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마음의 방향이지, 조건들이 미친 영향이 아니다
승아가 창문 덮개를 열자 엄청난 양의 빛이 들어온다. 작은 움직임으로 기지개를 한번 켠 후에 나는 시계를 본다. 오전 6시. 기내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깰 때가 된 것이다. 방콕에서 갈아 탄 비행기는 육중하고 고른 중저음을 내며 날고 있다. 좌석 앞 패널 화면을 보니 착륙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다. 잠에서 깬 뒤라 그런지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다. 나는 기내용 담요를 목덜미까지 올린다.
“좀 잤어?”
“마는 둥 자는 둥.”
대답하는 그녀의 눈은 트레이 위에 펼쳐진 책에 고정돼 있다. 제목이 ‘디톡스의 나라 부탄’이다. 책 내용은 이미 여러 번 승아에게서 들었다. 읽지도 않았는데 핵심적인 내용을 알 것 같다. 부탄, 국민총생산이 아니라 국민총행복(GNH-Gross National Happiness) 추구를 헌법에 명시한 나라, 자연환경과 고유문화의 보존을 위해 관광객 수를 제한하는 나라, 공식적으로 흡연을 금지하는 유일한 나라, 7층 이상의 건물을 못 짓고 전통 문양의 익스테리어와 인테리어가 의무화된 나라,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날아가고 있다.
행선지가 갑작스럽게 바뀐 것은 지난 연말 즈음이었다. 나와 승아는 오명 세탁소 정리를 위한 모든 계약과 행정 업무를 마치고 세무 당국의 승인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직원들과의 환송회도 마쳤고, 더 이상 사무실이나 빨래방에 나갈 이유도 없었다. 하릴없이 우리는 도서관에 틀어 박혔다. 그곳에서 승아는 ‘디톡스의 나라 부탄’이란 책을 찾았다. 책을 다 읽던 날 그녀가 여행지를 바꾸자고 말했다. 제안이 아니라 결정 통보였다.
“뉴질랜드 대자연이 로망이었다면서? 서운하지 않겠어?”
“거긴 나중에 신혼여행으로 가죠 뭐. 누구랑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농락당하면서도 좋은 기분이 드는 것이 사랑이고 연애인 것인가?
“자연이나 문화나 산업을 보는 여행은 언제든 어디서든 가능하잖아요?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여행은 부탄만 가능할 것 같아서.”
그게 부탄 여행의 이유였다. 여행 준비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워낙 극소수만 가는 관광지인 데다 부탄 정부에 등록된 여행사를 통해서만 관광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개별 관광여행은 금지이고 가이드 동행이 의무인데 높은 가치의 여행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란다. 게다가 입국 정원이 찼기 때문에 여행 시기와 기간도 우리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고 여행사와 조율해야 했다. 인기는 없지만 매력은 있는 여자한테 고백했다가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받는 느낌이었다.
“부탄 사람들의 행복을 일주일 동안 이식받고 올 수 있을까?”
승아의 손을 잡으면서 내가 중얼거린다.
“이 책에도 나오는데 오해하면 안 된대요. 그들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지,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단정 짓지 말아야 해요. 부탄인들에게는 그 구분이 의미가 없지만 국민총생산에 익숙한 외국인들에게는 과정과 결과를 나누는 습관이 있으니까요. 심지어 행복마저도.”
나는 오명 세탁소 시절을 돌이켜본다. 조바심에 사로잡혔던 초반 6개월, 급증하던 숫자-구독자 수와 통장에 찍히던 입금액-에 성취감과 아찔함을 동시에 느꼈던 성장기, 일과 사람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던 후반기. 좋은 경험이었다. 그러나 누가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흔쾌히 대답할 수는 없다. 그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행복은 마음의 방향이지, 조건들이 미친 영향이 아니다.
“공운 님은 행복하게 잘 살겠죠?”
책을 덮으며 승아가 말했다. 두고 온 가족을 걱정하듯.
