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 때와 접을 때, 세탁의 시간은 끝나고

공운 형님 말씀대로 저는 노마드인가 봐요. 여기 풀은 다 뜯어먹었나 봐

by 이지완

이유와 계기는 엄연히 다르다. 그 둘을 헷갈려서는 안 된다. 계기는 어떤 일의 문과 같은 것이다. 계기를 이유로 착각하면 어설픈 자기 합리화가 된다. 반대로 이유를 계기로 치부하면 비겁하다는 소리를 듣기 쉽다.

내가 피의자가 되어 검찰에 소환된 것은 유튜브 채널을 접은 계기일 뿐 이유는 아니다. 주승아 작가에 대한 내 감정도 마찬가지다. 분명 어떤 영향은 있었다. 그러나 그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진짜 이유를 정확히 말할 수도 없다. 나도 내 결정의 진짜 이유를 찾으려고 애써 보았다. 매너리즘, 새로운 도전 의욕, 재충전의 필요성 따위의 말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끝내 알 수 없었고 그래서 공운과 주작, 다른 직원들에게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자, 두부 잡수세요.”

아침에 검찰에 불려 갔다가 저녁 무렵에서야 돌아온 내게 승아가 두부를 내밀었다. 마트에서 사 온 듯한 생두부가 접시에 올려져 있었다. 웬일인지 사무실에 공운도 있었다. 아마 주작에게서 연락을 받고 함께 기다렸을 것이다.

“그래, 정피. 한 입 먹어라. 액땜한다 생각하고.”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됐어요. 빵에 다녀온 것도 아닌데.”

“하얀 두부가 세탁을 상징한대요. 뭐 피디님 이미지가 더러워진 건 아니지만 조금, 아주 조금 스크래치는 생겼잖아요. 오명 세탁소에 출연하는 것보다는 이거 한 입으로 일단락 지으면 좋겠는데.”

자꾸 권하는 승아 때문에 마지못해 포크를 건네받아 한 조각 입에 넣었다.

“오케이. 2차는 길 건너 두부 두루치기 집 어때요? 날이 추우니까 매콤한 두루치기에 소주 한 잔 걸치고 싶다.”

승아의 제안에 공운이 맞장구를 쳤다. 아무래도 둘이 미리 작당모의를 해놓은 모양이었다.

“좋다. 검사랑 맞짱 뜬 정피의 무용담도 안주거리로 딱인데.”

“무용담은 무슨. 고생담이면 모를까?”

고생은 고생이었다. 형사들의 수사 내용을 바탕으로 검찰은 그림을 그렸다. 부도덕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탐욕스러운 병원 원장이 경쟁 병원을 흠집 내기로 모의했다. 관종기 있는 상대 병원의 간호사에게 채용을 미끼로 약품 리베이트 관행을 폭로하도록 사주했다. 미리 작업한 초선의 국회의원에게 내년 총선에서 도움을 주기로 하고 간호사의 폭로를 쟁점화하도록 했다. 공익제보 시민단체는 정의롭고 용감한 신고라는 프레임으로 간호사를 띄웠다. 시민단체의 오랜 후원자인 유명 유튜브 제작자에게 이를 확산시키도록 했다. 마지막 그림의 주인공은 나였다.

설계한다, 짜 맞춘다, 그런 표현은 뉴스에서나 나오는 말인 줄 알았다. 내게 닥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검찰은 정황과 의심으로 그린 그 설계도가 팩트여야 한다는 강박만으로 나를 입건시켰다. 그런 검찰을 상대하는 일 자체가 고역이었다.

담당 검사 얼굴은 오후 늦게 딱 10분쯤 봤을 뿐이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세 명의 수사관들이 번갈아 가며 10개 남짓한 질문을 반복했다. 나도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점심 식사 후에는 2시간 동안 방치되기도 했다. 휴대폰도 압수당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빈 방에서 하염없는 대기를 해야 했다. 머리가 멍해지는 듯했다. 신문이라도 달라고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 답답하게 만드는 것도 수사기법 중 하나인가 싶었다.

내게서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하자 그들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사태를 정리했다. 수사관은 나를 놓아주면서 고생했다는 위로를 건넸지만 빈말이었다. 내 억울함에 전혀 공감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무혐의와 불기소 처분 결과를 곧 우편으로 보낼 거라면서도 사과의 말은 끝내 없었다. 치명적인 오진을 한 의사가 환자에게 안 됐다고 조롱하는 격이었다. 난생처음 당한 수사가 억울함에서 분노로, 분노에서 허탈함으로 이어지는 하루였다.


