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구직자의 로망은 취업이요, 모든 직장인의 로망은 퇴사다"
“공운 형님, 빨래방 자리 계약 완료했습니다.”
앞자리에서 주승아 작가가 입을 벙긋거리며 오게 하라는 손짓을 했다.
“지금 이쪽으로 오실래요? 주작이 오라는데.” 음료를 빨고 있는 주작을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왜긴요, 형님 보고 싶어서 그런가 보죠. 게다가 여기 한 번도 안 와 보셨잖아요. 장똘뱅이 설움 끝내고 곧 정착할 곳인데 보셔야 안되겠슴까, 마?”
핸드폰을 내려놓자 주작이 입을 삐죽거린다.
“아니, 다음번 촬영 의논하자고 오라는 거지, 내가 보고 싶어 한다는 허위정보는 왜 흘려요?”
“그 양반, 주작이라면 꾹 다문 입도 자동개방 되잖어. 내가 보고 싶다면 오겠어?”
“하여간, 수컷들 넉살이란….” 주작이 코를 찡긋했다. “그나저나 우리 여기 정착하면 촬영 더 자주 할 수 있을 텐데 편집 인원도 늘려야 되지 않을까요?”
내가 방송국에 사표를 냈을 때 CP와 팀장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었다. 2년 전 일이다. 퇴직 몇 달 전부터 계획한 대로 퇴직금을 받아 스튜디오를 임대하고 장비를 사 모았다. 주승아 작가는 한동수 선배 때와는 달리 내 계획에 놀라지도 않았고 심지어 나를 따라 나왔다. 아무리 프리랜서여도 한 동안 일을 쉬거나 다른 매체에서 일하게 되면 다시 불려 가 일을 받기가 어렵다. 그런 생리를 알면서도 주작은 내 제안을 별다른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
예전에는 방송이 메이저리그, 유튜브가 마이너리그였다면 지금은 아니다. 방송이 일급수를 만드는 고인 샘물이고 유튜브는 바다로 변했다. 잘 나가던-이것도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 가족과 지인들의 표현이다-지상파 방송의 교양 피디가 어느 날 일개 유튜버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한동수 선배의 영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몇 년 사이 구독자 50만의 제법 큰 규모의 채널을 갖게 되었다. 내가 퇴직을 결심하기 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고매하신 정지강 피디님, 잘 들어라. 온실 속에 화초로 살다가 야생에 나오니까요, 엄청납디다. 매일이 전쟁이야. 성장할 수 있다는 신기루를 얻고 나머지는 모두 잃었어. 온실이 좋은 거야, 무조건.”
“그래도 선배는 성공한 거 아녜요? 50만 구독자면 수입도 짭짤하겠네. 보아하니 협찬도 들어오는 것 같던데요.”
내가 떠보자 그는 정색을 하고 말을 이었다.
“야 지강아, 이 야생은 쉴 수가 없는 곳이야. 끊임없이 경쟁해야 돼. 50만? 그거 허상이다. 매일 콘텐츠 만들어서 조회수 터뜨려야 먹고살아. 그 알고리즘이란 놈한테 얼마나 비굴하게 굴어야 되는지 아냐?”
푸념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정보를 뽑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후로도 바쁘다는 사람을 몇 번 더 불러내 경험담을 들었다. 그는 교양 피디 출신답게 정말 교양이 넘치는 채널을 운영했다. ‘검은 교양이 메롱’이라는 유치한 이름의 채널이었다.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노작과 나는 배꼽을 잡고 비웃었다. 이름과는 달리 내용은 고급졌다. 핫한 사회 저명인사를 불러 인터뷰하는 내용, 그래픽과 자료그림만으로 상식을 전달하는 숏폼 콘텐츠, 고전 인문학 다시 읽기 강좌 등 교양을 쌓기에 딱 좋은 영상이 가득 쌓여갔다.
작가, 디자이너, 편집요원 등 직원도 10명 남짓 된다고 했다. 최근에는 ‘메롱’이라는 이름의 고양이 캐릭터로 이런저런 굿즈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주작과 내게 혓바닥 내미는 고양이 인형을 하나씩 건네주면서 한동수 선배가 말했다.
“여기는 멈추면 숨이 끊어지는 세계야. 정피, 주작. 혹시라도 발 들여놓을 생각일랑 하지를 마라. 성공이란 것이 없어. 잡으려고 계속 달리고 늘 손을 뻗어야 돼. 그래도 안 잡혀. 그러면서 인생은 피폐해진다. 시작할 땐 10만이면 편하게 만들겠다 싶었는데 아니야. 또 달려야 돼. 계속 달려야 돼.”
