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필요한 분별력을 빼앗고, 불필요한 상상력을 선사한다"
빙상 스타들의 빅매치 이후 우리는 다시 승승장구했다. 오프라인 오명 빨래방의 매출은 크지 않았지만 유튜브 채널의 광고수익이 크게 늘었다. 캐릭터 사업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깔끔이와 뽀송이는 다양한 굿즈로 제작되어 한 문구 체인에서 판매되고 있었다(물론 우리 채널과 연동된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판매가 이뤄졌다).
특히 기분이 좋았던 건 메신저 이모티콘의 성공이었다. 세탁기인 깔끔이와 건조기인 뽀송이는 단순하면서도 깜찍한 캐릭터로 탄생해, 스마트폰 사이를 오갔다. 이모티콘은 디자인도 중요했지만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이 중요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더러움과 깨끗함, 꿉꿉함과 뽀송함이라는 척도로 설정했고, 이모티콘을 만들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1부터 5까지 ‘우리 사이 청결도’를 선택할 수 있는데 올라갈수록 깔끔이와 뽀송이의 몸이 깨끗해졌고 표정은 밝아졌다. ‘우리 사이 청결도’가 최하인 1이라면 캐릭터들은 더러운 옷에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관계 청결도를 높이기 위해 메신저 이용자들은 선물하기, 식사 제안, 영화 조르기, 쉘위쇼핑, 여행 가자 등을 보낼 수 있게 했다. 우리 사이 청결도는 기본적으로 나만 볼 수도 있고 상대가 승인하면 서로 확인이 가능하도록 했다. 귀엽고 참신하다는 호평 속에 우리 캐릭터는 점점 많이 퍼져나갔다.
메신저 회사에서 받은 수익은 론칭 첫 달에만 3천만 원을 넘겼다. 외주 제작을 맡긴 이모티콘 작가에게 제작비를 주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수익도 수익이지만 뿌듯함도 컸다. 깔끔이와 뽀송이는 고맙, 짱 좋아, 칭찬해, 귀엽, 멋짐 폭발, 묻었네 잘생김, 이따 한잔?, 상쾌지수 up 등의 짧은 워딩을 단 채 여러 표정을 지었다. 부정적인 감정들도 있었다. 불쾌, 민망, 서운해, 작작해, 분노 상승, 밉상, 얄밉, 짜증유발 스톱 등등. 쏘오리, 화해하자, 냉전 종료 원츄, 아직도 삐침? 평화회담, 오해 금지 등 부정적인 감정 표현과 관계 회복을 위한 이모티콘도 만들었다.
유튜브는 100만 구독자를 넘겨 골드 버튼을 받았고, 여러 언론에서 인터뷰를 요청해 와 응하기도 했다(물론 공운만 출연했다). 화면에 광고판을 노출시키는 단순 협찬은 받지 않기로 이미 오래전에 합의했다. 채널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 수 있는 데다가 게스트에 집중해야 할 시청자의 시선이 분산될 우려 때문이었다. 여전히 방송사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주작이 새로운 콘텐츠를 해보겠다고 나섰다. 화요일 아침마다 하는 전체 회의에서였다.
“오명 세탁소는 자리 잡았으니까 나 하고 싶은 거 해봐도 돼요?”
평소의 주승아 답지 않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부끄러움도 잠시, 그녀는 그동안 구상했던 새로운 콘텐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미리 준비한 두 장짜리 기획안을 돌렸다.
“타이틀은 ‘주작 라디오, 이불킥’입니다. 일단 유튜브 채널이긴 하지만 오디오로만 하고 싶어요, 진짜 라디오처럼. 제 얼굴이 못 생긴 한가인 정도는 되지만 성격은 대놓고 쪽을 팔 정도는 못 돼서요. 접속자들과 부끄러움과 후회에 대해 얘기할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요.”
설명을 다 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내 마음은 찬성이었다.
“며칠 전 스케이트 선수들 실시간 스트리밍 해보니까 라이브의 묘미가 있더라구요. 물론 작품성이나 완결성은 떨어지겠지만 우리 채널이 구독자와 소통하는 효과는 더 클 거예요. 죽이 되든 죽이는 콘텐츠가 되든 재밌게 해 볼게요. 도와주실 거죠?”
