원랜드는요? 그거 나라에서 운영하는 도박장이잖아요.”
다시 되묻는 공운. 이번에는 주작이 나섰다.
“공운 님은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처벌 받으신 것 아니에요?”
“그렇지.” 공운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나는 마카오에서 도박을 하다가 돈을 많이 잃었어요. 원래 모든 도박은 하다 보면 계속하게 됩니다. 따면 더 딸 것 같아서, 잃으면 본전 생각나서 말이죠. 나는 외국환거래법이 뭔지도 몰랐어요. 빌려준다는 사람에게서 돈을 빌렸다가 범죄자가 된 거예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 봅니다. 국가가 도박장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도박 자금에 대해서는 범죄로 단속한다? 이거 논리적으로 이상하지 않아요?”
포에버보이즈 해체 이후, 세 번 솔로 도전에 실패한 공운은-앨범 한 장을 냈다가 망했고 두 번은 무산됐다-2008년, 바람이나 쐬러 가자는 지인을 따라 마카오에 갔다. 그곳은 낮에는 관광, 밤에는 도박이 일상화된 곳이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낮에도 도박, 밤에도 도박이 자리 잡았다.
처음 카지노에 들어가 슬롯머신 앞에 앉았을 때 공운은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다. 화려한 불빛과 현란한 기계음들, 여기저기서 터지는 환호와 웃음소리, 모든 것이 그에게 살아있는 느낌을 주었다. 성인이 되기 전 뒷골목에서 춤을 배우던 시절과도 같았다. 미래를 기약할 수는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에게서 엄청난 에너지를 느낀 것이다.
공운은 점점 게임에 빠져들었다. 땄을 때의 쾌감과 잃었을 때의 아쉬움이 그를 중독시켰다. 아예 호텔 카지노 건물 밖에 나오지 않았다. 예정된 귀국 비행 편을 취소하고 호텔 숙박을 연장했다. 괜찮다며, 조금만 더 놀고 들어가겠다며 동행한 지인을 귀국시켰다. 식사는 대충 때웠고, 웨이터들이 나르는 싸구려 샴페인만 홀짝거렸다.
공운이 심취한 게임은 블랙잭이었다. 수습피디 시절, 시사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면서 나는 도박 중독을 다뤘던 경험이 있다. 그때 메인 피디의 지시로 나와 주작은 자료조사를 했는데 여러 카지노 게임에 대해 잘 알게 된 계기가 됐다.
블랙잭은 여러 갬블러들이 딜러와 숫자를 놓고 겨루는 테이블 게임이다. 자신이 받은 카드의 총합이 21에 가까우면 이기는 단순한 룰이다. 21을 초과하면 버스트가 되어 패배. 플레이어는 hit(받기)와 stand(멈추기), double down(두 배로 베팅), split(같은 숫자의 카드를 쪼개기) 등을 선택할 수 있다. 패를 연 다음 21에 근접한 사람이 판돈을 먹는 게임이다.
“룰이 단순한 게 좋았지. 춤출 때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것과 비슷했어요. 그냥 황홀한 거야. 이기고 지는 건 상관없고 그냥 그 긴장감. 칩이 오가는 순간이 너무 아름다운 거야. 나한테 들어오든 나한테서 나가든 모든 과정이 멋진 춤처럼 아름다웠던 느낌이었어요.”
공운이 담담하게 인터뷰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인터뷰처럼 하다가 편해졌는지 점점 우리를 대하듯 반말을 섞었다.
“다 잃은 이유? 전략이 없었기 때문이지. 블랙잭 같은 테이블 게임은 승패 확률이 반반입니다. 내가 이기거나 딜러가 이기거나. 머신게임은 갬블러가 이길 확률을 낮게 설정해 놓지. 어쨌든 나는 촉에 따라 베팅을 했어. 어떨 때는 19를 받고도 히트를 불렀고, 어떨 때는 14에 멈추기도 했어. 느낌을 믿었고 그게 패착이었던 거죠. 돈을 따려면 원칙을 세우고 그것에 충실해야 돼요.”
“자, 지금 도박을 소개하는 인터뷰는 아니니까…….” 내가 주의를 주었다. “외국환거래법? 공운 님의 죄명이 그렇게 나오던데 맞나요?”
