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란 거 있잖아요. 그거 생각보다 힘이 센 것 같아요"
정착한 오명 빨래방에서 맞은 첫 게스트는 조용성 변호사였다. 촬영일까지도 빨래방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전체적인 인테리어는 마무리됐고, 세탁기와 건조기 등 필수적인 시설도 갖춰진 상태였다. 그러나 손님들의 휴식공간과 기타 편의시설, 인테리어 소품 등은 아직 자리잡지 못해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조금 산만하죠? 변호사님께서 이해해 주세요.”
20평 남짓한 새 공간을 둘러보는 조 변호사에게 내가 양해를 구했다.
“괜찮습니다. 부탁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박상범이 자살한 날,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우리 채널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상범이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그를 대신해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피디님 걱정하시는 점도 잘 압니다.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약속드립니다.”
박상범의 죽음에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나는 조 변호사의 부탁 전화에 바로 승낙의 뜻을 밝혔다.
촬영은 박상범이 죽은 지 한 달쯤 지난 토요일에 진행되었다. 대머리 중개인은 인테리어 공사 내내 우리 점포를 들락거리더니 그날도 촬영 현장을 얼쩡거렸다. 오지랖 대마왕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위인이다.
“아휴, 가구 정리가 안 돼서 어수선한데 여긴 또 뭔 일이래?”
카메라 3대, 조명 5대, 세팅된 의자와 탁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우리를 둘러보며 대머리 오지라퍼가 중얼거렸다.
“뭔 촬영을 한다더니 그거구만. 아직 에어컨 연결도 안 됐지? 날씨도 더운데 고생들 많네요. 이거라도 좀 잡수면서 해.”
중개인이 내민 검은 비닐봉지에는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었다. 승아와 나, 디자이너와 편집요원까지 인원에 맞게 사온 걸 보니 머릿수를 세려고 이미 다녀갔던 모양이다. 내키지 않았지만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우리는 쭈뼛거리며 하나씩 집어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그나저나 저 자리에 앉아서 진행하는 양반이, 그 뭐더라? 공운인가 하는 사람 맞지?”
촬영 시간에 맞춰 오기로 된 공운은 아직 도착 전이었다. 주작이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적극적으로 상대해 줬다가는 더 큰 참견 쓰나미가 올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세상에는 최소한만 상대해야 편한 사람도 있다.
“지난번 계약할 때 봤지? 여기 주인 구 사장, 그 양반이 공운인가 하는 사람을 아는 모양이던데? 나한테 넌지시 묻더라고.”
“아, 그래요? 팬이라고 하던가요?” 내가 되물었다.
“팬?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야? 글쎄, 팬인지는 모르겠는데 예전에 같이 일했다나? 뭘 같이 했다나? 제대로 말은 안 해서 잘은 모르지만…….”
때마침 조용성 변호사가 분장을 마쳤다. 몇달 전부터 우리는 촬영 때마다 전문 분장사를 불렀다. 빨래방 한 켠에 작은 분장실 겸 탕비실이 마련될 터였다. 조 변호사가 일찍 도착해 녹화 예정시간보다 1시간이나 이른 시각이었다. 우리가 손님에게 집중하자 대머리 중개인은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 자신의 사무실로 내려갔다.
조 변호사는 사진으로 본 것보다 더 호감형이었다. 법률가 이미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인간적인 면이 있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순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는데 살짝 처진 눈꼬리 때문인 듯했다.
“오명 세탁소 문 엽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세탁할 이름과 출연하신 분의 이름이 다르네요.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나오신 셈이죠. 오늘의 게스트 조용성 변호사입니다. 자기소개 먼저 해주시죠.”
죽은 박성범 때문인지 공운은 평소보다 낮은 톤으로 오프닝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재심 전문 변호사 조용성입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 변호사님. 오늘 세탁할 이름은” 공운이 티셔츠를 꺼내며 말했다. “이 박상범인데요, 어떤 관계인지부터 말씀해 주실까요?”
“박성범 씨는 제 의뢰인이었습니다. 그가 살인 용의자였던 15년 전에 말이죠.”
