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유로스타를 타고 링고스타의 나라 잉글랜드로 간다. 프랑스를 떠나는 날까지 시행착오가 심하다.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를 나왔다. 어젯밤 봐 두기로는 기차역인 북역까지 그리 멀지 않아 걷기로 했다. 숙소 앞은 파비앙 광장인데 개선문 앞을 백분의 일로 축소해 놓은 것 같다. 사방팔방이 아니라 십이방 쯤 되는데 구글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길 이름이 안 나왔다. 한참을 헤매다가 깨달았다. 내가 향하는 방향을 지시하는 파란 신호가 엉뚱하게 잡히는 거였다. 결국 한 바퀴를 뺑 돌아 숙소 근처까지 돌아왔다. 바로 옆길을 두고 11방을 돌았다. 내가 돌았지. 이래서 디지털은 다 믿으면 안 된다. 나 자신은 더 믿으면 안 된다. 게다가 역은 왜 또 그리 먼지.. 역 근처로 마지막 숙소를 잡은 게 무용지물이 되는 찬란하고도 고된 아침 산책이었다. 돌아온 윌슨을 끌고 걷는 짓은 산책이 아니라 행군에 가까웠다.찾았을 땐 그렇게 반갑더니, 게다가 인도는 왜 그렇게 울퉁불퉁한가.
파리 북역은 인산인해였다. 기차가 맨 끝에 있는 모습은 낯설고 신기하다
내 착오는 또 있었다. 1시간 20분이나 일찍 도착했는데도 절차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서울에서 부산 가는 KTX 쯤으로 생각했던 나는 바보다. 티켓 확인과 입국 승인, 짐 검사 등에 한 시간 넘게 걸린다. 나중에 보니 면세점도 있다. 국제공항 못지 않다. 같은 유럽끼리 왜 이러지 싶었는데 아차, 브렉시트! 이래서 국제 정세에 유념해야 한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지 않았다면 나는 좁은 기차칸이 아니라 라운지에서 우아하게 바게트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을 텐데.. 육로로 외국을 나갈 수 없는 우리로서는 국가간 기차가 매우 신기하다. 하여튼 브렉시트로 '서울-부산간'이 '부산-후쿠시마'가 된 셈이다. 부디 부산을 가려다가 후쿠시마 가는 절차를 밟는 바보의 심정을 헤아려 주세요.
마지막 파리 바게트다. 먹을 시간도 없어 갖고 탔다
어제 일을 정리해야겠다. 날씨가 꾸물꾸물했다. 여행의 뒷단계는 좀더 여유를 갖도록 일정을 짠다는 방침(외교통상부나 한국관광공사는 아니고 이틀 전 내가 급조한)에 따라 마레 지구로 갔다. 비가 내렸다가 멈췄다가 해가 나는 듯하다가 다시 비가 왔다. 보쥬광장은 한적했다. 마침 해가 나서 곱게 깔린 잔디가 싱그러웠다. 윌요일이라 빅토르 위고의 집이 미저러블하게도 문을 닫고 나는 한참 공원에 앉아 있었다. 바로 옆 파리 최초의 호텔이라는 슐리 호텔과 정원을 지나는데 폭우(라고 해봐야 흠뻑은 아니다)가 쏟아졌다. 처마 밑으로 피했다. 이럴 때를 대비 못해서 우산을 안 챙겨왔고 이럴 때를 기대하면서 악기를 챙겨왔다. 주섬주섬 챙겨 역시 대성당들의 시대를 연주했다. (빅토르가 살던 집도 있으니깐!) 실내외를 연결하는 회랑 같은 곳이었는데 울림이 좋아 나도 놀랐다. 십여 명의 사람들이 비를 피하고 있다가 내 연주를 듣게 되었다. 뜻밖의 버스킹 연주에 다행히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박수와 앵콜 요청을 받고 라라랜드 city of stars를 하나 더 했다.
평화로웠던 보쥬 광장 산책. 프랑스에는 밟을 흙과 풀이 많아 좋다
역시 쭈뼛쭈뼛 주섬주섬 악기를 챙기는데 아기를 챙기던 어떤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너무 좋았다며 내 출신과 일정과 악기 구력 등을 물었다. 자신은 이태리 남쪽 몰타 섬에 사는데 가족과 휴가를 왔단다. 아기가 예쁘다고 했더니 자기 아니고 엄마를 닮아 그렇다며 아내를 가리켰다. 한쪽 구석에 서있던 애엄마가 수줍게 웃었다.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고마워."
내 보기에도 아빠보단 엄마 인물이 나았다.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다들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사진을 요청했다. 전날 생각해 보니 여기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어서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의 부인이 흔쾌히 찍어주었다. 애아빠는 내 왓츠앱 큐알로 친구 먹기를 한 다음 헤어진 지 5분 만에 사진을 보내줬다. 그에게도, 자라서 이 사진을 보게 될 귀여운 아이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길...
미스터 몰타, 몰타 주니어와 기념 사진 한장. 아기가 인형처럼 귀여웠는데 생각해보니 저런 애를 닮게 인형을 만드는 거겠지 싶다
이곳과 동화되는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버스킹까지 하니까 약간의 성취감이 들었다(차마 돈 통을 놓지는 못하겠더라). 여행자의 마음은 일상자에 비해 복잡하다. 현지 적응에 대한 걱정, 안전에 대한 우려, 만나게 될 것과 사람에 대한 설렘, 그러나 무엇보다 고국에서 가졌던 방식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해방감이 있다. 며칠새 나도 파리지엥처럼 무단횡단을 한다. 알게 뭐람의 태도로 옆사람에게 말을 건다. 더 뻔뻔해져서 소음 공해든 뭐든 버스킹도 했다. 한국이었으면 이런 짓 못했을 것 같다. (뭐? 거기서도 뻔뻔하게 했다고? 음, 살짝 인정)
차마 노숙 체험까진 못하겠다. 아, 비슷한 걸 하긴 했지. 빅토르 위고 집 앞의 노숙자는 미제라블이지만 화려한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태양왕 루이14세처럼 금박을 뒤집어 썼다
여행은 헤어지기 위한 소개팅이다. 끝을 알고 시작하는 연애다. 헤어짐이 없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이민이겠지. 시한부라는 사실이 여행자와 여행지 사이를 더 각별하게 만든다. 조금 전 일주일의 계약 연애가 끝났다. 최선을 다해 지금의 행복을 누리는 곳, 역사와 철학이 미술과 문학이 몸과 맘에 체화된 사람들,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목숨을 걸어도 좋은 도시... 내가 좋아했던 만큼 파리도 나를 좋아했길 바란다.
온갖 배관, 배선을 다 드러낸 퐁피두 센터. 솔직하고 용감한 파리지엥을 상징하는 것 같다. 국립 현대 미술관이 내 마지막 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