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과 억울함이 내보낸 만기출소

“투자를 합시다. 이참에 아예 빨래방을 하나 차리자구."

by 이지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공운의 말에는 허탈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사무실 회의 탁자에 둘러앉은 우리 셋은 모두 망연자실이었다. <영웅 소방관의 몰락-송정우 편>이 업로드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너무 건방지다, 사과는 왜 안 하나, MZ가 벼슬이냐, 이런 종류의 비난이었다. 그런데 어제 뜬 기사 이후로 여론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송정우 소방관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불기소 처분>

국민 영웅 송정우 소방관이 경찰 조사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인기가수 장 모씨는 송 씨에게 자신의 워터밤 콘서트 티겟을 50장(시가 500만 원 상당)을 주었고, 송 씨는 이를 신고하지 않음으로써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그동안 수사를 받아왔다. 그러나 조사 결과, 송 씨가 신고 대상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 50장의 티켓을 청소년 화상 환자 모임에 모두 기부한 점 등이 인정되어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오늘 경찰이 밝혔다. 이에 대해 송 씨는 “화상을 입은 청소년들이 시원한 물을 맞아가며 화재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면서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앞으로는 준법에 각별히 신경 쓰겠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인사혁신처 및 소방방재청 역시 경찰의 불기소 처분을 통보받고 별도의 징계 절차를 밟지 않기로 결정했다.


“기사 뜬 다음에 우리 콘텐츠 조회수도 폭발하고 있어요. 마라톤 듀오 부자 기록도 깨겠는데?”

트래픽을 확인하면서 내가 말했다.

“댓글도……. 송정우 비난은 쏙 들어갔네요. 생색 안 내고 좋은 일하는 송정우 멋지다, 솔직히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역시 츤데레, 진실은 덮어놓고 애꿎은 영웅을 공격한 공운은 사죄해라, 다시 현장 근무하는 것도 모르고 인터뷰하냐, 너네 집에 불 났어도 지각 탓할 거냐, 국민 아들 정우의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정우 하고 싶은 거 다 해, 송정우 욕하는 놈 이제부터 다 죽었어, 세탁하려면 더러운 공운과 제작진 이름부터 빨아라, 뭐 이런 것들입니다.”

주승아 작가가 보고를 마치자 사무실 안은 한동안 마가 떴다. 허무함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역시 유튜브는 요지경 속 세상이다.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싸가지 1도 없는 놈이 영웅이 되고, 폭로하려고 악당에게 던진 수류탄이 오발탄이 되기도 한다. 하긴, 예상과 계획대로 된다면 그게 유튜브겠나? 인생이겠나? 각본과 연기로 이루어진 드라마겠지.

며칠 후 조용성이라는 사람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자신을 변호사라고 소개했다. 재심 전문이라고도 덧붙였다. 그의 메일은 공손했고 차분했다.

‘재심은 절망자의 마지막 희망 같은 것이에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지푸라기죠. 재심에서 이겨 억울함을 푼 몇몇 사건들을 언론에서 크게 다뤄서 그렇지, 사실 승률이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재심을 해도 될지 심리하는 절차에서부터 기각되는 일이 태반이고요.’

조 변호사는 용건이 아니라 배경을 먼저 설명하고 있었다. 그 뒤로 재심 전문 변호사로서의 소회와 보람도 썼다. 용건은 마지막에 등장했다.

‘사실 이렇게 메일을 드리는 이유는 제 의뢰인을 오명 세탁소에 출연시키고 싶어서입니다. 혹시 상촌네거리 살인사건에 대해 들어 보셨는지요? 15년 전, 한 지방 소도시에서 행인이 택시 기사를 흉기로 죽인 사건입니다. 제 의뢰인이었던 용의자는 입대를 며칠 앞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경찰에서 범행을 시인하고 15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3주 후에 만기출소 합니다. 저는 당시 그의 국선변호사였는데 살펴볼수록 그가 진범이라는 사실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의욕을 내려놓은 그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유무죄를 놓고 다퉈보고 싶었지만 본인은 완강하게 거부했어요. 저는 재판부에 선처를 요청하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죠.’