“난 조건부 대찬성. 주승아 씨가 2년 전 지분 약속을 깨지만 않는다면.”
공운이 장난스럽게 허락했다. 나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에 나는 말없이 어깨만 으쓱했다. 찬성이라고 말하면 마치 마음이 들킬 것만 같아서……. 직원들 중에서 몇몇 궁금증과 의견이 나오긴 했다. 라디오 DJ조차 유튜브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추세인데 굳이 비디오를 포기해야 하는가, 정말 대본 없이 참여자들의 사연만으로 진행이 가능한가, 스트리밍 참여자 수가 적으면 어쩌나, 저작권 때문에 음악도 못 틀 텐데 괜찮은가, 이런 종류의 것들이었다.
“또 다른 이의가 있으신 분은 지금 말씀하시거나 영원히 침묵하세요.”
정리해야 할 시점이 되자 내가 서양 결혼식을 흉내 내 말했다. 11명 전원의 찬성이 박수로 새 콘텐츠의 론칭이 승인됐고 곧 준비 팀이 꾸려졌다.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한 명씩 이불킥 론칭을 위해 주작에게 붙었다. 라디오 컨셉을 유지했고, 실시간 방송이 나가는 동안 청취자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이미지와 자막을 띄우기로 했다. 채널에 재생목록을 추가했고, 게시글을 통해 론칭 홍보도 진행했다. 오명 세탁소가 공운의 진행 솜씨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주작 라디오도 그럴 것이다. 특히 게스트가 없기 때문에 승아가 얼마나 청취자들과 잘 소통하느냐가 이 콘텐츠의 성패를 좌우할 거였다.
“피디님, ‘전날 행복도 조사’라는 것 알아요?”
주작 라디오를 준비하던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그런 조사도 있나?”
“통계청에서 실제로 조사하는 항목인데 전날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묻는대요. 웃기죠?”
승아는 새로운 이야기를 꺼낼 때 내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러다가 내가 관심이나 적당한 반응을 보이면 점점 몸과 눈을 내 쪽으로 돌리는 버릇이 있다. 아마 처음에는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일 것이다.
“당장의 행복도도 아니고 전날 행복했던 정도를 묻다니, 이해가 안 되네.”
“지금 얼마나 행복하지를 물으면 날씨나 조사원의 태도 따위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래요. 그렇다고 오래 전의 행복도를 물으면 기억이 왜곡되거나 미화된다고 해서, 어제가 가장 적합하다나? 그래야 자기 삶을 그나마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거죠.”
마음속으로 주작의 전날 행복도를 묻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요, 전날 행복도가 있으면 ‘내일 후회도’도 있을 수 있지 않나? 내일 후회할 정도를 묻는 거죠. 지금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내일 아침 이불킥의 이유가 될 것이냐, 뿌듯하고 자랑스러움의 재료가 될 것이냐, 이거 생각하면서 사는 것도 재밌지 않아요?”
“그러네. 우리 새 콘텐츠의 기획 취지로 딱이다.” 내가 호응했다. “스피노자였나? 이런 말을 했대. ‘후회하는 사람은 두 가지 실수를 범하고 있다. 첫째는 후회할 짓을 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걸 다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 때 서양철학사 수업에서 들은 얘기인데 너무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어. 더 살다 보니까 그렇지가 않더라고. 후회하지 않으면 실수라고 여기지도 않게 되지. 바로잡을 기회도 없어지는 셈이고. 스피노자가 얼마나 완벽한 인간인 줄은 모르지겠만 지금은 동의 안 해.”
“오호라, 오명 세탁소 연출 2년에 풍월을 읊으시네? 피디님 점점 쓸모 있어지는데요?”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되물을 수 없었다. 그녀에 대한 혼란스러운 마음이 점점 내 입을 닫게 만들었다.
이불킥은 토요일 아침 방송이었다. 비디오 없이 오디오만 송출하기 때문에 카메라는 없었다. 대신 성능 좋은 마이크와 오디오 콘솔을 보완했다.