“일주일쯤 좀비처럼 블랙잭만 하던 중에 돈이 떨어진 거야. 현금인출기에서도 더 뽑을 수가 없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누구한테 전화하면 몇 천 정도는 조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아무도 송금해 주지 않았지. 칩이 하나도 남지 않았는데도 자리를 뜰 수 없더라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 하는 걸 구경했어요. 그러다가 그 사람을 만났지. 한국 사람이었어. 내가 공운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다짜고짜 옆에 와서 조용한 말투로 칩을 빌려주겠다는 거야. 아무리 아쉬워도 초면인 사람과 거래하는 건 내키지 않아 거절했어요. 그런데 불과 2시간도 안 지나서 내가 그 사람을 찾으러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더라고. 눈에 불을 켜고서, 하하.”
카지노와 대부업을 하는 폭력조직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다. 공운이 쫓아가 칩을 빌렸던 사람은 대부업자였다. 조직폭력배였을 수도 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카지노 복도 한 켠에서 그럴싸한 약식 차용증에 서명까지 주고받은 뒤 공운은 칩 100개를 받았다. 10만 홍콩 달러, 우리 돈으로 1700만 원 정도였다. 이자는 24시간 안에 갚으면 10%, 72시간까지는 20%, 한국에 돌아가서 갚게 되면 50%까지 올라가는 조건이었다.
“그게 외국환관리법 위반이 된 거군요.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는 외환 조달은 불법이 되는…….”
미리 자료조사를 해둔 주작이 물었다.
“인천공항에서 경찰이 얘기해 줘서 알았지. 모든 언론에 바로 소문이 났고, 3년 만에 내 이름이 또 온 세상에 도배가 됐어요. <공운, 원정 도박에 불법 외환 조달>, <추락하는 공운의 날개, 그 끝은 어디인가>, <팀 해체 이후에도 계속되는 공운의 비행> 뭐 이런 기사들이었지. 도박으로 가진 대부분을 날리고 벌금까지 냈더니 완전 거렁뱅이가 됐어요. 몇 년 반짝 활동할 땐 인기가 많으면 그게 돈이 됐지만, 그렇게 되고 보니 유명세가 돈을 막더라고. 용돈벌이로 하던 데뷔 지망생 가르치는 일까지 뚝 끊겼다니까.”
공운의 억울함은 이런 것이었다. 도박은 내가 내 돈을 쓴 것이고, 법 위반은 정부와 나 사이이 문제다, 즉 나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폭력을 휘두른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돈을 갈취한 것도 아니다. 그게 생업을 내려놔야 할 정도로 잘못된 일인가?
“사회적인 영향이 큰 유명인이 도박에 빠지면 많은 사람들이 따라할까 봐 그런 거 아닐까요? 왜, 베르테르 효과 있잖아요. 성실히 일하던 사람들이 망가지게 되는 부작용.”
몸을 카메라 쪽으로 내밀고 있던 공운에게 내가 물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여유가 넘쳤다. 본인의 흑역사를 직접 밝히는 자리인데도 불편하거나 괴로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마치 이체유탈한 것처럼 현재의 공유가 과거의 공유를 구경하며 묘사하는 듯했다.
“아, 좋은 질문! 그런데 정피, 그런 이유라면 정부가 나한테 벌금을 물릴 게 아니라 표창장을 줘야 돼. 도박에 손대면 폭망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줬거든. 대한민국 국민들한테 물어봐요. 공운 때문에 도박을 하고 싶어졌는지, 공운이 한심해서 카지노 근처에도 안 가게 됐는지.”
후회나 회환은커녕 이쯤 되니 자기가 카지노에서 탕진한 일이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손 뭐시기 배우 있죠? 장모인가 장인인가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잭팟 터뜨렸다는. 나보다 그 집이 더 나빠요, 그런 의미에서. 성실한 사람 허파에 바람 들어가게 해서 원정도박 부추긴 건 내가 아니라 그 집안이라고. 욕은 내가 먹고 부러움은 그쪽이 샀지만 누가 더 해로운지는 생각할 문제라고 봅니다.”
“공운 님 말씀하신 대로 강원랜드는 괜찮은데 해외도박을 죄악시 여기는 이유는 국부유출 때문 아닐까요? 도박을 할 거면 국내에서 해라, 여기서 돈이 돌게.”
주승아 작가가 볼펜 낀 손을 턱에 괸 채 질문했다.
“하아,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그런 식이면 해외여행도 막고 국내만 다니라고 해야죠. 행위 자체가 불법이 아닌 것을 장소에 따라 한쪽은 눈감아주고 한쪽은 생업을 내려놔라 하는 인식은 분명 잘못됐다고 봅니다.”
