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과 반감이 극심하게 엇갈리는 롤러코스터형 유명세였다
“섬유가 음식하고 엄청 비슷한 거 알아요?”
디자이너가 보내온 썸네일을 확인하면서 주작이 말했다. 수익이 커지면서 우리는 편집자와 그래픽 디자이너를 한 명씩 고용했다. 특별한 회의가 없다면 그들은 재택근무라 사무실 겸 스튜디오 겸 편집실인 이곳은 여전히 나와 주작만이 지키고 있다.
“오호, 섬유공학도 겸 빨래예찬론자의 강의가 시작되는군. 큐!”
편집기에서 잠시 눈을 뗀 내가 외쳤다.
“먹는 것에는 육식, 채식이 있잖아요? 똑같아요. 옷감 만드는 실에는 육실과 채실이 있죠. 동물성 섬유에는 모와 견이 있어요. 모는 동물 털이고 견은 실크인데 누에고치에서 빼내죠. 식물성은 면과 마 따위가 있고요. 면은 목화, 마는 모시에서 추출합니다.”
주작의 박학다식은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요새 더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컷! 잡담에도 의도가 있는 법. 섬유 강의는 나한테 왜 하는데? 그걸 먼저 얘기해야지.”
“아, 피디님 성격도 급하시긴. 우리가 명색이 세탁소 아닙니까? 빨래 방식을 알려면 섬유의 종류와 특징부터 알아야 된다고요. 폴리에스테르 같은 인공섬유는 논외로 하고, 천연섬유만 놓고 봤을 때 육실, 즉 동물성 옷감은 민감해요. 막 빨면 안 된다는 거. 드라이클리닝 하는 것처럼 곱게 다뤄야 된다는 거. 상대적으로 식물성 옷감은 어떻게 빨아도 세탁이 잘 된답니다.”
주작의 빨래 철학에 비해 나는 의생활에 관심이 크지 않았다. 냄새나거나 얼룩이 없을 정도로만 적당히 빨아 입으면 그만이었다.
“채식이 소화하기 쉽고 육식은 위장에 부담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군.”
“오, 피디님. 이해가 빨라서 점점 쓸모가 커지고 있음. 쓰겠다는 여자만 나타나면 되는 수준 도달.”
얼굴이 빨개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민망해져서 화제를 돌렸다.
“모레 촬영 게스트는 누구라고?”
“에휴, 몇 번 말씀드려요? 점점 쓸만해지고 있다는 칭찬은 캔슬! 소방관 송정우 씨요.”
민망함을 들키는 것보다 바보 시늉이 유리할 때가 있다.
“아, 그랬던가? 야, 이 친구도 핫하겠는걸?”
그즈음 우리 채널의 구독자는 40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웬만한 콘텐츠는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몇 백만 뷰를 터뜨리는 효자 콘텐츠도 종종 나왔다. 채널이 흥하자 여기저기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사람들은 댓글이나 이메일로 자천과 추천을 했다. 지인을 통한 출연 부탁은 공운이 가장 많이 받았고, 승아와 나도 꽤 많은 연락을 받았다. 대부분은 연예기획사였는데 더러워진 이미지를 깨끗하게 하고 싶다기보다 낮은 인지도를 높이려는 경우가 많았다. 이해는 하지만 너무 노골적이면 거절할 수밖에 없다. 채널의 기획취지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양이 늘었다고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오고 싶다는 사람은 많아도 딱 우리 마음에 드는 출연자는 드물었다. 장마철에 물 걱정인 셈이다.
송정우 소방관은 반대의 경우였다. 주작이 삼고초려로 섭외에 성공한 인물이었다. 공무원이라 출연 절차도 까다로웠고, 무엇보다 본인의 출연 의지가 약했다.
“저는 송정우를 우리 세탁기 앞에 꼭, 딱, 앉히고야 말겠습니다.”
몇 번의 거절에도 승아는 의지를 불태웠고, 결국 출연 승낙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감탄할 수밖에 없는 집요함이다.
