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바다, 유튜브에도 해류라는 게 있다
주승아 작가와의 서먹서먹한 관계 속에서도 일상은 흘러갔다. 우리 채널의 라인업은 성장기를 지나 안정궤도에 진입했다. 주 2회 업로드하는 공운의 오명 세탁소, 토요일의 주작 라디오 이불킥, 깔끔이와 뽀송이 캐릭터 사업, 오프라인 오명 빨래방, 이렇게 4개의 사업 아이템이 큰 무리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알아보는 사람들도 점점 늘었고, 홍보나 이미지 세탁이 필요한 유명인들의 출연 요청이 이어졌다.
공운이나 다른 직원들이 같이 있을 때 승아의 태도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나와 단둘만 남았을 때 그녀의 말은 줄었고 톤이 낮았다. 행방불명이 또 집 근처에 나타났는지, 내가 ‘비와당신’인 것을 눈치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한동수 선배가 저녁 한번 먹자는데? 주작이랑 나랑.”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내가 말을 꺼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다.
“그래요? 무슨 용건이래요?”
평소 같았으면 호기심이나 반가움에 이런저런 말을 덧대 호들갑을 떨었을 주작의 말이 짧았다.
“글쎄, 오랜만에 주작이 보고 싶은가 봐. 이불킥 라이브 감탄하던데 팬심도 생긴 모양이고.”
“…….”
“동석자가 마음에 안 들어도 옛정과 의리로 나가 주셔.”
못난 마음의 소리가 가끔 이렇게 삐져나온다. 분명히 나는 점점 이상해지고 있었다.
한동수 선배를 만난 것은 시내의 한 닭갈비 집이었다. 사업 초기에 조언을 듣겠다고 한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거의 2년 만이었다.
“오늘은 자네들이 사라. 선배고 뭐고 돈 많이 버는 자가 내는 게 동서고금의 룰이야.”
숯불에 구워진 닭갈비 한쪽을 집어 입에 넣으며 한동수 선배가 말했다.
“와, 이 집 정말 맛있네요. 한 피디님 안목은 역시 짱!”
주승아 작가가 쾌활한 모드로 칭찬했다. 주변은 닭갈비 굽는 연기와 손님들이 떠드는 소리로 어수선했지만 생동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선배께서 이런저런 팁을 주셔서 제법 이른 시간에 자리 잡았어요. 고맙습니다.”
“내가 무슨 조언을 했다고……. 난 정피, 주작 말리는 말만 했는데.”
감사 인사하는 내게 한동수 선배는 손사래를 쳤다.
“저희를 말린 이유가 바로 저희가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이었던 거죠. 그걸 알고 덤볐기 때문에 아주 힘들지는 않아요, 아직까지는요.”
주작이 한 선배의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주작은 이제 뭐라 불러야 되나? 라디오 생방 DJ니까 주디라 부를까? 너무 잘하던데? 정말 놀랐어.”
“제 외모가 못 생긴 한가인 정도인데 목소리는 그 이상인가 봐요. 시답잖은 스트리밍을 듣겠다고 제법 들어오는 거 보면 말이죠, 하하.”
한동수의 칭찬, 주승아의 자뻑인지 겸손인지. 여느 술자리와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주작과 나의 서먹한 관계만 빼면 말이다.
“그런데 오늘 두 사람, 왜 이렇게 데면데면 해? 서로 야지와 겐세이도 없고 이상한데?”
“에이, 한 피디님. 교양 넘치는 인플루언서의 어휘 선택이 왜 그렇게 저렴해요? 야유와 견제!”
“내가 전에 얘기했지? 교양 내세울수록 실은 야만에 가까운 거라고. ‘검은 교양이 메롱’도 실은 수면 위의 백조야. 아래쪽에는 촐싹대는 발길질이 버티고 있다고. 나도 마찬가지야.”
