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브라우니는 누가

사람들은 굶주린 상어 같았어요. 저희는 실수로 피를 흘린 다이버였고요.

by 이지완

그날 밤 나는 자각몽을 꾸었다. 꿈속에서 넌더리 빨래터 모임이 열리고 있었고, 나는 멤버들과 함께 대형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웬일인지 사업 담당 직원인 박하영 씨도 함께였다.

“대표님, 아니 지강 씨. 혹시 마지막 브라우니는 누가 게임 아세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박미현 씨가 질문을 던져 놓고 뱅쇼 한 모금을 마신다.

“케이크 말씀이신가요? 게임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녀는 휠체어 옆에 두었던 작은 상자를 테이블에 올렸다. 정육면체 커버를 벗기자 앙증맞은 크기의 브라우니가 나타난다. 납작한 진갈색 빵 위에 검은 초콜릿 시럽이 멋지게 줄무늬를 이루고 있다. 브라우니라면 나도 잘 안다. 방송사 교양 피디 시절, 디저트에 대한 다큐를 제작한 적이 있었다. 브라우니는 19세기말 미국 메인 주의 한 주부가 실수로 베이킹파우더를 넣지 않아 탄생했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케이크가 부풀지 않고 꾸덕해졌는데 사람들이 그 식감에 호응하며 유명한 초콜릿 디저트가 되었다는 얘기다. 실수는 오명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이렇게 유명세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저희는 모임 끝날 즈음 항상 이 게임을 해요. 각자 맘껏 신세한탄을 늘어놓고 가장 큰 동정을 받는 사람이 이 브라우니를 차지하게 되죠. 말하자면 ‘가장 불쌍한 사람 배틀’ 같은 거예요.”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기억난다. 영화 <노팅힐>에 이 게임 장면이 나온다. 무비 스타인 줄리아 로버츠가 런던의 노팅힐이라는 동네에서 평범한 책방 주인 휴 그랜트를 만난다. 썸을 타다가 어찌어찌 그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는데 디저트 타임에 한 게임이 그거였다. 모인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하소연하는데 우승자가 마지막 남은 브라우니 조각을 차지한다. 내 기억으로는 줄리아 로버츠가 이겼던 것 같다(세계적인 영화배우가 처량함 1위라니!). 영화에 박미현 씨와 같은 이동 장애인이 나오는 것도 기억났다. 아마 휴 그랜트의 누나였을 거다. 여자 주인공의 비범함과 남자 주인공의 평범함이 극적으로 뒤섞이는 계기가 바로 마지막 브라우니 장면이었다.

“우리는 늘 예쁘고 멋져 보이는 노력에 치여 살잖아요. 특히 SNS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화려하고 그럴싸한 내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게 되죠. 진짜 내 마음이 어떤지조차 모르고 살아요. 고달픈 것도 내 몸이고 서러운 것도 내 마음인데 그런 부정적인 것들은 억압받고 숨어 버리게 되죠.”

미녀 첼리스트 표승희 씨가 말한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균형을 맞춘다고 해야 될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스스로를 처량하게 보는 거예요. 빨래도 그런 거 아니겠어요? 더럽다고 생각해야 깨끗해지는 원리잖아요. 내 마음의 얼룩도 드러내놓고 세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우승하면 맛있는 브라우니도 받잖아요. 얼마나 좋아.”

모임 이름이 넌더리 빨래터인 이유를 알 것 같다. 흥미가 나를 당긴다. 부랴부랴 머릿속으로 내세울 나만의 비참함을 찾기 시작한다. 평범한 집안에서 외동으로 자랐고, 무난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말썽을 저질러 부모님의 근심을 사거나 대단한 성취로 자부심을 산 일이 없다. 주작의 말대로 두루두루 두루치기 같은 삶이었다. 성적에 따라 중위권 대학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했고, 운 좋게 방송사에 들어갔다. 조직 안에서 내 얼굴도 이름도 티 나지 않았다. 표 나지 않았고 모나지도 않았다. 고민 끝에 자영업 유튜버가 되었고 사람들은 대성공이라 부러워하지만 나 스스로는 대단한 성취라고 느끼지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암담해졌다. 도대체 무엇을 내세워야 할까? 도무지 불운하다고 할 만한 얘깃거리가 없다.

다행히 신참이라 맨 마지막에 발언해도 된다고 박미현 씨가 배려해 준다. 첫 주자는 한국화 그리는 송형철 씨였다.

