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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Feb 29. 2024

이상한 그림편지

검은 거북이들

Colorpencil, watercolor, pen, pastel on paper

안녕친구! 잘 지내고 있나요? 이곳의 겨울은 왜인지 더 길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세상의 끝이 오지 않는 한 이 계절도 바뀌기 마련일 텐데  마치 계절이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답니다. 그리고... 이곳의 겨울이 유독 길게 느껴지는 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입니다. 차갑고 건조한 겨울바람에 손등과 손바닥이 벌겋게 트고 갈라지는지도 모르는 이곳의 어부들에게도 아마 겨울이 지긋지긋하리만큼 길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나는 조금 알고 지내는(간단한 안부를 물을 정도) 어부가 한 명 있는데 그분은 올해 나이가 70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트고 두꺼워진 손등과 손마디를 보면 나는 모험길에 보았던 검은 거북이가 생각난답니다. 술에 잔뜩 취한 체리나무 밑의 고양이들을 지나쳐 화려한 마을에 도착한 나는 처음 그 거북이들이 돌인 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길 위에 돌이 저렇게 많다니 참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그 돌처럼 보이는 것을 밟고 가려는데 자세히 보니 돌이 아닌 딱딱한 거북이의 등껍질이 아니겠습니까? 놀란 나는 순간 어버버 대며 어찌할 줄 모르고 입만 뻥긋 대며 거북이들만 이리저리 바라보았습니다. 그중에는 아주 작은 새끼 거북이도 있었는데 누군가 그 거북이를 밟고 지나가기 전에 그 거북이를 안아 들고 빠르게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품에 안겨온 새끼거북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왜 저를 골목으로 데려오신 거죠?"

나는 거북이에게 왜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거북이는 마치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그곳은 사람들의 발이 바닥에 닿아 더러워지는 걸 막기 위해 거북이들이 길을 메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길로 보내달라고 말하더군요. 참담한 마음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거북이를 놓아주고 다시 길가로 나가는 거북이를 조금 지켜보다 거북이을 잡은 양 손에 묻은 검은 얼룩을 발견했습니다. 거북이가 검은 이유는 사람들의 발에 밟혀 검은색으로 더러워진 것이었습니다. 나는 거북이들이 길을 메운 곳을 벗어나 다른 길로 향했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손에 묻은 얼룩도 닦지 못한채 앞만 보고 길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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