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결성의 꿈을 키우게 된 건 중학생 때부터였다. 가장 친했던 친구와 <케이온>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밴드에 푹 빠져서, 서로 포지션을 정하고 멤버를 모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친구가 어떤 악기를 맡았는지는 이제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담당한 악기는 똑똑히 기억난다. 멤버 두 명(나와 친구)이 있는 밴드가 결성(예정)되고, 그 길로 바로 기타 학원을 등록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참지 못하고 바로 달려가는 성미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아서, 냅다 집 근처 실용음악 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 주변에서 보통 통기타를 배우고 그다음에 일렉 기타를 배우는 거라고 들었지만, 내 관심사는 오로지 밴드의 기타맨이었기 때문에 첫 기타를 일렉 기타로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의 F코드를 만났고, 한 달 만에 끝났다.(어떻게 해도 손가락이 제 위치에 가있질 못했다)
나는 한 달 만에 그만두고, 친구는 악기를 시작하지도 않아서 첫 밴드 결성(예정)은 흐지부지 됐다. 그 이후로도 밴드뽕이 차오를 때마다 주변의 친구들을 찔러대며, “우리 같이 밴드할래?!!!!” 묻고 다녔지만…
친구들로부터 받은 긍정적인 대답에도 밴드 결성은 번번이 무산됐다. 채 결성되지도 못한 밴드를 여럿 보내고 깨달은 건 딱 하나였다. 나는 나 하나 끌고 갈 추진력은 있지만, 다른 사람들까지 데리고 갈 만큼의 추진력은 없다는 것. 대학교 때 전공이 작곡이라 드럼이든, 재즈 피아노든, 밴드에 들어갈 수 있는 악기를 몇 번 깔짝여 보기도 했지만, 나 혼자 밴드의 모든 악기를 다룰 줄 안다고 밴드가 되는 건 아니다. 밴드는 혼자 하는 게 아니고, 각자 한 파트씩 맡을 멤버가 필요하다.
하지만 커갈수록 주변에 밴드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 점점 씨가 말라갔고, 덩달아 밴드에 대한 마음이 식어갔다. 밴드는 이제 꼬깃꼬깃 접힌 꿈이 되어가던 차, 벼락같이 한 그룹이 마음속에 들어왔다. 바로 플레이브(Plave)! 밴드 사운드를 중심으로 하는 곡을 자주 내놓는 버츄얼 보이 그룹인 플레이브에 입덕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카쿠렌보>라는 일본 데뷔 곡이 세상에 나왔다. 여름과 청춘을 관통하는 것 같은 청량한 밴드 사운드. 이거다! 역시 인생은 밴드다! 다시 밴드를 하고 싶다는 열망에 화르륵 불타올랐고, 같이 덕질을 시작한 뚜비와 페페, 덕질은 안 하지만 누구보다 플레이브를 잘 알고 있는 곰곰에게 밴드 초대장을 보냈다.
저랑 같이 밴드 해주실 분...?
밴드 결성해 주실 칭구들 모집합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바로 당신...유...
다행히 모두 응답을 했다. 여기까진 전과 다르지 않다. 내가 수차례, 여러 친구들에게 밴드 초대장을 발송했을 때 다들 “그래”. “좋아” 같은 긍정적인 대답을 했으니까.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우리 멤버 중에 곰곰이 있다는 거였다. 곰곰의 존재. 그 덕분에 확신에 차서 내적 비명을 질렀다. 이건 된다. 되는 밴드다!
곰곰이 어떤 친구인지 말해보자면, 그는 우리 모임에서 기획과 추친력, 허브(hub)를 담담하고 있다. 이 추친력은 곰곰 본인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이끌어가는 추진력이라서 늘 우리를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으로 데려가 준다. 게다가 얼마나 사람과 사람을 잘 연결하는 허브인지! 곰곰 덕분에 난생처음으로 다른 모임과 합동 독서 모임도 해보고, 플리(플레이브 팬클럽) 친구들도 만나게 됐다. 함께 한 시간 속에서 이런 경험을 쌓아 갔기 때문에, 곰곰의 안광이 순간 ‘반짝!’하고 빛날 때, 우리는 속절없이 이런 생각을 하고야 만다. 무언가 시작됐고, 우리는 함께하게 되겠구나!
사실 이번에 밴드 초대장을 뚜비, 페페, 곰곰이 봐주길 바라며 소심하게 짧은 한마디로 전달했을 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흐지부지 되겠지?’라는 생각에 밴드를 해보자고 한 번 더 권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시 만났을 때 곰곰이 먼저 밴드를 화제로 던져줬다.(오마이갓!) 그 말을 하는 곰곰의 안광이 빛났고(밴드 결성을 염원하는 나의 작은 오해일 수 있다), 밴드는 투(two) 기타가 근본이라는 페페의 의견에 따라 일사천리로 각자의 포지션까지 정하게 됐다. 곰곰은 드럼, 페페는 기타. ‘이거 정말 하는 거 맞아...?’라고 얼굴에 써있는 뚜비의 표정을 잠시 외면하고, 하고 싶은 악기를 얼른 골라보라고 뚜비를 종용했다. 남은 건 기타와 베이스. 뚜비의 선택에 따라 내 포지션이 결정된다. 과연 뚜비의 선택은?
플레이브(Plave) - 숨바꼭질
저를 다시 밴드의 길로 이끈 노래! 이제 한국어 버전도 나와서 더 듣기 좋아요!
다들 한 번씩 들어보시길!
https://youtu.be/Dss64cWKtqA?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