“주작 라디오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앞으로 토요일 아침마다 여러분과 함께 이불킥을 할 주작입니다. 본명은 따로 있지만 그냥 주작이나 주작가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여러분은 후회를 자주 하시나요? 잘 보여야 하는 사람에게 남는 나의 나쁜 이미지, 멍청한 말, 이상한 행동을 후회해 본 적 있으신가요? 그 사람 머릿속에서 내 이름을 지우고 싶은 적도 있으세요? 주작 라디오 이불킥은 여러분의 후회를 연료로 진행되는 스트림 방송입니다. 한주 동안 더러워졌던 내 감정을 깨끗이 빨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자주 오세요. 매주 오세요. 토요일 아침은 후회하기 좋은 시간, 다시 정신 차리기에도 좋은 시간입니다.”
원래 라디오 DJ였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승아의 목소리는 정갈하고 예뻤다. 첫방이었는데도 1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접속해 있었다. 구독자가 많아서 유리한 것이다.
“뽀송뽀송하고 포근한 이불을 준비했습니다. 자, 분노의 발길질 환영합니다. 실시간 댓글로 이불킥 사연 올려주시면 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해결은 장담 못하지만 공감은 해드리죠. 제 딴에 드리는 소소한 팁도 기대해 주시고요. 하나씩 볼까요?”
원고 없이도 차분하고 막힘 없이 진행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벌어진 입을 닫을 수가 없었다. 둘러보니 출근한 직원들도 놀람과 안심의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야말로 주승아의 재발견이었다.
“팔만대장내시경님, 어제 썸녀와 저녁을 먹었는데 화장실 다녀와서 지퍼를 못 잠그셨군요. 집에 가서야 발견하셨다고. 저런! 이런 일이 종종 있죠. 이 사이에 낀 고춧가루라든가, 티셔츠 가슴팍의 김칫국물, 입가에 묻은 짜장 소스 같은 것들요. 상대에겐 잘 보이고 나는 못 보는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자, 괜찮아요. 썸녀가 내시경님한테 실망했을까 걱정되시죠? 사람은 그런 사소한 일로 전체적인 이미지를 바꾸지 않는답니다. 그녀가 못 봤을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이불킥 안 하셔도 된다는 말씀.”
승아의 진행은 매끄러웠고 접속자는 점점 늘었다. 올라오는 댓글은 다양했다. 진지한 후회에 대해서 승아는 진지하게 읽고 해결책을 내놨다. 장난에는 장난으로 응수했다.
“오징헌게임님, 본명이 이병헌 씨군요. 들어온 영화 출연 제의를 거부하셨는데 나중에 보니 대박이 났다고요? 괜히 거절했다 싶어 이불킥을 하고 계시다고요? 후회할 만하죠. 실은 저도 본명이 전지현인데요, 놓친 작품이 아까워서 이불킥을 자주 했답니다. 저 대신 연기한 배우를 시샘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병헌 씨, 생각해 보세요. 병헌 씨가 출연했으면 그만큼 흥행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해 보세요. 이불킥은 오늘 하루로 끝내자고요. 오징헌게임의 이병헌 씨 파이팅입니다.”
한 시간짜리 첫 스트리밍이 끝났다. 순간 최대접속자수 2,565명. 실시간 댓글 1,232개. 슈퍼챗 34건 175만 원. 성공적이었다.
“아이고, 진 빠진다. 생각보다 힘드네요.”
클로징을 마치고 테이블 위의 마이크 전원을 끄며 승아가 말했다. 나와 스태프들이 박수를 보냈다.
“승아 씨, 수고했어. 너무 잘하는데? 이러다 오명 세탁소 인기를 추월하는 거 아냐?”
내가 칭찬하자 주작은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이건 재미삼아 하는 사이드 메뉴라고요. 힘들어도 재밌긴 하네요.”
‘주작 라디오, 이불킥’은 승아의 말과 달리 가파르게 인기가 올랐다. 화면도 없고 음악도 없는 유튜브 라디오 방송이라는 컨셉이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 같았다. 토요일 아침마다 그 주의 후회거리를 찾아 올리는 접속자들이 늘었다. 채팅창을 보면 실제로 침대 위에서 듣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 주간의 의식인 것처럼 이불을 발로 차며 후회하고, 그걸 주승아 작가와 나누는 청취자가 많아졌던 것이다.
“이불킥 하기 좋은 토요일 아침입니다. 주작 라디오를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네요. 오늘이 5회째인데 여러분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제가 잘리지 않고 오늘도 돌아왔습니다. 감사드리고, 이불킥 사연 많이들 보내주세요. 킥하기 좋은 뽀송한 이불 깔아놨습니다.”
