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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Mar 12. 2024

이상한 그림편지

어둠속으로

Acrylic, pen, crayon, gouache on paper 2024

안녕 친구, 어느덧 17번째 편지를 쓰고 있네요. 혹시니 이 편지가 언제 끝나는지 궁금해할 당신을 위해 이야기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전합니다. 총 20개의 이야기이니 정말 얼마 남지 않았지요. 이번 편지를 쓰며 나는 악몽을 꾸고야 말았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꽤나 충격적이고 기괴하게 뇌리에 남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불타는 사과성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걷다 보니 옷에서 나는 매캐한 불의 냄새도 거의 빠진 듯했습니다. 아름다운 보라색 성이 보이기 시작했고  화려한 에메랄드빛 다리를 건너자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음악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성 안의 사람들은 모두 즐겁고 들떠있었으며 황홀함 속에 잠긴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춤을 추고 어떤 사람들은 처음 보는 게임에 심취해 있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내가 성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큰 관심이 없는 듯 보였기에 나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연두사과가 준 성냥을 만지작거리며 그들을 구경했습니다. 화려한 복숭아빛 드레스와 눈이 부시게 빛나는 보석으로 만든 액세서리들을 걸친 여인과 검은 벨벳 턱시도를 입은 남자들 그리고 그들 외에 다른 사람들도 아름다운 성만큼이나 아름답게 차려입고 있었습니다. 티브이에서 봤던 연예인들보다도 더 화려한 모습들이었죠. 아마 당신이 상상하는 화려함 그 이상일 것입니다. 그들은 매우 행복해 보였고 해가 저물어가자 서로 인사하며 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돌아가는 집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보라색 나비넥타이를 한 남자를 따라갔습니다.(이제야 얘기하지만 그들은 거인처럼 컸기에 나는 그 남자의 구두높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들키지 않을 수 있었죠) 남자는 두 명의 여인과 친구로 보이는 한 남자와 같이 집에 들어갔고 물론 그의 집은 상상이상으로 컸습니다. 거대한 폭포 안에 선 기분과 같아 나는 조금 무섭기도 했습니다. 이내 집으로 들어간 그들은 불도 켜지 않은 채 2층으로 올라갔고 2층 구석에 놓인 보석상자에서 작은 사탕을 꺼내 나누어 먹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늘어져 가만히 있기만 했습니다. 집은 매우 컴컴했기에 나는 그들이 잘 보이지는 않았기에 어둠에 익숙해져야만 했습니다. 눈에 어두움이 조금씩 익숙해지자 그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하마터면 실수를 할 뻔했습니다. 번뜩이는 눈동자는 초첨을 잃고 한 곳만 응시하고 있었고 단정한 숙녀들로 보이던 여인들은 괴상하게 중얼거리며 울었다 웃었다를 반복했습니다. 마치 총에 맞은 좀비들처럼  흐느적거리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바닥에 얼굴을 비비기도 했죠. 나는 그곳을 빨리 나가고 싶었지만 거대한 문을 열 수 없어 아침이 밝을 때까지 보석함 뒤에 숨어있었습니다. 악몽 같은 밤이 지나 해가 뜨고 집을 청소하러 들어온 사람이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고 전속력을 다해 그 집을 빠져나와 쉴 틈 없이 뛰었습니다. 에메랄드 다리를 건너는데 멀리서 음악소리가 들렸습니다. 다시 파티가 시작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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