그의 채널은 구독자 60만 명에서 답보 상태였다. 5년이나 늦게 출발한 우리 채널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런대로 유지는 되겠지만 예전처럼 큰 반향은 없는 듯했다. 온갖 잡다한 콘텐츠가 다 있는 드넓은 바다, 유튜브에도 해류라는 게 있다. 모르는 걸 알려주는 채널이 한동안 큰 인기였다가 요새는 한풀 꺾인 느낌이었다.
자연스럽게 채널 얘기로 대화가 옮겨져 한 선배의 난처한 질문은 피할 수 있었다. 승아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부탁이 있다며 용건을 꺼냈다.
“우리 채널에서 한국사 강의하던 표인후 씨 알지? 그 사람 오명 세탁소에 한번 출연시켜 주라.”
표인후는 잘 나가던 한국사 강사였다. 동수 선배의 채널뿐만 아니라 여러 방송에서도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 인기를 모았다. 거침없는 입담과 절묘한 비유로 역사를 모르던 많은 사람들도 그의 강의에 빠져들었다. 그는 ‘역사의 역지사지’라는 타이틀로 강의했는데 특정 사건에 대해 관점을 바꾸어 보는 시도였다.
가령, 조선 최악의 임금이라 평가받는 선조가 왜 겁이 많고 질투심에 휩싸였는지 추적했다. ‘신라는 통일을 이룬 위대한 나라인가, 외세를 끌어들인 민족의 배신국가인가’와 같은 도발적인 질문도 던졌다. 절대선과 절대악이 없는 것처럼 역사의 그늘에도 이유는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가 쓴 책의 이름도 ‘뒤집어보는’ 시리즈였다. 뒤집어보는 한국 고대사 30장면, 뒤집어보는 고려시대, 뒤집어보는 조선 스캔들, 뒤집어보는 조선 전쟁사, 뒤집어보는 궁궐 이야기, 뒤집어보는 역사의 권력관계 등이었다.
오래된 일에 대해서 사람들은 날카롭게 굴지 않는다. 위화도 회군이 군사반란이라는 이유로 조선왕조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현재와 가까워질수록 민감해진다. 표인후가 한순간에 매국노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것도 시대가 다른 이완용과 최명길을 비교한 강의 때문이었다.
그는 두 달 전쯤 ‘역사의 물음표’라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강연했다.
“여러분, 삼전도의 굴욕 아시죠? 조선의 16대 임금인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버티다가 청나라의 왕자에게 머리를 찧으며 항복한 사건입니다. 이후 조선은 신하의 나라로서 청을 섬기게 됩니다. 수도인 심양에 대규모 볼모단을 보내고 갖은 전리품도 빼앗겨야 했고요. 그 과정에서 이념 대립이 있었죠. 끝까지 명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는 척화파 김상헌, 국제 정세를 파악해서 실리외교를 펴야 한다는 주화파 최명길의 대립. 죽어도 안 된다는 쪽과 일단 살아야 한다는 쪽의 갈등이었죠. 힘이 없던 조선은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역사적 평가는 어떻습니까? 허울뿐인 명분만 쫓다가 많은 걸 잃게 만든 인조와 척화파의 이념이 한심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죠. 반면 폐위된 광해군과 주화파 최명길은 약한 국력을 극복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으로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방송은 수십 명의 일반 청중과 여섯 명의 연예인 수강생 앞에서 강의하는 형식이었다. 화면에 낯익은 유명인들이 표인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잡혔다.
