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는 언제 탈출하는가

"사고 쳐서 나가는 게 아니라 사고를 치러 나가는 것 같은데"

by 이지완

멀쩡한-가족과 지인들의 표현이다-직장을 때려치운 건 재작년 이맘때였다. 톨스토이를 살짝 비틀자면, 모든 퇴사에는 각기 다른 이유가 있지만 모든 입사의 이유는 하나다.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취업의 전부다. 자아실현이니 사회기여니 하는 거창한 말들은 속물로 평가받기가 민망해 주워섬기는 공공연한 거짓말이다. 서로 다 안다. 면접 테이블의 이쪽도 저쪽도 그럴싸하게 포장된 포부의 내심에는 ‘돈 벌고 싶어요’가 있는 것이다. 묻는 쪽도 마찬가지다. 사명감과 인성을 평가하는 척하지만 ‘이 인간이 얼마나 벌어줄 수 있는가’를 가늠하고 있다.

12년 전 나도 그 쇼를 통과해 들어왔다. 방송사라는 곳은 일반 직장에 비해 한 꺼풀의 위선이 더 씐 곳이다.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즐거움을 선사하며 사회의 발전을 이끈다' 이것이 내가 몸담던 방송사의 미션이었다. 어디에도 돈 얘기는 없다. 면접 테이블에서 꼿꼿한 자세로 비슷한 거짓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사회를 비추는 올곧은 피디가 되고 싶습니다’는 식의 허세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지원동기를 묻는 질문에 ‘돈 벌어서 밥도 먹고 집도 사고 결혼도 하려고요’라고 솔직히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들어와 보니 달랐다. 회사의 미션은 돈이었다. 방송을 하려고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방송으로 돈을 버는 곳이었다. 올곧은 피디보다 유능한 직원이 되어야 했다. 위선으로 입사했으므로 회사의 낚시질을 탓할 수는 없었다. 다 그런 것 아니겠어? 선배들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교양제작국에 배치되었다.

“말이 좋아 민영방송이지, 진실은 사영방송, 상업방송이다. 사적으로 돈을 밝힌다 이거지. 우리 부서? 말이 좋아 교양이지, 사실은 야만이야. 교양? 없어. 그걸 알고 시작하라구.”

사수였던 한동수 피디의 환영사가 이랬다. 조직의 위선을 폭로하는 위악이었다. 수습과 조연출 기간에는 정신없이 일만 하느라 몰랐다. 그러나 5년 차에 단독으로 내 프로그램을 맡고 데스크와 실랑이도 하게 되면서-이조차도 보고와 건의라는 위선 하에-차츰 깨달았다.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은 돈을 미끼로 더 큰 돈을 버는 낚시와도 같았다. 투하하는 미끼는 작아야 했고 수확은 월척이어야 했다.

반대 부류의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오십 언저리의 경력이 많은 선배들 중에는 꼿꼿한 캐릭터가 적지 않았다. 이들은 내게 여전히 사명감을 강조했다. 방송의 공공성을 말했고, 돈과 권력의 영향을 경계하라고 주문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위선적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럴싸한 말을 해주던 어떤 사람은 성추행으로, 어떤 이는 음주운전으로 옷을 벗거나 한직으로 쫓겨났다.

국장급 이상 최고위층은 베이비부머들이었는데 이들은 대놓고 권위적이었다. 그들은 사생활이 없는 전쟁터의 장성급 군인 같았다. 팀장이나 CP 등 중간관리자들은 주로 X세대였다. X세대와 밀레니엄의 중간이라 할 수 있는 내게 이들은 군기 빠진 하급장교처럼 느껴졌다.

모든 세대가 이구동성 하는 말은 똑같았다. ‘방송의 영광은 끝나간다.’ 수십 년 동안 누려왔던 직업적 자부심을 잠식한 것은 유튜브였다. 시사 프로그램의 조연출을 맡고 있던 나는 어느 날 졸지에 메인 피디가 되었는데 그 계기도 유튜브였다.

“지강아, 너 사수 한동수가 사표를 냈다. 유튜브 무슨 스튜디오로 간다나? 신변정리 하라고 일주일 줬으니까 다음 회차 기획부터는 네가 맡아서 해라.”

호출한 팀장에게서 들은 통보는 충격이었다. 까칠하기는 했어도 일 잘하기로 소문난 교양국의 에이스였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나도 많이 배웠고,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선배들에게 깍듯했고 후배들은 그를 존경하며 따랐다. 작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직원들은 그가 차기 제작 2팀 팀장, 교양제작국 국장, 어쩌면 임원과 사장 자리까지 차례로 거머쥐리라 전망하곤 했다.

“정 피디님, 이게 말이 돼요? 한 피디님이 무슨 사고 친 거는 아니죠? 왜 갑자기 그만둔대? 잘 나가던 사람이…….”

