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가는 비행의 중간 기착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다. 소시지가 생각난다. 파리하면 바게트고 말이다. 내가 사는 대전의 상징이 성심당 튀김 소보루인 걸 우습게 보면 안 된다(얼마나 도시가 노잼이면 한낱 빵이 가장 유명할까 하는 냉소가 대전시민들 사이에 실제로 있다). 어쨌는 근면과 자동차와 맥주와 소시지의 나라 독일로 간다. 자리 앞의 비행 패널을 보니 러시아 상공이나 북극해 어디쯤을 날고 있는 것 같다.
유럽 나라들은 매우 복잡다단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협력과 반목, 무역과 전쟁, 견제와 경쟁은 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직접 인터뷰해 본 것은 아니어서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들을 종합하면 이렇다.독일인들은 프랑스인의 쓸데없는 허세를 우습게 본다. 반대로 프랑스는 독일을 융통성없는 답답 솥뚜껑의 나라로 여긴다. 영국인은 프랑스인이 성질 못 죽이는 다혈질로, 프랑스인은 영국인을 겉과 속이 다른 속물이라고 생각한다.
세 나라의 언어를 들여다보면 이 해석에 신빙성이 더해진다. 영어는 발음에 규칙이 없다. 정확히는 예외가 많다. A라는 철자만 해도 아, 에, 어, 아이, 에이 등 발음이 다양하다. 어떻게 읽는지는들어봐야 안다. 변수가 많은 것이다. 반면에 불어와 독일어는 규칙만 알면 소리 내는 방식을 알 수 있다.A는 그냥 '아'다. 다른 발음은 없다. 특히 독어는 쓴 글자와 발음이 정확히 일치한다. 묵음자가 없다. 반면 불어는 맨 끝에 붙는 자음을 읽지 않는다(모든 자음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가령, comment은 꼬망이라고 발음한다(how와 같은 뜻). T는 까치밥으로 남겨두는 걸까? 이것만 알면 불어도 예외 없이 규칙대로 읽는다.요컨대 글자와 발음의 상관성에 있어 영어는 가장 까다롭고 독어가 제일 명료하다. 불어는 중간.
말이 그래서 그런지 영국사람들은 체면 문화가 있다.명예심이니 신사도니 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읽기처럼 겉과 속이 다른 것이다. 독일인은 불어를 두고 "왜 발음하지도 않을 철자를 뒤에 붙이는가?"라고 깎아내린다. 반면, 프랑스인은 독어를 멋없는 기계 같은 언어로 생각한단다. 자국어가 가장 아름답고 예술적인 말이라고 자부하는 프랑스 국민들이 많다.
한편, 영어 명사에는 성(性)이 없고 불어는 남성과 여성, 독어는 여기에 중성까지 3성이 있다. 독일어는 원리에 충실하기 위해 세세한법칙을많이 만든 느낌이다. 깔끔한 거푸집이나 오차 없는 보쉬 공작기계 같다. 영어는유연하고 개방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예외가 발생하면 '그것도 괜찮겠네' 하며 사전에 올려주는 느낌? 심지어 문법도 그렇다. 가령, I'm 6 years old, aren't I? 같은 문장도 옳다. 영어는 틀려도 영어지만 독어는 틀리면 혼날 것 같은?!프랑스는 두 나라 사이에 끼어 있어 그런지역시 중간인 것 같다(우리에게 중국과 일본의 중간 성향이 있는 것처럼).
뻔한 얘기지만 말은 사람과 집단의 생각을 드러낸다. 한국어, 일본어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존칭이 서양어에 없는 이유는 나이 서열 개념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존댓말과 가족 호칭, 촌수까지 설명하면 코쟁이들은 기겁을 할 것이다(3촌 이후는 모두 엉클, 앤트, 네퓨, 니스니까). 반면 우리에게 '의자'는 하나인데 서양어에서는 종류별로 여러 개다. 등받이의 유무, 사람 수, 재질 등에 따라 어휘가 다양하다. 에스키모어에는 '흰색'이 수십 개라고 하지 않는가?언어와 사람들 기질은상관관계가 꽤 크다고 생각한다.
외국어를 잘해서 이런 잡설을 늘어놓느냐? 아니다.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독일어를, 대학에서 전공으로 불어를 어쭙잖게 배우며 넘겨짚는, 알량한 추측이니 재미로만 읽어 주시길... 아이고야, 이 길고 쓸데없는 장광설을 풀고도 여섯 시간이나 더 남았다니...(까지 써놓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발행한다. 휴우~ 또 갈아타러 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