“저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인데 보시다시피 외모가 아름답지 않아요. 사람들이 건달이라고 오해하는데 차라리 정말 건달이면 좋겠다 싶은 때도 있죠. 생긴 대로 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저는 5살 터울의 동생이 있는데요, 걔는 무지하게 잘 생겼어요. 얼짱에 몸짱이죠.”

그가 아내인 표승희 씨를 돌아보며 동의를 구하는 눈짓을 보낸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동생과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비교 대상이었대요. 나이 차이가 꽤 있는데도 말이죠. 이 사람은 자유분방한 예술혼의 소유자인데 동생은 반듯한 엄친아 스타일이라고 해야 되나? 어른들이 누구를 편애했겠어요? 외모에서부터 호감과 비호감이 딱 나뉘었으니까요.”

다시 형철 씨가 말을 받는다.

“걔는 소방관이에요. 2년 전에는 우연한 기회에 스타가 되었죠. 하지만 가까운 사람에게서 인정받지 못하고 모르는 사람들이 환호하는 캐릭터죠. 못난 형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동생 때문에 스스로 비참하다고 여기게 되는 일이 잦아요.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림이 안 팔리는 경우엔 특히 더 그렇죠.”

누가 몽둥이로 내 머리를 내리친 것 같다. 형철 씨는 송정우 소방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둘이 형제지간이고 동생에서서 느끼는 콤플렉스를 토로하고 있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우리 채널에 송정우를 출연시켰다는 얘기를 할 수도 없다. 나는 충격 속에 입을 다문 채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고만 있다. 모두 딱하다는 듯이 동정과 공감의 눈빛을 형철 씨에게 보내고 있다.

“사람들이 제 동생을 두고 영웅이라고 하더라고요. 형으로서 자랑스러워야 되는데 그렇지 않아서 저는 불행합니다. 가족이라면 잘못마저도 두둔해야 하는데 제 마음이 그렇지 못해요. 사회적으로 칭송받는 일은 형으로서 자부심을 느껴야 맞죠. 그것도 안 됩니다. 제 콤플렉스 때문이기도 하고, 그 녀석 인격이 그것밖에 되지 않아서이기도 합니다.”

나는 놀라서 서글픈 그의 표정을 멍하니 바라본다.

“저도 신세한탄 하고 싶어요.”

모임 내내 가장 조용하던 라주아 씨가 말문을 연다. 모두의 눈과 귀가 그녀를 향한다.

“운동선수는 여러 가지로 어려워요. 특히 팀플레이가 필요한 종목은 더욱 그렇죠. 저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어요. 지금은 그만두었지만요.”

라주아 씨가 잠깐 음료를 마신다. 사람들을 둘러보니 서로의 사정을 다 아는 눈치다.

“제 이름은 원래 라현지였어요. 작년에 개명을 했죠. 국가대표까지 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알 거예요. 김성은, 차주연, 라현지 우리나라 여자 빙속 국가대표 선수들이었죠. 성은이와 제가 국제대회에 나가 주연 언니를 왕따 시켜서 망신을 준 일이 있었어요. 그전에 주연 언니가 저희를 상습적으로 괴롭혔기 때문이에요. 저는 제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 은퇴와 함께 개명을 했어요. 저 스스로 현지라는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자존감이 무너졌죠. 물론 성은이와 주연 언니가 갈등의 장본인처럼 돼서 저는 한발 물러나 있었어요. 그런데도 날카롭고 집요한 사람들의 공격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송정우 소방관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한 번의 충격이 온다. 우리 채널의 라이브 스트리밍에 나왔던 김성은과 차주연의 동료 선수가 바로 그녀다. 자각몽이라 나는 꿈인 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저에게 쏟아진 비난이 저는 억울했어요. 내가 한 일이 옳은 것은 아니었지만요. 자기들이 뭘 안다고 제 인생을 통째로 운운하는지. 사람들은 굶주린 상어 같았어요. 저희는 실수로 피를 흘린 다이버였고요. 기쁨이란 뜻의 이름으로 바꿨는데도 기쁨은 쉽게 오지 않네요. 정 대표님처럼 남들은 이름이 예쁘다, 이름 뜻이 멋지다 얘기하지만 제 내면은 아직도 고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라주아 씨가 말을 마쳤다는 듯이 고개를 떨궜다.

“제 차례네요. 저는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몇 달 전에 과천에서 이사를 왔어요.”

상후가 담담한 어조로 말을 꺼낸다.

