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팔이라는 주홍글씨

“그럽시다. 세탁할 가치도 없는 더러운 이름들 죄다 공개해 봅시다.”

by 이지완

유튜브의 세계에도 졸부 개념이 있다면 바로 우리가 그랬다. 채널 론칭 이후 5개월 동안 포만감은커녕 허기조차 달랠 수 없었던 우리는 느닷없이 파워 유튜버가 되었다. 채널 소개란에 제보 용도로 올려놓은 이메일(dirtynames_laundry@gmail.com)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대부분은 우리 채널과 공운을 욕하거나 칭찬하는 내용이었으나 간혹 출연을 자청하거나 추천하는 내용도 있었다.

“정 피디님, 점쟁이 빤스 입으셨네요. 6개월치 총알 갖고 계신다더니 떨어지기 직전에 보급 총알 들어옵니다. 오늘 기준으로 다음 달 정산될 광고수익은 무려 15,389달러 85센트입니다. 2천만 원쯤 될라나? 100배가 늘어나는 셈이네요, 흐흐.”

주승아 작가가 흐뭇해하며 보고했다. 공운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지 뭐. 너무 들뜨지 맙시다. 호사다마라고, 조심해야 돼. 그리고 솔직히 우리 채널이 좋은 쪽으로 터진 건 아니잖아요.”

“좋은 쪽? 정 피디님, 오명 세탁소는 이미 나쁜 쪽으로 포지셔닝된 채널이에요. 제목부터, 컨셉부터! 사회에 건전한 영향을 끼치는 걸로 칭찬받으면서 할 거면 바꿔요. 방송국으로 돌아가시든가.”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주작. 틀린 말은 아니다. 더럽혀진 이름을 소재로 한 이상, 그 말이 맞았다. 이런 방식으로 뜰 줄은 예상 못했지만 어떤 트리거가 당겨질 거라는 기대는 있었다. 그게 마냥 건전할 거라는 기대도 아니었고 말이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자자, 뭘 그렇게 사납게 굴어? 정피 순둥인 게 하루이틀인가? 그리고 쏘아붙인다고 저 성정이 바뀌나? 그냥 우리는 하던 대로, 묵묵히 계속 가면 되는 거야. 알겠지?”

옛 포에버보이즈 리더가 세탁소장인 양 리더처럼 말했다.

“이번 주는 탈영 이력을 가진 사병 그대로 촬영 진행할 거고요, 다음 주 출연자 결정해야 되는데요.”

주작이 망설였다.

“왜, 채널이 떡상하고 나니까 섭외도 조심스러워지나?”

공운이 검지로 수염 난 턱을 문지르며 능청스럽게 물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제가 찾은 게 아니고, 이메일로 들어온 신청이에요. 근육병을 앓는 아들을 둔 아버지인데 사연을 들어 보세요.”

사연인즉슨 이랬다. 멀쩡하게 잘 걷고 잘 뛰던 아들이 자꾸 넘어지길래 검사를 해봤더니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병 진단이 나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난치병, 아니 불치병이었다. 200만 명 중 한 명 꼴로 발병한다고 보고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0명 정도가 투병 중이라고 했다. 말초 신경부터 근육이 마비되는데 점점 중요한 부위로까지 확산한다. 눈 근육이 마비되면 시력을 잃고 혀 근육 마비로 말을 못 하게 된다. 마침내는 심근, 그러니까 심장근육 마비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병이다. 유형이 다양해서 증상과 발병 시기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10세 이전에 발병해 20세를 넘기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환자는 주은상 씨인데 23세예요. 데드라인을 넘겼죠. 아버지 주민구 씨는 50대고요. 발병이 확인된 것은 15년 전이랍니다. 우리 채널에 나오고 싶어 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근육병을 알려서 치료제 개발을 앞당기고 싶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채널에 나올 자격이 되나? 누구 이름이 어떻게 더러워졌다는 거야?”

내가 묻자 기다렸다는 듯 주작이 대답했다.