상촌네거리 택시기사 살해 사건이라……. 언젠가 읽어본 것 같긴 한데 구체적인 내용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쨌든 20대였던 범인이 나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세상으로 나오는 셈이다. 역으로 내 시간을 되짚어 보았다. 15년 전이라면 대학 시절이다. 그 사이에 있었던 무수한 경험과 변화를 떠올려 봐도 교도소의 15년은 가늠하기 어려운 긴 시간이었다.

“형을 확정받고 항소를 포기한 이후, 그는 더 이상 제 의뢰인이 아닙니다. 종종 면회를 가긴 했지만 신청서 관계란에 ‘전 변호인’이거나 ‘지인’이라고 썼습니다. 아, 그 친구 이름을 여태껏 말씀 안 드렸군요. 박상범입니다. 용의자에서 피의자로, 피의자에서 수형자로, 이제 수형자에서 만기출소자가 되어 세상에 나옵니다. 박상범은 뭔가 숨기고 있습니다. 지켜야 할 뭔가가 있고, 그걸 자신의 복역과 바꾼 겁니다. 사건 초기부터 저는 계속 그를 설득했고, 지금은 재심을 권하고 있지만 여전히 상범이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당시 범죄 용의자 신상공개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과 얼굴은 다 알려져 있습니다.”

편지는 박상범을 꼭 오명 세탁소에 출연시켜 달라는 것과 그게 가능하다면 자신이 남은 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설득해 보겠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됐다(이미 절반은 설득되었다고 했다). 그가 부탁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 박상범의 억울함을 벗게 해주고 싶다는 거였다. 재심 요청을 수락하지 않으니 일단 우리 채널 인터뷰로 우회할 심산인 듯했다.

“이제 우리, 탐정 노릇까지 해야 하는 셈인가요? 범죄라면 사양하고 싶은데…….”

승아가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에 공운의 눈빛은 반짝였다.

“나 이런 거 해보고 싶었어. 명탐정 코난이 되는 기분이잖아. 명탐정이 되든 명란젓이 되든 한번 해보면 좋겠는데? 지강이는 어때?”

“글쎄요, 아무리 세월이 흘렀고 만기 출소라고 해도 법적인 문제라 왠지 꺼림칙한데요. 혹여 유족들이 문제 삼으면 사자(死者) 명예훼손이 될 수도 있고요.”

“조 변호사가 다 커버해 준다잖아. 라이브도 아닌데 뭘. 혹시라도 문제 되는 발언이 있다면 편집에서 걷어내면 되고 말이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공운은 잔인한 살인범인지 억울한 누명범인지 모를 상범을 꼭 만나보고 싶은 눈치였다. 본인이 연예인 출신이라 그런지 연예인 출연자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를 못 느끼는 듯했다. 사람들은 화려한 외모와 커리어 때문에 연예인 게스트에 집중하는데 공운은 오히려 사연이 있는 일반인에 더 깊은 관심을 보였다.

“생각 좀 해볼게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며칠 고민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양 피디 시절, 무수한 송사(訟事)를 지켜봐 왔다. 교양제작국은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부서가 아니어서 내게 그런 일은 없었지만 바로 옆 시사제작국은 그렇지 않았다.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은 예사였고, 허위 사실이나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업무방해, 초상권 성명권 침해 따위로 담당 피디가 수시로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불려 다니곤 했다. 물론 회사 법무팀의 지원을 받는 하지만 방송 내용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피디의 몫이다. 전문가를 참칭한 사기꾼, 사이비 교단 관계자, 국회의원 보좌관, 조직 폭력배, 암호화폐 개발자, 정당 고위 관계자, 다단계 판매 조직원, 북파 공작원 동지회 간부, 주식 작전 세력 등 법으로, 주먹으로 위협하는 사람들이 연락해 왔다. 시사 프로그램을 맡은 동기와 선후배들이 골치 아파할 때마다 ‘나는 다행이다’ 싶은 안도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피디님, 정말 괜찮을까요?”

공운이 떠난 뒤 단둘이 남았을 때 주작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잘 모르겠어. 빨래방에 앉아서 1시간 남짓 얘기한다고 예전 일의 실체를 밝힐 수도 없고, 박상범이 뭘 얘기할지 짐작도 안 되니까. 그 파급도 예측할 수 없고.”

