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운의 첫 번째 고백

뒤집어 보라고. 그래도 공근운이야. 신기하지?

by 이지완

공운의 본명은 공근운이다. 연예계에 데뷔하면서 가운뎃 글자를 뗐다. 발음하기 워낙 어렵기도 하고 그다지 세련된 이름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90년대에는 지금처럼 시스템을 갖춘 대형 매니지먼트사가 없었다. 포에버보이즈 역시 노래 좀 하고 제법 춤춘다는 고수들끼리 알음알음으로 결성된 그룹이었다. 카이의 친구라는 사람이 매니저 역할을 하긴 했지만 섭외 전화를 받고 승합차 운전하는 정도였지, 이미지 관리라든가 홍보 전략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공운과 카이, 시현, 주강 이렇게 넷은 영원히 함께하자는 뜻에서 포에버보이즈라고 이름 지었다. 두 글자로 통일하기로 하고 각자 활동명도 정했다. 주강은 본명인 주강현에서, 시현은 현시완에서 땄다. 카이는 구승민이라는 본명과는 아무 상관없는 네이밍이었다.

“뿌리 근, 구름 운, 뿌리와 구름이란 뜻이지. 할아버지가 열흘 동안 고민해서 지어주셨대.”

채널 론칭을 위해 몇 번 만나자 편해졌는지 어느새 공운은 주승아 작가와 내게 말을 놓았다.

“오, 뜻은 멋진데 발음이 어려워서 뿌리를 뽑아버린 거군요. 하하”

주작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상대가 불쾌해할 수도 있는 내용을 몽글몽글하게 무장해제 시켜 전달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정피, 주작, 잘 봐. 공근운을 거꾸로 해봐. 뒤집어 보라고. 그래도 공근운이야. 신기하지?”

“아, 정말 그러네. 오 신기하다.”

“더 신기한 게 뭔 줄 알아? 할아버지가 이름 지으실 때 사주 뭐 그런 거 말고, 뒤집어도 똑같은 이름을 찾아서 지었다는 거야.”

애들에게 이솝우화 읽어주듯 공운이 말했다.

“일단 성이 공씨니까 끝이름은 운이겠지. ‘근’자 찾으라고 열흘이 걸린 거야.”

“우와, 대한민국에 그런 이름이 또 있을까? 뒤집어도 똑같은 이름 말예요. 공운 님 빼고는 없을 것 같은데.” 주작이 계속 놀랐다. “할아버님은 왜 그런 생각을 하셨대요?”

“아버지한테 들은 얘기로는 겉과 속이, 안과 밖이 똑같은 삶을 살아라, 그런 뜻이었대. 내 이름을 지어놓고 나 백일도 되기 전에 돌아가시긴 했지만.”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많은 일을 겪는다. 가장 먼저 겪는 일은 돌봄이다. 아기는 누가 돌봐주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돌봄이라는 오지랖을 당해야 한다. 동시에 따라오는 오지랖은 네이밍이다. 사주가 어떻다, 어떻게 살면 좋겠다, 돌림자가 어떻다 등 여러 이유로 본의 아니게 자기 이름을 갖게 된다. 자기 이름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고 불만인 사람들도 있다. 불만이지만 그냥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용감하게 개명을 하는 사람도 있다.

공근운이라는 이름은 내가 들은 작명 방식 중에 가장 특이한 사례였다. 뒤집어도 똑같은 삶을 살라는 할아버지의 뜻은 의외의 결과를 초래했다. 사춘기가 시작되자 공운은 반항을 시작했다. 학교를 빼먹고 다리 밑과 빈 건물과 뒷골목을 배회했다. 부모의 잔소리에 공운은 이렇게 대답했다.

“앞뒤가 똑같은 인생을 살라면서? 난 놀고 싶다고요. 놀고 싶은데 공부하는 거는 앞뒤가 다른 거잖아. 학교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가는 거는 내 이름이랑 안 맞는다고!”

부모가 빌고 빌어 정학과 퇴학 면하기를 몇 차례, 그는 겨우 중학교를 졸업했다. 공운에게 고등학교는 아예 생각도 없었고, 사고 수습에 지친 그의 부모는 중졸로 만족하기로 했다.