“아버지인 민구 씨 왈, 자기가 아들을 학대한다는 욕을 먹고 있대요. 가뜩이나 아픈 애를 혹사시킨다고. 이 부자는 13년 전부터 휠체어 마라톤을 하고 있어요. 아들은 휠체어에 탄 채로, 아버지는 밀면서 뛰는 휠체어 듀오 방식이죠. 처음엔 답답한 아들에게 바람이나 쐬게 해 주자고 시작했는데 점점 흥미를 붙였는지 지금은 풀코스를 3시간 대에 주파한대요. 국내에서 하는 웬만한 대회는 다 뛰었더라고요.”

주작이 공운과 내게 이메일로 받은 사진을 보여줬다. 춘천, 경주, 대구, 서울, 합천 등등 각지에서 완주 전후에 찍은 사진들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의 아버지와 구부정한 상체를 휠체어에 욱여넣은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밝은 표정이었으나 얼굴 근육에도 영향이 있는지 뭔가 어색한 웃음이었다.

“문제는 이 부자의 모든 활동에 딴지 거는 인간들이 있다는 거예요. 근육병을 알리려고 블로그, 여러 SNS에 포스팅을 하는데 악의적으로 비난을 일삼는 사람들이 따라다닌다고 해요. 저도 들어가 봤더니 대부분은 응원의 글들인데 간혹 이런 내용이 있더라고요. ‘호흡도 어려운 애를 마라톤 완주라니 아버지가 제정신이냐’, ‘빨리 죽여서 보험금 타려고 저러나’, ‘저럴 시간과 에너지가 있으면 치료에 전념해라’ 등등 그야말로 악플이죠.”

“뭐 합시다. 안 할 이유가 없잖아.”

공운이 그답게 시원하게 말했다. 그런데도 주작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조건이 있어요. 아버지 쪽에서 요구하는.”

“뭔데?”

“일단 아들과 떨어질 수 없어 촬영은 전주에서 해야 된다, 출연료는 없어도 되는데 해당 콘텐츠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모두 달라, 이거예요.”

“오, 속물근성 저는 화끈한 전주 양반이네. 정피는 어때? 난 더 당기는데. 전주라면 한옥마을에서 1박 워크숍을 해도 되고 일석이조 아닌가? 비빔밥도 먹고 말이지, 하하.”

호탕한 건지, 철이 없는 건지 공운이라는 캐릭터는 종잡기 어렵다.

“이제 겨우 가뭄에 해갈하는 수준이라 제작비를 마구 쓸 순 없지만... 콧바람을 쐴 정도는 된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주작이 동의만 한다면.”

“나도 뭐, 반대할 이유가 없네요. 수익금 전액을 주는 건요?”

“얼마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홍소윤 편 기준으로 본다면 500쯤?”

“에이, 설마 그 정도까지 나오겠어? 우리 콘텐츠 평균수익이 여전히 30만 원 정도인데. 어쨌든 오명 세탁소가 유명세를 탄 기념으로 적자를 각오하고 떠나는 워크숍 겸 나들이 촬영이라 생각하자고요.”

내가 정리하자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아졌다.

가을의 전주는 흠잡을 데 없는 청명함으로 가득했다. 빨랫줄에 널려 바짝 마른 이불보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한옥 모양으로 지어진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 시내 쪽으로 진입했다. 10년 된 내 싼타페는 조수석에 주작, 뒷자리에 공운, 트렁크에 카메라와 조명, 각종 장비들을 태운 채였다. 근육병 아버지 촬영은 내일 오전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주승아는 생각에 잠겨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룸미러 안에서 공운은 옅은 숨을 쉬며 자고 있었다.

주책도 없이 내 마음은 설레고 있었다. 10년 내내 동고동락한 사이였지만 주작과 합숙을 해본 일은 없었다. 좁은 편집실에서 함께 밤을 새운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른 기분이다. 소풍 가는 기분이 들어 나는 스스로 살짝 민망해졌다. 도대체 몇 달 사이에 뭐가 달라진 걸까?