“나야 뭐 늘 피디님 결정에 따르기는 하지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시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우리가 재심을 종용할 것도 아니고, 그냥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만기출소 범죄자에게 두부 한 입 떠먹이는 거라 생각하면 마음 편하지 않을까요? 재심 요청이야 조 변호사가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리는 15년 수감생활이 어땠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그런 얘기에 집중하면 어떨지…….”

당시 우리 채널은 구독자 73만에 콘텐츠당 평균 조회수 50만 뷰 정도였다. 아무리 인지도가 없는 출연자여도 기본적으로 30만 뷰 이상은 나왔다. 송정우 소방관 편은 처음으로 천만뷰를 넘었다. 정산되는 광고수익은 운영비와 제작비, 인건비를 대고도 넉넉히 남았다. 여기저기서 협찬 제안이 왔지만 받지 않았다. 협찬 없이도 운영이 가능했고, 무엇보다 우리 채널의 분위기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정 궤도에 들어선 이상, 출연자를 놓고 고심할 필요는 없었다. 반드시 박상범을 출연시켜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섭외 결정을 내리기 전, 나는 조용성 변호사와 통화했다. 사법 정의에 대한 의협심 때문인지, 박상범에 대한 동정심 때문인지 그는 정중하지만 완강하게 출연 요청을 했다.

“정지강 피디님, 상범이는 순진한 녀석입니다. 지능이 조금 떨어지고 융통성이 없긴 하지만 사리분별을 못하는 친구는 아니에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의리를 지켜야 하거나 강압수사를 받았을 수도 있어요. 제가 변호 맡기 전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을 거에요. 늦었지만 그걸 찾아내 밝혀야 상범이의 남은 인생도 평안해질 수 있습니다. 상범이가 본인 입으로 밝힐 기회를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간곡한 부탁이었다. 오명 세탁소 출연이 지나간 세월을 다 정리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출발점은 될 수 있다고 조 변호사는 강조했다. 아울러 다른 언론은 말단지엽적이고 자극적인 것만 찾아내 단순화해서 쓰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도 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오래 고민했다. 다음날 다른 촬영을 마치고 내가 공운과 주작에게 결심을 밝혔다.

“박상범은 하지 않기로 합시다. 이유는 두 분 다 아실 거예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고.”

승아는 의외라는 표정이었고, 공운은 씁쓸한지 입맛을 다졌다.

“조 변호사에게는 제가 연락할게요. 아쉽긴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커요. 승아 씨는 다른 출연자 알아봐 주고요.”

내심 실망했겠지만 내 결정에 둘은 토를 달지 않았다. 아무리 의사결정을 공동으로 한다고는 해도 인터뷰 콘텐츠인 만큼 출연자 결정은 피디인 내가 결정하는 게 옳았다. 공운과 승아도 그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아쉬움에도 더는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고마웠다.

“지강아, 뉴스 봤니?”

수화기 너머 공운의 목소리는 흥분과 긴장으로 떨리고 있었다.

“형님, 늦은 시각에 뭔 일로……. 뉴스요? 못 봤는데.”

“박상범이 자살했단다. 일단 뉴스 찾아보고 다시 통화하자.”

상상조차 못 했던 소식이었다. 나는 급히 휴대폰에서 포털 앱을 열었다. 박상범을 타이핑해 최신뉴스를 검색했다. 기사가 10여 개 떠 있었다. 나는 그 중 하나를 클릭했다.


<상촌네거리 살인범 박상범, 만기 복역 출소 후 극단적 선택>

15년 전 상촌네거리 살인사건의 범인 박상범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오늘 오후 3시경,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112 신고전화를 받고 경찰은 긴급출동 했다. 출동한 경찰은 위치추적으로 확인한 경기도의 한 원룸에서 신고자인 박 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으나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촌네거리 살인 사건은 당시 21세였던 박상범이 택시 기사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사건이다. 30여 차례나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것으로 번화한 시내에서 벌어진 잔혹한 범죄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었다. 경찰은 탐문 수사 끝에 인근 고시원에서 도피 중이던 박상범을 검거,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이후 기소되어 15년 형을 선고받은 박씨는 지난달 만기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상태였다. 사건 이후 흉악범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범죄자 신상공개 결정위원회’가 설치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내 마음은 복잡해졌다. 그는 죄책감에서 자살했을까, 억울함을 못 견디고 자살했을까? 지난달 우리 채널에 게스트로 출연시켰다면 박상범은 죽지 않았을까? 출연했다면 참회형이었을까, 변명형이었을까?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항변했을까, 개과천선을 다짐했을까? 한 동안 멍하니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조용성 변호사였다. 지난번 박상범의 출연을 협의하기 위해 통화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가 무슨 말을 할까? 혹시 출연을 거부한 것에 대해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긴장된 마음으로 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조 변호사님, 정지강입니다.”