그의 사직 소식이 알려진 날, 주승아 작가가 호들갑을 떨며 받은 충격을 고스란히 토해냈다.

“무슨 유튜브 채널을 해보겠대. 사고 쳐서 나가는 게 아니라 사고를 치러 나가는 것 같은데.”

당시만 해도 거액의 연봉을 약속받고 종편이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채널로 이직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유튜브를 해보겠다며 나가는 일은 그가 처음이었다.

“아무리 대세 플랫폼이라고는 해도 그렇지, 맨땅에 헤딩을 하겠다고? 너무 무모하신 거 아녜요? 며칠 전에 한 피디님 시청률표 앞에서 썩소 짓고 있던데 자괴감 많이 느끼셨나 보다. 이제라도 우리가 말려야 되는 거 아녜요?”

여자 후배 피디가 말했다.

“저는 며칠 전에 유튜브 보시면서 한숨 쉬는 거 봤어요. 왜, 지지난주 우리 아이템이 진용진의 그것을 알려드림이랑 겹쳤잖아요. 우리는 시청률 2프로 나왔는데 거기 조회수는 300만이 넘었대요. 댓글도 수천 개씩 달리고.”

남자 후배도 거들었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방송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누구도 쉽게 탈출하지 못했다.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놀라서 뛰쳐나오지만 개구리가 들어가 있는 찬물을 서서히 끓이면 못 나온다잖아, 익어 죽을 때까지. 딱 우리 꼴 아니냐? 한동수 선배는 끓는점을 직감하고 과감히 탈출하는 개구리가 되는 거지. 밖이 살 곳인지 죽을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리에 있던 어떤 선배가 말했다. 나 정지강이라는 개구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시 가벼운 주제로 깔깔대기 시작한 동료들을 흘깃거리며 나는 소주잔을 입에 털었다.

“이제 메인 피디니까 목 메인다 그치? 완샷해.”

동기 녀석이 술을 따르며 시답잖은 농담으로 나를 위로했다.

내 탈출 감행에는 5년이 더 걸렸다. 그 사이 코로나라는 놈이 다녀갔다. 녀석이 할퀸 상처는 깊었다. 사람들은 그 상처에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덧댔다. 숨겨진 회사의 진짜 미션은 광고수익 하락과 함께 멀어져 갔다. 이제는 누구도 방송의 공공성과 방송인의 자부심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한때 개구리들이 시원히 헤엄치던 물의 쾌감도 말하지 않았다.

주승아 작가는 나보다 두 살이 적다. 내가 입사하기 3년 전부터 교양국 작가로 일했다. 수습 시절에 나는 연례 특별 기부 프로그램의 꼭지 촬영과 편집을 맡았었다. 주작과 함께 일한 첫 작품이었다. 이후 주간 시사 프로그램을 하는 7년 동안, 전염병 특집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만들던 2년 동안도 계속 같이 일했다.

“야, 수습 여러분, 이거 명심해라. 피디는 작가를 잘 초이스 해야 돼. 유능한 작가를.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능한 작가를 골라야 된다 이 말씀이야.”

수습 시절 한동수 선배가 술에 취해 설교를 늘어놓았다.

“어떤 작가가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작가입니까?”

“피디가 못 보는 걸 보고 놓치는 걸 챙기는 능력이 있어야지. 작가는 동료면서도 우리의 첫 번째 시청자야. 우리 생각을 제일 먼저 검증하고 발전시키고 정리해 주는 역할이지.”

당시의 한 선배는 나에 대한 조언과 신세 한탄의 빌미로 자주 술을 샀다.

“그럼 어떻게 무능해야 되는데요?” 내가 물었다.

“야, 우리 회사에도 여럿 있잖아. 피작 커플들… 작가는 피디를 홀리는 능력이 없어야 돼. 피디는 작가랑 결혼하면 안 돼. 이유는 몰라도 돼. 정 그 이유를 알고 싶으면 작가랑 살아봐.”

사실 피디와 작가는 오랜 시간 붙어서 지낸다. 기획회의와 프레젠테이션을 같이 준비해서 치르고 사계절, 실내외, 전국 방방곡곡 함께 촬영 다닌다. 산란방이라고 부르는 좁은 편집실-우리는 닭이 되어 달걀을 낳는 것이다-에 붙어서 밤낮 편집을 같이 한다.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정도 든다. 그래서 피작 커플이 많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동수 선배도 작가와 결혼했던 것이다.

“특히, 너. 정지강. 내가 며칠 관찰해 보니 네가 가장 위험해. 순하게 생겨가지고 모성본능 있는 작가의 먹잇감이 되기 딱 좋게 생겼다. 차라리 남자 작가랑 일을 하든가, 여의치 않으면 바꾸기라도 자주 바꿔. 정들기 전에. 결혼도 마찬가지다. 여러 여자 만나봐야 베스트를 고르게 돼 있는 법이야.”