한 선배의 경고에도 우리는 얼마 후 그 세계에 발을 디디고 말았다. 나는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도전을 결심했다. 굳이 숫자로 치환하자면 51:49였다. 도전 쪽이 살짝 높았다. 더 늦으면 뜨거워지는 냄비 속에서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주작,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가던 시절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왕이 없는데 어떻게 나라가 유지되지?’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 그동안 미디어업계는 소수의 방송사들이 지배하던 귀족정이었어. 그런데 유튜브란 플랫폼이 나오면서 민주화되었지. 품위와 공익성을 내세우며 우리 아직 쓸모 있다고 우기고는 있지만 이미 권력은 민중에게 넘어갔어. 폐위되어 힘도, 명예도 없는 귀족 타이틀에 안주하기보다 공화정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 뛰어보고 싶어.”
그녀를 설득해야 한다는 마음에 나는 거창한 비유를 들었다.
“여보세요, 정지강 피디님. 그냥 새로운 거 해봅시다. 한 마디면 될 것을 무슨 왕정이니 귀족정이니 그러세요? 한동수 피디님 두 번째 만났을 때 저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고요.”
어쭙잖은 프러포즈에 화끈한 대답이었다. 주작은 역시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모든 구직자의 로망은 취업이요, 모든 직장인의 로망은 퇴사다, 그런 말도 있잖아요. 두 번째 로망을 이루시는 것 축하드려요. 늘 그랬듯이 같이 헤매 봅시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심하게 헤맸다. 내 퇴직금으로 급히 마련한 일곱 평 짜리 오피스텔에서 우리는 머리를 쥐어짰다. 그러면서 유튜브를 봤다. 다시 머리를 쥐어짜고 참고영상을 보고, 생각을 뱉고 메모하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뾰족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다. 확신 없이 시작할 수는 없었고 그 사이에 간이 스튜디오와 장비 위엔 먼지가 쌓여갔다.
오명 세탁소를 하기로 결정한 것은 쥐어짠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공운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주승아 작가와 나는 어느 날 어떤 연예계 종사자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태전 전염병 다큐를 만들 때 도움을 받은 사람이었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오프라인이 폐쇄되면서 뮤지션들의 무대 기회가 적어진 것을 내용에 담았는데 그가 오랜 매니저 경험으로 여러 음악인들을 소개해 주었던 것이다.
시내의 횟집에서 셋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가 화장실 다녀오는 어떤 사람의 팔을 붙들었다.
“어라, 공운! 여기 어쩐 일이야?”
공운? 우리가 아는 그 공운? 나는 주작과 눈빛을 교환했다. 공운이라… 90년대 댄스 열풍이 가요계를 휩쓸 당시, 멤버 넷으로 구성된 ‘포에버보이즈(four ever boyz)’의 리더. 원조 아이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다. 격렬하다 싶을 정도로 현란한 춤과 귀에 쏙 박히는 노래로 제법 인기가 많았다. 비록 젝스키스나 HOT와 같은 그룹에 가려져 정상에 서지는 못했지만 내는 음반마다 준수한 호응을 얻었었다.
“어, 형. 어쩐 일은, 횟집에 회 먹으러 왔지. 일행들이 계시네.”
그가 주작과 나를 내려다보길래 우리는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우리 쪽으로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아, 이분들은 방송국 사람들인데 지난번에 내가 뭘 좀 도와줬거든. 사은의 일잔이라 할 수 있지.”
“방송국 아니고요, 이제 독립해서 스튜디오 차린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정지강이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이네요.”
내가 인사를 건네자 주작이 바로 말을 받았다.
“저는 주승아 작가라고 합니다. 팬이었어요. 아니 팬이에요, 지금도.”
당당하던 주작이 말을 더듬는 걸 보니 웃음이 터졌다. 진짜 팬이었던 모양이다.
“합석해도 됩니까?”
우리 셋은 모두 놀랐다. 우연히 만난 공운과 함께 술을 먹게 되다니. 방송사에서 십 년을 일하긴 했지만 교양제작국은 좀처럼 연예인 만날 일이 드물었다. 드라마는 이미 완전 외주화되었고, 음악쇼는 시 외곽의 공개홀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생방송이나 녹화 프로에 출연하는 인기 연예인을 가끔, 그것도 멀찌감치에서 구경할 뿐 우리가 직접 만나 대화할 일은 거의 없었다.