“피디님, 늦게 죄송합니다. 혹시 뉴스 보셨습니까?”

통화든 이메일이든 조용성 변호사는 정중했다. 그에게서 처음 이메일을 받은 후, 승아와 함께 그에 대해 검색을 해본 적이 있었다. 억울한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해서 주로 승소했다는 뉴스였다. 사법의 실수를 바로잡는 애프터서비스 기사라든가, 스스로를 변호하지 못하는 시민의 마지막 보루,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집요한 법률가 등의 수식어가 그를 꾸며주고 있었다.

보도 사진 속의 그는 마르고 날카로워 보였다. 인터뷰 기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법정을 나오면서 의뢰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의뢰인의 얼굴에는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어서 조 변호사의 밝은 표정이 더욱 돋보였다. 승소한 변호인의 표정이 밝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는 유난히 감격해하는 얼굴이었다. 사진들 속에서 그는 의뢰인과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거나 꽃다발을 치켜들고 있었다.

“네, 조금 전에…….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정 피디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휴대폰 너머에서 건너오는 조 변호사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그때 우리는 촬영 때마다 빨래방을 빌려야 했으므로 매우 피곤했다. 그러나 채널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섭외 전화를 받는 빨래방 주인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장소 사용료는 됐으니 자막으로 점포 이름을 넣어달라거나 누가 출연하는지 묻는 일도 잦아졌다. 실제로 어떤 주인들은 일부러 촬영 현장에 나와 자발적 방청객이 되기도 했다. 빨래방 손님도 아닌데 어떻게 알게 됐는지-아마도 섭외 연락을 받은 주인이 퍼뜨렸을 것이다-한 무리의 주민들이 모여 있는 경우도 있었다. 출연자의 평판과 시민의 호불호에 따라 사인 요청이 쇄도하기도, 수군거림이 오가기도 했다.

“섭외는 쉬워졌는데 촬영이 점점 어려워지네요. 사람들 눈과 귀가 쏠려서 부담되는데 형님은 어떠세요?”

내가 공운에게 물었다.

“나야 사람들 관심을 먹고살던 사람인데 불편한 게 뭐 있겠어? 순회공연 같고 오히려 좋은데?”

MC가 불편하지 않다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출연자는 다르다. 특히 관심을 먹고살지 않는 비연예인에게는 부담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솔직한 토크를 방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촬영하는 동안 빨래방에 오는 다른 손님을 막을 수도 없었다. 사용료도 훨씬 많이 줘야 할 뿐만 아니라 사용 허락 자체를 얻기 힘들었다.

우리에게는 3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채널 초기처럼 스튜디오에서 빨래방 시늉만 한다(크로마키 배경에 빨래방 이미지를 넣는다), 지금처럼 손님이든 구경꾼이든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환경에서 녹화한다, 코인 빨래방 세트를 직접 차리고 그곳에서 녹화를 진행한다. 세 번째 아이디어는 공운이 제안했다.

“우리 얼마 벌었지? 수익을 나눠 갖지 않았으니 제법 쌓였겠지?”

공운의 질문에 승아가 간략히 재정 보고를 했다. 론칭 후 반년은 시드머니인 내 퇴직금을 까먹는 시기였다. 교사 홍소윤 편 이후 채널은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고, 이후 1년 반 동안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성장했다. 구독자 100만 채널에게 주는 골드버튼이 눈앞이었다. 자료조사와 섭외를 담당할 보조작가를 채용해 주작의 일손을 덜었다. 편집자를 2명 더 늘렸다. 숏폼 콘텐츠도 매일 만들어 올렸고, 여러 버전의 편집본을 유통시켰다.