“이름대로 뒤집어도 똑같은 인생을 살겠지. 지루하게 산다는 뜻은 아닐 거야. 자기답게 산다는 의미일걸? 그 형님 마음에 새겨진 옹이는 보통이 아니야. 흔들리지 않는 뚝심이 있지.”
구 사장과의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나는 공운이 흔들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때의 동요는 뜻밖의 과거를 마주친 해프닝에 불과했다. 공운의 현재와 미래를 흔들만한 파급은 아니었던 것이다.
“네. 저 공운과 같이 춤추고 노래하던 카이입니다.”
구 사장이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평정심을 되찾은 공운은 말없이 듣기만 했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이제 주작뿐이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몰라 볼 수 있지? 계약서에 이름도 있었는데…….”
승아는 중학교 시절부터 포에버보이즈, 그중에서도 카이의 열혈 팬이었다고 했다. 우리가 세든 점포의 주인이 그였다는 사실과 계약하던 날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그녀는 몹시 놀랐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20년이란 세월을 무시하면 안 되지. 그리고 관심과 무심의 차이도……. 소녀 주승아가 팬심으로 바라보던 카이와 임대차 계약을 위해 만난 중년의 건물주 구승민은 엄청난 차이인 것이다. 어쩌면 관심의 여부는 수십 년의 세월보다 더 큰 인식의 차이를 빚어내는 것이리라.
“우리 해체하고 처음 만나지?”
구승민 사장, 카이가 공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 것 같네. 어떻게 지냈어?”
담담한 어조로 공운이 되물었다.
“이런저런 사업을 하면서 지냈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고. 그래도 제법 성공했으니 공운과 동업자들에게 공간도 빌려준 것 아니겠어? 하하.”
카이가 호탕하게 웃었다. 종업원 두 명이 전채 요리를 나르러 들어왔다.
“궁금한 게 많겠지만 먹으면서 차차 얘기합시다.”
게살 수프였다. 뜨거웠으므로 우리는 음식을 식혀야 했다. 상상 밖의 만남 때문에 생긴 당혹감도 시간을 두고 진정시켜야 했다.
“가까운 일부터 설명해 드릴까?”
이윽고 카이가 입을 열었다. 오명 빨래방의 건물주가 된 사연부터 말했다.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공운이 오명 세탁소 채널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카이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멤버들의 근황을 늘 궁금해했고, 특히 동갑인 공운이 어떻게 지내는지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확인하며 지냈다. 우리 채널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카이는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내가 임대차 계약을 위해 연락했을 때 그는 놀랐다고 했다. 자기가 소유한 주상복합 상가에 옛 동료인 공운이 세입자로 들어오게 되는 거였다.
“계약하던 날, 공운 너는 안 온다고 전해 들었지. 그래서 내가 요구했어. 계약 끝나는 시점에서 식사하자는 조건을 넣었지. 오늘만큼은 참석하라는 뜻을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서 몇 번 전하기도 했고.”
이상한 임대차 계약에는 그런 내막이 있었다. 공운은 말없이 게살 수프만 내려 보고 있었다.
“스몰토크를 먼저 하고 싶었는데 안 되겠네. 그때 일을 매듭짓지 않고서는 분위기가 계속 이렇겠어.”
카이, 구승민은 포에버보이즈 해체 당시를 회고했다. 언론과 팬들에게 알려진 내용은 이랬다. 카이가 호감을 가지던 여자 백댄서를 공운이 빼앗다시피 했고, 둘 사이의 불화가 깊어져 팀 해체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이의 설명은 달랐다.
백댄서로 함께 활동하던 여자를 카이가 성추행했다. 공연을 준비하던 중 둘만 남은 탈의실에서 그녀의 몸을 더듬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성희롱은 추태로 손가락질은 받았어도 범죄라는 인식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 쪽의 옷차림이나 행실을 문제 삼는 분위기마저 있었다.