오징어와 두부를 넣고 자작하게 끓인 두루치기가 나왔다. 보기만 해도 매워 보였다. 양은 냄비 주변으로 대파와 양파, 팽이버섯, 당근 같은 채소들이 조연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힘든 하루와 바꾼 식욕이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자자,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아무 의미가 없죠. 우리 다 함께 건배합시다. 후회 없이 음주할 거라고 말해요.”

공운이 잔을 들며 이적의 노래를 제멋대로 개사해서 불렀다. 주위 테이블 손님 몇몇이 공운을 알아보고 서로 수군거렸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정피, 고생담이라 생각하지 말고 모험담이라고 생각해. 평생 그런 누명을 언제 써 보겠어? 남들은 못하는 유니크한 경험을 한 셈이라 칩시다.”

“비방용 누명 세탁소 열어줄 테니 억울함을 토로해 보세요.”

승아가 내쪽으로 잔을 내밀며 말했다.

“누명이라…… 누추하다고 할 때 그 ‘누’자 맞죠? 이름이 더러워졌단 뜻이네요. 내 이름도 세탁이 필요한 시간인 건가?”

내 목에서 지친 목소리로 신세한탄이 나왔다.

“에이, 이번 일은 정피가 회사 대표라서 그런 거지.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깨끗하게 정리되는 분위기니까 신경 쓰지 맙시다. 따지고 보면 주작하고 나도 같은 일을 당했다고 봐야지. 지분 비율 대로 책임이 있는 거니까.”

공운이 위로를 건넸다.

“그런데 정 피디님, 우리 채널에 대해서 무슨 고민 있으시죠?”

승아가 훅 들어왔다. 사람 마음을 읽는 데 천재인가? 속으로 놀랐지만 아닌 척하려고 나는 소주잔을 들이켰다. 잠깐 고민 끝에 얘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두어 달 전부터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긴 했어요. 특히 아까 검찰 조사받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일이 망설이고 있는 나한테 결심을 부추기는 것 같았어요.”

슬쩍 공운과 주작을 보니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두 분이 너무 애써 주셔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공한 채널이 됐죠. 제가 복이 많은가 봐요. 한편으로는 계속 이럴 수는 없겠다는 마음도 들어요. 지쳤다고 해야 되나? 배가 불렀다고 해도 할 말은 없고요. 방송사 나오기 직전의 심정과 비슷합니다.”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운다’에서 ‘힘들게 자리 잡은 채널을 내팽개친다’로 가는 거야? 하하. 난 정피가 마음에 들어. 특히 그 대책 없는 결단이.”

공운이 무거운 분위기를 녹였다. 고개를 들어 밖을 보니 어느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제가 보기에 정지강이란 이름은 두루치기랑 비슷해요. 볶음도 아니고 찌개도 아닌 중간쯤. 요새 말로 하이브리드라고 할까? 남들은 두루두루 잘한다고 평가하지만 스스로는 극단까지 가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거죠. 우리 사업과 채널도 피디님에게는 도전의 영역이 아니라 슬슬 작별의 영역이 돼가고 있는 것 같아요.”

승아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가만히 그녀 뒤로 보이는 함박눈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둠으로 짙어진 거리와 흰 눈은 묘하게 잘 어울렸다.

“주작 말이 맞아. 정피는 정착민이 아니라 유목민이야. 떠날 때가 된 거지. 그걸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돼. 설레는 의기투합이 있듯이 멋진 작별도 있는 거야. 떠나는 것이 채널이든 사람이든, 회사든 말이야.”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하는 두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요새 기약 없다는 말에 끌려요. 정처 없다는 말도. 약속된 바가 없고 머물 곳이 없다는 건 막막한 일인데도 나이가 들수록 더 그래요. 오명 세탁소 채널, 캐릭터 사업, 빨래방 모두 너무나 사랑하고 자랑스러운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복잡해졌어요. 이것들을 지켜야 되는가, 떠나야 되는가. 공운 형님 말씀대로 저는 노마드인가 봐요. 여기 풀은 다 뜯어먹었나 봐. 이동의 계절이 온 거 같아요.”

두 사람의 배려 덕분에 나는 솔직한 심정을 말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어떻게 정리할지 하나씩 의논해 볼까?”

우리는 두루치기 집을 나와 옆 건물에 있는 와인 바로 들어갔다. 흥겨운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밖에는 계속 눈이 내렸다. 뉴욕의 재즈바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화 <터미널>의 마지막에 톰 행크스가 살던 공항을 탈출해서 이런 술집을 찾아갔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검찰 수사의 피로도 어느새 씻겨 내려간 듯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와인 한 병과 치즈, 하몽을 주문했다.

“해단 기획회의 하기에는 과하게 멋진 분위기네요. 프로포즈라면 모를까.