사업 전담 직원도 채용했는데 캐릭터 사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한동수 선배의 ‘검은 교양이 메롱’과 비슷한 캐릭터를 우리도 만들었다. 깔끔이와 뽀송이였는데 각각 세탁기와 건조기를 의인화한 것이었다. 인형, 키링, 핸드폰 거치대, 스티커 등의 여러 굿즈를 OEM 방식으로 제작했다. 올리는 콘텐츠마다 쇼핑몰로 이동할 수 있게 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샀다.

“깔끔이 뽀송이가 돈을 제법 벌어주고 있어요. IP 사업 제안도 계속 들어오고 있고, 다음 달에 메신저 이모티콘 출시하면 그 판매수익도 꽤 될 거 같아요.”

승아가 기대에 부풀어 설명했다. 셋이 의기투합한 사업 초기에 우리는 회사를 설립했었다. 아무리 앞날이 불투명해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나는 싫었다. 주식회사 오명 세탁소. 자본금은 내 퇴직금이었고, 주식은 우리가 합의한 5:3:2의 비율로 발행했다. 대표이사는 내가 맡았고, 공운과 승아는 사내이사 겸 주주였다. 흑자 전환 이후에도 우리는 배당을 하지 않고 이익금을 쌓았다. 다만, 각자 생활은 해야 했으므로 적은 액수의 월급을 똑같이 받았다.

“투자를 합시다. 이참에 아예 빨래방을 하나 차리자구. 실제 코인 빨래방을. 우리가 마음대로 열고 닫고 촬영하고 손님 받고, 얼마나 좋아?”

공운의 제안에 승아와 나는 심각해졌다. 채널을 키우면서 직원을 늘리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인이라고 해도 실제 빨래방 매장을 운영한다는 건 이런저런 품을 들여야 했다. 이틀의 숙고 기간을 거쳐 다시 머리를 맞댔을 때 승아가 먼저 입장을 밝혔다.

“진짜 코인 빨래방 하는 거, 나는 찬성합니다. 생각할수록 기대돼요. 생각할수록 걱정은 사라지고. 내가 어려서부터 빨래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가 봐요.”

모험을 달가워하지 않는 나는 반대 의견을 말하던 참이었데 주작이 그렇게 나오자 말문이 막혔다. 아니, 입을 닫아버렸다. 곧 속마음까지 찬성으로 급선회했다. 우리 채널이 급성장한 것처럼 주승아가 적어도 내게는 큰 영향을 끼치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있었다.

식사 조건이 달린 이상한 임대차 계약은 이렇게 해서 체결된 것이다. 사무실 겸 편집실로 쓰던 곳과 걸어서 5분 정도로 그다지 멀지 않았고, 무엇보다 어려움 없이 촬영할 수 있어 좋았다. 시늉만 해도 될 것을 승아가 우겨서 진짜 빨래방을 차렸다. 사업자등록에 업종도 추가했다.

“예로부터 빨래터는 소문과 평판이 퍼지고 해소되는 공간이었단 말씀. 빨래 방망이를 휘두르면서 스트레스도 풀었고요. 콘텐츠 촬영도 촬영이지만 저는 이 빨래방을 소통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삭막해진 도시에서 부활한 빨래터, 오명 빨래방!”

아이디어는 공운이 냈지만 흥분한 것은 주작이었다. 도심 속 빨래터 아이디어는 부산의 산복 빨래방에서 나왔다.

“부산일보의 젊은 기자와 피디들이 어느 날 산복도로 근처 마을에서 빈집을 빌려 빨래방을 차립니다. 고지대에 위치한 달동네라 주로 노인들이 사는 동네였대요. 산복 빨래방은 돈은 안 받고, 대신 이야기를 풀어놔야 세탁기를 이용하게 해 줬습니다. 안 그래도 적적하던 동네 노인들은 그곳에 가서 빨래도 하고 이야기보따리도 풀어놨대요. 주민들의 일상, 개개인의 사연, 동네와 부산의 근현대사 등 손님들이 풀어놓은 이야기를 제작진이 모아 기록을 했고요. 오명 빨래방이 자리 잡으면 유명인 말고 평범한 동네 주민들의 소소한 얘기도 콘텐츠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대박을 치든 쪽박을 차든 말이죠, 하하.”

승아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감지했다. 앞으로 그녀가 어떤 꿈을 꾸더라도 나는 찬성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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