“약 260년이 지나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청나라는 일본으로 바뀐 채로 말입니다. 당시 일본은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대국이었습니다. 인조 때나 고종 때나 우리 국력의 형편없음은 비슷했고요. 전국에서 척화파 의병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한쪽에는 우리가 을사5적이라 부르는 이완용을 비롯한 주화파도 있었습니다. 병자호란과 많이 비슷하죠? 결과는 어땠습니까? 반대입니다. 대한제국은 버티지 않고 일본에 병합되는 걸 선택합니다. 병자호란 때 적에게 한 주먹도 안 되는 남한산성에서 농성전을 한답시고 버티다가 굶어 죽고 얼어 죽은 사람이 3만 명입니다. 50만 명이 포로로 끌려갔고요. 당시 최고의 엘리트였던 이완용과 박제순이 이런 병자호란의 아픈 역사를 몰랐겠습니까? 이들은 어쩌면 260년 전 최명길처럼 일단 살고 보자, 백성들을 살리고 보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쟁은 막아보자,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병자호란 얘기만 했을 때 고개를 끄덕거리던 방청객들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발표가 끝나고 연예인 수강생이 제기한 반론에 표인후는 이렇게 대답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질문은 있습니다.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물어보죠. 만약 고종 황제와 대신들이 을사조약을 거부하고 전쟁을 선택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저는 1636년 남한산성의 겨울보다 훨씬 혹독한 피해가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절대악은 없지만 거의 절대적인 악은 전쟁입니다.”
방송이 나간 후 난리가 났다. 해당 방송사의 게시판은 ‘매국노 표인후’를 규탄하는 목소리로 뒤덮였다. 그가 출연한 유튜브 영상에도 비난이 쏟아졌다. 언론도 가만있지 않았다. 좌우,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모든 언론이 표인후가 일으킨 논란을 부정적으로 다뤘다.
한동수 선배는 고민에 빠졌다. 그가 ‘검은 교양이 메롱’에 출연하는 고정 강사였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비난을 받더라도 시리즈 강연을 이어가기로 결정하고 표인후를 출연시켰다. 역시 비난이 쏟아졌고, 퇴출 요구가 표 강사뿐 아니라 채널로까지 번졌다. 노이즈 마케팅 수준이 아니었다. 마케팅 효과는 없고 노이즈만 가득했다. 죽기 살기로 덤비는 댓글 좀비들에게 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표인후 씨 입장은 어땠어요?” 상추에 닭갈비를 얹으며 내가 물었다.
“정작 그 사람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어. 논란을 예상했고 후회하지도 않더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완용 같은 매국노를 두둔한 거는 심했네요. 평화를 핑계로 주권을 팔아먹은 거니까.”
입을 삐죽거리며 승아가 말했다.
“그래서요? 표인후 선생이 저희 채널에 출연하고 싶다고 해요?”
“응. 내 채널에서는 이미 어떤 해명이나 변명도 소용없고. 오명 세탁소라면 이완용만큼이나 더럽혀진 자기 이미지가 좀 나아질까 싶은 기대가 있겠지. 먼저 부탁을 해오더라고.”
나는 한눈으로 주작을 살폈다. 그녀 역시 곤란한 눈치였다. 기레기 기자를 출연시켰다가 폭탄을 맞은 반년 전의 일도 떠올랐다.
“어려운 부탁인 거 알아. 내 채널이야 워낙 점잖은 척하던 컨셉이라 피해가 컸지만 자네들 채널은 매집이 생겼잖아? 이미지 버린 유명인들에게 변호사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
“이 바닥은 법조계랑 달라요. 무죄추정의 원칙 같은 거 없습니다. 저희가 변호사인 것도 아니고요. 그냥 할 말 있으면 해봐, 라는 정도라 표인후 씨한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고…….”
내가 난색을 드러내자 한동수 선배가 재차 부탁을 했다. 고민해 보겠다는 말로 선배를 보내고, 주작과 나는 작은 호프집에 자리를 잡았다. 어색했다.
“주작, 지난번에 과하게 반응한 것 미안합니다.”
시킨 맥주가 나오기도 전에 내가 사과를 꺼냈다. 이 어색함을 빨리 매듭짓고 싶었다.
“갑자기 웬 존댓말?”
그녀가 새침하게 대꾸했다.
“나도 양심이란 게 있으니까. 조용성 변호사만큼 용감한 양심은 아니지만.”