“원래 저희 집은 부모님, 저, 여동생 이렇게 네 명이었어요. 그런데 3년 전에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죠. 저는 지금 아빠랑 살고, 여동생은 감옥에 갔다온 엄마랑 과천에서 살고 있어요. 엄마는 중학교 교사였어요. 학생에게 손찌검을 해서 잘렸지만요. 어느 순간 우리 엄마 이름 앞에는 폭력교사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저는 폭력교사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어요. 엄마가 뭘 어떻게 잘못했는지 저는 잘 몰라요. 알고 싶지도 않고.”

상후는 감정이 북받치는지 말을 멈추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옆에 앉은 박미현 씨가 손을 올려 상후의 어깨를 쓸어준다. 소용이 없는지 점점 그의 감정이 고조된다.

“가장 좆같은 건 사람들이 이렇게 물을 때예요. ‘너희 엄마는 집에서도 너희를 때리니?’ 이 질문이 왜 힘드냐면요, 어떻게 대답해도 불리하거든요. 안 때린다고 하면 제 새끼는 아끼면서 남의 새끼는 함부로 한다고 비난하죠. 저희가 맞는다고 하면 뭐라는지 알아요? 얼마나 인성이 안 됐으면 제 새끼마저 때리겠냐고 욕을 해요. 얼마 살지도 않은 제 인생이 존나 꼬여버렸어요. 제 잘못도 아닌데 말이죠.”

순하고 반듯해 보이던 상후도 불만을 토로하자 말이 거칠어진다. 그의 엄마는 홍소윤이다. 폭력교사의 대명사였고, 우리 채널을 흥하게 해 준 출연자……. 그녀가 실형을 받고 감옥에 들어간 순간, 폭발적으로 늘던 우리 채널의 구독자와 조회수가 떠올랐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목까지 올라온다.

“음, 브라우니 경쟁이 치열하군요. 저도 참전해 보겠습니다.”

표승희 씨가 말문을 연다. 남편 송형철 씨가 지긋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상후랑 비슷하네요. 불행의 원인이 부모님인 것이. 저희 아버지는 역사학자 표인후입니다. 스타강사죠. 얼마 전에 멋지게 은퇴하긴 했지만. 아버지는 강단이나 방송에서 늘 그럴싸한 말을 했지만 정작 저와 언니에게는 무관심으로 대했어요. 그냥 무뚝뚝한 성격이어서가 아니에요. 가족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을 침묵으로 표현했죠. 정말 친아빠 맞아? 하면서 의심한 적도 있었어요. 밖에 나가서 아버지가 하는 말, 사람들이 하는 아버지에 대한 칭찬이나 존경 따위를 들으면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아요. 유튜브에 나와 끝까지 멋있는 척하면서 은퇴한 것도 가증스럽고요. 어떤 것이 진짜 아버지의 모습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위선에 치가 떨립니다. 낳아주고 키워준-아니, 키워줬다고 하긴 어렵겠네요-은혜가 전혀 고맙지 않아요.”

모든 사람이 나와 관련이 있다. 우리 채널에 나왔던 게스트의 가족이다. 나는 어지러움을 느낀다. 꿈속인데도 ‘이건 꿈일 거야. 꿈이어야 해’라는 생각이 든다. 부담감과 죄책감이 임계치까지 올라온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다. 침묵을 깬 것은 모임의 리더 박미현 씨다.

“17년 전에 저는 길을 걷다가 차에 치였어요. 상촌네거리라는 곳이었죠.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차에 치였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병원에서 눈을 떠보니 이틀이 지났더군요. 척추 수술을 받은 직후였고, 통증이 심했습니다. 죽음은 비껴갔지만 이렇게 못 걷게 됐죠. 보행 점멸등 상황에서 저를 친 차량은 과속하던 택시였대요.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생계형 범죄의 경우는 불구속 수사, 불구속 재판 원칙이 있었어요. 저처럼 하반신을 못 쓰게 된 사고를 일으켰는데도 그 택시는 버젓이 운행을 했죠. 망가진 범퍼를 고쳐서. 망가진 제 척추와 다리는 영원히 못 고치게 됐고요. 불구속이라 기사는 경찰에서 부를 때만 수사를 받았습니다.”

알 것 같다. 상촌네거리 살인 사건. 박상범과 관련된 이야기다.

“오빠는 연년생이었어요. 뭐랄까, 발달장애까지는 아닌데 어려서부터 어눌했죠. 총명하진 못했어도 의협심만큼은 대단했어요. 제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우리 교실까지 쫓아와서 한바탕 난동을 피우기도 했어요. 제가 이렇게 되자 오빠는 분을 참지 못했어요. 결국 제가 사고를 당한 같은 자리에서 대기 중이던 택시 기사를 칼로 찔렀죠. 몇몇 사람들은 오빠 짓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특히 담당 변호사는 저를 여러 번 찾아와서 오빠를 설득해 재심을 하자고 말했어요. 오빠의 범행인지 아닌지 본인이 직접 말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오빠의 복수심이 일을 저지른 것만은 사실이에요.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세 번 힘들었어요. 사고를 당한 날, 오빠가 잡혀간 날, 형기를 마치고 돌아온 오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

눈물이 그녀의 뺨에서 흘러내린다. 미현 씨는 닦을 생각도 없다. 눈물만 흐를 뿐 말투는 덤덤하다.