대본도 없이 접속자가 올리는 글과 진행자의 생각만으로 생방송 한 시간을 버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걸 능수능란하게 해내는 승아가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생갈치1호의행방불명님, 오늘도 슈퍼챗을 쏴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첫회부터 거액의 슈퍼챗을 쏘는 사람이었다. 상한 금액인 50만 원. 아무리 유튜브 방송이 좋다고 해도 매주 그만한 금액을 보내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로서는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행방불명님, 별다른 멘트도 없이 매번 50만 원의 슈퍼챗을 쏴주시는데요. 음, 뭐랄까. 감사하기도 하지만 다른 말씀이 없으시니까 궁금하기도 하네요. 누구신지, 왜 저희 채널에 거액을 쏘시는지, 이불킥 사연은 없으신지 말이죠. 정말 행방불명되신 것 같아요. 저는 궁금해서 의식불명이 될 것 같고요, 하하. 뭔가 정보를 더 주시면 더더욱 고맙겠습니다.”
방송에서 주작이 몇 번 멘트를 했음에도 그 사람은 매회 돈만 보낼 뿐 아무런 메시지가 없었다. 감사함은 궁금함으로, 궁금함은 점점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주작가, 뭐 짚히는 사람 없나? 미련 못 버린 예전 남친이라든가, 로또 맞은 친척이라든가.”
주간 회의에서 공운이 물었다.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 주변에 그런 사람은 없는데……. 특수관계가 아니라면 이런 거액을 매번 내놓을 리는 없고, 돈이 너무 많아서 주체를 못 하는 졸부인가?”
그즈음 우리는 처음으로 배당을 했다. 빨래방도 어느 정도 자리 잡았고, 장비나 공간에 더 투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익잉여금은 계속 쌓여갔다. 우리는 쌓인 잉여금 절반인 5억 원을 배당하기로 결정했다. 투자 비율이 5:3:2였으므로 내가 2억 5천만 원, 공운이 1억 5천만 원, 주작은 1억 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8명의 나머지 직원들에게도 평가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었다.
“내가 뭐라고 했어요. 우리가 억대의 수익을 올리면 지분율 가지고 민감하거나 서운해질 거라고 했죠? 지분율을 정확히 해두었으니 군말 없이 깔끔하잖아.”
자화자찬하는 승아를 공운이 추켜세웠다.
“그러게. 나쁜 미래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하지만 일이 잘 풀릴 것도 단속을 해놔야 되는구나.”
“투자 비율을 정확히 해두자는 내 공이 컸으니까 내 지분을 올려주시면 어때요? 히히.”
너스레를 떠는 승아. 사업이 잘 되어서 그런가 그녀가 더 예뻐 보였다.
“지분율 건드리는 건 어렵고. 이불킥이 점점 흥하면서 수익도 많이 늘어나는데 진행 수당을 높였으면 합니다. 매주 라이브를 진행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 그래서 말인데, 주작의 진행 수당을 올리면 좋겠습니다. 이래저래 기계적으로 따질 건 아니지만, 공운 형님의 절반 수준 어떨까요?”
수고하는 승아에게 그동안 내심 미안했던 내가 제안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공운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목돈을 나눠 갖는 날, 우려했던 불화가 시작되는가 싶어 나는 불안해졌다.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공운은 잠깐 말없이 앞에 있던 음료를 들이켰다. “얼굴과 실명은 안 나와도 매주 정확히 치러내야 하는 생방인데 그 정도로는 안 돼. 나랑 똑같은 수준으로 올릴 것을 역제안함.”
하마터면 나는 그를 끌어안을 뻔했다. 놀랐다가 안심하는 표정으로 봐서 주작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듯했다. 우리 셋은 크게 웃으며 합의했다.
‘주작 라디오 이불킥’의 성공은 내게 묘한 감정의 변화를 몰고 왔다. 승아를 향한 사람들의 환호가 커질수록 내 마음 한 켠에서는 불안감 같은 것이 치고 올라왔다.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의 성공-주작은 우리의 성공이라 말하지만-에 기쁘면서도 마냥 기쁘지는 않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생갈치1호의행방불명이 스토커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것이다.
