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숙소로 돌아오자 짐이 와 있었다. 하마터면 게스트하우스 직원을 끌어안을 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혹은 상륙한 연합군을 맞이한 노르망디 지역의 유태인이나 쑥 마늘의 숙제를 마친 곰(단군의 어머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베드로,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한 대표팀을 맞이한 아르헨티나 시민이 된 것 같았다. 역시 고난 없는 영광은 없고 죽음 없는 부활도 없고 가시 없는 면류관도 없다. 나는 헤어졌으나 극적으로 다시 만난 연인인냥 방으로 끌고와 한참을 바라보았다. 하마터면 톰 행크스를 떠난 배구공 윌슨이 될 뻔한 녀석, 그러나 종국엔 날 저버리지 않은 기특하고 고마운 놈이다.
알라신에게 기도하고 있는 모로코 아저씨처럼 나도 이 녀석에게 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기분이 좋아 룸메이트들에게 자랑을 했더니 축하가 돌아왔다. 어제는 푸념을 오늘은 자랑을 하니 조울증 환자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샤워를 했다. 겉옷이든 속옷이든 얼마 만에 갈아입는 옷인가! 수요일 새벽에 집을 나오면서 입은 것이니 사흘 만이다. 사람들의 양해를 구하고 자축의 피리 연주를 했다(플루트마저 이뻐 보인다). 장소가 장소인만큼 대성당들의 시대를 연주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주제곡이다. 앵콜을 받아 중국계 미국인 윌리엄(본명 서경덕)을 위해 첨밀밀(蜜)의 월(月)량대표아적심도 불었다. 하늘에 뜬달만이 내 기분을 알 것이다.정말이지 꿀물 같은 기분이었다.
성금요일이지만, 그리고 라마단을 지내는 무슬림 룸메에게 미안했지만 윌리와 일잔을 했다. 모로코는 끼지는 않았는데 가끔 내게 말을 걸었다. 본의 아니게 둘 사이에 통역을 하게 됐다. 짥은 영어와 더 짧은 불어가 토토리 키재기를 하였다. 다행히 둘은 서로 크게 관심이 없었다. 삼바의 여인은 이층 침대에서 내 연주에 박수만 칠 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포투투갈어는 아무도 몰랐고 그녀는 영어, 불어를 한 마디도 못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언어는 핑계고 어울리지 않고 싶은 성향 때문이리라.
윌리(그새 좀 친해졌다고 애칭으로 부른다)는 오늘 아침 성공한 루브르 예약시간이 오후 4시라고 그때까지 숙소에 있었단다. 게으른 청년이다. 박물관 투어가 그의 유일한 일정이었단다. 이 녀석아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데... 파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구! 침대가 좋으면 집에 있지 여기 왜 왔냐? 혼내키고 싶었지만 꼰대가 되기 싫어 겨우 참았다.프랑스에서도 똘레랑스는 힘들다. 하기사 얘는 사학년 중반 딱한번이 아니라 이학년 중반 여러번이니까 언젠가 또 오겠지...갑자기 한심한 저 녀석이 부러워짐. 절박하고 부지런한 마음으로 오늘 내가 다닌 곳들을 설명하면서 사진을 보여주자 그의 입이 떡 벌어졌다. 한국인은 근면 성실 정직이라고, 이 사람아!
내 상황과 기분이 나아져서인지 어제보다 더 많은 대화를 했다. 한국의 청년 문제에 관심이 크길래 나는 입시 전쟁, 엔포자, 영끌족 등 헬조선 현상을 말하면서 겸양을 떨었다. 가령, 이런 농담. 세계 각국의 아이들에게 공통의 질문을 했더니 각기 다른 반문이 돌아왔다. 질문은 다른 나라의 식량 부족 현상에 대한 너의 견해는 무엇이니? 1. 아프리카 아이들 : 식량이 뭐예요(약간 슬프게 시작한다)? 2. 유럽 : 부족이 뭐예요? 3. 미국 : 다른 나라가 뭐예요? 4. 중국 : (이 지점에서 농담이니 화내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내 견해라는 게 뭐예요? 5. 한국 : (가장 현실과 비슷하다) 그거 시험에 나와요? 윌리가 크게 웃었다. 잠시 후 우리는 둘 다 씁쓸해졌다. 이유에 대해 더 말하진 않았다.