뒷자리의 공운도 마찬가지다. 지난 몇 달 동안 내가 의외의 존경심을 갖게 된 인물이었다. 춤과 노래가 전문이지만 사람에 대한 깊이 또한 얕지 않다. 남들에게 소위 말 잘하는 전직 연예인 정도로 보이겠지만 삶에 대한 철학이 인생에 깊이 뿌리내린 내공이 내게는 느껴졌다. 설렘과 존경을 주는 두 사람과의 합숙이라니, 운전하는 4시간 동안 내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을 것이다.

예약한 한옥마을은 기대만큼 정갈했다. 우리는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배꼽시계가 울리고 있었다. 오는 길에 주작이 검색해 놓은 떡갈비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떡갈비가 궁중 음식이었던 건 다들 아시죠? 오늘만큼은 우리, 왕처럼 먹어 봅시다.”

공운을 앞에 두고 주작과 내가 나란히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가 말했다.

“나도 들었어. 임금이 체통머리 없이 갈비를 뜯을 수는 없다고 해서 떡갈비가 생겼다는 얘기. 그래도 난 잡아 뜯는 갈비가 좋은 걸 보면 고귀한 신분은 아니었나 보다.”

공운이 농담으로 받아쳤다. 곧 상이 차려졌고 우리 모두는 음식의 가짓수에 놀라 입을 벌렸다.

“그래, 이거지라. 이것이 전라도 밥상인 것이여.”

흡족한 듯 공운이 웃자 주작은 동의도 없이 술을 시켰다.

“어라, 주작! 모든 결정은 합의제로 하기로 했는데……. 그렇게 독단으로다가 술을 시키면 나는 감사합니다.”

내가 반색하자 잠깐 얼굴이 굳었던 주작이 앞에 있던 숟가락을 들어 나를 위협했다. 그녀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런데 다르다. 엄청나게 다르게 느껴진다. 사람을 보는 눈에도 렌즈 같은 것이 있다면 의도치 않은 렌즈가 내 두 눈에 씌워진 것이 분명했다.

메인요리인 떡갈비가 자리를 잡고 시킨 소주까지 들어오자 공운이 술을 따랐다.

“부끄럼 타는 정지강한테 기대할 것도 없고, 당찬 주작이 새치기하기 전에 내가 건배 제의를 하겠습니다.”

“난 할 생각도 없었는데.” 주작이 웃으며 약 올렸다.

“자, 더럽혀진 이름 세탁하느라 우리, 고생이 많아요. 거창한 말은 차차 정피가 할 거고, 나는 나답게 딴따라 식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인터뷰 채널이 될 때까지 전진!”

그날 공운의 건배사가 불과 1년 만에 현실이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그는 늘 과하게 꿈꾸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줄만 알았다. 전주의 가을밤은 약간의 숙취와 함께 몇 달 내내 무거웠던 내 마음을 녹여 주었다.

“공운 님, 지난번에 참회-다짐형, 변명-복수형 얘기하셨잖아요. 듣는 사람도 유형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쪼갠 떡갈비를 젓가락을 집으며 주작이 물었다.

“음, 승아 씨가 묻자마자 방금 떠올랐어. 듣는 쪽은 위로형 인간과 훈계형 인간으로 나뉘지.”

“아, 정말 그렇겠네요.”

내가 맞장구치며 공운의 잔에 내 잔을 부딪혔다.

“인간의 행위를 선악으로 나눌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유형이 좋은지 말할 순 없을 거야. 단지 관계와 상황을 잘 살펴야 어떤 방식이 현명한지가 나온다고 봅니다. 가령, 심한 자책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훈계를 한다든가, 내 이름을 더럽힌 사람에게 복수하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위로를 한다든가 하는 건 이상하지. 잘못이지.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어떤 경우인지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을 거야. 독심술의 대가라면 모르겠지만.”

또 공운의 설명에 매혹당하고 말았다.

“형님, 팀 불화설 있을 때는 어땠어요? 위로가 통했나요, 훈계가 도움 됐나요?”

내가 묻자 공운은 잠깐 망설였다.