“그날 나한테 한 말, 후회해요?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면 안 그럴 거예요?”
“…….”
승아의 질문에 나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의도도 알 수 없었다. 말실수 한 상대를 질책하는 것인지,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인지, 다른 대답을 듣고 싶은 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피디님이 말을 못 하는 걸 봐서는 제대로 후회하고 계신 게 아니네.”
말로 하는 사과였지만 나도 내 진심을 알 수 없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사과를 거부하는 것일까? 초조해진 마음에 나는 막 테이블에 놓인 생맥주 잔을 들이켰다.
“모든 게 결과론이에요. 이완용이든 김상헌이든 정지강이든 주승아든 자기 언행이 초래한 결과에 그때그때 책임지는 것뿐이죠. 곤란한 선택의 상황에서는 어떤 걸 골라도 힘들 거예요. 130년 전 이완용이든, 지난주의 정지강이든. 문제는 덜 비겁해지는 방법을 찾느냐 못 찾느냐 아닐까요?”
나는 살짝 안심이 되었다. 주승아가 내 사과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는 점, 내가 지난주에 곤란했을 거라고 이해해 주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덜 비겁해지는 방법을 서둘러 찾아보세요. 저한테 사과하실 게 아니라. 후회하지도 않는데 하는 사과는 가장 비겁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마음만 편하려고 하는 말이지.”
그녀의 말은 어렵게 꼰 삼각함수 문제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웠다.
표인후의 촬영이 있던 날, 대머리 부동산 중개인이 올라왔다. 준비를 마치고 스탠바이 중이라 마침 공운도 있었다.
“아, 이분이 그 댄수가수 공원인가 공문인가 하는 분이시구나.”
그의 오지랖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주작도 눈살을 찌푸렸다.
“사장님, 지금 저희가 곧 촬영을…….”
“고 사장이 되게 보고 싶어 하던데? 몇 번이나 얘기하더라고.”
“고 사장?”
공운이 의아하다는 듯이 우리 쪽을 바라봤다. 주작이 상대하기 싫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 여기 건물주 말이여. 자기 건물에 연예인이 세입자로 들어왔으니 얼마나 좋겠어? 한물가서 지금은 티비에도 안 나온다 해도 한번 유명하면 영원히 좋은 거 아니겠어? 허허.”
분별없는 오지랖은 이렇다. 자기 말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관심도 없다.
“아, 네. 감사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초면인 공운마저 귀찮아졌는지 그가 다시 대본으로 눈을 돌렸다.
“아, 맞아 맞아. 사장 총각, 계약 내용 기억하지? 계약 만료 후에 고 사장이 밥 산다는 거. 여기 이 연예인 분하고 저 아가씨 하고 다 포함되는 거여. 고 사장이 꼭 그렇게 해달래.”
점잖은 척하더니 건물주는 공운에게 스토킹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주작의 스토커인 ‘생갈치1호의행방불명’ 때문에 신경 쓰이더니 이번에는 공운 형님인가? 나는 갑자기 피곤해졌다. 가뜩이나 논란이 예상되는 표인후의 촬영 직전이라 예민했는데 중개인의 말에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분통이나 울화통이 터질 때는 조건이 있다. 해야 하는 어려운 일 때문이 아니라, 불필요한 일이 불가피해질 때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공 들여 환심을 사야 하는데 어려운 경우는 고민에 빠질 뿐 화가 나지는 않는다. 상대하고 싶지도 않고, 상대할 이유도 없는 사람이 자꾸 내 앞에 얼쩡거릴 때 분노가 쌓이고 급기야는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아저씨! 그만 좀 하세요.” 소리치는 내 목소리에 나도 놀랐다. “저희 이제 촬영 들어가야 해요. 그런 쓸데없는 얘기는 나중에 하시라고요.”