조 변호사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담담한 어투로 설명했다. 상촌네거리 살인 사건부터 최근의 자살까지 말한 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청자 여러분, 제가 밝혀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 두 달 전, 조용성 변호사께서 박상범 씨를 우리 채널에 출연시키고 싶다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여러 가지를 검토한 결과, 출연을 거부했습니다. 그 뒤 박상범 씨는 만기출소를 했고, 방금 조 변호사님 말씀처럼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죠.”
공운은 말을 잠깐 멈추고 고개를 숙였는데 명복을 비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박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조 변호사님은 저희 제작진에 직접 출연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오늘 이 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변호사님은 왜 직접 출연을 요청하셨습니까?”
“두 달 전에 상범 씨의 출연을 요청했을 때는 사실 재심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계속 재심 청구를 권했는데 그가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출소 전 마지막 면회 때 저는 오명 세탁소 콘텐츠를 몇 편 보여줬습니다. 관심을 갖더군요. 오랜 수감생활 때문에 스마트폰과 유튜브도 낯설었겠지만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꿔준다는 이 채널의 컨셉에 흥미를 느끼는 듯했습니다. 저는 재심 얘기를 접어두고, 일단 이 자리에 앉히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과거를 말하다 보면 심경의 변화가 생길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담담하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점점 조용성 변호사의 말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공운 씨가 말씀하신 대로 제작진에게서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 상범 씨는 만기복역을 마치고 출소했습니다. 곧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요. 유서도 유언도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날 제가 정지강 피디님께 전화해서 직접 출연을 부탁드렸고, 이유를 묻지도 않고 승낙해 주셨죠. 그 이유를 이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조 변호사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생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제 이름에 대한 평가를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단호하게 말한 문장은 나를 포함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을 당황시켰다.
“무슨 뜻이시죠? 박성범 씨에 대한 게 아니고, 변호사님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바꾸고 싶다, 그런 말씀인가요?”
잠깐 당황했던 공운이 정리해서 질문을 던졌다.
“네, 맞습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제 이름 앞에는 재심 전문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붙었습니다. ‘억울함을 풀어주는 최후의 변호인’ 같은 과찬도 따라다니죠. 그런데 저는 그다지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당연히 좋은 변호사도 아니고요. 제가 왜 수임료도 없이 15년 동안 상범 씨의 면회를 다녔는지 아십니까? 죄책감 때문입니다.”
죄책감?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나는 궁금해졌다. 변호사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것일까?
“저는 그의 국선 변호사였습니다. 그가 살인죄로 검찰에 의해 기소된 이후, 저는 사건을 배당받고 그를 처음 접견했습니다. 구속 영장이 유효한 상태였기 때문에 구치소에서 만났죠. 그는 일반인에 비해 판단이나 표현이 서툴렀습니다. 지적 장애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어요. 시설에서 자라 도움을 줄만한 가족도 없었고요. 그에게는 절도 미수 전과가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금은방을 털려고 모의하다가 그 중 하나가 경찰에 자수하는 바람에 무산됐죠. 상범이는 초범이고 미수여서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그 때문에 저는 상촌네거리 사건도 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범죄 이력이 있는 불량배가 택시 강도를 시도하다가 살인까지 저지른……. 물론 유족 측은 엄벌을 탄원했습니다. 가진 게 한 푼도 없었기 때문에 유족과의 합의도 불가능했습니다. 빨리 혐의를 인정하고 우발성을 내세우면서 선처를 요청하는 것이 형량을 줄이는 길이라 판단했습니다.
유무죄를 다툴 수 없었던 것이 박상범이 자포자기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말해왔고, 다들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그는 저에게 자기는 범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에서 맞았다고도 했고, 억울하다고, 도와달라고도 했습니다. 교도소가 아니라 군대에 가고 싶다며 울기도 했어요. 그러나 저는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동종 전과 이력, 어눌한 말투, 불우한 성장환경, 사건 정황 등을 봤을 때 제게 그는 이미 살인범이었죠. 저는 사실관계를 놓고 법정에서 검사와 다투다 보면 형량이 높아진다고 회유했습니다. 맞아요, 회유였죠. 순순히 혐의를 인정하는 것이 그나마 수감기간을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판사가 판결하기 전에 변호인인 제가 그를 선고해 버린 겁니다.”