“잘 기억이 안 나네. 난 지나간 일을 오래 마음에 담아두지 않거든. 매스컴에 대고 이런저런 말로 떠벌렸으면 기억나겠지만 그냥 묻고 가자고 다짐한 일이라 생각이 잘 안 나. 하도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말야.”

순간 저런 태도를 망각력이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늘 기억력을 우대하고 잊어버리는 일을 낮춰 평가한다. 그러나 벌어지는 세상 일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절반은 좋고 절반은 나쁘다. 그렇다면 좋은 기억력은 절반만 우대해야 한다.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일에 대해 망각력을 발휘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거 굴비 맛이 기가 막히네. 먹어 봐."

노안 때문인지 접시에 고개를 처박은 자세로 가시를 발라내며 공운이 권했다.

"영광 굴비인가 보다. 정말 맛있네요."

주작도 감탄했다.

"난 어려서부터 영광 굴비는 어감이 왠지 이상했어요. 식감이 아니라. 나중에 생각해 보니 굴비가 비굴함을 연상시켜서 그런 거 같아요. 영광이랑 비굴은 너무 안 어울리잖아."

취기는 호기를 부른다. 평소와 다르게 나는 말수가 늘었다.

"아냐, 아냐. 피디님. 안 어울리지만 어울려요. 한 끗 차이라고요. 우리 출연자들만 봐도 그래. 이름깨나 알려진 영광을 누린 사람들인데 그 이미지 지키겠다고 엄청 비굴하게 굴잖아요. 뭐랄까,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어울려요. 영광 비굴."

그냥 던진 말을 주작이 신박하게 해석했다. 나는 또 한 번 감탄하고 말았다. 그날 밤 우리는 거나하게 취했다. 2차로 간 동동주 주막에서도 화제는 끝없이 이어졌다. 유쾌했다. 승아는 예뻐 보였고, 공운은 존경스러웠다. 이들과 계속 같이 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의 소리가 술기운을 타고 입 밖에 나와 버렸다. 주작은 ‘정 피디님 하는 거 봐서요’라고 말했고, 공운은 ‘네가 약속된 지분보다 많이 갖지 않는다면’이라고 말했다. 우리 셋은 많이 웃었다.


다음날 촬영은 한옥마을 근처에 섭외해 두었던 빨래방이었다. 그런데 상호가 독특했다. ‘넌더리 날 때 런드리’였는데 체인점 같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코인 빨래방 체인은 ‘크린’이나 ‘워시’, ‘아쿠아’ 따위의 외래어를 조악하게 조합해서 이름 지었다.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알아볼 때 이름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내 마음을 딱 아는 것 같았죠. 넌더리 날 때 빨래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심정이랄까?”

주작이 장비를 세팅하며 말했다.

“그리고 정 피디님, 너무 주작, 주작 하지 말아 줄래요? 넌더리 나거든요? 주 씨가 작가 일을 하게 돼서 공교롭게 붙은 호칭이긴 하지만 나도 엄연히 이름이 있다구요. 말짱한 이름을 불러줘요.”

입을 삐죽 내밀며 주작이 말했다.

“그래라, 지강. 주작 주작 하니까 무슨 나쁜 일을 꾸며내는 사람 같기도 하고 말야. 그래도 승아는 기자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주기자는 너무 살벌하잖아.”

주작의 볼멘소리를 틈타 은근히 내 호칭을 지강으로 바꾸는 공운의 능글맞음에 나는 항복하고 말았다.

“오키 오케이. 10년 동안 불렀어도 바꾸는 게 뭐 대수라고. 불쾌한 이름 세탁이야 뭐 금방 하죠. 승아 씨!”

“아, 징그러워. 닭살 돋아서 안 되겠다. 그냥 주작으로 불러요.”

몸서리치는 승아의 몸짓이 귀여서 피식 웃음이 났다.

“거봐, 한 치 앞도 못 보면서 무리한 요구를 하다니. 그래도 낙장불입. 주승아 씨라고 부를 거야. 닭살이 돋든 정말 닭이 되든 알아서 하시고.”