민망해졌는지 대머리 중개인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알았네. 나중에 다시 옮세.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너무 그러는 거 아녀. 내가 이 짓을 40년 넘게 하면서도 복비 받았다고 할 일 끝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안 했어. 내 손님들 챙기는 일은 내 사명이라고!”
적의 없는 원망의 말이었다. 몸을 돌려 나가는 대머리의 뒤통수에 나는 슬며시 미안해졌다. 뻘쭘함도 잠시,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 문으로 표인후 선생이 들어왔다. 불쾌한 자의 퇴장, 불길한 자의 등장이었다.
촬영이 시작되자 표인후 선생은 평소와 다르게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요 근래 그가 처한 상황이 그의 거침없는 입담을 위축시켰으리라.
“자, 본론으로 들어가죠. 저 뒤 세탁기에 들어가 있는 표인후라는 이름, 왜 더러워졌습니까?”
공운이 문제의 강의 얘기를 유도했다.
“다 아시잖아요. ‘역사의 물음표’에서 제가 했던 발언요. 을사오적을 병자호란 때 주화파와 비교를 해서 뭇매를 맞고 있죠, 하하.”
“표 선생님, 그 뭇매는 정당하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억울합니까?”
“이건 정당과 부당의 문제가 아니에요. 저는 오늘 이 자리에 변명하러 나온 것이 아닙니다. 제 발언이 옳았느냐 아니냐, 사람들의 비난이 정당한가 부당한가, 그런 얘기는 무의미합니다. 제가 어떤 말을 해도 여러분은 욕을 할 거예요. 말하자면 답정너인 셈이죠. 제가 소신을 접고 뉘우친다고 말하면 여러분의 분노는 수그러들까요? 아닙니다. 사과할 발언을 왜 했냐고, 줏대 없이 왔다 갔다 한다고 또 욕을 할 겁니다.”
표인후는 잠시 뜸을 들였다. 공운이 계속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공운 씨는 동물원이 왜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느닷없는 출연자의 질문에 ‘동물원?’이라고 반문한 뒤에 공운이 대답했다.
“구경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맞습니다. 구경할 마음과 구경할 거리가 있으면 뭐든 성립되죠. 동물원이든 댄스쇼든 뮤지컬이든. 지금 이 콘텐츠도 마찬가지구요. 저는 지난 10년 동안 ‘뒤집어보는 역사 강사’라는 타이틀로 기꺼이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말이 좋아 교양 축적이니, 인사이트 제공이니 하지만 실은 여러분의 구경거리였던 거예요. 공운 씨가 춤추고 노래하던 시절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표인후가 물컵에 손을 뻗자 공운이 말을 되받았다.
“저야 뭐 원래 딴따라였지만 표인후 선생님은 그래도 구경거리는 좀 아니지 않나? 너무 자책하시는 것 아니에요?”
“아닙니다. 역사를 소비하는 여러분의 태도는 동물원에서 원숭이를 보는 것, 공연장에서 포에버보이즈에 환호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욕망이 그것들로 인해 충족될 때 즐거움과 뿌듯함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똑같죠. 이건 제가 논란의 중심에 있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에요.”
표인후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고 생각했는지 공운이 농담을 던졌다.
“여러분, 긴급속보입니다. 딴따라 공운, 스타 강사 표인후와 동급으로 승격! 정피, 나중에 여기 꼭 자막 넣어줘라.”
양손 검지 손가락으로 네모 모양을 만들며 공운이 넉살을 부렸다.
“문제는 내 욕망과 외부 자극이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아이에게 귀여운 사슴을 보여주러 동물원에 갔는데 두 마리가 노골적으로 짝짓기를 하고 있습니다. 포에버보이즈의 멋진 춤과 노래를 기대하면서 콘서트장에 갔는데 공운이 퍼덕 엎어졌습니다. 표인후에게서 ‘이완용은 매국노’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이완용은 최명길과 비슷한 현실주의자’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실망하죠. 무대 위에서 제가 넘어져 봐서 압니다. 그 실망한 눈빛들. 한심하다는 듯한 찡그림.”