승아가 집 근처에서 있었던 전날 밤 일을 말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정작 그녀 스스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아파트 공동 현관에서 비번을 누르려고 하는데 화단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엄청 식겁했네. 양복 차림의 웬 남자가 머리를 긁고 있더라고요.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보니 키도 훤칠하고 멀끔하게 생긴 사람이었어요. 그러더니 뭐라는 줄 알아요?”
내가 듣기에는 괴한이 출연한 괴담인데 승아는 무용담처럼 말했다.
“‘저 행방불명입니다’ 그러지 뭐예요? 순간적으로 당황했어요.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정신병자인가 싶었죠. 5초쯤 생각한 끝에 알았어요. 행방불명, 우리 라이브 방송에 슈퍼챗 쏘는 그 사람 아이디라는 걸.”
“그 생갈치1호의행방불명?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어떻게 되긴요, 그쪽에서 먼저 사과하더라고요. 내가 언제 올지 몰라 나무에 기대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났다면서, 놀래킬 의도는 아니었다고.”
승아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나는 불쾌감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다.
“정신병자 아니야? 그 자식이 왜 집 앞에서 승아 씨를 기다린대? 주소는 어떻게 알아냈고?”
얼마 전 승아는 받은 배당금을 보태 사무실에서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주인님 섬기는 세입자 신세는 변함없지만’이라면서도 원룸 신세를 졸업한 것이 기뻐 보여 나까지 흐뭇해졌다. 그런데 옮긴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새 집에 스토커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게요. 그걸 못 물어봤네. 경황이 없어서…….”
그녀가 동물이었다면 천적에게 잡아먹히기 딱 좋은 초식동물이었을 거다. 위험천만한 일을 천진난만하게 받아들이는 승아가 답답해 나는 한숨을 쉬고 말았다.
“경찰에 신고는 했나?”
“신고를 왜 해요? 우리 구독자인데. 게다가 매번 거금의 후원금을 내주는 서포터인데.”
“주작, 미친 거 아냐?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위험하게 낯선 사람을 경계심도 없이…….”
말을 뱉고 난 순간, 내가 실언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분한 내 모습에 그녀도 놀란 것 같았다.
“내가 미쳤다고요? 뭘 어쨌길래요? 사람들 오가는 아파트 공동 현관이 위험한 장소도 아니고, 초면이지만 스트리밍에서 인연도 있는 사람인데 몇 마디 대화했다고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 되나? 피디님이야말로 이상하신 거 아녜요? 왜 과잉반응을 하고 그래? 평소답지 않게.”
기분이 상했는지 말을 내지른 승아가 곧바로 자리를 떴다. 그녀가 닫고 나간 사무실 현관문에서 찬 바람이 느껴졌다.
나는 자괴감에 빠졌다. 해서는 안 될 말이었고, 떨어서는 안 될 오지랖이었다. 우리 사이에는 침범하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유지해 주던 선이 있었다. 누구도 말하지는 않았지만 둘 다 그걸 의식하고 있었다. 선을 넘는 순간 관계도 깨진다는 우려도…….
어쩌면 그날 나는 선을 넘었는지도 모른다. 평소답지 않다는 주작의 말도 옳았다. 하지만 진짜 평소답지 않았던 것은 나한테 느껴지는 주승아라는 존재였다. 게다가 그 보이지 않는 선이 어디쯤 설정되는지, 넘었는지 아닌지, 불쾌한지 아닌지는 미리 알 수 없다. 그래서 어려웠다. 관심과 오지랖은 한 끗 차이인 것이다.
그녀의 신상에 별다른 피해가 없었으므로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는 걱정을 멈출 수 없었다. 그 ‘행방불명’이라는 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언제 또 나타날지, 무슨 나쁜 짓을 하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최악의 경우도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멀끔하게 생긴 자가 승아의 마음을 빼앗으면 어쩌나 싶은 우려였다.
뻘쭘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며칠 동안 대화가 없었다. 업무에 꼭 필요한 대화만 사무적으로 주고받을 뿐이었다. 토요일 이불킥 스트리밍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오늘도 슈퍼챗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생갈치1호의행방불명님 이번 주에도 슈퍼챗을 쏴주셨네요. 고맙습니다. 다른 분들 위화감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슈퍼챗이 얼마든, 댓글 남겨주시는 것만으로도, 아니 들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리니까요.”