이번 회차부터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로 했다. 공운의 제안대로 소품을 쓰기로 한 것이다. 게스트 이름이 크게 새겨진 흰 면티를 두 벌을 준비한다. 하나는 새것, 하나는 일부러 잼이나 김칫국물 따위로 더럽힌 옷이다. 공운이 오프닝에서 게스트를 소개하며 더러운 옷을 세탁기에 넣는다. 토크가 모두 끝나면 건조기에서 깨끗해진-사실 새 옷이다-티셔츠를 꺼내며 마무리한다.

근육병 환자 주은상의 아버지 민구 씨가 빨래방으로 들어왔다.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던 우리는 모두 일어났다.

“주민구 아버님 되시죠?”

역시 붙임성 있는 주작이 먼저 다가가서 안내했다. 작은 체구의 중년 남성이었다. 몸집에 비해 체형은 균형 잡혀 보였고 단단한 근육질이었다. 짧은 머리에 검게 그을린 얼굴은 왠지 모를 집요함을 풍기고 있었다.

“은상 아버지 주민구입니다. 반갑습니다.”

목소리에도 단호함과 결연함이 묻어났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돌보며 다져진 성정일 거라 짐작했다. 승아가 통화하면서 일러준 진행방식을 다시 설명했고, 카메라와 마이크 장비를 체크한 뒤 촬영에 들어갔다.

“오명 세탁소 문 엽니다. 오늘 빨랫감은 뭘까요? (의자 아래에서 면티를 꺼내 카메라에 보이며) 짜잔! 주민구라는 이름입니다. 게스트를 소개하기 전에 일단 제가 이걸 여기 세탁기에 넣고 돌리겠습니다. (뒤에 있는 세탁기에 티셔츠를 넣고 버튼을 누른다) 자, 오늘의 게스트 주민구 씨입니다.”

공운이 능숙한 손동작을 섞어 출연자를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은상이 아빠 주민구입니다. 제가 공운 씨보다는 몇 살 많겠지만 젊어서 엄청 좋아했습니다. 팬이었어요.”

매스컴 인터뷰를 많이 해봐서 그런지 민구 씨는 긴장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아휴, 그런 과한 칭찬은.... 몇 마디 더 해보시죠.”

공운이 재치로 받자 모두가 크게 웃었다. 좋은 출발이다.

“자, 여러분, 제가 우리 민구 씨의 이력을 먼저 소개해 드릴게요. 마라톤 풀코스 완주 34회, 춘천마라톤 홍보대사, JTVC 서울마라톤 특별 초청, 보스턴 마라톤 듀오팀 은메달. 오~ 마라토너이십니까? 이봉주 경쟁자?”

아들의 병보다 마라톤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로 미리 설정한 도입이었다.

“마라토너라고 할 수도 있죠. 다른 직업은 없으니까요. 저는 아들 은상이와 함께 뛰는 듀오팀의 리더입니다.”

“듀오팀이라는 게 뭐죠?”

“말 그대로 둘이 함께 뛰는 겁니다. 아들은 휠체어에 앉아서, 저는 밀면서 뛰는 방식이죠.”

민구 씨가 미는 손짓을 하며 설명했다.

“실례되는 질문입니다만, 아니지. 실례가 아니지. 그 얘기를 하러 나오신 거니까요. 아드님 은상 군은 왜 휠체어에 앉습니까?”

아버지는 근이영양증과 은상 씨의 투병에 대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별다른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마치 보호자에게 수술 경과를 설명하는 의사 같았다.

“아, 그렇군요. 아직까지 치료 방법이 없다니 안타깝네요. 그런데 우리 채널 아시죠? 기부나 사회 참여 채널 아닌 거? 하하, 우리는 이름이 더러워져야 나올 수 있거든요. 저 뒤 세탁기에 돌고 있는 아버님 이름은 왜 더럽습니까?”

공운의 멘트는 늘 아슬아슬하다. 게스트를 자극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편하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예의 갖춘다고 빙빙 돌려가며 하는 말이 더 나쁜지도 모른다.

