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상부르그 공원에 앉아 있다. 파리지엥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공원이다. 넓다. 무지 넓다. 사람들과 새들도 많다. 볕바라기를 하거나 떠들거나 먹이를 먹고 있다. 구름이 해를 숨기면 서늘하고 해가 구름을 비끼면 따사롭다. 어제 붕괴됐던 멘탈이 오늘은 꽤 회복됐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사라진 가방은 여전히 받지 못하고 있다. 어젯밤 공항 분실물 센터에 전화했다. 내 여행가방이 어디 있냐고 묻자 아직 독일에 있단다. 난생처음 외국어로 심하게 항의했다. 자기는 센터 직원일 뿐 루프트한자 직원이 아니라며 억울해했다. 마음이 약해진 나는 다시 읍소 모드로 돌아왔다. 양말도, 속옷도, 면도기랑 수건도 없다, 제발 돌려다오, 내 숙소 주소 알지? 나 미치기 직전이란다 플리즈.
숙소 방에는 2층 침대가 4개라 총 8명까지 수용한다. 남녀 공용인데 주로 위층에 여자를 배정해 주는 것 같다. 각 침대에는 커튼이 있지만 당연히 코 고는 소리를 막아주진 못한다. 우리 방에는 모코로 무슬림 아저씨(이름은 모르고 요새 라마단이라 해 지기 전에 허겁지겁 먹으며 첫인사를 나눴다. 식사 후에는 소리를 내면서 절을 했다), 이름이 월리엄인 중국계 미국인 청년, 영어도 불어도 단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 브라질 여자(내가 삼바를 외치면 웃는다), 어느 나라인지 모르겠는 흑인 여자와 백인 남자 각 1명씩이다.
어제는 루브르와 콩코르드 광장, 마들렌 성당을 보고 라파예트 백화점 옥상에서 파리 시내를 내려다봤다. 숙소에 오니 기다리던 짐은 없고 배는 고팠다. 분노의 통화를 하고 나니 더 고팠다. 데스크에서 수건을 빌리고 근처 슈퍼에 가서 양말 두 짝과 니베아 크림, 칫솔치약을 샀다. 구황 제품들이다. 프링글스와 물도 한 통씩 샀다. 돌아와서 윌리엄을 꼬셔 식당으로 데려갔다. 얘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25세 직딩인데 독일과 네덜란드, 폴란드를 거쳐 어제 프랑스로 왔다. 피곤해서인지 그다지 의욕이 없어 보였다.
식당은 바와 펍을 겸해 운영되는데 숙박 손님은 25프로 할인이다. 샌드위치를 시키니까 내 분노를 아는 직원이 감자튀김을 위로의 서비스로 내줬다(항의 전화를 하게 전화기를 제공해 준 사람이다). 윌리의 중국 이름은 서경덕이었다. 별로 할 말이 없어서 조선시대 서경덕과 황진이 얘기를 해줬다. 그는 내 이름을 써보라고 하더니 중국식 발음을 알려줬다. 지금은 잊어버렸다. 우리는 다양한 주제로 대화했다. 미중 사이에 어느 쪽이 더 너의 정체성에 가깝냐고 물었더니 정확히 반반이란다. 신상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의 교육열과 출산율(너무 극명하게 대비되는!), 미중 갈등과 대만 전쟁 가능성, 북핵 문제와 우크라이나 상황까지 이어졌다. 내가 유엔 대사가 된 듯한 느낌...
먹이도 다 먹었겠다, 국제정세 얘기도 지쳤겠다 올라가려고 하려는데 옆 테이블에서 말을 걸어왔다. 여자 셋인데 같이 게임을 하자는 것이었다. 음악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보드게임은 재밌었다. 카드에 적힌 상황에 따라 각자의 카드 중 가장 그럴싸한 걸 내서 당번의 선택을 받으면 점수를 얻는 게임이었다(제목은 모르겠다). 가령 A가 뒤집은 카드에 "엄마는 아빠에게 땡땡 때문에 화가 났다"라고 쓰여 있으면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가지고 있는 7장 중에 가장 기발하고 그럴싸한 카드를 낸다. 섞은 다음 A가 내 것을 골라주면 내가 그 판은 윈. '처진 엉덩이' 같은 저질 카드가 점수 따기 좋았다. 엄마가 정말 화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단어가 어려워 고생을 좀 했다. 이해하는 데도 오래 걸려 늘 마지막에 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 빼고 전부 미국인들이었다. 백인, 흑인, 베트남계 각 한 명씩. 난 비속어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순진한 윌리는 여자들 깔깔대는 소리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슬랭을 이해하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아 절반 밖에 웃지 못했다. 그런데도 3등을 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아재 데리고 노느라 얘들아 고생 많았다. 올라가서 씻고 누웠더니 누군가의 코골이 소리가 들렸다. 잠깐 심란했지만 곧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