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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리 피디 Apr 11. 2023

날씨만큼이나 다크한 투어

실시간 유럽 수학여행기 14


심각한 아이러니가 하나 있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뭔가를 거래하거나 길을 묻거나 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관광지에서 줄을 서다가 현지인과 대화를 하게 되어도 패턴이 다르다. 외국 관광객과는 통하는 게 있지만(일정이나 감상, 계획 등) 프랑스 사람과는 공감대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당연지사다. 일상적으로 일하거나 자기 동네를 걷는 사람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기 마련이다. 우리 동네에 온 외국인이 편의점 가는 내 발길을 멈추게 하고 내 생각이 궁금하다면서 대전 현충원이 국가정체성 제고에 기여하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방어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숙소에 강아지를 놓고 나오는 바람에 보주 광장 앞 기념품 가게에서 오늘 동행할 녀석 하나를 입양했다. 4유로 반

아무리 가벼운 주제라도 그렇다. 떠나지 않은 사람은 바쁘거나 귀찮다. 간혹 적극적인 현지인도 있긴 했다. 하지만 어쭙잖게 불어를 하는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오히려 내가 질문 세례를 받게 된다(그마저 결국은 기특함, 노력함, 답답함으로 귀결되곤 한다-앞 글 참고). 그들은 자기 생각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내 생각 말고 네 생각을 듣고 싶다구~! 정작 프랑스인을 사귀려면 다른 나라에 가야 한다. 여행자 프랑스인이야말로 자신과 자기 나라에 대해 말할 준비가 된다. 제자리에 있을 때와 떠나서 다른 공간에 있을 때의 마음은 이렇게나 다른 것이다.


그래도 고육지책은 있다. 관찰하면 된다.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거나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의 태도를 보면 약간은 더 알게 된다. 조금 전 슈아 기념관에서도 그랬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빅토르 위고의 집도, 피카소 박물관도 문을 닫았다. 예상하지 못했지만 실망하진 않는다. 그제 잠시 고민하긴 했다. 지나치게 붐비는 몽마르트르를 월요일에 가고 여유로운 마레 지구를 일요일에 올까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면 어제 부활절 퍼포먼스를 못 봤을 거라 생각하니 오늘 문 닫은 관광지가 그닥 아쉽지는 않다.


주변을 찾아보니 슈아 기념관은 월요일에도 연다. 유태인 대학살 기념관이다(슈아는 대학살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건물 외벽에 이름이 가득했는데 나치 치하에서 탄압받던 유태인을 도운 프랑스인들의 이름이었다. 가방 검사를 받고 들어간 중정에는 더 빽빽한 이름들이 있었는데 희생된 유태인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픈 점묘 조각품이다

내부로 들어갔더니 유태인은 누구인가, 어떤 역사와 신념을 가졌는가, 유럽 이주는 왜 했는가부터 히틀러는 유태인을 어떻게 다뤘는가, 강제노역과 인종실험은 어떻게 진행됐는가 사진과 문서자료가 빼곡했다.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애국지사의 인터뷰가 방송됐는데 어두컴컴하고 불어도 잘 못 알아듣겠고 새벽에 깨기도 했었고의 조건들이 서로 반갑게 만나는 바람에 껌뻑 졸게 되었다. 얼마나 졸았을까 잠시 후 눈을 떠보니 앞자리의 프랑스 아주머니 한 분이 울고 있었다. 눈에 손수건을 찍어대면서 흑흑거리는 것 아닌가? 나는 왠지 민망하고 미안해졌다.

나치에 끌려간 만 몇천 명의 유태인 아이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전시실 마지막엔 아이들 사진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양심은 있어서 눈거풀만 무거운 게 아니랍니다). 사진 밑에 생년월일과 deporte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무슨 뜻인지 궁금한 찰나 아까 울던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역시 애통한 표정이다.

"프랑스 분이세요?"

"네, 무슨 문제라도?"

"아뇨, 이 단어가 무슨 뜻인가요?"라며 내가 deporte를 가리켰다.

친절한 그분의 설명에 집중했으나 절반 정도만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멍청한 표정을 읽고는 역시 영어로 전환하는 아주머니.. 언제쯤 내 불어는 불어도 날아가지 않는 수준에 이를 것인가?

The children were taken away to another places in Europe 애들이 어디론가 끌려간 거예요. 그 날짜를 기록한 겁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너무 슬픈 역사입니다."

아주머니가 혼잣말처럼 다시 울 듯한 목소리로 말하고 멀어졌다.

기념관에 딸린 서점인데 이 많은 책들이 전부 나치즘이나 레지스탕스, 유태인 학살에 대한 것들이었다

가족과 통화를 했다. 막둥이가 모레 독립기념관을 간다고 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꼰대가 되고 말았다.

"여기 와 보니 사람들이, 특히 학생들이 역사 공부에 엄청 열성적이더라. 너도 허튼 시간 되지 말고 많이 배우고 와."

데리고 가주지도 않은 주제에 잔소리는...이라고 사춘기의 마음은 원망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참을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슈아 기념관 나온 직후의 아빠와 독립기념관으로 체험학습 가는 아들이라니 타이밍도 참...

슈아 기념관 입구에 방명록이 있길래 슬픈 역사를 멈추자는 문장을 썼다

우연치 않게 온 다크 투어리즘이었지만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프랑스는 루브르로 대표되는 정복과 영광의 역사만 기억하는 게 아니다. 아픔과 패배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할 수 있는가에 대해 기억하고 경계하기 위한 노력이다. 서점에서 본 어린이 인권 그림책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인종은 있는가, 인종 구분은 옳은가

정치 얘기가 아니다. 역사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문제 해법도 다시 생각하면 좋겠다. 언젠가 강제노역과 위안부 기념관이 세워져 일본인들의 방문을 받는 날, 침통함을 나눈 뒤 함께 웃으며 사진 찍는 날, 그날이 진짜 한일 양국의 관계가 회복되는 날이리라. 슈아 기념관에 독일인과 프랑스인이 함께 오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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