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늘을 보고도 사람들은 다 다르게 얘기합니다. 그게 우리에게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서로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는 말을 잠시 멈추더니 세 개의 네모로 갈라진 창문 밖을 바라봤다. 치료실 안에 있는 중독자들 중 몇 사람들도 창 밖의 하늘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희망도 기대도 하지 않고 오히려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부류라고 할지언정 여러분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꼭 아셔야 합니다." 그가 이어 말했다. 민하는 치료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앞에 놓인 줄노트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박민하. 그리고 또 적었다.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5번 정도를 적고 나자 눈물이 났다. 자신이 이름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박민하라는 사람을 찾을 수 없는 먼 곳에 잃어버리고 온 기분이었다.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내가 나를 잃어버렸나 기억을 더듬어봐도 여전히 머릿속은 까만 암흑 속이었다. 자신의 이름 위로 눈물만 뚝뚝 흘리던 민하에게 치료사가 다가왔다. "오늘은 나를 그려보려고 해요. 민하 씨도 스스로를 한번 그려보세요. 어떤 모습이든 좋아요." 치료사는 하얀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 종이와 그림도구들을 내려놓고는 뒷사람을 격려했다. 민하는 그렇게 프로그램 시간이 끝날 때까지 자신을 지우고 그렸다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그림을 완성했다. 모두들 그림을 그리고 나간 치료실에는 치료사와 그녀 둘 뿐이었다. "이건 어떤 민하 씨인가요?" 그가 물었다. 민하는 붉은 배경위로 뛰어가는 그림 속 여자를 보며 말했다.
"저에게 뛰어가는 제 모습이에요." 그는 다시 그림을 천천히 살피다가 민하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민하 씨를 찾으러 가는 거군요" 그가 말했다. 창 밖의 하늘색 하늘은 어느새 그림 속 붉은 배경처럼 붉은 노을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