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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Mar 27. 2023

콩두부의 단편보다 단편같은

내일도, 모레도

종이에 색연필,마카,크레용

미코는 동네의 작은 중식 뷔페에서 설거지를 하는 일을 했다. 손이 아주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성실하고 꼼꼼한 성격 덕에 그녀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그녀가 그만두지 않기를 바랐다. 연말이 되자 이 작은 뷔페에도 사람들로 가득 찼다. 평소에는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었기에 갑자기 늘어난 그릇과 식기들을 씻으려니 손목과 손가락 마디마디가 위태롭게 쑤셔대고 있었다. 잘못하면 영영 손을 쓰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자 쉴 틈 없이 그릇들이 쌓여가서 그녀는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원래 5시면 퇴근을 한다.) 길고 좁은 직원 통로로 빠져나와 밖으로 나오니 웅웅 거리는  바람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 어딘가 안에 들어가 있는 건지 거리에는 아주 적은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텅텅 비어있었다. 그녀는 왼쪽이 망가진 이어폰을 끼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었다. 뜨거운 주방에서 나와서 인지 차가운 겨울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캐럴까지 더해지니 그녀에게도 이브가 온 것 같았다. 그녀는 한 달 전부터 이브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했는데 막상 이브가 되니  근사한 와인가게에 들러 와인을 마셔보는 사치를 부려볼까 했던 마음은 없어졌다. 대신 집에 오는 골목 건너편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빵집에서 빵을 몇 개 살 작정이었다. 이 동네로 이사를 온 지 2년이 되었지만 얼핏 보기만 했을 뿐 한 번도 가본 적은 없는 곳이었다. 비싼 빵보다 저렴한 시리얼과 우유를 사곤 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빵을 먹을 생각을 하니 뷔페에서 맡았던 패스츄리냄새가 생각났다. 오늘은 드디어 냄새만이 아닌 빵을 먹을 수 있겠다는 사실에 들뜬 마음으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따뜻한 노란 조명이 몇 종류의 빵을 비추고 있었다.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남자는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안녕하세요-"하며 짧고 부드러운 인사를 건넸다. 그는 문이 열릴 때 살짝 놀란 것 같았지만 이내 그녀의 들뜬 표정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 역시 인사를 한 후 진열대 안에 있는 빵들을 둘러보았다. 유행하는 모양의 빵들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투박하고 꾸며지지 않은 모습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생긴 빵이 더 맛있는 법이지.'라고 생각하며 빵을 골랐다. 계산을 하고 인사를 한 후 나오려는데 문고리에 걸린 표시판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를 닫았다는 쪽으로 표시판이 걸려있는지도 모르고 들어왔던 것이었다. 그녀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돌려 주인을 쳐다보고는 "문을 닫으신 건 줄은 몰랐어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는 잠시 목이 메어있었는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다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말했다.

"오늘로 정말 문을 닫으려고 했습니다... 오늘 손님이 온다면 내일도 모레도 열겠다고  기도했는데 손님이 오셨어요. 계속하라는 뜻인가 봅니다." 남자가 허허 웃으며 희끗한 뒷머리를 머쓱하게 쓸어내렸다.

그녀는 어딘가 사정이 있어 보이는 주인의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서둘러 대답했다.

"오늘 제게 꼭 필요한 빵이었어요. 아마 앞으로도 요, 그러니까 내일도 , 모레도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는 부끄러운 마음에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남자가 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메리크리스마스. "

그녀는 메리크리스마스라고 대답한 뒤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목도리를 더 감싸며 집으로 향했다. 그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빵집의 노란 조명은 그대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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