출연이 확정됐다는 소식에 나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컸다. 워낙 크게 논란이 됐던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팬덤과 반감이 극심하게 엇갈리는 롤러코스터형 유명세였다. ‘국민 영웅으로 등극’, ‘몸짱 소방관 선정’,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입건’, ‘뻔뻔함인가 당당함인가’, ‘MZ 소방관의 사이다 발언’, 그의 이름은 이런 기사 제목을 달고 유통되곤 했다. 최근에는 한 인기가수로부터 10만 원짜리 공연 티켓 수십 장을 받아 '티켓삥 소방관'이라는 오명도 붙었다.
송정우가 세간에 알려진 것은 5년 전이다. 그해 겨울 경기 남부지역의 한 대형물류창고에서 큰 불이 났다. 화재원인은 배송기사의 담배꽁초로 추정되는데 가소성이 높은 물건들을 태우며 여러 동으로 번져갔다. 대응단계가 높아져 관할이 아닌 송정우의 소방서까지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초기에 직원들이 대피하면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워낙 화재 규모가 커서 진압이 어려웠다. 보도채널들이 현장을 연결해 매시간 중계할 정도였다.
아침에 시작된 불은 창고 5동을 태우고 오후 늦게서야 불길이 잡혔다. 잔불정리 조였던 송정우는 불길이 잡힌 건물에 있었다. 처음부터 인명 피해 우려가 없었으므로 소방관들은 화재 진압에만 신경 썼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불길에 뛰어든 것인지 모를 개 한 마리가 잔불 사이에서 발견된 것이다.
정우는 뿌리던 소방호스를 잠그고 개에게 다가갔다. 중형견이었다. 그을음으로 온몸과 얼굴이 검게 변해 있어 견종과 원래 털색을 알 수 없었다. 개는 두려웠는지 타다 만 책상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다행히 창고의 출입구 쪽이라 붕괴 위험도 덜한 곳이었다.
송정우 소방관은 헬멧 유리막을 걷어 올리고 개를 들어 안았다. 30미터 정도 빠져나오자 지휘본부가 차려진 천막이 보였다. 본부 천막 바깥쪽에는 취재진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방송사 중계차들도 있었다. 정우가 개를 안고 나오는 순간, 공교롭게도 한 보도채널의 현장 연결이 진행 중이었다. 취재기자가 진압 상황을 리포트하고 있었는데 그 뒤로 화재 현장에서 빠져나오는 정우-와 구조된 개-가 화면에 잡혔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던 카메라 기자가 알아챘다. 취재기자를 잡던 화면은 뒤쪽에 걸어 나오는 송정우 쪽으로 이동하며 줌인이 들어갔다.
재난 현장의 화면 구성은 대체로 이렇다. 앵커가 부르면 취재기자가 대답한다. PIP라고 부르는 분할화면을 거쳐 현장으로 화면이 넘어온다. 기자가 외워두었던 리포트 몇 문장을 말하면 잠시 실시간 현장을 보여준 뒤, 미리 찍어두었던 자료 영상-더 상세하거나 정제된 VCR-으로 넘어간다.
정우와 개를 잡은 화면은 곧 중계차에 있던 뉴스 피디에게도 발견됐다. 현장 피디는 준비된 자료그림으로 넘기지 않고, 이 돌발상황을 계속 내보내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한 시간마다 계속 반복되는 영상이어서 지루하던 참이었다. 정우는 앞쪽이 생방송 중이라는 사실, 자신이 찍히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빠져나온 건물과 취재진 사이에 털썩 주저앉았다. 카메라 화면도 따라 내려갔다. 틸 다운. 그는 개를 자기 다리 사이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헬맷과 방화장갑을 차례로 벗었다.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맨손으로 다시 강아지를 들어 올렸을 때 방송사의 현장 연결은 종료됐다.
40초 남짓한 이 화면은 초보 소방관인 송정우를 재난현장 속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 보도채널의 해당 유튜브 영상에는 수천 개의 열광하는 댓글이 달렸다. 위험을 무릅쓴 진정한 영웅, 생명 구조의 선봉, 꽃미남 소방관의 대활약, 재난 현장에서 빛난 희생정신 등 댓글창은 환호와 감탄으로 도배되었다.
