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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Apr 26. 2024

3분 단편

종이집


<종이집>

Pencil, watercolor, gouache on paper

2024

-


검붉은 화염을 지난 남자의 옷자락에는 죄 없는 재 가루의 향이 배었다.

누군가 검게 뼈대만 남아버린 그의 집을 보고 말했다. 신이 내린 벌일 거야. 그 말은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이 되어 남자의 얇은 고막을 뚫어버렸다. 남자는 피가 흐르는 두 귀를 닦으며 그 집을 떠나, 더 정확히는 그곳을 떠나 하염없이 걸었다. 발바닥과 발가락의 마디가 물러 터져 나가는 순간에도 그는 남겨두고 온 집을 생각했다. 빛이 들지 않는 빼곡한 숲을 지나가면서도 그는 빛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면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진 손으로 흙을 조금 치운 후 앉아 무릎을 끌어당겨 날이 밝고 다시 질 때까지 흐느껴 울곤 했다.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렇게 죽은 숲 속에서 그는 얇은 나뭇가지에 자신의 옷에 묻은 검은 재 가루를 묻혀 낡은 종이에 집을 그렸다. 집을 그린 후 그는 마치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듯 종이를 접은 후 자신의 수레에 실었다. 작은 바퀴가 도르륵 흙 길 위를 굴러가고 또 굴러 숲의 마지막 나무를 지나쳤고 남자와 종이집은 숲을 빠져나왔다. 작고 동그란 달이 그를 기다렸다는 듯이 살포시 그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는 다시 종이집을 펼쳤고 집 안에서는 그가 좋아하는 음악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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