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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Aug 01. 2022

속마음

종이에 수채, 색연필, 파스텔



조용했던 겨울이 지나자 영원한 눈 속일 것 만 같았던 거리가 조금씩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새들도 소리를 내고 길가의 고양이들도 나른한 기지개를 켰다.

시에나는 오랫동안 우울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봄은 더 성가시고 잔인하며 힘든 계절이었다. 유명한 발레단의 코치인 어머니에게 발레를 그만둔다고 말한 날 그녀는

집에서 쫓겨나듯 도망쳐 나왔다. 다시는 발레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당장 먹을 물조차 없는 그녀는 제일 싫은 발레를 가르치며 돈을 벌었다. 돈이 조금 모이자 그녀는 더 이상 발레수업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집 근처의 꽃가게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꽃 가게의 사장은 남자였는데 수염이 덥수룩하고 투박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처음엔 고생을 하다가 성실함과 친절함 그리고 그만의 소박한 꽃다발 덕에 인기가 많아져  점점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시에나는 이제 막 자리를 더 넓힌 꽃가게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시에나와 사장을 두고 로맨틱한 이야기들을 하고는 했는데 어느 날 그런 이야기가 시에나에게도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간지러울법한 이야기에도 미동조차 없었다. 사장 또한 그래 보였다. 그녀는 꽃가게 일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 꽃다발을 그리곤 했다. 만들고 싶은 꽃다발을 그리면서 끈적이며 달라붙는 우울함을 떨치려 노력했다. 그녀가 우울증 진단을 받은 건 발레단에서 주연을 맡은 후였다. 엄마에게 우울증 진단을 받은 이야기와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우울감에 대해 털어놓았을 때 그녀의 엄마는 열심히 하려는 간절함이 없을뿐더러 아무 걱정 없이 발레만 해서 그런 것이라며 일축했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발레를 하는 발레리나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죄책감이 들었다. 정말 자신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죄책감이 심해질수록 그녀의 우울증도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고 으리으리한 집을 떠나 작고 낡은 방에 사는 것을 택했다. 신기하게도 잠을 잘 잘 수 없었던 그녀는 새로 옮긴 딱딱한 침대에서 오랜만에 깊고 단 잠을 잘 수 있었다. 4월의 어느 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꽃가게 일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 찰나 그녀에게 사장은 비어있는 화분과 작은 봉투 두 개를 내밀었다. 

"직접 키워 보는 것도 좋을 거야 시에나" 화분을 건네받은 시에나는 집으로 간 후 화분에 흙을 담고 조그맣게 구멍을 파내어 작고 길쭉한 씨앗을 심었다. 화분은 해가 잘 드는 창가에 두었다. 그녀는 해가 질 동안 화분에 햇빛이 드는 것을 지켜보다가 소파에 앉아 사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 잘 키워볼게요 고마워요 매티] 

화분을 건네는 그의 투박한 손이 생각났다. 손톱에는 흙 때가 끼어있었지만 더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의 손을 한번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시에나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감았다. 어쩐 일인지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무슨 꿈을 꾸기라도 하듯 갸름한 그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길어진 해가 이제는 화분과 시에나를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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