“아, 친구들 만났는데 저 녀석들 당구 치러 간다고 해서… 난 당구도 못 치고, 내심 한잔 더 하고 싶었거든요.”
“저희야 영광이죠. 앉으세요.” 주작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참지 못하며 가방을 치워 자기 옆자리를 만들어 줬다.
술잔과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흘깃거리는 주변 사람들을 느꼈다. 유명인이어서도 그랬겠지만 여러 구설수에 올랐던 가수였기 때문이리라. 포에버보이즈는 3집 활동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음반도 많이 팔고 전국으로 단독공연도 돌았다. 공운은 멤버들 중에 외모는 가장 별로였지만-그래도 일반인에 비하면 엄청나게 잘 생긴 편이다-입담과 재치가 있었고 리더십도 출중했다. 춤이 전공이라 직접 안무를 짰고 목소리도 좋아 백업 보컬도 맡았다.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 중 한두 곡은 그가 작곡한 것들이었다. 비록 타이틀곡은 되지 못했지만 음악성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평을 들었다.
그들의 팬클럽 이름은 ‘포겟미낫’이었는데 물망초라는 뜻이다. 주로 프리챌이나 세이클럽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했고, 대부분이 십 대 여학생들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주작이 그날 술자리에서 줄줄이 읊은 내용이다.
“어떻게 나보다도 더 잘 기억하고 계시지? 신기한데?” 공운이 놀라워했다.
“하하, 사, 사실은 저도 포겟미낫…….” 부끄러워하며 주작이 말했다. “잊지 말라고 해서 다 기억하고 있어요.”
여중생이었던 그녀는 포에버보이즈에 푹 빠졌었다. 적어도 멤버들 사이에 불화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중에 주작이 얘기하기로 그녀의 최애 멤버는 공운이 아니었다. 카이였다.
아무튼 우연한 그 술자리는 매우 화기애애했다. 공운은 다른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음주와 대화를 주도했다. 헤어질 즈음에는 우리를 응원하는 말도 건넸다. 어떤 콘텐츠를 만들든 자기가 꼭 출연해서 돕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우리 폰에 연락처까지 찍어준 걸 보면 주작의 팬심으로 그의 호감을 샀음이 분명했다.
다음날 채널 기획회의 분위기는 훨씬 고무적이었다.
“뭘 해도 돕겠다 이거지? 우리 공운을 벗겨 볼까요? 여자들 까르르 넘어오게.”
주작이 상상하듯 허공에 시선을 둔 채 말했다.
“미쳤어? 아주 돌았구만. 왜, 포에버보이즈 리더랑 포겟미낫 리더가 같이 벗지 그래?”
내가 쏘아붙이자 주작이 시무룩해졌다.
“에휴, 난 벗어서 보여줄 것도 없고 이거 운동을 좀 해야지 원.”
“벗은 몸 빼고, 공운이 보여줄 거는 뭐가 있을까? 사람들이 좋아할 걸로. 그걸 찍으면 되잖어.”
우연히 만난 인연이지만 우리는 공운이라는 명성을 채널 론칭에 꼭 활용하고 싶었다.
“정 피디님, 어젯밤에는 아픈 데 건드릴까 봐 말 안 했는데요, 포에버보이즈 불화설 아시죠? 저도 카이 편이었어서 공운 엄청 싫어하기도 했고. 그다음에 팀 깨져서 각자 솔로 한다고 까불다가 다 망했죠. 특히 공운은 마카오 원정도박으로 또 구설수 만들고. 아주 나락으로 내려갔죠. 나이도 먹어서 이제 춤도 못 추고 고음도 못 낼 텐데…… 사람들이 좋아할 뭔가가 남았으려나?”
주작이 침울하게 말했다.
“가만, 생각을 좀 해봅시다. 주작 말대로 공운은 이미지가 망가졌어. 멤버 사이에 불화 일으켰지, 원정도박 했지, 기획사 하려다 망해서 데뷔 지망생들한테 고소도 당하고. 그런 얘기를 하면 어때? 자기 인생 망가진 얘기.”
“오호, 그거 괜찮겠는데요? 사람들은 욕하면서 보잖아요. 막장드라마도. 자기가 욕하는 사람이 무슨 핑계를 대는지도 궁금하겠는데? 나도 듣고 싶다. 그때 카이한테 왜 그랬는지…….”
