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두부 Aug 01. 2022

숲 속에서

종이에 색연필



겨울과 봄의 그 중간 어디쯤에 서 있다 보면 실수하듯 봄을 기다리는 나를 발견한다. 겨울을 그토록 원했고 좋아했음에도 봄이 내미는 온기에 발을 걸쳐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얄궂은 마음에 나는 마치 사죄라도 하듯 아킨 씨 집 옆으로 이어지는 좁은 오솔길을 따라 숲 속으로 걸어갔다. 눈이 많이 오는 이 마을은 이상하게 눈이 얼지도 녹지도 않은 채로 오랫동안 쌓여있는 곳이다. 나는 땅콩 색 털신에 붙는 하얀 눈을 보며 평생을 담듯 눈에 담고 점점 더 깊은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새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고요함에 눈 위를 밟는 발자국 소리만 퍼져갔다. 빼곡한 나무들을 바라보니 이미 껍질이 벗겨지거나 벗겨지는 중이었다. 남의 생채기 빤히 들여다보는 것 같아 나는 숙연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다 삼촌에게 어릴 적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성장을 하기 위해 자신에게 더 이상 맞지 않는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라고 했다. 맞지 않는 옷을 버리지 못하고 지난날에 멈춰있는 나는 이런 겨울의 나무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듯했다. 나는 조금 더 걸어가다  떨어질 것 같은 나무껍질을 조심스레 벗기고 그 옆에 앉았다. 나무에 기대서 나무들을 바라봤다. 벗겨내지 못하는 것들을 차근히 떠올렸다. 

이전 17화 40 싱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