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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퇴사를 꿈꾸는 직장인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불치병

N잡러 직장인 0씨

by 공북살롱

퇴사를 꿈꾸는 직장인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불치병이 있다. 그 병에 걸리면 답도 없다. 혹시 해당 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눈이 반쯤 돌아있는 모습을 볼 것이다. 부모도 (못 알아보는, 그까지는 아니지만,) 배우자도 질리게 만든다. 신기하게도 그 병에 걸리면 자신은 특별하며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두려움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도 극복할 수 있고 세상은 나를 위해 돌아간다는 이상한 믿음도 생긴다.


그 무시무시한 이름의 병명은 “대표병”이다. 직장인 나부랭이가 주위에서 대표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정신이 회까닥 돌아버리면서 걸린다는 소문이 있다. 나는 한때 이 병을 세게 앓았었다. (그리고 지금도 재발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쭈글쭈글하게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본다. 부장님이 맡긴 업무를 시간 내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퇴근만 하면 나는 돌변했다.


커뮤니티 리더들을 모아 회의를 진행한다. 독서 모임 커뮤니티가 어떻게 더 성장할 수 있을지 리더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회의 결과 서로 해야 하는 업무가 생겼다. 리더들은 일사불란하게 자신이 맡은 업무를 수행해 낸다.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우쭐거린다. 회사 부장님이 이런 느낌인가 싶다. 커뮤니티와 관련하여 강연하거나 지자체와 협업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 대표님 공 대표님이라고 불러준다. 약소하지만 커뮤니티로 수익도 발생한다. 도파민이 폭발한다. 대표 뽕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어깨가 올라간다. 그렇게 병이 깊어졌다.


해당 병을 가지고 출근하면 더욱 위험해진다. 회사에서 조금만 바쁘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아 ~ 내가 대푠데, 확 퇴사해 버릴까?“, ”퇴사하고 커뮤니티를 운영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할 거고, 수익도 월급만큼은 벌 수 있지 않겠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집에서도 말끝마다 ”나는 대표니까!”라고 외쳤다. 모든 걸 잘 아는 것처럼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나는 한 커뮤니티의 대표(쥐뿔도 없지만)니까 말이다. 부모님께서 내가 어딘가 많이 건방져졌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부모님께서 느낄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심히 부끄러워진다.


착각하지 말자.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근로 시간만큼 커뮤니티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고? 당장 주말, 공휴일에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자신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답이 나온다. 직장은 출퇴근이라는 강제성이 있으니 최소한 해당 시간에 맞춰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강제성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변하겠는가? 당신 자신을 너무 믿지 마라. 시스템 속에 있지 않고 자율적으로 일을 하게 된 순간 당신은 매 순간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이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하루만 쉴까?” 생각하는 순간 결국 무기력에 잡아먹힐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고? 그래, 좋다. 100번 양보해서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해보자. 평일에 회사를 안 가면 무엇을 할 것인가? 평일 시간에도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운영한 만큼 수익이 날 거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럼, 평일에 당신과 함께할 고객은 있는가?


지금 얄팍한 성과에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지 말고, 냉정하게 판단하고 제발 안정적인 직장은 포기하지 말자. 대표병에 걸리지 말자. 직장은 당신 삶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커뮤니티를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직장을 다니며 월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돈으로 수많은 위기(코로나, 경기침체 등)를 견딜 수 있었다. 직장을 다니며 할 수 없는 일은 직장을 나와서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도피하지 마라. (지금까지 나에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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