솔직히 그 첫 촬영에서 나는 몹시 놀랐다. 전까지 공운은 내 머릿속에서 ‘생각 없이 사고 치는 연예인’ 정도였다. 그날 차분하면서도 명쾌하게 자신의 과거를 꺼내는 모습은 그에 대한 내 선입견을 완전히 없앴다. 억울하다고 변명하는 것도 아니고, 뻔뻔하게 당당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얼룩진 과거를 대하는 그의 담백한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매니지먼트사를 차렸다가 연습생 부모들에게서 피소당한 일도 있었다. 그 사건에 대한 회고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첫 촬영을 마쳤다. 이제 공운의 역할은 끝나고 나와 주작의 시간이었다.
“우린 구독자가 0명이야. 첫 영상에서 최대한 끌어올려야 돼.”
공운을 돌려보내고 카메라에서 메모리를 꺼내며 내가 주작에게 말했다.
“음, 유튜브 세상이 원래도 그렇지만 첫 영상이니까 더 자극적으로 하자는 거죠? 난 찬성.”
우리는 공운의 인터뷰를 10분짜리 두 개로 편집해 올렸다. 질문은 자막으로 처리하고 짧은 호흡으로 핵심적인 대답만 담았다. 매니지먼트사 횡령은 아예 뺐다. 썸네일은 <최초고백, 공운이 밝힌 포에버보이즈 해체 이유>와 <마카오 다녀왔더니 인생 폭망> 이렇게 뽑았다. 공운이 흥분하거나 놀라는 표정을 따 디자인했다. 영상 배경은 크로마키에서 색을 빼고 코인 빨래방 이미지를 넣었다.
“첫술에 배부를 일 없다. 정피, 주작 너무 기대하지 마. 길게 보고 합시다.”
첫 영상들 편집본을 함께 본 뒤 공운이 말했다. 어느새 그는 철딱서니 연예인이 아니라 듬직한 동업자가 되었다. 내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구글의 알고리즘은 처음 크리에이터가 되는 사람들을 약간 배려한다.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노출시켜 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처음으로 접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이들이 구독을 하거나 댓글을 남기거나 좋아요를 누르는 행동을 많이 할수록 노출 기회는 커진다. 반응이 없다면 망한다고 봐야 한다.
첫 영상을 업로드한 뒤, 우리는 실망했다. 배부를 첫술은 아니었지만 낮춘 기대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이틀 동안 구독자는 고작 74명, 조회수는 3천 회 수준이었다. 댓글은 3개가 달렸는데 ‘헐, 공운 아직도 살아있네. 입만’, ‘채널 차리지 말고 정신을 차리세요’, ‘오, 공운이다. 방가’ 이게 전부였다.
“정말 야생 맨땅에 헤딩이네요. 머리만 아프고 땅은 그대로네.”
주작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미스터 비스트도 구독자 없이 출발했다는 사실! 티핑 포인트까지는 쌓으면서 버텨야 돼.”
“그걸 누가 몰라요? 첫술이 애기 이유식을 떠줄 줄이야. 다 큰 성인 입이 셋인데…….”
우리는 실망감 속에 이틀 후 <마카오 다녀왔더니 인생 폭망> 편을 올렸다. 하루를 기다렸더니 구독자는 256명이 되었다. 두 번째 영상의 조회수는 7천 뷰, 댓글은 10개가 달렸다. 그 사이 첫 영상도 보는 사람이 늘고 있었다.
“한 해 흉작이라고 씨감자 안 심을 거야? 자, 다음번 촬영은 어떻게 할텨?”
초라한 성적표에 초라해진 우리에게 공운이 다그쳤다. 그것도 의외였다. 화려한 아이돌 경험을 했기 때문에 우리보다 눈높이가 높을 줄 알았던 것이다. 그가 그럴수록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인터뷰이는 섭외했는데 장소를 바꾸면 어떨까요?”
주승아 작가가 제안했다.
“장소? 여기서 안 찍고?”
“오명 세탁소니까 진짜 빨래방에서 촬영하면 어때요?”
“오, 그거 좋다. 리얼하겠는데? 그거 받고 하나 더! 게스트 이름이 새겨진 옷을 세탁기에 넣고 돌려보자. 토크 끝나면 깨끗해진 옷을 들고 끝내는 거 어때?”
공운은 그냥 진행자가 아니었다. 우연히 만난 연예인에서, 동업자가 되고, 같이 기획하는 제작 동료가 됐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