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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Aug 01. 2022

개인의 동화

종이에 마카


빛바랬던 나뭇가지들은 혈색을 찾는 듯 진한 커피색을 입, 끝자락에 퍼져가는 나뭇잎들은 반딧불이를 달아 놓은 듯 영롱한 연두 빛을 뗬다. 자연이 변화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사진작가

포빌은 올해 사진잡지에 실을 사진을 찍기 위해 베르쉰 이라는 마을로 향했다. 14시간 정도 하늘을 날아 (물론 비행기로 말이다.) 베르쉰 이라는 마을에 도착한 포빌은 의외의 평범한 마을 풍경에 살짝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의 어느 마을에서나 볼 법한 수준의 아름다움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마을을 추천한 친구 데니스에게 전화를 걸어 약간의 짜증을 냈다. 데니스의 웃음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곧 알게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데니스는 전화를 끊었다. 포빌은 마을의 작은 호텔에 짐을 풀고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걷다 보니 큰 호수가 펼쳐졌다. 호수에는 하얀 오리들이 유유히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는 초록색 벤치에 앉아 떠다니는 오리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뉴욕에 있는 부인과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는 멋진 사진으로 가족들을 기쁘게 하고 싶었다. 일주일 뒤면 사랑하는 아내 마샤와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 그는 꽤 유명한 사진작가들 중 한 명이었지만 자신이 뛰어나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적 없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운이 좋았고 그 운이 불행하지 않게 계속 따라와 주길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남들보다 더 열심히 완벽을 추구하곤 했다. 때로 지치는 날도 있었지만 지쳐하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쉼이란 그저 작업이 없는 날 딸과 놀아주고 나서 함께 잠드는 것이었다. 그는 오리를 바라보다 사진기를 들어 하얀 오리 떼를 찍었다. 물론 잡지에 실을 사진은 아니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딸과 아내를 위한 사진이었다. 그는 오리 떼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을 찍고 근처에 위치한 빵집에서 샌드위치를 두 어개 산 후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서려는 순간 보라색 새 한 마리가 그의 눈앞에 멈춰서 날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말이다. 새는 마치 눈을 맞추고 이야기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포빌의 정면에서 날개 짓을 하고 있었다. 포빌은 갑작스러운 새의 등장에 당황했지만 순간적으로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사진기를 들어 올리려고 하자 보라색 새는 그의 머리 위로 순식간에 날아올라갔다. 그리고는 조금씩 이동하며 그를 유인하려는 듯이 움직였다. 해가 지려는 것 같아 그는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새를 따라가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새를 따라갔다. 새가 다다른 곳에 거의 도착할 무렵엔 거의 뛰다시피 새를 따라갔기에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앞에는 초록색 지붕으로 만들어진 노란 집이 보였다. 그 뒤로는 작은 언덕이 있었는데 둥그스름한 언덕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그의 입이 자연스레 벌어졌다. 노란 집의 파란 문이 열리더니 붉은 곱슬머리를 한 여자가 머리에 새를 얹고는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미소와 함께 인사를 한 후 보라 새를 쓰다듬었다. 포빌은 그 집과 언덕을 보자마자 이곳을 추천한 동료 데니스에게 그가 좋아하는 감자튀김을 원 없이 사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렸던 때에나 상상했던 신비로운 마법 마을을 보는 듯 해했기 때문이다. 이런 곳을 데니스가 알고 있다는 것도 신기할 다름이었다. 여자는 포빌이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포빌은 자신이 자연을 찍는 사진가라고 소개했고 이곳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여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빌은 노란 집 근처를 빙 둘러보고는 사진이 제일 잘 나올 수 있는 장소를 탐색했다. 그러는 사이 해가 어느새 조금씩 붉어지고 있었다. 그는 계속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언덕이 보이는 풀숲에  앉아지는 노을과 노란 집을 찍기 위해 사진기를 세팅했다.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보라색 새가 그의 어깨 위로 날아와 앉았다. 그 순간 그는 세팅된 카메라를 차곡차곡 접은 후 가만히 앉아서 앞에 보이는 풍경을 바라봤다. 한 장에 사진으로 담기에 아까운 것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봐왔던 모든 풍경 중 제일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마음으로 담고 싶은 것이구나. 해가 언덕 너머로 넘어가고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이 뜨는 밤까지 그는 쭉 풍경을 바라봤다. 약간은 차가운 봄바람이 포빌의 금빛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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