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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Mar 11. 2024

이상한 그림편지

붉은 사과성

Colorpencil, gouache, crayon, on paper 2024


안녕 친구! 잘 지내고 있나요? 이곳은 아직 하얀 겨울나무들이 에워싸고 있는 추운 겨울이랍니다. 따듯한 곳에서는 벌써 이번 해의 농사를 위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겠지요. 당신이 살고 있는 그곳도 조금은 따듯해졌다고 들었답니다. 나는 이 고요한 침묵이 흐르는 겨울을 사랑하지만 문득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포도나무의 포도들이 떠오를 때는 조금은 땀이 맺히는 날씨가 그리워지곤 하더군요. 이번 편지를 쓰며 나는  뜨거웠던 그때를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검은 거북이들을 지나 조금은 우울해지는 마음으로 길을 걷던 끝에  붉게 빛나는 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분명 붉게만 보였는데 점점 가까워질수록 많은 색들이 합쳐진  붉은색의 성이었죠. 마치 잘 익은 빨간 사과가 생각나는 그런 색이었습니다. 붉은 그 성 안으로  들어가니 성 안에 사과 향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요! 그곳은 사과들이 살고 있는 사과성이었습니다. 붉은 사과몸을 한 작고 큰 사람들이 화려한 화장과 모자를 쓰고 성 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태양빛을 받을 때 반짝이는 사과의 윤기가 눈이 부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붉은 사과인들 사이로 드문 드문 연둣빛 사과가 눈에 보였는데 그들은 모두 낡은 모자에 구멍 나기 직전이거나 이미 밑창이 벌어진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똑같은 사과인데 그들의 신분은 하늘과 땅 차이인 듯 보였습니다. 나는 사과인들 사이를 지나가며 쉴 곳을 찾고 있었고 어디선가 나타난 붉은 사과인이 다가와 말을 건넸습니다.

"당신이 그 모험을 하고 있다는 사람인 것 같군요. 블루베리 여인에게 전해 들었죠. 날 따라와요"

사과를 따라가 보니 아늑하고 포근한 나무집이 나왔고 붉은 사과의 친절로 나는 그곳에 하루를 묵을 수 있었습니다. 거북이들 생각에 조금 우울했던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뜨거운 열기가 느껴져 땀을 흘리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마주한 광경은 붉은 성보다 더 붉은 불길이었고 붉은 사과성은 온통 불타고 있었습니다. 물론 내가 있는 곳까지 불길이 번지고 있었기에  다급하게 집과 성을 빠져나왔습니다. 사과성에서 떨어진 작은 개울가로 달려 나온 나는 불길을 가까스로 피한 듯 보이는 연두색 사과들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불타는 사과성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표정인지도 추측하기 어려웠죠. 불길은 전혀 사그라드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연두색 사과인들을 조금 더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어려 보이는 작은 사과가 다가와 성냥을 건넸습니다.

"감사합니다 모험자님... 추울 때나 어두울 때 이 성냥을 사용하세요"

나는 그 성냥을 받아 들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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