노는 것에 올인한 인생에도 배울 것이 하나 찾아왔는데 그건 춤이었다. 공운이 처음 알게 된 춤은 락킹이었다. 펑크 음악에 맞춰 절도 있게 멈춤과 흐름을 반복하는 장르였다. 스트릿 댄스 즉, 길거리 춤의 일종인데 뒷골목에서 서로 배틀하는 재미가 있었다. 공운과 친구들은 다리 밑에서 카세트 플레이어를 틀어놓고 연습했고, 시내 뒷골목에서 다른 그룹들과 겨뤘다. 그저 그랬던 공운의 춤 실력은 해가 거듭될수록 늘었고, 어느새 언더그라운드 댄스계에서는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자, 그러니까, 더러워진 이미지를 세탁한다는 컨셉이란 거지? 영상 하나 찍어 올리면 다시 이름이 깨끗해지고.”

첫 촬영 날, 좁은 스튜디오에 도착해 공운이 분장을 받으며 확인했다. 당시 우리는 막 시작하는 단계라 제작비를 아껴야 했다. 분장조차도 주승아 작가가 맡아서 대충 했다.

“오늘은 게스트 없어요. 형님 단독 출연이고, 우리가 카메라 뒤에서 묻는 질문에 하나씩 대답하시면 됩니다. 질문지 일부러 안 드렸어요. 김새고 맥 빠질까 봐.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으시면 편집할 때 말씀해 주세요. 엔지 없이 주욱 갑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방송사의 교양 피디처럼 일했다. 출연자에게 친절했고 가급적 체계를 갖추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그런 방식이 의미가 없다. 사람들이 일급수를 원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조명이 켜졌다. 두 대의 카메라에 레코딩이 돌았다. 내가 슬레이트 박수를 쳤고, 등받이 있는 의자에 앉은 공운이 자세를 가다듬었다. 카메라 뒤쪽으로 돌아온 내가 물었다.

“오명 세탁소에 진행자가 되신 소감부터 말씀해 주세요.”

“음…” 공운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주작은 놀라서 내쪽을 바라봤지만 나는 기다렸다. 생방송도 아니고 마가 뜬 것은 편집으로 해결할 수 있다.

“양명이라는 말 있죠? 입신양명할 때 그 양명. 이름을 떨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름을 날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 같아요? 출세하는 거? 유명인이 되는 거?”

공운이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오늘은 제 고백으로 시작하고, 앞으로 이 오명 세탁소에 손님들을 초대해서 사연을 들을 텐데요, 저든 이 세탁소 손님이든 다 양명에는 성공한 사람들이에요. 널리 이름을 알렸습니다. 스캔들과 가십, 범죄 등등 이런저런 물의를 일으켜서 더러워졌지만 말이죠. 제가 앞장서서 깨끗이 씻어 보겠습니다. 그 더러워진 이름들.”

기대 이상의 달변이었다. 우리의 의도를 너무나 정확하게 드러낸 오프닝이었다.

“공운 님은 90년대 후반부터 2천 년대 초반까지 포에버보이즈에서 전성기를 누리셨잖아요? 당시 인기는 어땠나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 말해 주세요.”

짜여진 순서대로 이번엔 주작이 물었다.

“제 이름 공운을 몰랐던 대한민국 국민은 5세 이하의 어린이와 70세 이상의 어르신들 정도였다고 봐야죠. 하핫. 특히 3집 활동을 할 때는 아휴, 사인 요청 때문에 길도 못 갈 정도?”

과거의 영화를 떠올리며 공운이 미소 지었다.

“지금은 어떤가요?”

내가 훅 치고 들어갔다. 이 작전은 주작과 미리 의논한 것이었다. 그동안의 일을 하나씩 변명하게 하기보다는 지금 초라해진 자신의 이름을 크게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공운은 급작스럽게 바뀐 질문에 잠시 당황하는 듯했다.

“개판이지 뭐. 일단 내 얼굴,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고요. 아는 사람들은 뭐랄까, 동정하거나 비난한다고 해야 되나? 멀찌감치에서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고.”

다소 풀 죽은 어조로 공운이 대답했다. 그것도 잠시뿐 다시 밝은 톤으로 대답을 이었다.

“그래서 이 오명 세탁소 주인장이 된 거 아니겠습니까. 저만큼 이 자리가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안 그래요, 여러분?”

나와 주작이 소리 내어 웃었다. 방송 프로그램이었으면 편집될 거겠지만 유튜브니까 스태프의 자연스러운 리액션도 넣을 심산이었다.

