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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Jun 03. 2023

잠깐만, 생일초는 필요 없어요

Depressive dis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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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에서 더 넘어가지 못한 달력이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펄럭하고 가라앉았다. 셀리는 식탁에 엎드려 조금씩 펄럭이는 달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몇 시인지 무슨 요일인지는 몰랐지만 대충 오후 4시쯤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식탁 위의 약봉투 안에는 언제 처방받았는지도 모를 약들이 다 부서져 있었다. 셀리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오래전 그녀의 집을 찾은 킴 목격한 바에 의하면  칼 손잡이로 약을 하나하나 부서트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셀리는 달력을 보던 얼굴을 접은 팔 사이로 넣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거 똑같은 꿈이었다. 작년 봄 셀리의 생일을 맞아 가까운 가족들이 모인 자리였다. 셀리는 바꾼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호흡이 거칠어지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직사각형의 기다란 식탁에 앉은 사람들은 셀리의 생일파티라는 사실은 잊은 채 저마다의 얘기에 빠져있었다. 꿈속에서 셀리는 11번째로 과호흡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심장은 여전히 매우 빨리 뛰고 있었다. 속도를 이기지 못한 채 앞에 놓인 초콜릿케이크에 그녀의 얼굴이 푹-하고 쓰러졌다. 11번째였다. 미끄럽고 부드러운 생크림 포근했고 진한 초코향이 콧속에 가득찼다. 그제서야 시끄러운 소리들이 잠잠해졌다. 잠에서 깨어나 고개를 드니 빈 식탁에는 초콜릿케이크도 소란스러운 소리들도 없었다. 광이 반지르르하게 나는 식탁에 비친 셀리의 얼굴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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