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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Mar 19. 2024

이상한 그림편지

행복

Crayon, marker, watercolor on paper 2024



안녕친구! 잘 지내고 있나요? 지난 편지를 보낸 후 나는 금이 간  손가락을 치료하느라 편지도, 그림도 그리지 못했습니다. 자전거 사고로 인해 금이 갔고 지금은 거의 다 나았기에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답니다. 당신에게 답장을 받은  적은 없지만 아직까지 어떤 신고도 없었고 편지가 반송되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신이 내 편지를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 생각하게 되더군요.  지난번 편지를 쓸 때는 끔찍했던 그때를 떠올리느라 조금 힘들었지만 이번 편지를 쓰는 동안은 편안할것 같군요. 거인처럼 크고 좀비 같았던 그들에게서 벗어나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던 나는 다음에 마주하게 될 광경은 무엇일지 전혀 기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집에 가고 싶을 뿐이었죠. 게다가 날씨는 어찌나 이상하던지 지진이 난 듯 땅이 조금 흔들리다가 세찬 바람에 모자가 날아갔고 굵은 비가 내리기도 했습니다. 아끼는 모자를 잃은 마음에 우울해진 나는 가까이 있는 납작한 바위 위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비가 그치고 천천히 밝은 햇빛이 넓은 들판을 비추기 시작했고 빗방울을 머금은 풀들 위에 이슬들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는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맑고 깨끗한 소리였죠. 작은 유리구슬들이 부딪히며 나는 소리 같았습니다. 소리가 나는 쪽이 어디인지 두리번거리다가 발 근처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작게 들리기에 서둘러 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검지손가락만 한 작은 몸에 빛나는 하얀 옷을 입을 작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게 인사하고는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을 다시 찾으러 풀들 사이를 살펴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는데 눈앞에 아까 보았던 그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을 행복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우리는 보려고 하면 보이지 않아요.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죠. 우리가 그리워도 애써 찾지 말아요. 그래도 꽤 괜찮답니다"

이어 유리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니 그들은 다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먹구름이 완벽하게 없어진 하늘을 밝은 해가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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