“자, 뮤지션이자 댄서인 공운의 이름이 더러워진 사연들.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포에버보이즈 불화는 누구 때문입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포에버보이즈가 5집 활동 중이던 2005년, 한 신문 연예란에 특종이 터졌다. ‘포에버보이즈, 카이 탈퇴로 쓰리에버보이즈 되나?’라는 기사 제목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인기 정상의 댄스 보이그룹 포에버보이즈가 불화설에 휩싸였다. 그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익명의 제보자가 본지에 제보한 내용에 따르면, 카이가 팀에서 탈퇴할 것으로 보인다. 리더인 공운과 다툼이 있었는데 같이 활동하기 어려운 지경이라고 제보자는 밝혔다. 갈등이 시작된 원인에 대해 제보자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금전 문제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아니라고 대답했으나 ‘여자 문제였나’는 질문에는 침묵한 것으로 보아 이성을 둘러싸고 멤버 간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탈퇴는 누가 결정했는가 하는 질문에는 '카이 본인이 말을 꺼냈고, 아마 조만간 입장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포에버보이즈의 소속사인 포유엔터테인먼트 측에 이 같은 내용에 대해 질의했으나 홍보팀에서는 추후 기자회견을 통해 모든 것을 밝히겠다며 말을 아꼈다. 한편, 포에버보이즈는 5집 타이틀 곡 ‘댄스위드미’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국 순회공연을 앞두고 있다. 만약 카이의 탈퇴가 현실화되면 예정되어 있는 공연과 방송 출연에 큰 차질이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여자 문제였어요.” 카메라 앞의 공운은 담담하게 말했다. “당시 추측 기사는 많았지만 소속사나 저희 멤버가 다툼의 원인을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 처음으로 공개하는 셈이 되겠네요.”

하루 전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팬클럽 포겟미낫의 열성 회원이었던 주작은 이렇게 말했다.

“카이가 좋아하던 백댄서가 있었는데 그 여자를 공운이 가로챘다, 그게 팬 커뮤니티에서 파다하게 퍼진 소문이었어요. 둘이 사귀는 관계는 아니었고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정도였대요. 공운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 여자에게 고백했고, 그녀가 카이에게 말하면서 난장판이 된 거죠.”

카메라에 대고 고백하는 공운의 말도 주작이 전한 당시의 소문과 대동소이했다.

“의리파였던 주강은 그까짓 여자 하나로 우리가 파탄 나서야 되겠냐며 화해를 종용했어요. 막내 시현은 울고불고 난리를 치면서 저를 탓했고요. 저는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감정이란 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좋아하는 마음이 마음대로 정리가 되나요? 더군다나 우리는 이십 대 후반의 나이었어요. 카이는 제가 감정을 되돌려 놓지 않으면 우리는 끝이라고 말했어요. 네, 그 표현 정확히 기억해요. 감정을 되돌리라고. 저는 어이가 없었어요. 그때 직감했어요. 포에버보이즈는 끝났다고 말이죠.”

공운의 말은 반성도 회한도 변명도 아니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한 담담한 진술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개입하거나 요구할 수 있을까? 카이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고백’을 되돌리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감정’을 되돌려 놓으라고 요구했다. 공운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오지랖 중에 가장 황당한 것이라면 다른 사람의 감정에 개입하는 짓이다.

기사가 뜨고 난 후 보름 만에 소속사는 팀 해체를 공식 발표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공운을 비난하는 댓글이 하루에도 수천 개씩 달렸다(고 주작이 말했고 그중 스무 개쯤은 자기 거라고 밝혔다). 많고 많은 여자 중에 왜 동료 카이가 좋아하는 여자를 좋아했느냐는 비난이 대부분이었다. 품은 감정이 도덕의 도마 위에 올려진 순간이었다.

“당연히 힘들었죠. 전에는 불화가 없었고 그 일로 해체가 됐기 때문에. 더구나 제가 리더였잖아요.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듭니다. 내가 품었던 감정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과 어떻게 같이 지낼 수 있을까? 차라리 그때 얼마간의 공백기를 가졌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그땐 우리 모두 어렸고 뜨거웠고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몰랐으니까요.”

공운의 시선이 한동안 허공에 머물렀다. 그의 눈길이 다시 내려왔을 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후회 없는 건조한 회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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