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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버둥 치는 순애

물 웅덩이 위로

by 콩두부
종이에 색연필,수채,크레용. 2025

알람소리에 잠에서 깬 수영이 어둑어둑한 방 안을 마른눈으로 둘러봤다. 며칠 동안 비가 오는 탓에 하늘이 해를 가려 방 안이 초저녁처럼 어두웠다. 창문을 가린 청록색 커튼이 그 어둠을 더 푸르게 만들고 있었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수영은 남편과 헤어진 지 1년이 됐다는 생각에 적지 않게 놀랍다고 생각했다. 헤어질 그 당시에는 다음 해 여름을 생각할 수도 없었던 수영이었다. 마치 마지막 여름인 것 같이 느껴졌었던 작년 여름이었다. 푸른 녹음, 무겁게 내려앉은 습기와 시끄러운 매미소리가 눈과 귀를 가득 채우는 한여름의 한복판에서 수영의 남편은 이혼을 말했다. 수영은 자신도 모르게 이혼을 생각한 남편이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영 자신도 그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짐작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는 것이 예측할 필요가 없듯 그가 말한 이혼도 어쩌면 그와 비슷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알고 있지만 막상 다가오면 눈이 크게 뜨이고 새삼 놀라게 되는 것이었다. 수영은 헤어짐을 수백 번도 더 상상해 보았지만 진짜 헤어짐을 맞닥뜨렸을 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감정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수영은 목 뒤와 등 뒤에 난 땀 때문에 달라붙은 옷과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하고는 동그란 원목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리고 신혼 때 선물 받은 도자기 주전자에 있는 물을 따라 마셨다. 헤어진 후 남편의 물건이라던가 그가 연상되는 것들은 거의 정리했지만 그 도자기 주전자는 버리지 못했다. 그는 그 주전자가 수영을 닮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주전자를 매우 아꼈는데 매일 같이 주전자를 마른 수건으로 닦곤 했다. 어쩌면 다른 물건들 보다도 그 주전자가 전 남편을 더 잘 떠오르게 만드는 물건이었지만 이상하게 그 주전자는 버리지 않았다.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주전자가 예쁘다며 칭찬해서도 아니었다. 미지근한 물을 천천히 마시고 나서 수영은 커튼을 젖히고 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봤다. 여기저기 물 웅덩이가 크고 작게 생겨있었다. 마당 앞 움푹 페인 콘크리트 바닥에 생긴 웅덩이에 잎사귀가 푸른 나무가 비춰있었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푸른 나무는 계속 이리저리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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