집에서 접속하던 나는 심술이 났다. 내게는 말문을 닫아놓고 본명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과는 살갑게 대화를 나누는 승아가 얄미웠다. 위화감인지, 질투심인지 모를 뭔가가 부글거렸다. 며칠 전 흥분해서 저지른 타박이 후회되기도 했다. 나는 급히 아이디 하나를 새로 만들어 댓글창에 글을 썼다. 대화명은 ‘비와당숙’이었다.
‘며칠 전 동료에게 해서는 안될 말을 했어요. 답답한 마음에 상대에게 타박을 줬는데 상처가 됐나 봐요. 저는 그 사람의 행동이 위험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무슨 상관이냐면서 싸늘하게 대하네요. 내내 후회가 되면서 이불킥 하고 있습니다. 제가 불필요한 오지랖을 떤 거죠?’
글을 써 올려놓고 주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연 소개는 없었다. 워낙 많은 실시간 댓글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접속해 있는 5,244명의 어중이떠중이들 중 하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상했다. 내 마음속에 주승아는 점점 특별해지는데 나는 저 많은 이불키커 중 하나에 불과하단 말인가?
나는 오기가 생겼다. 이번에는 슈퍼챗 10만 원과 함께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특수관계자끼리 주고받는 슈퍼챗은 실속이 없다. 금액의 30% 정도를 운영사인 구글에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인들끼리 쾌척하는 이유는 생색 내기, 체면 차려주기의 의도다. 나처럼 바보 같은 이유에서 내 채널에 슈퍼챗을 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드디어 그녀가 사연을 읽었다.
“처음 오신 분 같네요. 비와당숙님, 지금도 비가 오고 있죠? 5촌 당숙이 생각나는 날씨입니다, 하하. 이분의 이불킥 사연을 볼까요? 동료분에게 상처가 될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불필요한 오지랖을 떨었다고 자책하고 계시는군요. 상대가 위험할까 봐 그랬다고 하십니다. 음, 이거 전형적인 ‘미필적 고의에 의한 마상’이네요. 여러분 검색하지 마세요, 제가 만든 말이니까요. 의도는 선하고 순수한데 상대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결과를 초래한 겁니다. 비와당숙님은 아무래도 그 동료분과 썸을 타고 계신 것 아닐까 추측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왜 동료의 위험을 걱정합니까? 게다가 왜 상처 준 게 신경 쓰여 이불킥까지 합니까? 왜 슈퍼챗까지 쏘면서 자책 사연을 보내느냐, 이겁니다.”
순간, 들켰다는 부끄러움이 나를 엄습했다. 내 마음은 확실히 탄로났다. 만약 주작이 내 정체까지 알아낸다면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는 숱한 어중이떠중이 속의 한 명이라는 사실이 속상하더니 지금은 무리 속에 익명의 청취자로 남고 싶었다. 부끄러움과 함께 제발 승아가 알아채지 못했으면 하는 간절함이 솟구쳤다.
“비와당숙님께 솔루션 드립니다. 잘 들으세요. 용기를 내서 동료분께 말씀하세요. 미안하지만 미안하지 않다고. 주제 넘어서 미안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시키는 걸 어떻게 저항하느냐, 당신 걱정을 참고만 있으란 말이냐, 이렇게 말씀하세요. 사과를 빙자한 고백이죠. 이불킥이 아니라 진격의 발차기를 하시라고요. 전화위복! 아시겠죠? 제 팁이 통했는지 후일담도 꼭 올려주세요.”
다음 사연으로 넘어가자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이 새어 나왔다. 주작의 말을 듣는 동안 온몸이 긴장됐던 모양이다. 한번 더 이불킥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미련한 짓은 연달아 하게 되는 걸까? 누군가 말했다. 사랑은 필요한 분별력을 빼앗고, 불필요한 상상력을 선사한다고. 선을 넘어 상처가 될 말을 내뱉고, 승아의 심기를 살피고, 그녀의 방송에 사연까지 보내는 내가 정상인가? 읽어 달라고 보낸 글이 나오지 않아 속상하고, 정작 글과 마음이 읽히니 후회하고 있는 내가 정지강 맞나? 분별력 잃은 내 행동은 사랑의 증상인가? 나는 이불을 걷어차는 대신 내 못난 몸뚱이를 이불 속에 깊이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