방송 영상은 곧 밈과 짤로 변형되어 확대 재생산 되었다. 누군가 슬로 모션과 CG, 웅장한 배경음악으로 포장해 올렸다. 유튜브 숏츠와 릴스,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퍼 나르고 좋아요를 눌렀다. 특히 애견 커뮤니티에서 송정우 영상은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그의 소속과 이름도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구조된 개의 견종과 이름, 연령과 성별, 주인의 신상도 열성 네티즌들에 의해 밝혀졌다. 소방방재청과 자자체 소방서 게시판에 칭찬의 글이 잇따랐고, 포상과 특진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정부나 시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었어요. 당시에 소방관 처우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있었거든요. 박봉인 데다 일부 장비를 본인이 직접 사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와 지차체를 욕하는 목소리가 높았어요. 지방직인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졌고요. 그런 차에 송정우 이슈가 터진 겁니다. 소방당국이 얼마나 반가웠겠어요. 적극적으로 언론 플레이를 한 거죠.”
주작의 말대로 송정우는 소방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스타가 되었다. 각종 언론에 인터뷰를 했고, 행안부 장관이 데리고 가서 대통령 내외와 식사도 했다. 여러 군데의 동물보호단체, 반려동물협회 등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겨우 서른의 나이에, 경력 2년 차에 그는 국민 영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던 것이다. 급기야 정우는 몇 달 후에 치러질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어느 정당의 공천 제안을 받게 된다.
“여러 차례 밝혔지만 저는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지금 국민 여러분께서 보내주시는 관심과 성원은 제게 너무나 과분합니다. 저는 소방관이고 계속 어려운 이웃을 구할 것입니다. 정치는 생각해 본 일도 없고, 제가 잘 해낼 수 있는 영역도 아닙니다. 공천 제안은 감사하지만 소방관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거절할 수밖에 없네요. 죄송합니다.”
잘 생긴 외모에 겸손한 태도로,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자 그의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만약 그가 소방관을 그만두고 정계로 나아갔다면 송정우 신드롬은 거기서 멈췄을 것이다. 누군가 ‘국민 아들’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국민 예비사위’라는 호칭도 붙었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현장에 나갈 수 없는 소방관이 되고 말았다. 사건 3달 뒤에는 아예 홍보실로 발령받았다.
“달력도 불티나게 팔렸어요. 소방방재청에서는 연말마다 몸짱 소방관을 12명씩 선발해서 달력을 제작하거든요. 그 수익금을 화상환자 치료비로 기부하는데 송정우 때문에 대박을 친 거지. 전년보다 50배 넘게 팔렸대요. 주문이 폭주해 계속 더 찍어내야 했고요. 달력이 무슨 베스트셀러 도서야? 2쇄, 3쇄 계속 발행이라니……. 물류센터 화재 두 달 전에 송정우도 달력 모델로 선발됐어요. 덕분에 없어서 못 사는 달력이 됐고, 당근마켓에서 웃돈으로 거래되기도 했대요. 저도 달력 사진 봤는데 호호, 송정우 씨 몸이 완전 으흐흐…….”
승아의 감탄에 나는 불쾌해졌다. 그녀 몰래 슬쩍 내 뱃살을 쥐어본 뒤 내가 호통쳤다.
“이 사람이! 사심을 가지고 게스트를 섭외하면 되나? 그리고 소방관이 당연히 몸 관리를 해야지. 출동 안 할 때는 시간도 넘쳐나더구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쳇, 자격지심은. 정 피디님도 운동이란 걸 좀 하시라고요. 이제 불혹인데 불면 혹 날아가겠네.”
다른 남자 감탄에 나도 모르게 혈압이 오르고, 저 잔소리에 다시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뭔가? 주작은 대체 내게 어떤 의미인가?
“아무튼,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어요. 달력을 사간 사람들이 연초부터 10월 페이지를 펼쳐놨다나? 그달 모델이 송정우였거든요. 여기까지가 미담이고, 추담은 다음 기회에. 이 영상 빨리 올려야 돼요. 피디님도 ‘걸그룹 안의 왕따 아이돌 편’ 빨리 편집 마무리 해주시고요.”