승아가 웃으며 말했다. 응? 프러포즈?

“3년 반 전 일이 생각나네. 같이 채널 해보자고 두 사람이 집 근처까지 찾아왔었지. 정피랑 주작은 어땠는지 몰라도 나는 너무 좋은 시간이었어. 그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공운이 테이블에 놓인 잔을 흔들자 레드와인이 출렁거렸다. 큼직한 잔은 듬직해서 내 위장과 양심을 맡겨도 될 것 같았다. 그래 오늘밤은 네 힘을 좀 빌리자꾸나.

“저희도 그래요. 형님 아니었으면 우리 채널이 이렇게 흥했을까 싶어요. 여러 가지로 많이 배웠습니다.”

잠시 회상에 젖느라 우리 셋 모두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깬 것은 공운이었다.

“유목민 정지강 피디는 어디로든 가겠지만 난 이제 겨우 정착한 이 땅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 폐업한다면 주작이나 직원들 입장도 곤란할 거고. 그렇다고 인수자를 찾아 값을 받고 넘기는 일도 쉽지는 않을 거야.”

내가 말하기 미안한 현실적인 얘기를 공운이 꺼내주니 고마웠다.

“그래서 말인데 이렇게 하면 어떨까?”

공운의 제안은 이랬다. 채널과 사업 모두를 자기가 맡겠다고 했다. 회사에 남은 이익금은 7억 원 정도인데 그건 나가는 사람의 청산금으로 하자고 했다. 굳이 계산하자면 지분에 따라 3억 5천, 2억 1천, 1억 4천으로 나눠야겠지만 본인 지분을 포기하는 대신 운영권을 인계받는 조건이었다. 내 몫은 3억 5천만 원이 되는 셈이다. 주작이 나처럼 회사를 나온다면 청산금 1억 4천을 받을 것이고, 남는다면 공운과 함께 6:4의 지분으로 계속 함께 일하게 될 거였다(애초에 우리는 5:3:2의 지분구조로 합의했었다).

잠시 생각한 끝에 나는 동의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다. 게다가 1년 전 잉여금 5억 원을 지분에 따라 나눈 몫도 남아 있다. 공운과 내 눈길이 승아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불만인지, 고민인지, 원망인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는 재촉하지 않았다.

얼마나 흘렀을까? 눈 내리는 창밖에 주었던 시선을 거두다가 그녀와 눈빛이 부딪혔다. 그 순간, 나는 이불킥 스트리밍에서 주작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아니, 그녀가 눈빛으로 다시 한번 그 말을 하고 있었다.

“비와당숙님께 솔루션 드립니다. 잘 들으세요. 용기를 내서 동료분께 말씀하세요. 미안하지만 미안하지 않다고. 주제 넘어서 미안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시키는 걸 어떻게 저항하느냐, 당신 걱정을 참고만 있으란 말이냐, 이렇게 말씀하세요. 사과를 빙자한 고백이죠. 이불킥이 아니라 진격의 발차기를 하시라고요. 전화위복! 아시겠죠?”

원망 어린 승아의 눈빛에서 나는 직감했다. 그 순간이 아니면 나는 또 후회하고 말 것임을. 잊었던 강에 이르는 내 이름의 본질을 찾아야 할 때임을. 잡혀서 부러질지언정 화살을 쏠 타이밍이라는 것을.

“승아 씨는 나랑 같이 합시다.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같이 해보고 싶어.”

승아가 아니라 내가 말을 꺼내자 공운은 놀란 듯했다. 그러나 승아는 만족과 안도의 표정이었다.

“이제야 말귀를 알아들으시네. 비와당숙 님.”

“…….”

승아의 입에서 비와당숙이라는 말이 흘러나왔을 때 나는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이미 그녀는 내 정체와 심경을 다 알고 있던 거였다. 그러자 홀가분해졌고 조금 더 용기가 생겼다.

“일 말고도. 사적으로도 함께하자고.”

내 말에 공운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호, 뭐야. 드디어 정피가 화살 쏘는 거야?”

나는 주승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개나 걸이 아니라 모가 되고 싶었다. 우유부단한 햄릿이 아니라 무모한 이카루스가 되고 싶었다.

“언제 내가 피디님 제안을 거부한 적 있었나요? 기다린 적은 있었지만.”

승아는 말해 놓고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뭐야, 이거. 사업 청산 자리에서 새로운 뭔가가 싹트는데? 나 지금 어지러워. 와인 때문인지 너희 때문인지 모르겠다.”

공운이 남은 레드와인을 들이켰다. 다시 고개를 든 승아의 얼굴에 웃음이 번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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