“제 아들이 근육병 진단을 받은 게 초등학교 1학년 때예요. 두어 해 동안 고쳐 보겠다고 안 해 본 짓이 없고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어느 순간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어요. 우울한 시기였죠. 지금은 걷지도 못하고 말도 어눌하지만 그때만 해도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게 별로 없던 시기예요. 잘 뛰고 잘 잡고 잘 놀던 아이가 불치병 판정을 받았으니 절망스러웠죠.”

동네 천변 달리기를 시작으로 부자의 마라톤 도전기가 이어졌다. 뛰면서 근육병을 이기겠다는 다짐을 하고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리겠다는 뜻이었다. 은상 군은 처음엔 뛰었고 그 뒤로 걸었고, 5년 차부터는 휠체어에 앉게 되었다. 근육병의 지배를 받게 된 몸은 서서히 능력을 잃어갔다. 미리 전달받은 사진들은 편집 과정에서 아버지의 마라톤 설명 타이밍에 넣을 요량이다.

“저희가 올리는 사진과 글에는 늘 댓글이 달립니다. 대부분 힘내라는 응원 글이지만 악플도 꾸준히 달려요. 아동학대범 주민구, 감성팔이 하냐, 사망 보험금 타려고 애를 혹사시킨다, 뭐 그런 것들이에요. 자식 팔아 욕심 채우는 아버지, 그 오명을 벗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주민구 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두 분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저와 같은 보통 사람의 시각에서 보겠습니다.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30분에 주파하시던데 이게 가능한가요? 가끔씩 호흡보조기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의 은상 씨가 아무리 휠체어 위라지만 감당이 되나요? 정말 건강을 악화시키는 건 아닐까요?”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우리는 출연자를 옹호하거나 비호하는 것만은 아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의심하고 게스트의 잘못이나 오류를 지적하기도 한다.

“기회가 되면 우리 은상이도 인터뷰해 주세요. 달리기는 제가 아니라 은상이가 원해서 시작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요새 마라톤이 붐이어서 참가 신청에 실패하면 며칠 동안 웁니다. 달리는 행동, 공간을 이동하는 것에 대한 은상이의 집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예요. 자식팔이요? 저는 아이 치료 때문에 생업을 그만뒀고, 그 애가 원하는 달리기를 하려고 나이 먹은 몸을 부단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근이영양증 환자의 데드라인이 몇 살인지 아십니까? 네, 진짜 데드라인, 죽는 시기 말입니다. 스무 살이에요. 우리 은상이요? 서른까지는 너끈합니다. 원하는 걸 하고 있고, 달성해야 할 꿈이 있기 때문이죠.”

처음으로 톤이 높아진 민구 씨의 말이 끝났다. 모두가 숙연해졌다.

“그렇군요. 은상 씨의 꿈은 뭡니까?”

“베를린 마라톤에 참가해서 3시간 20분을 깨는 겁니다. 묻지 않으셨지만 제 소원도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걸 보시는 분 중에 전공자가 계시다면 근육병 치료 연구에 몰두해 주세요. 장래에 과학자가 되고 싶은 어린이나 청소년이 있다면 근육병의 원인을 알아내고 치료법을 개발하는 꿈을 가져 주세요. 당장 뭔가 나오긴 어렵습니다. 아마 그 사이 은상이의 폐 근육은 멈추겠죠. 그래도 그렇게 각오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 여러분, 들으셨죠? 응원의 댓글 달아주시고, 내가 근육병을 정복해 보겠다는 다짐도 남겨 주십시오. 혹시 압니까? 여러분 중에 정말 신약을 개발하는 사람이 나올지.”

공운이 클로징을 준비했다. 그는 미리 건조기에 넣어두었던 새 티셔츠를 꺼냈다. 내가 맡은 카메라로 그의 동선을 팔로우했다.

“음, 깨끗해졌군. 세탁된 이름, 주민구. 소감이 어떠십니까?”

티셔츠를 받아 든 민구 씨는 한동안 말이 없이 옷을 내려다보았다. 한참의 마가 뜬 후에 겨우 고개를 들고 말했다.