스촨(매운 사천탕면의 그곳이다)이 고향인 윌리엄의 아버지는 물리학자인데 미국에서 재혼을 해 그에겐 배 다른 동생 둘이 있다(어제 이혼율을 언급한 이유가 이거였나 보다. 얘는 이혼반대주의자다). 외삼촌도 과학자인데 생물학이란다. 너는 뭐냐고 물었더니 수학 전공이란다. 오! 난 한국의 수포자 양산 현상에 대해서도 한탄을 했다. 아름답고 심오한 학문이지만 입시 수단이라 대부분 그 매력을 모른다고 고발했다. 드레퓌스 사건 때 J'accuse를 쓴 에밀 졸라처럼 졸라 비장하게! 중국도 비슷하다고 한다. 우리는 또 한숨을 쉰 뒤에 잔을 부딪혔다.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여행기니까 여행지 기록을 조금은 남겨야겠다. 구구절절은 네이버나 유튜브에 미루고 나는 감상 위주로 쓰겠다.
파리의 핵심인 시테섬에 있는 대법원. 자유, 평등, 박애라는 글씨가 써있다.
생트샤펠이다. 고딕 양식과 멋진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하다. 해가 짱짱한 날 가는 게 좋다.
혁명 때 마리 앙트와네트가 갖혔던 콩세르에쥐에 갔는데 다큐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직업병인지 한참을 구경하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판테옹 로비에 있는 푸코의 진자. 레옹 푸코가 나폴레옹의 허락을 받아 설치했다. 역시 지구는 돈다.
프랑스 영웅들의 공동묘지 판데온이다. 오늘도 돈 주고 부러움을 샀다.
아, 판테옹에 대해서는 좀 더 쓰고 싶다. 루브르에서는 어린 애들이 내 부러움을 사더니 여기서는 청소년들이다. 볼테르,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 장 뮬렝 등 프랑스를 빚낸 80여 명의 위인들이 묻혀있다. 향 냄새도 나서 그런지 경건한 분위기다. 중고딩들은 서로 속삭이며 필기도 하고 서로 묻기도 하며 공부한다. 루브르가 전세계에서 훔친 작품들을 걸고 전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곳이라면 여기는 그야말로 프랑스적이다. 나는 부러웠다. 만약 우리에게 신사임당, 이순신, 전봉준, 이상, 김구, 안중근, 이한열의 시신이 함께 안치된 현충시설이 있다면!
생 제르맹 거리에서 본 마카롱 가게. 프랑스 간식과 대통령 이름은 늘 헷갈린다.
퐁네프 다리 위에 있는 엔리케의 동상. 말이 포효하고 있으면 전사, 한 발만 들고 있으면 암살 혹은 전쟁후 부상으로 사망, 네 발 다 내리고 있으면 명대로 다 산 사람이다.
센느강 유람선에서 본 에펄탑. '곧 철거' 방침이 100년을 넘겼다.
퐁네프 다리에서 본 노을은 아름답다. 낭만의 도시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둘러보니 시내 곳곳이 공사판이다. 타워크레인도 많다. 그런데 이것은 부수고 새로 짓기 위한 게 아니다. 고치기 위한 공사다. 파리는 젊음의 도시라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장소에 여러 번 가면 지난 번 왔을 때의 나를 떠올린다고 한다. 그런데 장소의 변화가 없으면 가장 젊은 나를 추억하게 된다. 아, 그때 이랬지, 누구랑 왔지, 우리 사랑했지... 반대로 서울처럼 자주 바뀌는 도시는 내가 늙어가는 걸 깨닫게 해준다.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그새 나는 폭삭 낡았구나... 여러 가지로 내 일상, 우리의 현실과 대비된다. 참고 싶은데, 참으려고 애쓰는데도 자격지심과 부러움이 쉬지 않고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