“네, 실망하죠. 그런데 실망이 끝인 시대는 끝났어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게 뭘까요? 바로 분노와 공격입니다. 제가 억울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저를 비난하는 기사, 댓글 안 보면 그만이에요. 개의치 않으면 없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개의치 않을 수 없는, 그 분노에 휩싸여 헤어 나올 수 없는 여러분이 진짜 피해자예요. 제 변명이나 잘난 체가 아니라 진심으로 이 시대가 딱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표인후가 말을 멈췄다. 우리는 약간 숙연해졌다. 교사에게 꾸지람을 들은 학생이 된 것만 같았다.
“그것 역시 대중의 실망이 해소되는 과정 아닐까요? 얼마 지나면 쏙 들어가는 게 가십이고 스캔들 아닙니까? 다른 이슈로 묻히기도 하고요.”
“맞습니다. 제가 자초한 설화도 곧 묻히겠죠. 지금 끊긴 강연, 출판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회복될 겁니다. 하지만 저는 제 기준에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에요. 저주를 남발하는 우리 사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 영상에도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다시겠죠. 그런데 그게 해소일까요, 중독일까요? 분노와 저주를 퍼붓고 나서 이제 후련하다 싶은 분 계십니까? 아마 대다수는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다닐걸요? 건전한 여론이라고 하기에 이런 현상은 이미 병리학적으로 너무나 심각해져 있어요.”
표인후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 말을 이었다.
“세 달 전 저는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완용을 옹호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모두가 힐난하는 자를 비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매국노가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완용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본제국주의 이념입니다. 일제가 행한 악행의 뿌리에는 전체주의가 있습니다.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 자체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전체주의죠. 뒤집어 생각해 보자는 제안을 용인하지 못하는 사회는 위험합니다. 우리는 다시 식민지로 전락할까 봐 두렵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무서운 전체주의 사회도 걱정해야 합니다.”
“이틀 후면 이 영상이 편집되어 업로드될 텐데 저는 달리는 댓글 안 읽으렵니다. 벌써부터 무서워요.”
공운이 무거워진 분위기를 농담으로 바꿔보려고 했다.
“제 이름 세탁된 옷, 이제 나오나요?” 표인후가 물었다.
“네, 여기 있습니다. 마무리할 시간이 된 걸 어떻게 아시고, 하하.”
공운이 깨끗한 옷을 건네자 표 선생은 양손으로 티셔츠를 펼쳐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탁자 아래쪽에서 뭔가를 꺼냈다. 스프레이였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기 이름에 스프레이를 뿌렸다. 검은색 물감이 흰 면티 위에 쓰여있던 표인후라는 세 글자를 지웠다.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윽고 그는 이름이 지워진 옷을 탁자에 내려놓고 말했다.
“저는 세탁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제 이름을 지우고 싶어서 출연했습니다. 오늘부로 저는 은퇴합니다. 여기에 비난과 조롱을 달아봐야 소용없습니다. 저한테는 타격감이 없어요. 아마 여러분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도 없을 겁니다.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해 주세요. 예전에 어떤 똘기 가득한 강사가 이상한 관점으로 역사를 말했던 적이 있었지, 하고 말입니다. 백역사가 될지, 흑역사가 될지 모르지만 이제 저는 물러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스타 강사 표인후의 마지막 발언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양심적 시류 거부자'라는 표현이 잔상처럼 남았다. 트루먼 쇼의 마지막 장면 같았다. 그를 스타로 만든 시스템을 거부하며 화면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가 멋있어 보이기도, 딱해 보이기도 했다. 무차별적으로 날리는 온갖 악다구니를 그는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퇴장은 실체가 없는 가상의 세상에서 탈출한 것일까, 대세를 부정한 죄로 쫓겨난 것일까? 답을 알 수 없어 그가 떠난 뒷문을 나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