그러나 인기 그룹의 멤버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형사 처벌까지는 아니겠지만 연예 활동을 계속하기는 힘들다. 팀 리더였던 공운은 문제 삼으려는 그녀를 따로 만났다. 그리고 회유했다. 소문이 퍼지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지는 게임이다, 회사와 의논해서 위로금을 마련하겠다, 우리 팀과는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겠지만 다른 그룹에서 활동하도록 추천해 주겠다, 그런 뜻을 전했다.
여자는 마지못해 공운의 제안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던 중에 뒷말이 퍼졌다. 카이가 성희롱을 했다는 말이 몇몇 연예계 종사자들 사이에 돌았다. 공운은 맞불을 놓기로 결심했다. 한 여자를 두고 공운과 카이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처럼 말을 지어냈다.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화하기도 했다. 카이의 잘못을 덮기 위해 삼각관계라는, 덜 치명적인 이슈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모든 일을 공운은 독단적으로 진행했다. 카이뿐만 아니라 다른 두 멤버, 주강과 시현과도 의논하지 않았다.
갈등은 거기에서 비롯됐다. 자존심 센 카이는 공운의 수습책을 견딜 수 없었다. 배려 차원이었겠지만 무시당한 느낌도 들었다. 구설수를 막고 팀을 구하기 위한 공운의 방식이 카이의 반발심을 샀다. 그렇다고 대놓고 따진 것도 아니었다. 팀에 민폐를 끼쳤다는 죄책감, 자기 의견이 무시된다는 소외감, 독불장군식 리더에 대한 반발심 등이 뒤섞였기 때문이었다.
“공운이 저 대신 오명을 뒤집어쓴 거죠. 제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었는데도 왠지 모르게 화가 났어요. 사고는 제가 쳤으면서……. 자존심도 상했고 아무튼 복잡한 마음이었어요. 차라리 내가 직접 시인하고 자숙이든 은퇴든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멤버들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어요. 그때 포에버보이즈는 끝났죠.”
카이가 말을 마치자 공운이 고개를 들었다.
“20년 전 일을 잘도 기억하네. 난 다 잊었는데.”
기억력을 과대평가하는 현실이 다시 떠올랐다. 기억력만큼 망각력도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공운은 망각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망각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나의 현재와 미래에 도움 되지 않는 기억을 꺼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마치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부탄 사람들처럼 말이다.
“옛날 얘기 다 했으면 지금 어떻게 사는지나 얘기해 줘라. 아니면 포에버보이즈 컴백 계획을 말하든가.”
공운이 농담을 하자 굳었던 분위기가 녹았다. 깐풍기가 들어왔다. 카이가 고량주를 주문했다. 충격을 벗어난 주작은 카이에게 오랜 팬심을 드러냈다. 둥근 테이블 앞에서 우리 넷은 잔을 부딪혔다. 따스한 겨울밤이었다.
밝은 표정의 승무원이 기내 담요를 걷어간다. 우리의 밤 비행을 따뜻하게 해 주었던 각자의 담요를 그녀에게 건넨다. 나는 동사 몇 개를 떠올린다. 덮다, 입다, 빨다, 널다, 개다……. 빨래는 다시 입고 덮기 위한 작업이다. 설거지가 다시 먹기 위한 일이고, 다시 공간을 누리기 위해 청소를 하듯 말이다. 반듯하고 정갈하게 개어 놓는 것이 빨래의 완성이다. 나는 가늠해 본다. 우리 조상들은 왜 ‘접다’라는 흔한 말 대신 ‘개다’라는 특수한 동사를 썼을까? 빨래는 마지막까지 정성이 들어가야 해서가 아닐까? 개는 것은 확실히 접는 행동보다 마음을 더 써야 한다. 다시 입을 설렘을 담아야 한다.
이름과 관계, 비난과 옹호, 후회와 각오에 대한 지난 3년의 이야기가 접힌다. 아니, 개어진다. 이제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그게 무엇일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잘 개어진 우리의 과거가 산뜻하고 든든한 자양분이 될 것임을 나는 느낀다.
승아와 나는 피곤한 몸과 설레는 마음으로 팀푸 공항에 들어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