“택시 기사를 풀어주고 오빠를 가둔 사법 시스템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저는 법원에서 일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아이러니하죠. 거기에 오는 모든 사람은 억울함뿐이에요. 저지른 죗값을 치르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죠. 우리 오빠는 살아생전 바보 소리를 들었어요. 저는 그때마다 동의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위하던 저를 또 다른 불행으로 몰아넣고 떠난 걸 보면 바보가 맞아요. 고마움보다는 원망이 큽니다. 원망보다 그리움이 훨씬 더 크고요.”

2년 전 느꼈던 죄책감이 다시 살아난다. 조용성 변호사의 출연 부탁 메일, 나의 거절, 박상범이 출소와 자살, 조 변호사의 출연과 고백, 모든 과정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서 펼쳐진다. 사람들이 박미현 씨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제 차례인가요? 대표님보다 제가 먼저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모두를 둘러보며 박하영 씨가 입을 열었다. 우리 직원도 나와 연관된 무슨 사연이 있는가 싶어 나는 허탈감과 호기심을 절반씩 느끼며 귀를 열었다.

“저는 아이가 셋이에요. 둘째는 태어날 때 병원에서 사고로 장애를 입었죠. 그날 일은 평생 잊을 수가 없어요. 힘들었지만 분만까지는 순조로웠어요. 첫 아이 때 경험이 있어서 그렇게 무섭지도 않았고요. 아기가 나오고 애 아빠가 탯줄을 자르고 저한테 안기기 전에 간호사가 분비물을 닦으러 5미터쯤 떨어진 신생아 침상으로 이동하는 중이었어요. 악 소리가 나더니 간호사의 무릎이 꺾였고 아기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어요. 의사와 다른 간호사 한 명, 남편까지 동시에 소리를 질렀어요. 아기는 울지도 못하고 숨과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의사가 심폐소생으로 겨우 살리긴 했는데 그 1분 사이에 그 애는 치명적인 두뇌 손상을 입었죠.”

박하영 씨의 입에서 간호사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내 머릿속에는 손지향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제 아들에게서 평생 말과 생각을 빼앗아간 그 여자 이름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어요. 손지향입니다.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뻔하고 남들이 다 누리는 평범한 행복마저 빼앗아간 사람을 어떻게 잊겠어요?”

하영 씨의 말은 슬픔보다 분노에 가까웠다.

“그 여자가 의약품 리베이트 건으로 내부고발을 하는 걸 봤어요. 공익을 위한 정의로운 제보로 포장되더군요. 너무나 가증스럽습니다. 내 아들의 인생을 망쳐놓고, 적당한 합의금으로 실형을 면해놓고 다시 간호사복을 입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어요. 경쟁 병원에서 사주받고 한 짓이었더라고요. 배상금과 변호사 비용이 아까워서 돈도 받았을 거예요. 아이는 평생 재활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버젓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니. 치가 떨리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요.”

다들 숙연해진다. 악몽을 자각몽으로 꾸는 것은 덜 힘든 일이다.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속에서 내 괴로움은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다.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현실보다 더 리얼한 상황 같기도 하다. 이들의 사연이 내 폐부를 찌르는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 꿈에서 깨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제 정지강 씨 차례네요.”

팔짱을 끼고 있는 박미현 씨가 말을 던진다. 그동안 내게 보여줬던 따스함은 사라지고 냉담함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베푼 호의를 돌려받겠다는 뜻처럼 읽힌다. 빚을 돌려받으려는 채무자 같기도 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피해자 같기도 하다.

다시 뒷덜미에 흐르는 식은땀이 느껴진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섯 명의, 열두 개의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내 당황과 침묵이 길어지자 그들의 눈빛은 실망에서 분노로 치닫는다. 불행의 고백이 아니라 이제는 참회를 요구하는 눈동자들이다. 어찌할 바를 몰라 내 몸은 부들부들 떨린다. 느닷없는 어지러움이 느껴지면서 사람들과 테이블이 한꺼번에 시계 반대방향으로 돈다. 화이트 아웃이 되면서 내 시야는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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