뭔가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공운 한 사람만의 얘기로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만들 수 없고, 공운이 다른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채널로 의견이 모였다.
“어떤 사건으로 나락에 빠진 사람들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는 거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의 인터뷰. 입담 좋은 공운이 진행자고 말야.”
“좋은데요? 그래도 뭔가 컨셉이 있어야 될 텐데……. 세탁소에서 촬영을 하면 어때요? 더러워진 자기 이름을 세탁기에 놓고 돌린다, 뭐 그런 식으로.”
나는 하마터면 주작을 끌어안을 뻔했다.
“유레카! 그거다. 그리고 채널 이름도 나왔다. 악명 세탁소!”
“에이, 더럽혀진 이름이니까 악명이 아니라 오명이죠. 오명 세탁소가 더 나은데.”
역시 작가는 작가다. 채널 컨셉이 이렇게 극적으로 잡히다니! 문제는 공운이 우리 제안을 수락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아예 우리 채널에 지분을 가지고 참여할 것을 제안하기로 했다. 사업가 기질이 있는 그가 정해진 출연료 받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때까지 고정급이었던 주작의 보수도 수익 셰어로 변경했다. 다시 말해서 나와 공운, 주작이 채널의 공동 주주가 되는 그림이었다.
일주일 후 우리는 공운을 다시 만났다. 그의 집 근처 카페에서였다. 그 만남을 위해 주작은 온갖 자료를 모아 제안서를 썼다.
“다시 뵈니까 또 반갑네요. 정지강 피디님, 주승아 작가님.”
“이름도 정확히 기억해 주시고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내가 치켜세우자 주작이 거들었다.
“드림스 컴 트루. SES의 노래처럼 제 꿈이 이뤄지는 날입니다. 공운 님이랑 같이 일을 하게 되다니…….”
“아이고, 이분들이 왜 이러셔? 한물 가도 한참 간 퇴물 아이돌을 놀리시나.”
“아닙니다. 저희가 고민을 해봤는데요, 공운 님은 여러 이유로 방송은 쉽지 않지만 저희가 하려는 유튜브에서는 말 그대로 떡상, 응 그래, 떡상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준비해 간 사업 계획을 들려줬다. 그는 나와 주작이 번갈아 하는 말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러니까 우리 셋이 동업을 하자는 거네요. 같이 채널을 키우면서?”
“말하자면 그런 셈이죠. 채널 지분을 공동 소유하는 겁니다. 일단 제 퇴직금으로 스튜디오와 시설비를 댔고, 앞으로 들어갈 인건비나 출장비, 출연료, 홍보비는 반년쯤 버틸만합니다. 그 사이에 채널에서 수익이 발생하면 소요된 비용 제외하고 일정 비율로 수익 실현을 하는 겁니다. 수익이 커지면 추가 투자할 거고요. 의사결정은 합의제로. 공운 님에게도 회당 몇십만 원 출연료보다 낫지 않을까요?”
조심스러운 내 제안을 듣고 그가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십 초 정도 마가 떴다. 이윽고 공운이 컵을 들었다. 음료를 마시는 동안 또 이십 초가 흘렀다. 나는 불안했다. 너무 막 던졌나 싶은 후회가 드는 순간 그가 말했다.
“5대 3대 2.”
“네? 뭐라고요?” 주작이 놀라서 되물었다.
“정지강 피디가 자본금을 댔으니 지분이 절반은 돼야겠고, 나는 출연료 대신 30퍼센트, 주승아 작가는 실무를 해야 하니 20%. 어때요?”
그의 화끈한 역제안에 우리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여기 오기 전에 정 피디님이랑 저는 2대 1로 잠정합의 봤었는데 5:2면 내가 손핸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주작이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5대 2.5대 2.5는 이상하잖아. 발음도 어렵고. 그냥 합시다, 5 3 2!”
공운이 다시 강력히 주장했다.
“에이, 까짓것 그러죠 뭐. 팬심으로 양보한다 내가. 하핫.”
이렇게 우리는 오명 세탁소 채널로 의기투합했다. 서로 믿을 수가 없어서-주작의 우려였다-우리는 정식 계약서를 쓰고 공증까지 마쳤다.
“우리 채널이 한 달에 수억씩 벌어봐. 지분율 가지고 딴생각이 안 들겠어요?”
동업 계약서 서명란에 사인을 하며 주작이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