한동수 선배는 초이스라고 했지만 한 프로그램에서 피디가 작가를 만나는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물론 제작진과 출연진의 구성과 아이템 선정, 방향과 내용 등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책임은 피디에게 있다. 그러나 작가가 데스크와 함께 먼저 기획에 참여하는 경우에는 피디가 나중에 결정되기도 한다. 프로그램 참여 제안을 작가가 거부하는 일도 잦다. 자신이 없다거나 자기 분야가 아니라며 공손히 고사하지만, 프리랜서인 만큼 페이가 맞지 않아 그러기도 한다. 담당 피디가 싫어서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물론 작가들 사이에서의 뒷말이지,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는 아니다).

내가 주승아 작가와 거의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했고, 퇴직한 이후에도 오명 세탁소를 같이 하고 있는 이유는 나로서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십 대 후반에 커리어를 시작해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까지 한 사람의 작가-물론 그 사이에 보조작가는 여럿 있었지만-와만 일한 피디가 또 있을까? 한동수 선배가 말한 업무의 유능함에 있어서 주작은 꽤 좋은 작가다. 내 평가뿐만 아니라 주작과 같이 일한 다른 피디들도 비슷하다. 특히 그녀는 PPL이라 부르는 간접광고를 프로그램 안에 녹여내는 솜씨가 탁월했다. 제작진이 추구하는 메시지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상업 광고를 얹어야 했다. 많은 피디, 작가들이 간접광고를 귀찮아해서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 뜬금없다는 반응이 오기 마련이었다.

"으이구, 이놈의 간접광고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네. 개연성! 개연성!"

말로는 투덜대면서도 주승아 작가는 PPL이 시청자들의 반감을 사지 않도록 구성하려고 노력했다. 나조차도 절묘하다고 감탄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광고팀 직원과 광고주들이 좋아한 건 말할 것도 없다.

동료 피디들 중에는 ‘괜찮은 작가’를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도 있고, 너무 자주 바꿔 작가들 세계에 존재한다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피디들도 있다.

“유능한 작가도 아니고 그냥 괜찮은 수준이면 되는데 왜 그런 사람이 없냐 이 말이야.”

이런 푸념을 들으면 ‘당신이 괜찮은 피디가 아니라서’라는 마음의 소리를 입밖에 내지 않도록 참아야 한다. 아무튼 거의 모든 일을 주작하고만 하던 나는 다른 피디들의 부러움과 한심함을 동시에 샀다. 작가 때문에 골치 썩지 않아도 되니 얼마냐 좋으냐, 여럿 안 겪어 봤으니 주작이 최고인 줄 알지, 쟤네 저러다가 정분 나서 피작 커플 된다 등등…….

한동수 선배의 두 번째 조건은 잘 모르겠다. 홀리는 능력이 없어야 된다? 십수 년을 같이 일했지만 내가 주작에게 홀렸다거나 반했다는 느낌이 든 적은 없다. 그렇다고 매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체구는 작지만 볼륨감 있는 몸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긴 생머리, 당찬 성격이지만 선을 넘지 않는 분별력도 있다.

“한때는 못 생긴 한가인이란 소리를 좀 들었지, 내가.”

언젠가 닮은 꼴 잡담을 하던 중에 주작이 말했다.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나는 그냥 못 생긴 놈인데 말야.”

“아니 뭐라고요? 생방송 중에 생방구 뀌는 소리 하고 계시네. 우리의 정지강 피디, 인물이 어때서요? 이 정도면 준수하고 쓸만한데 왜 자책을 하고 그랴?”

주작은 농담으로 가끔 추켜세우는 버릇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가끔 심쿵한다.

“준수하고 쓸 만한데 쓰겠다고 나서는 여자는 왜 없냐고. 주작이 친구나 사촌이나 좀 소개를 시켜 주든가?”

“남주기 아까워서 안 해줍니다. 그렇다고 내 거 해라 그러면 난 절대 안하지롱. 그니까 잘 찾아봐요. 필라테스나 요가, 수영 이런 데도 좀 얼쩡거리고 말이지.”

“그러는 못 생긴 한가인 씨는 확 채가는 연정훈이 왜 없냐고? 드라마 촬영장 근처를 배회해 보세요.”

이런 농지거리조차 삼십 대 초중반까지였다. 이후에는 나나 주작이나 이렇다 할 연애 없이 사십 줄에 봉착해 있는 거였다. 어쩌면 일하면서 연애의 효과를 누리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주작과의 관계에서만큼은 워크와 라이프가 혼연일체였다. 업무 외에도 사소한 사생활 이야기도 주고받았는데 어느 한쪽이 궁금하거나 요구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서로 간에 하게 되는 것이었다. 필요한 수준에서만, 상대의 방어막이 허용하는 선에서였다. 훅 들어와 부담을 주었다면 사담은커녕 일도 같이 하지 않았으리라. 그런 그녀가 요 근래 자꾸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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