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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Aug 01. 2022

두근두근

종이에 색연필


이번이 올해의 10번째 소개였다. 9번째 남자는 파스타를 먹다가 자기도 몰랐던 새우 알레르기가 생겨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물론 미안하다는 말은 들었다. 그날 혼자 묵묵히 파스타를 먹은 후 집으로 오는 길에 이 짓도 이제 그만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그래도 봄이라 날씨가 좋아서인지 우울해진다거나 화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위험하다. 등줄기로 땀이 연신 흐르고 레이저 제모까지 한 겨드랑이에서는 이미 수영장을 개장한 듯 난리가 나있었다. 직장동료의 소개로 나온 자리인지라 고작 땀을 핑계로 성의 없이 굴고는 집으로 갈 노릇도 되지 못했다. 뜨거운 햇빛이 피부를 뚫고 찔러대는 것 같은 무더위에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약속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당연한 것이지만 커피숍 안은 이글루에 들어온 듯 시원했다. [물론 이글루에 들어가 본 적은 없다.] 약속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낸 후 에어컨과 가장 가까운 자리로 앉았다. 무슨 음료를 먹을 건지 물어보고 나는 차가운 초콜릿 라테를 주문했다. 사진을 본 적이 없어 의상착의로 서로를 구분했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더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약속된 시간에 정확히 맞는 시간에 상대방이 도착했고 나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에 기억을 이리저리 더듬었다. 상대방은 나를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혹시 버먼 초등학교에 다니지 않았냐고 물어봤고 그는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둘 다 곤충을 좋아하던 개구쟁이들이었다. 수업이 다 끝나면 학교 뒤 숲 속으로 곤충을 채집하러 다니곤 했다. 내가 개미에 물렸던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기억이 난 듯 크게 웃었다. 나는 그때의 이야기를 한참 주고받다가 그의 웃는 얼굴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9번째 소개까지도 나는 번번이 퇴짜를 맞았기에 두근거리는 마음이 썩 반갑지는 않았다. 오히려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친구로 지내자는 말을 할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 생각 때문이었는지 말 수가 줄어든 나를 향해 그가 말했다. 

“여전히 좋다” 

그날 우리는 중국에 가면 곤충요리가 있다는 말과 함께 다음엔 같이 중국에 가보자는 이야기로 대화를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끈적이는 땀들이 기분 좋을 수가 있는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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