“두 가지만 말해도 됩니까?”

“열 가지도 가능하십니다.” 공운이 너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저를 자식팔이라며 괴롭히는 진짜 더러운 이름들, 비록 실명은 아니고 아이디이긴 하지만 여기서 다 밝히고 싶습니다.”

조용했지만 단호한 말투였다. 공운의 눈빛이 당혹감에 휩싸였고, 카메라 모니터를 보고 있던 내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명이라서 명예훼손 위험도 없을뿐더러 정 거리끼면 편집에서 드러내면 될 터였다.

“그럽시다. 세탁할 가치도 없는 더러운 이름들 죄다 공개해 봅시다.”

공운이 허락하자 민구 씨가 상의 안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정의는개뿔, 동정사는넘들감빵앞으로, 빌런of빌런, 장애자없는세상을꿈꾸며, 우생학의시대로나아가자, 업보를거부하는찐따들, 너의다음행선지는영안실, 위선이젤루싫어, 약한척엔매가약, 인생지사독고다이, 몸비튼다고누가알아주냐, 장애가벼슬이냐_사라질이슬이지, 니마음이불치병, 리스펙30‘s_Germany, Korean_KKK, 적자생존부적자몰살, 다윈은진리다, 아모르유어엿같은파르티…….”

분노 서린 그의 낭독이 끝났다. 그의 눈가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 있었다. 누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민구 씨가 소매로 눈물을 훔치더니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러분, 저는 이 콘텐츠의 모든 수익금을 요구했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걸로 주은상 재단을 만들 겁니다. 몇십만 원이어도 할 겁니다. 근육병 치료제를 연구하겠다고 하는 분이 나타나면 이 기금으로 연구비를 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뛸 겁니다. 자식팔이 주민구라는 오명이 또 씌워져도 아들이 그만하자고 할 때까지 달릴 겁니다. 응원해 주십시오.”

다른 클로징이 필요 없었다. 우리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녹화를 멈췄다. 우리의 첫 엠티 겸 출장 촬영은 그렇게 숙연하고 결연하게 끝났다.

“피디님, 피디님, 또 대박! 이번엔 더 대박!”

휴대전화 저쪽에서 넘어오는 승아의 호들갑이 이번엔 당혹스럽지 않았다.

“어제 올린 주민구 씨 편이요, 홍소윤 편보다 페이스가 더 좋아요. 몇 시간 안 됐는데 500만이에요. 댓글도 모두 긍정적인 것들이고. “

“수고 많았어. 승아 씨.”

“아, 증말 닭살. 피디님 제발 주작이라고 불러줘요. 간지러워서 듣기 힘들어요. 그건 그렇고 이 영상의 현재 스코어는 7,139달러 35센트인데. 솔직히 좀 아깝네요, 우리 게 아니라서. 한달 누적금액을 주기로 했으니까 계속 늘 텐데, 아 배 아파라.”

“이미 결정된 일을 갖고 왜 그래? 구타 교사 홍소윤 씨 출연시켜 번 돈을 좋은 일에 한 번 쐈다고 생각합시다.”

“그러게요, 그래야죠. 그리고 우리 고정댓글로 그분 계좌번호 올려뒀잖아요? 아까 아버님한테 전화 왔는데 입금이 계속되는 모양이에요. 주은상 재단 기금으로 쓰라고. 피디님과 공운 님께 고맙다고 전해 달래요.”

인생의 모든 일이 새옹지마 같다는 옛말도 언젠간 대체될 것이다. 삶의 예측 불허성은 유튜브 반응과도 같다. 거지 같지만 박수받고 공들였는데 외면당한다. 선의에 악플이 달리고 악의가 환호를 받아낸다. 응원과 위로에 상처받고 무심함이 용기를 북돋운다. 인생지사 유튜브 반응이다. 그러므로 쉽게 자신하지 않기로 한다. 섣불리 예상하지 않기로 한다. 조급히 좌절하지 않기로 한다. 삶이든 유튜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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