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강변의 비치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아침에 중국 청년 서경덕이자 미국 청년 윌리엄인 녀석과 작별했다. 다른 숙소로 옮긴단다. 나보다 하루 먼저 떠나는 그의 등에 건투를 빌어줬다. 내 짐 걱정과 나라 걱정을 함께해줘서 그런지 약간 서운했다. 그래도 왓츠앱으로 연락하기로 했다(얘는 나 때문에 첫날 이 채팅앱을 깔았다). 부디 미중 사이에 평화와 윌리의 정체성에 복이 깃들길...
센강 노천카페의 비치의자에 앉아있다, 아니 누워있다
날씨가 좋다. 맑은데 바람은 차다. 우리나라 늦가을 날씨 같다. 3시 반인데 오늘의 첫 커피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작품에 취하느라 커피가 간절했다. 몇 모금 들이키니 이제 좀 살 거 같다. 혼자 여행에서 깨달은 것 하나.긴 줄을 설 때는 주위 사람과 대화하면 시간이 금세 간다. 루브르에서 그랬고 팡테옹에서도 그랬다. 공교롭게도 남녀 커플들과 얘기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수작 의심을 사지 않아 자연스러운 접근이었던 거 같다.
어제저녁엔 마지막 일정으로 유람선을 탔는데 배 위에서 젊은 커플을 만났다. 퐁네프에서 탔은데 동쪽으로 갔다가 유턴해서 서쪽으로 에펠탑까지 다녀왔다. 1시간 반 정도 걸린 듯. 다들 처음엔 위층에서 사진 찍고 놀더니 에펠탑 밑 유턴 이후엔 추워서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다소 일찍 내려와 자리 잡은 나는 4자리나 차지한 것이 미안해 서있는 선남선녀 커플을 앞에 앉혔다. 그들과 대화하자니 돌아오는 20분이 훌쩍 지나갔다.
추위와 낭만을 맞교환하는 센강 유람선 투어
그들은 배우나 모델처럼 훤칠하고 잘생겼다. 여자애는 젊은 시절의 브룩 쉴즈를 닮았고 남자애는 테니스 선수 피트 샘프라스처럼 호남이었다(안드레 애거시가 아니어서 브룩에겐 좀 미안). 로마에서 온 여자애는 세 번째 파리 여행인데 마지막이 10년 전이었단다. 이태리 남부 무슨 도시에서 왔다는 피트 샘프라스(통성명을 안 해서 이름은 모른다)는 나처럼 처음이었다. 전에 가봤다면서도 오르세 미술관이 기차역이었다는 사실을 여자애는 몰랐단다. (어제 기준으로) 안 가 본 나도 아는 걸... 대신 김치를 좋아하고 즐겨 먹는다는 말로 내 국뽕을 만족시켜 주었다.
한국인이라고 하면 서양인들에게서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북이냐 남이냐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중국과는 먼가, 한국은 중국의 속국인가를 묻기도 한다(아마 대만과 헷갈리는 듯). 김정은은 대단한 유명인사인데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악명 높다고 해야겠지. 피트 샘프라스도 스몰 토크가 끝나자 김정은이 어떤 존재인지 물었다. 진지해지기 싫어서 나는 내 막내아들을 즐겁게 해주는 녀석이라고 농담했다. 실제로 위원장님은 많은 남측 잼민이들의 조롱을 한 몸에 받고 있다.어쨌거나 이태리 선남선녀 덕분에 지루하지 않았다. 그라찌에!
배를 타기 전 강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루브르 후문 근처의 레스토랑이었는데 다소 고급졌다. 구글 별점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나로서는 그냥 흘러나오는 냄새와 길거리에 공개된 메뉴판에 의지해 들어간다.(고급 레스토랑에서 가장 저렴한) 파니니를 시켰는데 12유로였다. 커피는 싫어서 뱅쇼를 모험하기로 했다. 7유로 50전. 코딱지 만한 컵에 나온 뱅쇼는 매우 시큼했다. 그게 만원이라니! 설탕을 섞었더니 맛이 조금 나아졌다. 뱅쇼 vin chaud는 뜨거운 와인이란 뜻인데 말하자면 서양 쌍화차 같은 존재다. 온갖 몸에 좋은 것들을 적포도주에 넣고 졸여 만드는 음료인데 알코올은 다 날아가고 없다. 내 기대감도 전부 날아갔다. 웩.
파리의 뱅쇼는 내게 실망을 줬어
파리는 미식의 도시다. 유명한 프랑스 요리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뭘 먹는지 말하면 네가 누군지 말해 주마".
프랑스 애니메이션 영화 라따뚜이를 봐도 알 수 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먹을 것에 목숨을 거는지. 그 이유는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원래 이 땅은 갈리아라 불렸는데 동쪽에서 게르만의 침입을 받아 피가 섞였다. 후에 바이킹(노르만이라고도 불려서 나중에 투항 후 노르망디 지역에 살게 된다)도 여기 사람들을 자주 괴롭혔다. 비옥한 땅 때문이다. 이 땅을 점령한 게르만의 한 줄기인 무슨무슨 족이 지모신(地母神)을 섬겼는데 그것이 지금의 프랑스를 농업국가로, 프랑스인들을 미식가로 만들었다. 영국이 공장을 짓고 무역에 전념할 때도 프랑스는 중농 정책을 고수했다. 지금도 그렇다. 농자천하지대본은 한국이 아니라 프랑스다!
어려서부터 요리 교육을 받는다. 좋은 식재료 고르는 법, 맛을 살리는 요리법, 맛있게 먹는 방법과 식사 예절까지 조기 교육을 받는다. 먹는 걸 생존수단이 아니라 삶의 즐거움이라고 믿는다. 대충 한 끼 때우는 나에겐 매우 낯설지만 부러운 문화다. 어쨌든 파리지엥 속에 섞여 그들처럼 파니니와 뱅쇼를 즐겼다.
빵 쪼가리가 지겨워 오늘 아점으로는 쌀면과 고기가 들어간 국수를 먹었다
프랑스인들은 대화도 극도로 좋아하는 것 같다.요컨대 대화하면서 먹으면 따봉이다. 파니니 뱅쇼가 차려진 옆자리에 모녀가 커피 한 잔을 놓고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엄마가 화장실 간 틈을 타 물어보니 20대의 딸은 베르사유 근처에서 출퇴근을 한단다. 그 잠깐에도 입이 근질거리는지 나한테 속사포를 날리기 시작했다. 못 알아듣겠다고, 찬찬히 말하라고 부탁할 짬도 허락지 않았다. 대충 들어보니 파리가 얼마나 비싸고 복잡하고 살기 힘든지에 대한 푸념이었다. 외곽에 사는 게 낫다는 자기 자랑이 한창일 때 엄마가 돌아와서 둘은 떠났다. 역시 수다쟁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