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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Feb 26. 2024

이상한 그림편지

위험한 체리나무

Crayon,watercolor, markerpen on paper

안녕 친구, 오랜만에 편지를 보냅니다. 잘 지내고 있나요? 당신이 궁금해할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알코올중독센터에서 환자들을 위한 여러 가지 치료를 돕는 일을 했습니다. 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지는군요. 어떤 사람들은 알코올중독자가 되는 가장 큰 이유로 술을 좋아해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무언가를 좋아하면 그 대상에 중독되기 쉬워지겠지만 신기하게도 알코올중독자가 된 사람들 중 술을 좋아해서 중독자가 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하더군요. 공교롭게도 이번에 들려드릴 모험담은 술에 취한 고양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린마을을 지나 나는 조금은 슬퍼진 마음으로 길을 걸어갔습니다. 한참을 걸었을까요, 어디선가 달콤한 체리향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달콤한 체리향은 점점 진해져 갔는데 고양이 앞에 다다랗을 때는  체리향만이 아닌 체리와 술의 향이 뒤엉킨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고양이들은 나란히 앉아  멍하니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나에게 체리술을 건네주었죠. 향은  달콤하고 색은 투명하고 붉은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나는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편인데 왠지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 자리에서 단번에 들이켰습니다. 고양이들은 낄낄 웃으며 알 수 없는 말들을 주고받았습니다. 헛것을 보는 모양이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나니 기린마을에서의 슬픈 마음이 잊혀지는 듯했습니다. 조금은, 그 보다 더 좋은 기분이었던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고양이들에게 술을 더 줄 수 없겠냐고 물었지만 고양이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지 다시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런 생기도 남아있지 않은 눈동자에 비친 반짝이는 체리들이 마치 고양이들의 눈동자빛을 흡수한 것같이 보이더군요. 섬뜩해진 기분이 들어 나는 입을 손등으로 여러번 닦고 그곳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어 뒤를 돌아봤을 땐 체리나무 나뭇가지들이 고양이들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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