송정우가 미리 섭외한 빨래방에 나타난 것은 약속시간이 20분이나 흐른 뒤였다. 기다리는 동안, 시간 약속 어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공운의 눈치가 보였다.
“카지노에서 탕진한 돈은 내 거지만 오늘 게스트가 탕진한 시간은 우리의 것임. 그자는 지금 다른 사람들에게 명백한 피해를 끼치고 있는 거라구.”
나쁜 일도 좋게 생각하는 그의 낙천주의가 이번에는 달랐다. 주작은 나보다 더 안절부절못했다. 자꾸 톡을 확인하거나 재촉하는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오늘 촬영은 불길했다. 진행자가 약이 올라 있으니 제대로 된 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안녕하십니까?”
출입문을 열며 키가 크고 듬직한 체구의 송정우가 들어왔다. 활짝 웃는 얼굴이 매력적이어서 누가 봐도 호감을 느낄 정도였다. 주작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으면서도 지각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분위기가 냉랭했다. 상황 파악을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정우는 우스갯소리를 해댔다.
“오명 세탁소 몇 편 봤습니다. 재미있던데요? 우리 공운 형님 입담도 좋으시고, 이미지 세탁한다는 컨셉도 신박하고. 하하.”
1년 가까이 촬영을 하면서 그만큼 어색한 적은 없었다. 대체로 레코딩 돌기 전에 진행자인 공운이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하면서 친분과 신뢰를 쌓았다. 일종의 워밍업인 것이다. 그런데 공운은 이 젊은 소방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구성안만 내려보고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촬영이 시작됐다.
“자, 여러분. 오늘 오명 세탁소 문 열었습니다.”
공운이 오프닝 멘트를 쳤다. 평소보다 낮은 텐션이었다. 루틴대로 더러운 티셔츠를 꺼내 세탁기에 넣었다. 자기소개를 청했고 송정우가 짧게 인사를 했다.
“오명 세탁소 고객 여러분 안녕하세요? 소방관 송정우입니다. 반갑습니다.”
“송정우 씨, 그다지 반갑지는 않지만 토크를 시작해 보죠. 가장 먼저 해명할 것은,” 공운이 반감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 왜 20분이나 늦으셨는가 하는 겁니다. 그리고 왜 여태껏 사과 한 마디가 없는지 묻습니다. 말씀하시죠.”
주승아 작가가 당황한 눈빛을 내 쪽으로 보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나도 놀랐다.
“글쎄요, 일이 좀 있었습니다. 굳이 사과까지 할 일은 아닌 것 같고요.”
송정우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 일이 뭐냐고요? 설명이든 해명이든 뭔가가 있어야 납득을 하고 토크를 진행할 것 아닙니까?”
공운의 목소리가 몇 데시벨 올라갔다.
“하아, 굳이 자꾸 물으시니까 해명드려야겠네요. 화재 진압하고 왔습니다.”
우리 셋 모두 놀랐지만 가장 당황한 이는 공운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우의 옆얼굴에 아직 지우지 못한 채로 묻어있는 검댕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 네, 그렇, 군요. 그러, 네요. 사과할 일이 아닌 것도 맞네요. 어쨌든 오해는 풀었으니 슬슬 시작을 해볼까요?”
“그러시죠.”
주작이 정리해 놓은 정우의 프로필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 그를 수식하는, 정확히는 칭송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소방방재청 홍보대사, 국민 영웅, 국민 아들, 예비 사윗감 선호도 1위, 청소년 존경 인물 1위 등등.
“그런데 왜 부정청탁금지법의 피의자가 됐죠, 느닷없이? 국민 아들은 왜 사고를 쳤나, 오늘 솔직한 경위서를 써봅시다.”
단도직입 공격이다. 지각에 대한 해명은 들었지만 공운은 여전히 반감을 감추지 않는 어투였다.
“아, 워터밤 공연 티켓 말씀이시죠? 그거 50장 받은 거.” 정우는 심호흡을 했다. “제가 잘못했죠. 부당하게 받았고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습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정우는 말을 멈췄다. 뒷말이 나올 거라 생각하고 우리 셋은 그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끝?
“아, 그렇군요. 사실관계만 얘기하시네요. 그 뒤에 더 하실 말씀은 없나요? 물의를 끼쳐서 죄송하다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그랬다든가…….”