조용성 변호사의 고백은 계속되었다. 1심에서 15년형을 선고받은 후 항소를 포기하자고 권한 것도 그였다. 박상범은 억울했지만 곧 모든 걸 포기하고 수감생활을 시작했다. 사건은 조 변호사의 머릿속에서도 지워졌다. 심경의 변화는 5년 후에 찾아왔다. 부산 2인조 살인사건, 안양 노숙인 폭행치사 사건 등 재심 사건을 승소로 이끌면서 조 변호사의 대중적 인지도는 높아졌다. 잊혔던 박상범 사건이 자꾸 떠오르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는 교도소로 찾아가 면회하려고 했지만 거부당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또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상범에 대한 미안한 감정은 커져만 갔다.
“저는 초동대처에 실패한 응급실 의사였던 셈입니다. 제대로 진찰도 안 하고 환자를 죽였죠. 네, 죽인 게 맞습니다. 상범 씨에게는 사회적 타살이었을 테니까요. 저는 지속적으로 편지를 보내 재심을 권하면서 한편으로는 다시 사건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수사기록에서 허술한 점들을 찾아냈죠. 첫 재판에서는 안 보이던 것들이-아니 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하나둘 보였습니다. 해볼 만한 싸움이겠다 싶었죠. 상범 씨가 겨우 면회를 허락했습니다. 저는 그 이후 10년 동안 그를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닫힌 마음의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죠. 최근까지도 말입니다.”
뜻하지 않은 토크 전개에 공운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아, 혼란스럽지만 정리를 좀 해보겠습니다. 조용성 변호사님은 박상범의 변호 과정에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여러 재심 사건을 맡으면서 뒤늦게 죄책감을 느꼈다, 다시 박상범의 억울함을 풀어 주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정의로 포장된 자신의 이름은 온당치 않다, 그걸 바로잡고 싶어 오늘 출연하게 됐다, 뭐 이런 건가요?”
“맞습니다. 오명 세탁소에 어울리지 않는 출연자여서 죄송합니다. 너무 깨끗한 제 이름이 부끄러워서 팩트에 맞게 더럽히려고 나왔습니다. 상범 씨 사건의 진실은 이제 누구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가 목숨을 끊지 않고 재심을 받아들였다면, 그래서 다른 판결을 받아냈다면 저는 15년 전 저의 실수를 공개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오만한 과거를 드러내지 않고도 잘 살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저는 이 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걸 고백하지 않고서는 변호사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살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모두 떠난 빨래방에서 주작과 나는 늦도록 앉아 있었다.
“오늘 정말 멘붕. 정말이지 상상조차 못 했던 전개였어요. 피디님은?”
“나도 그랬지. 조용성 변호사가 출연을 부탁한 이유가 박상범의 명복을 빌어주자,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더 노력하겠다, 그런 뜻인 줄만 알았지.”
촬영 조명은커녕 천장의 형광등도 모두 껴져 있었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들이 주작의 얼굴에 반사되어 빛났다.
“양심이란 거 있잖아요. 그거 생각보다 힘이 센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해가 될 걸 알면서도 행동하게 만들잖아요.”
승아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를 너무 많이 의식하며 사는 것 같아. 우리 모두 말이지. 내가 나 스스로를 어떻게 보는지는 뒷전이야. 양심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거울 같아. 내 모습이 내 눈에 비치게 하는 거울.”
말하고 있는 내 옆얼굴을 주작이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오, 정 피디님 좀 멋있는데? 쓸 만한 구석이 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어둠 때문에 붉어졌을 내 얼굴이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다행이었다.
“피디님, 아니 사장님. 오늘 주승아 직원이 당황했으니 위로의 생맥주 한 잔 쏘시죠.”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주작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직원이라니? 이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나도 양심이 있어 그냥 집에는 못 들어가겠네요. 피곤해도 이사님 접대하러 갈랍니다.”
변호해 주고 싶은 한 변호인의 양심이 아직 오픈하지 않은 빨래방 바닥에 다소곳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