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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버둥 치는 순애

파스타와 아버지

by 콩두부
종이에 색연필,크레용 2025

커다랗고 푸른 여름나무가 주욱 이어진 가로수 길 사이로 아이들이 지나갔다. 아이의 짧은 머리카락은 땀인지 물인지 모를 것으로 젖어있었는데 아마도 더운 날씨에 축구 한 판을 한 뒤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 나이에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늘 그렇게 머리가 젖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했다.

"야, 나뭇잎이 꼭 상추 같지 않냐? 우리 할머니가 키우는 상추보다는 큰 것 같지만."

옆에 있던 아이도 머리가 젖어있었는데 땀을 주룩주룩 흘리며 위를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대충 대답했다. "어 그런 것 같기도"

나도 가로수길을 지나며 상추잎 같은 나뭇잎들을 다시 한번 올려다봤다. 그 상추잎을 닮은 나뭇잎들이 뜨거운 태양빛에 이리저리 반짝이고 있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 치고 꽤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올해 감자 농사를 말하다 웬일인지 서울 구경이 하고 싶으시다며 약속을 잡았고 나는 가게문을 닫고 터미널로 향했다. 한 번도 입은 것 같지 않은 셔츠를 바지 속에 넣고 깔끔하게 머리를 넘긴 아버지가 터미널 안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잠시 내가 늦은 건지 헷갈렸는데 시간을 보니 약속시간에 10분 정도 일찍 도착한 것이었다. 아버지와 커피숍에서 나와 한식집으로 향하려는데 아버지가 앞을 보며 근처에 양식집이 있으면 양식을 먹겠다고 하셨다. 평소 밀가루도 과자도 좋아하지 않으셨기에 나는 이상하게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소화도 안되는데 밥 드시죠 왜, "

"맨날 먹는 밥 하루쯤은 안 먹어도 된다."

제법 단호한 입장에 나는 가까운 음식점을 찾았고 꽤 예쁜 인테리어에 프랑스어 간판으로 되어있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메뉴판을 보시더니 대충 매운 걸로 시키라는 말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셨다. 벽돌색과 청록색이 조화롭게 섞인 가게 내부 벽에는 피자와 파스타를 먹고 있는 강아지나 고양이 그림이 걸려 있었다. 십여분이 넘게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다가 침묵을 깬 건 아버지였다.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부터 아버지와 연락하지 않는 여동생의 소식에 대한 이야기까지 아버지는 쉬지 않고 얘기하셨다. 과묵하고 늘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라던 아버지는 예, 그렇죠, 만 반복하는 내 앞에서 마치 7살 아이처럼 말을 쉬지 않았다. 그러다 음식이 나왔고 피자와 파스타를 먹고는 오렌지에이드를 각각 하나씩 더 시킨 후 아버지와 나는 가게를 나왔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들러 하루쯤 자고 가시겠냐는 말이 목울대까지 차올랐지만 하지 않았다. 그저 카페에 가자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야기는 많이 했다며 이미 버스표를 끊어놓았기에 30분 뒤에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여전하시네...'라고 생각했고 어느 부분에서 변하지 않은 아버지를 보고 내심 파스타를 먹기 전 불안했던 마음이 날아가는 듯했다. 터미널에 놓인 낡은 소파에 앉아서 버스 시간이 떠있는 전광판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건강하세요. 일 있으시면 연락하시고요."

아버지는 잠시 말이 없으시다가 그래. 하고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내가 연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셨을 것이다. 생신을 제외하고는 연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스타집에서의 7살짜리 아이 같던 아버지는 이제 다시 노인으로 돌아와 아무 말이 없었다. 버스 시간이 되었고 푹푹 찌는 여름더위에 버스에서 내리는 승객들은 일제히 얼굴을 찌푸렸다. 아버지는 이제 들어가라며 내 등을 한두 번 가볍게 도닥이고는 버스에 올랐다. 아직 출발시간은 5분 정도 남았지만 버스에 탄 아버지도 자신의 발 끝만 응시했고 나도 그를 조금 더 지켜보다가 버스 기사가 운전대를 잡는 것을 보고는 발길을 돌렸다. 상추 같은 푸른 잎사귀가 나올 때까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지하철을 타고 걸어 집에 도착했다. 가게 문을 다시 열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내 가게로 향했다. 저녁 5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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