“없습니다. 김영란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받았습니다. 조만간 처분이 나오겠죠?”
송정우는 남 얘기하듯 상황을 말했다.
“송정우 씨, 오명 세탁소는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고요, 그에 대한 게스트의 입장, 주장, 변명, 해명, 사과, 억울함, 이런 거 듣는 자리거든요. 그에 대한 별다른 뭐가 없다는 말씀인가요?”
“아이구, 죄송해서 어쩌죠? 그런 쪽이라면 드릴 말씀이 없는데. 지금이라도 멈추고 불 끄러 갈까요?”
공운의 얼굴이 더 굳어졌다. 돌아보니 주작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 역시 잔뜩 약이 오른 것 같았다. 근육질 몸매와 훤칠한 키, 잘생긴 얼굴에 반할 때는 언제고……. 나도 송정우가 얄미웠지만 우리가 원해서 출연시킨 거라 화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케이, 좋아요. 그런데 그 문제 때문에 정우 씨한테 쏟아지던 칭찬과 환호가 비난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안티도 제법 생긴 것 같고. 여론의 변화, 감지하고 있습니까? 괜찮아요?”
“계속 같은 말씀을 드리는데요, 저에 대한 관심과 성원 자체가 분에 넘치는 겁니다. 도를 넘어섰고요. 그래서 자꾸 과분하다, 과도하다 말씀드리는 거구요. 비난하는 분들도 많으시던데 그것도 과도합니다. 소방관 옷 벗어라, 평생 찌그러져 있어라, 심지어는 죽어라, 그런 댓글이 달리던데 제 잘못이 그만한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당한 MZ 소방관이라고 하더니 당당함을 넘어 도도함 내지는 뻔뻔함으로 발전하는 듯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만 그걸 제 입으로 말하는 걸 보는 일의 불쾌함은 또 다른 문제다. 입꼬리를 올려가며 능글맞게 자기변호를 하는 정우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괘씸함이 느껴졌다. 나도 그럴 정도인데 대화 상대인 공운은 오죽했으랴.
“잘못은 했으나 입장은 없다, 받고 있는 비난은 과하다, 본인에 대한 응원조차도 과하다, 이런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이 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도 정우 씨에게 과분한 거 아닌가요?”
그렇게 공격적인 공운의 모습은 처음이라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내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아, 저에게 하신 질문인가요? 아니면 제발 나와 달라고 몇 번씩이나 전화한 저 작가분에게 던지신 불만인가요?”
되치기다. 꼬였다. 이미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토크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다. 송정우 혼자만 느긋하고 여유로운 태도였다. 이후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공운은 날카로운 질문을 몇 개 더 해댔다. 그런데도 정우는 능수능란하게 받아치거나 빠져나갔다. 공운에 비해 나이는 스무 살 가까이 젊지만 토크 배틀에서는 송정우의 완승이었다. 긴장되고 날 선 말들이 오간 뒤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촬영이 끝났다.
송정우는 능글맞게 웃으며 작별인사를 건넸지만 우리는 데면데면한 태도로 그를 보냈다.
“저 자식 저거 뭐야? 완전 밥맛이네. 저런 놈이 어떻게 국민 영웅이니 아들이니 그런 찬사를 듣나? 아, 답답해.”
속에 맺힌 말을 공운이 토해냈다.
“분위기 괜찮으면 셔츠 벗겨서 웃통 좀 보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네요.”
주작이 화재현장에서 부채질을 해댔다.
“승아 씨, 지금 그걸 농담이라고 하나? 하여간 쯧쯧.”
내가 눈치를 보며 그녀를 타박하자 공운이 결기를 다지며 말했다.
“정피, 주작, 이번 거 편집 잘해. 저 녀석 밉상 짓을 극대화하라고. 이참에 영웅이고 아들이고 아주 매장을 시켜 버리자고. 전 국민이 안티팬이 되도록 말야.”
진행자와 게스트 사이에도 궁합이 있다면 둘은 최악이었다. 옳고 그름을 단정하는 데 신중하던 공유가 아니었다. 그 답지 않은 폭발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폭발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