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 모퉁이를 돌기 전 아이는 늘 심호흡을 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고는 눈을 가린 후 모퉁이를 돌고 다시 눈을 떴다. 아이는 가끔 시멘트 틈사이로 갈라진 곳에 핀 꽃을 발견하거나 갑자기 튀어나온 쥐를 보기도 했다. 운이 좋은 날은 건너편의 노란 벽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을 볼 수도 있었다. 아이가 기대하는 것들은 다 아니었지만 아이는 늘 설레는 마음으로 모퉁이를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노란 벽 앞에 서있는 한 남자를 마주쳤다. 키도 몸도 매우 큰 남자였다. 덥수룩하고 길게 내려온 수염과 낡은 코트 그리고 지저분해지고 거친 손을 한 그 남자는 아이가 사는 동네에서는 보기 힘든 노숙인이었다. 아이는 남자를 오랫동안 보고 싶었지만 아이를 발견한 노숙인은 금방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아이가 원했던 골목의 새로운 세계는 그날도 열리지 않았지만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자기 전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도 한여름에 두꺼운 코트를 입은 그가 계속 생각났다. 어쩌면 아이가 몰랐던 세계가 열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